[창간 15주년 특집] 한자(漢字)가 새긴 전쟁 ⑤ : 언어적 영토의 최전선, 그리고 그 이후무예(武藝)·무술(武術)·무도(武道), 한중일 삼국이 쟁탈한 언어적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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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예(武藝)·무술(武術)·무도(武道), 한중일 삼국의 언어적 영토 쟁탈전을 형상화한 이미지. ©한국무예신문 |
【핵심 요약】
이번 최종회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오늘날 동아시아의 무(武) 언어 지형은 중국의 Wushu와 일본의 Budo가 강한 국제적 영향력을 확보한 가운데, 한국의 Muye가 자기 위상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를 묻는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한국은 태권도, 《무예도보통지》, 택견, 씨름, 합기도 등 풍부한 자산을 갖고 있지만, 이를 하나의 국제 담론 언어로 조직하는 일은 아직 미완성이다.
둘째, 한국 무예가 언어적 영토를 확보하려면 세 개의 전선이 필요하다. 《무예도보통지》를 세계 무예 연구의 주요 원전 가운데 하나로 세우는 기록 외교, K-콘텐츠와 결합한 문화 전략, 씨름과 택견으로 대표되는 민중 신체의 복권이다. 각 전선은 구체적 실행 주체와 단계를 필요로 한다.
셋째, 그러나 제도화와 세계화는 언제나 몸의 다양성을 약화시킬 위험을 동반한다. 한국 무예의 과제는 단순한 국가 브랜드화가 아니라, 제도 안에 표준화에 저항하는 공간을 남겨두는 일이다. 언어적 영토를 얻는 것과 몸의 영토를 지키는 것, 이 두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삼각형의 현재 — 세 언어의 지정학
오늘날 동아시아의 무(武) 언어 지형은 분명한 삼각 구도를 이룬다.
중국은 자본과 제도로 무술(Wushu)의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160개국 이상의 회원 단체를 가진 국제무술연맹(IWUF)을 통한 세계선수권대회, 국가 체육 행정과 해외 보급망, 문화외교와 결합한 국제 전략. Wushu는 단순한 격투 기술이 아니라 중국 문명의 원류성과 연속성을 설명하는 문화정치의 언어로 활용되고 있다. 올림픽 정식 종목 진입을 향한 중국의 지속적 시도는 이 전략의 최전선이다.
일본은 인프라와 네트워크로 무도(Budo)의 영토를 유지하고 있다. 1972년 이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자리 잡은 유도(1964년 도쿄에서 최초 등장), 2020 도쿄 올림픽에 한시적으로 추가된 가라테. 검도·궁도·합기도는 전통문화와 정신수양의 이미지 속에서 세계 각지에 도장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일본무도관이라는 상징 공간, 수십 년간 축적된 국제 사범 네트워크, 체계적인 단증 체계. 무도의 힘은 화려한 선언이 아니라 조용히 작동하는 제도 인프라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 성공들이 치른 대가도 함께 보아야 한다.
중국의 Wushu는 표준화 과정에서 지역 문파의 다양성을 약화시켰고, 傳統武術 수련자들과 競技武術 진영 사이에 깊은 균열을 낳았다. 일본의 무도는 규범화되면서 전근대 기술의 살아 있는 현실성을 순화하고, 메이지 이후 근대 국가의 훈육 체계 안으로 재배치되었다는 역사적 맥락을 지운 채 유통되고 있다.
언어적 영토의 확장은 항상 그 내부의 어떤 야생성을 길들이는 과정을 수반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에 있는가.
태권도는 200개국 이상에 보급된 세계적 종목이 되었다. 택견은 2011년, 씨름은 2018년, 남북이 각각 신청해 동시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무예도보통지》는 조선 무예 문헌사의 독보적 성취로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자산만 놓고 보면 한국은 결코 빈곤하지 않다.
문제는 이 자산들이 하나의 상위 언어 아래 충분히 통합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태권도는 세계화했지만, 태권도의 세계성이 한국 무예 전체를 설명하는 국제 담론의 언어가 되지는 못했다. 《무예도보통지》는 뛰어난 원전이지만, Muye라는 개념이 Wushu나 Budo와 동등한 국제 학술어로 유통되고 있는가를 묻는다면, 대답은 아직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한국의 무예 딜레마다.
역사적 자산은 풍요롭지만, 그것을 국제 담론의 중심 언어로 조직하는 일은 아직 미완성이다.
냉정한 진단 — 언어적 영토는 저절로 확보되지 않는다
언어적 영토는 자료가 많다고 자동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유산이 있다고 영토가 생기지 않는다.
문헌이 있다고 주도권이 생기지 않는다.
종목이 세계화되었다고 상위 개념이 자동으로 세계화되는 것도 아니다.
중국에는 거대한 국가 자본과 문화 보급 장치가 있다. 일본에는 오랜 도장 네트워크와 제도 인프라가 있다. 한국이 이 구도를 바꾸려면 무예를 더 이상 종목별 행정의 문제로만 다뤄서는 안 된다.
각 무예 단체의 이해관계 속에서 분산 관리되는 방식으로는 언어적 영토를 확장하기 어렵다. 그것은 국가 문화전략의 차원에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경계해야 한다.
국가 문화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은, 국가가 모든 몸을 하나의 표준으로 정리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무예의 전략은 중국과 일본의 성공을 배우되, 그들이 치른 대가를 반복하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단순한 후발 추격이 아니다.
제도화하면서도, 제도 밖의 몸이 숨 쉴 공간을 남기는 길이어야 한다.
첫 번째 전선 — 기록 외교 그리고 번역이 낳는 침묵에 대하여
《무예도보통지》를 세계 무예 연구의 주요 원전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시키는 일이 첫 번째 전선이다.
이 문헌은 단순한 조선의 군사 교범으로만 볼 수 없다. 그것은 동아시아 세 나라의 무예 자원을 비판적으로 수용해 조선의 시각으로 종합한 문명 텍스트다. 중국의 《기효신서》를 참조했지만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었고, 일본의 왜검 기술을 흡수했지만 조선의 군사 현실과 훈련 체계 속에서 재조직했다. 한문과 한글 언해, 도해가 결합된 이 편찬 방식은 동아시아 무예 문헌사에서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렵다.
이 텍스트를 국제 무예 담론의 중심에 세우려면 보존을 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불편한 사실 하나를 직시해야 한다.
《무예도보통지》는 남한에도 규장각·장서각·국립중앙도서관 등에 관련 소장본이 전해지지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 등재는 2017년 북한이 평양 인민대학습당 소장 목판 인쇄본을 근거로 먼저 성사시켰다. 특히 북한의 등재 신청 및 유네스코 소개 문안에는 이 문헌을 현대 태권도, 특히 북한식 태권도의 역사적 원류와 연결짓는 서술이 포함되어 있어, 그 계보 해석을 둘러싼 논쟁과 비판을 불러왔다.
이 하나의 사실이 언어 전쟁의 현주소를 압축한다.
조선이 편찬하고, 한국이 자국 무예의 문헌적 기반으로 삼아온 이 원전의 국제 서사 주도권을, 한국이 아닌 북한이 먼저 선점했다. 한국 소장기관들은 등재 신청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의 결과가 지금도 유네스코 등재 목록 위에 남아 있다.
그리고 이 구조는 무예도보통지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2018년, 씨름도 같은 방식으로 분리되었다. 남한의 씨름과 북한의 씨름은 각각 별도 신청을 통해 같은 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동시 등재되었다. 한반도의 같은 흙 위에서 자라난 같은 이름의 전통이, 국제 문서 위에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항목으로 기록되고 있다. 무예도보통지는 북한이 먼저 등재했고 한국은 침묵했다. 씨름은 남북이 각자의 언어로 등재했고 공동의 서사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두 사례는 한국 무예 기록 외교의 구조적 공백을 압축한다. 침묵하는 사이 서사는 분리되고, 분리된 서사는 점점 더 통합하기 어려워진다. 서사 싸움에는 유효기간이 있다.
따라서 기록 외교의 과제는 두 방향이다. 하나는 한국 소장본을 근거로 별도 등재 가능성을 검토하거나, 장기적으로 남북 공동 서사 정립과 공동 등재 가능성을 탐색해야 한다. 더 시급한 다른 하나는, 다국어 비평판과 국제 학술 번역을 통해 이 문헌의 역사적 맥락을 정확하게 세계에 알리는 일이다. 북한의 서사가 유통되는 동안 한국의 언어는 침묵했다. 그 침묵부터 깨야 한다.
다국어 비평판이 필요하다. 국제 학술 번역이 필요하다. 디지털 아카이브가 필요하다. 세계 무예 연구자들과의 공동 연구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도해와 언해, 실제 동작을 연결하는 영상 기반 해석도 필요하다.
이것들은 더 이상 학계 내부의 과제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국가 문화전략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무예도보통지》를 박물관의 책으로만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세계의 연구자가 읽고, 수련자가 참고하고, 콘텐츠 창작자가 상상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원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 전선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번역은 언제나 선택이다.
선택은 언제나 침묵을 낳는다.
《무예도보통지》를 국제 학술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어떤 것을 강조하고, 어떤 것을 약화시킨다. 그림과 언해로 이루어진 이 문헌은 단지 정보의 전달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몸으로 읽히기 위해 만들어진 텍스트였다. 표준화된 학술 언어로 옮기는 순간, 몸의 감각과 호흡, 리듬의 일부는 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기록 외교는 무엇을 번역할 것인가만이 아니라, 무엇을 번역할 수 없는가를 인정하는 일이어야 한다. 문헌을 세계의 언어로 옮기되, 문헌이 끝내 담지 못하는 몸의 자리를 함께 남겨두어야 한다.
기록 외교의 목표는 책을 세계에 알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기록과 몸을 다시 만나게 하는 데 있다.
두 번째 전선 — K-컬처 전략 그리고 스펙터클이 환영을 만들 때
스크린과 플랫폼이 두 번째 전선이다.
중국의 무술이 세계의 상상력 속에 자리 잡는 데에는 국가 행정만이 아니라 영화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소룡, 성룡, 이연걸이 보여준 몸의 이미지는 수많은 사람에게 중국 무술을 각인시켰다. 일본 역시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영화, 도장 네트워크를 통해 무도의 미학과 수련 이미지를 세계 청년 문화 속에 심었다.
한국은 지금 세계가 주목하는 콘텐츠 강국이다. K-드라마, K-영화, K-팝, 웹툰, 게임, 온라인 플랫폼. 이 생태계는 한국 무예가 세계로 나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통로다.
《무예도보통지》의 십팔기를 바탕으로 한 게임 세계관, 조선 무예의 미학을 시각적으로 복원한 드라마 시리즈, 씨름과 택견의 몸짓을 현대적 액션 언어로 변환한 영화, 한국 무예의 철학과 몸을 담은 웹툰과 애니메이션. 이것들은 충분히 가능하다.
무예는 기록실보다 스크린과 플랫폼 위에서 더 넓게 살아날 수 있다.
그러나 이 전선에는 예리한 내부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민중의 장터 무예가 스크린의 스펙터클이 될 때, 그것은 더 많은 이들에게 닿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자본주의적 소비의 대상이 되고, 소비되기 위해 정형화되고 매끄럽게 가공된다. 씨름의 거친 흙바닥이 CGI 화면 속에서 아름다운 장면이 될 때, 무언가는 구원되고 무언가는 잃어버린다.
콘텐츠는 무예를 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환영을 유통시킬 수도 있다.
무예 수련 문화와 콘텐츠 산업이 서로를 갱신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실제 수련자, 전승자, 연구자, 창작자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무예를 스펙터클로만 만들면 세계인은 한국 무예의 이미지만 소비할 것이다. 무예의 몸을 함께 살리면 세계인은 한국 무예의 깊이를 경험할 것이다.
콘텐츠는 문이다. 그러나 문 너머에 실제 수련의 세계가 없으면, 그 문은 결국 세트장에 불과하다.
세 번째 전선 — 민중 신체의 복권 그리고 제도가 몸을 포섭할 때
가장 오래된 전선이 가장 늦게 주목받아 왔다.
민중의 몸이다.
씨름은 지금도 살아 있다. 흙바닥 위에서 두 몸이 맞붙는 그 원초적 언어는 오랜 시간 공동체의 몸속에서 이어져 왔다. 택견은 유네스코 등재를 통해 국제적 지위를 얻었고, 품밟기의 리듬은 아직 살아 있는 전승자들의 몸 안에 있다.
그러나 이 둘은 종종 '민속놀이' 혹은 '전통 행사'의 범주 안에 머물며, 무예 담론의 중심에 놓이지 못하고 있다.
이 위계를 뒤집어야 한다.
문헌으로 남은 무예와 몸으로 이어진 무예는 상하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무예 전통을 이루는 두 개의 축이다. 《무예도보통지》가 관(官)의 봉우리라면, 씨름과 택견은 그 아래 거대한 산의 몸통이다.
봉우리만 보존하고 몸통을 방치한다면, 한국 무예는 뿌리 없는 언어가 된다.
씨름과 택견은 보존의 진열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학교 체육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 축제에서, 국제 문화 교류의 현장에서, 미디어와 콘텐츠 속에서 다시 순환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이 세 번째 전선에서 가장 예리한 질문이 제기된다.
씨름과 택견이 국가의 제도 언어와 연결되는 순간, 그 연결은 민중의 몸을 해방시키는가. 아니면 또 다른 방식으로 조직하고 훈육하는가.
유네스코 등재라는 국제 제도의 언어 속에 편입된 택견은 등재 이전의 택견과 완전히 동일한가. 전승자마다 조금씩 달랐던 품밟기가 표준화된 시연 방식으로 정착될 때, 그 다양성은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에 쉬운 답은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세 번째 전선이 진정으로 살아 있으려면 국가의 제도 언어가 민중의 몸을 일방적으로 포섭하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민중의 몸이 국가 제도의 언어를 끊임없이 갱신하고 흔드는 방식이어야 한다.
씨름의 흙냄새와 택견의 발디딤이 제도 안으로 들어가더라도, 제도에 의해 납작해지지 않아야 한다. 전승자의 차이, 지역의 결, 생활 속 몸의 감각이 살아 있어야 한다.
민중 신체의 복권은 단순한 보존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무예의 뿌리를 다시 호명하는 일이다.
Muye라는 이름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한국은 이제 선택해야 한다.
무예를 영어로 어떻게 부를 것인가.
이 문제는 단순한 표기법이 아니다. 표기는 곧 전략이다. 세계가 어떤 이름으로 한국 무예를 기억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중국은 Kung fu라는 대중적 표현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음에도, 국가 체육과 국제 경기의 언어로는 Wushu를 밀어 올렸다. 일본은 Budo라는 이름을 통해 무도를 단순한 martial arts가 아니라 일본의 정신 수양과 전통문화의 언어로 유통시켰다.
이 두 이름이 세계의 입에 오른 경로는 구체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
중국은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Wushu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고, 같은 해 국제무술연맹(IWUF)을 창설해 국제 경기 규칙과 심판 체계를 표준화했다. 공자학원 교육 과정에 Wushu를 포함시키고, 외교부와 문화부의 공식 문서에서 Kung fu가 아닌 Wushu를 일관되게 사용했다. 이소룡이 전 세계에 심어놓은 Kung fu라는 대중 언어를 국가 공식 체육 언어로 교체하는 데 약 20년이 걸렸다.
일본은 더 오래, 더 조용하게 작업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무도관을 설립해 Budo의 상징 공간을 만들었고, 1984년 국제무도대학을 세워 외국인 사범을 체계적으로 교육했다. IJF(국제유도연맹), WKF(세계가라테연맹) 등 국제 기구의 공식 언어 안에 Budo를 심었고, 단증 체계를 세계 표준으로 정착시켜 도장마다 같은 언어를 쓰게 만들었다. Budo라는 단어가 세계 각지의 도장 문 앞에 붙게 된 것은 선언의 결과가 아니었다. 수십 년간 제도의 언어 속에서 반복된 결과였다.
반복과 제도. 이것이 언어가 영토가 되는 경로다.
한국의 전략은 이렇게 설계되어야 한다.
대중적 접근과 초기 확산을 위해서는 Korean martial arts라는 설명적 표현을 병행한다. 그러나 국제 학술, 문화외교, 주요 문화기관과 공식 행사에서는 Muye를 고유 명칭으로 일관되게 사용한다. Wushu와 Budo가 세계의 입에 오른 것처럼, Muye도 반복과 맥락의 축적을 통해 자기 발음을 세계에 심어야 한다.
다만 이름만으로는 부족하다.
Muye가 태권도만을 뜻한다면 좁다. Muye가 전통무예 행정 용어에만 머문다면 약하다. Muye가 민족주의적 구호에만 머문다면 오래가지 못한다.
Muye는 한국의 문헌과 민중의 몸, 태권도와 택견, 씨름과 합기도, 수련과 콘텐츠, 학술과 현장, 전통과 현대를 함께 품는 상위 언어가 되어야 한다.
이름은 깃발이다.
그러나 깃발 아래 살아 있는 몸이 모이지 않으면, 깃발은 바람에만 펄럭일 뿐이다.
한국무예신문의 역할 — 기록자에서 담론 설계자로
여기서 한국무예신문의 역할이 분명해진다.
한국무예신문은 15년간 무예 현장의 기록자로 살아왔다. 대회 결과를 전하고, 인물을 취재하고, 제도의 변화를 추적했다. 그것은 필요한 일이었고,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기획을 통해 한국무예신문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은 더 크다.
기록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담론을 설계해야 하는가.
무예라는 말의 역사적 깊이를 설명하고, 《무예도보통지》의 가치를 세계적 언어로 번역하며, 씨름과 택견의 몸을 무예 담론의 중심으로 불러오고, 태권도와 합기도의 현대적 의미를 한국 무예라는 큰 틀 안에서 다시 읽는 일. 이것은 보도 매체의 기능을 넘는 작업이다.
한국무예신문은 불편한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
국가가 무예를 보존한다는 이름으로 몸을 표준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단체가 전통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권위를 독점하고 있지는 않은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수련의 깊이가 이미지 소비로 대체되고 있지는 않은가.
민중의 몸을 말하면서 정작 전승자의 목소리는 지우고 있지는 않은가.
언어적 영토를 주장하면서 그 영토 안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몸들을 배제하고 있지는 않은가.
언론은 박수만 치는 기관이 아니다.
언론은 기록하고, 묻고, 연결하고, 때로는 제도와 권력을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국무예신문 창간 15주년 기획 〈한자(漢字)가 새긴 전쟁〉이 이 질문들을 던졌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념 기획을 넘어 하나의 자기 선언이 된다.
한국무예신문은 한국 무예의 사건을 보도하는 매체를 넘어, 한국 무예의 언어를 만드는 매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언어를 만드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도 같은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
우리의 기록이 어떤 몸을 드러내고, 어떤 몸을 지우는가.
우리의 담론이 어떤 무예를 중심에 세우고, 어떤 무예를 주변에 두는가.
우리는 기록자인가, 아니면 또 다른 선별자인가.
이 자기 비판 없이 담론 설계자를 자임하는 것은 또 다른 권력의 언어가 된다.
한국 무예를 위한 7대 제안
이제 논의를 제안으로 압축할 필요가 있다. 각 제안에는 과제뿐 아니라 실행의 주체와 협력 구조가 함께 제시되어야 한다.
주장만 있고 주체가 없는 제안은 공허하다.
1. 《무예도보통지》 다국어 비평판 추진 및 세계기록유산 서사 주도권 회복
2017년 북한이 먼저 등재한 세계기록유산 서사에는 《무예도보통지》를 현대 태권도, 특히 북한식 태권도의 역사적 원류와 직접 연결짓는 해석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무예사·태권도사 연구의 관점에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논쟁적 서술이다. 한국 소장본은 아직 별도 등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급한 과제는 두 가지다. 첫째, 한국 소장본을 근거로 한 세계기록유산 등재 가능성을 검토하고, 장기적으로는 남북 공동 서사 정립 또는 보완 등재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둘째, 원문·도해·언해·현대어 해설·동작 해석·비교 주석을 포함한 국제 표준형 다국어 비평판을 편찬해 이 문헌의 역사적 맥락을 정확하게 세계에 제시한다. 북한의 서사만 유통되는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한국이 스스로 침묵하는 것과 같다.
주도: 문화체육관광부, 한국학중앙연구원
협력: 국내외 무예사 연구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국립중앙도서관
이정표: 한국 소장본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영문 비평판 출판
2. Muye 국제 표기와 개념의 제도적 정립
Korean martial arts라는 설명적 표현과 함께 Muye라는 고유 명칭을 국제 학술·문화·외교 맥락에서 일관되게 사용하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이 작업은 어느 한 기관의 단독 결정이 아니라 무예계, 학계, 문화기관의 공론화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주도: 대한체육회, 국기원, 한국스포츠과학원(KISS) 등
협력: 학계, 해외 한국문화원 네트워크, 주요 무예 단체
이정표: 국제 학술 논문 및 공식 외교 문서에서 Muye 표기 정착
3. 한국 무예 통합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무예도보통지》, 택견, 씨름, 태권도, 합기도 등 각 지역 전승 자료를 통합한 디지털 아카이브가 필요하다. 문헌, 사진, 영상, 구술, 도해, 수련 동작이 함께 담기고, 한국어와 영어 이중 서비스로 운영되어야 한다.
주도: 국립무형유산원, 국립문화재연구원
협력: 각 종목 단체, 지역 문화원, 전승자 커뮤니티, 디지털 아카이브 전문 기관
이정표: 영문 서비스를 포함한 글로벌 접근 플랫폼 구축 및 정기 업데이트 체계 수립
4. 씨름·택견·전통무예의 교육 과정 재배치
씨름과 택견은 민속 행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학교 체육, 지역 공동체 프로그램, 국제 교류 프로그램 속에서 한국 무예의 핵심 신체 문화로 재배치되어야 한다.
주도: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협력: 전승자 단체, 지역 교육청, 현장 지도자
이정표: 초·중등 체육 교육 과정에 씨름·택견 정식 포함, 국제 교류 프로그램 연간 운영
5. K-무예 콘텐츠 제작 지원 생태계 조성
드라마, 영화, 웹툰, 게임,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에서 한국 무예를 깊이 있게 다룰 수 있도록 연구자·전승자·창작자 협업 구조가 필요하다. 단순 액션 소재가 아니라 철학과 몸의 깊이를 살리는 콘텐츠 전략이 필요하며, 이를 위한 무예 자문 시스템과 콘텐츠 제작 가이드라인을 수립해야 한다.
주도: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체육관광부
협력: 전승자, 연구자, 콘텐츠 창작자, 투자자
이정표: 무예 자문 참여 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신설 및 가이드라인 발표
6. 무예 연구·전승·현장 통합 협의체 구성
학계만으로도 부족하고, 현장만으로도 부족하다. 연구자, 전승자, 도장 지도자, 경기인, 콘텐츠 창작자, 정책 담당자, 언론 등이 함께 논의하는 상설 플랫폼이 필요하다. 이 협의체는 관(官) 주도보다 민간 주도로 운영되어야 한다. 관 주도의 협의체는 관료화될 위험이 있고, 불편한 질문이 제거되는 구조가 되기 쉽다.
주도: 무예계·학계 민간 공동 주도
협력: 정책 담당자는 자문 역할로 참여, 언론은 투명한 공론화 담당
이정표: 연 2회 이상 정기 포럼 개최, 포럼 결과의 공개 발간
7. 제도 안의 다양성 보장 조항 신설
국가 지정, 단체 인증, 표준 교본, 경기 규칙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승자의 차이와 지역의 몸을 없애서는 안 된다. 한국 무예 관련 정책과 법제도 안에 "표준화와 다양성의 공존"을 명시하는 조항이 필요하다.
주도: 문화체육관광부, 관련 입법 기관
협력: 시민사회, 전승자 단체, 무예계 이해관계자
이정표: 전통무예 진흥법 개정 시 전승 다양성 보장 조항 포함
이 일곱 가지 제안은 하나의 목표를 향한다.
한국 무예를 세계에 알리는 것.
그러나 세계화의 이름으로 한국 무예의 몸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그 둘이 모순이 아님을, 모순처럼 보일 때도 함께 붙잡고 가야 함을, 이 시리즈 전체를 통해 말해왔다.
실행 로드맵 — 주장은 주체 없이 떠돌고, 전략은 시간 없이 증발한다
일곱 가지 제안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제안은 시간의 좌표 위에 놓였을 때 비로소 전략이 된다. 선도 주체가 누구인지, 1년 안에 반드시 움직여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5년의 지평을 보며 설계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 이 구분이 없으면 7대 제안은 선의의 선언으로만 남는다.
긴급 과제 — 1년 이내,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하는 것
시간이 가장 촉박한 것은 《무예도보통지》 서사 주도권 회복이다.
북한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2017년에 이미 이루어졌다. 매년 국제 학술장에서 이 문헌이 인용될 때마다 북한의 서사는 조금씩 더 굳는다. 한국 소장본의 별도 등재 신청 준비는 문화체육관광부·한국학중앙연구원·국립중앙도서관이 공동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당장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등재 신청을 기다리지 않고 영문 해제(解題) 자료를 먼저 생산해 국제 학술 데이터베이스에 유통시켜야 한다. 서사 싸움은 등재 신청 버튼을 누르는 날부터가 아니라 오늘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Muye 국제 표기 가이드라인도 긴급 과제다. 이것은 대규모 예산이 필요하지 않다. 국기원·한국스포츠과학원(KISS)·해외 한국문화원 등이 협의해 공식 문서, 학술 논문 투고, 해외 한국문화원 홍보물에서 Muye를 일관되게 사용하는 내부 준칙을 1년 안에 확정하면 된다. 준칙이 있어야 반복이 생기고, 반복이 쌓여야 언어가 된다.
단기 과제 — 1년에서 3년, 제도의 뼈대를 세우는 시간
씨름·택견의 교육 과정 재배치와 K-무예 콘텐츠 지원 생태계는 3년 안에 제도적 뼈대를 갖추어야 한다.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2년 안에 초·중등 체육 교육 과정 개정안에 씨름·택견 정식 포함을 추진해야 한다. 단, 이것은 전승자·현장 지도자·지역 교육청의 협의 없이 위에서 내려오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지역별 시범 학교 운영 → 피드백 수렴 → 전국 확산의 단계를 거쳐야 제도가 현장을 지우지 않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무예 자문 참여 콘텐츠 지원 사업은 사업 신설 자체보다 가이드라인의 질이 중요하다. 단순 액션 자문이 아니라 무예 철학·신체 문화·역사적 맥락까지 콘텐츠에 반영될 수 있도록 무예사 연구자·전승자·창작자 3자 협의 구조를 제도화해야 한다. 이 사업의 초기 예산 규모는 기존 문화콘텐츠 진흥 예산의 일부를 재배분하는 수준으로도 출발이 가능하다. 전통무예진흥법에 근거한 전통무예 진흥 예산과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문화기술(CT) 연구개발 예산을 교차 활용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중장기 과제 — 3년에서 5년, 언어의 뿌리를 내리는 시간
통합 디지털 아카이브, 무예 연구·전승·현장 통합 협의체, 제도 안의 다양성 보장 조항은 5년의 호흡으로 설계해야 한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하드웨어 구축보다 콘텐츠 표준화가 더 오래 걸린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구술 자료, 지역 전승본, 도장 보존 자료의 수집·정리·권리 처리만도 3년을 상정해야 한다. 국립무형유산원과 국립문화재연구원이 선도하되, 예산은 국가유산청의 무형문화재 기록화 사업비와 디지털 뉴딜 관련 정보화 예산을 연계 편성하는 방식이 유효하다.
무예 통합 협의체는 관 주도로 시작하면 3년 안에 관료화된다. 민간이 먼저 자발적 포럼을 만들고, 그 포럼이 권위를 쌓은 뒤 정책 담당자를 자문 역할로 끌어들이는 순서가 맞다. 협의체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은 하나다. 불편한 발언이 회의록에 남아야 한다는 것. 공개된 불편함이 담론의 내구성을 만든다.
우선순위의 논리 — 왜 이 순서인가
긴급 과제가 먼저인 이유는 명확하다. 국제 서사는 선점 효과가 크고, 한번 굳은 서사는 되돌리는 비용이 더 크다. 언어 표기 가이드라인은 비용 대비 효과가 가장 높은 개입이다. 단기 과제가 그 다음인 이유는 현장의 몸과 제도를 연결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장기 과제는 물리적 구축에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공동체의 신뢰를 쌓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제를 관통하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
제도가 먼저 설계되고 현장이 끼워 맞춰지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의 몸이 먼저 움직이고 제도가 그 뒤를 따르는 방식이어야 한다.
로드맵은 지도가 아니다. 지형에 맞게 계속 수정되어야 하는 초안이다.
반론과 선제 대응 — 비판의 언어도 담론이다
담론은 동의만으로 자라지 않는다.
반론이 있어야 주장이 단단해진다. 비판이 있어야 논리의 허점이 드러나고, 그 허점을 메웠을 때 비로소 주장은 제도와 현장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 시리즈의 제안에 대해 예상되는 세 가지 반론을 직접 꺼낸다. 그리고 정면으로 답한다.
반론 1. Muye라는 상위 개념 통합이 오히려 또 다른 중앙집중적 표준화 아닌가
가장 예리한 반론이다. 그리고 이 시리즈 스스로도 가장 날카롭게 의식해온 위험이다.
Wushu가 傳統武術의 다양성을 표준화로 지웠고, Budo가 근대 국민 훈육의 언어로 기능했다는 것을 이 시리즈는 내내 지적해왔다. 그렇다면 Muye라는 상위 언어를 세우는 것도 같은 함정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이 반론은 받아들여야 한다. 부분적으로는 맞다.
어떤 상위 언어도 그 아래의 다양성을 온전히 담을 수 없다. 개념은 항상 선별한다. 그러나 그것이 곧 Muye라는 언어를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선별의 위험을 아는 채로 언어를 만드는 것과, 그 위험을 모르는 채로 언어를 만드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시리즈가 제안하는 Muye는 하나의 표준을 뜻하는 이름이 아니다. 다양한 몸들이 서로 다른 언어로 자신을 설명하면서도, 세계를 향해 함께 서 있을 수 있는 공통의 지붕이다. 중국의 Wushu는 지붕이 곧 바닥이 되어 다양성을 눌렀다. 한국의 Muye는 지붕을 세우되 벽을 두르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 차이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앞서 제안한 제도 안의 다양성 보장 조항, 민간 주도 협의체, 전승자의 목소리를 아카이브에 그대로 담는 방식 — 이 실행의 디테일에서 만들어진다.
반론 2. 태권도 중심 흡수 논리로 오해될 위험은 없는가
이 반론은 현장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태권도는 200개국 이상에 보급된 한국 무예의 국제적 대표 자산이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 무예의 전체가 아니라는 것은, 씨름·택견·합기도·수많은 전통무예 현장에서 활동하는 수련자라면 누구나 안다. 만약 Muye라는 상위 언어가 실제 운용에서 태권도의 국제 행정 체계 안으로 흡수된다면, 그것은 통합이 아니라 포획이다.
이 위험을 막는 장치는 두 가지다.
하나는 Muye 개념의 제도적 정립 과정을 태권도 전담 기관이 아닌 복수의 기관과 무예계 공론화를 통해 설계하는 것이다. 국기원이 중심이 되는 것과 한국 무예 전체가 중심이 되는 것은 같지 않다. 다른 하나는 이 시리즈와 같은 담론 작업에서, 씨름·택견·합기도 등이 Muye라는 언어의 주변이 아닌 동등한 구성 요소로 항상 명시되는 일이다. 언어는 반복이 의미를 만든다. 오해를 막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처음부터 정확하게 반복하는 것이다.
반론 3. 현장 무예 단체들은 이 통합 담론을 실제로 원하고 있는가
이것이 가장 불편한 반론이다. 그리고 가장 솔직하게 답해야 하는 반론이다.
솔직히 말하면, 현재로서는 모른다.
각 단체는 자기 종목의 행정·예산·인정 문제에 우선순위를 두는 경향이 있다. 통합 담론이 자신의 자율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계심도 현장에 존재한다. 그 경계심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다. 한국 무예 행정의 역사에는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 배제와 서열화의 사례가 없지 않다.
그렇다면 이 담론은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다. 오히려 그 경계심 때문에 더 필요하다.
현장이 원하지 않는 통합을 위로부터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현장이 스스로 담론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공간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6번 제안의 통합 협의체가 그 공간이다. 그 협의체에서 현장 단체들이 Muye라는 언어를 거부한다면, 거부하는 이유 자체가 담론의 재료가 된다. 합의 없는 통합은 또 다른 지배다. 그러나 합의를 향한 논쟁은, 그 자체가 이미 공동체의 언어를 만드는 과정이다.
이 세 반론에 대한 대응을 마치면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 반론들은 이 시리즈의 제안을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제안이 다루어야 할 구체적 조건과 전제를 밝혀준다. 반론이 있다는 것은 이 담론이 실제 현장과 맞닿아 있다는 증거다. 박수만 받는 제안은 대개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 비판과 맞부딪히면서 단단해진 언어가 결국 제도를 움직인다.
언어적 영토와 몸의 영토
이 시리즈는 한 글자에서 출발했다.
武.
그 글자는 창과 발의 움직임으로 읽힐 수 있었고, 지과위무라는 정치적 해석을 통해 통치의 언어가 되었다. 조선에서는 무예라는 말로 문헌과 제도의 체계를 얻었고, 중국에서는 무술이라는 말로 생존과 실용의 언어가 국가 브랜드가 되었다. 일본에서는 무도라는 말로 기술이 수양과 국민 훈육의 언어로 재구성되었다.
한국은 이제 이 세 갈래의 역사 앞에서 자기 언어를 세워야 한다.
무예.
이 말은 단순한 과거의 말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무예가 세계를 향해 제시할 수 있는 상위 언어다. 문헌과 몸, 기술과 수양, 관과 민, 전통과 현대, 수련과 콘텐츠를 함께 묶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무예라는 이름을 세우는 일은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이름은 모은다.
그러나 이름은 배제하기도 한다.
제도는 보존한다.
그러나 제도는 선별하기도 한다.
세계화는 확장한다.
그러나 세계화는 몸을 이미지로 바꾸기도 한다.
그러므로 한국 무예의 과제는 단순히 "무예를 세계화하자"가 아니다.
한국 무예의 과제는 더 어렵다.
무예를 세계의 언어로 세우되, 그 언어가 몸을 삼키지 않게 해야 한다.
기록을 세계에 번역하되, 번역되지 않는 몸의 감각을 지켜야 한다.
콘텐츠로 확장하되, 수련의 깊이를 잃지 않아야 한다.
제도화하되, 제도 밖의 생명력을 남겨두어야 한다.
언어적 영토를 얻는 것.
몸의 영토를 지키는 것.
한국 무예는 이 두 전쟁을 동시에 치러야 한다.
최종 결론 — 갑골에서 다음 15년까지
수천 년 전, 누군가 짐승의 뼈 위에 글자를 새겼다.
武.
그 한 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창을 든 발의 움직임인지 아니면 창을 멈추게 하는 의지인지, 지금도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논쟁 자체가 이미 하나의 사실을 증명한다. 이 글자가 수천 년 동안 지워지지 않았다는 것. 뜻은 다투었지만, 글자는 살아남았다.
언어는 새기는 자의 것이다.
조선은 《무예도보통지》에 새겼다. 중국은 Wushu라는 이름으로 세계의 입 위에 새겼다. 일본은 Budo라는 이름으로 세계의 도장 위에 새겼다.
한국은 무엇을 새기고 있는가.
한국에는 태권도가 있다. 그러나 태권도만으로 한국 무예는 완성되지 않는다. 한국에는 《무예도보통지》가 있다. 그러나 문헌만으로 무예는 살아나지 않는다. 한국에는 씨름과 택견이 있다. 그러나 민속의 이름으로만 남겨두면 무예의 중심이 되기 어렵다. 한국에는 합기도와 수많은 현대 무예 현장이 있다. 그러나 그 현장들이 서로 고립되어 있으면 한국 무예의 큰 언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제 필요한 것은 연결이다.
기록과 몸의 연결.
전통과 현대의 연결.
학술과 현장의 연결.
정책과 전승자의 연결.
콘텐츠와 수련의 연결.
한국어의 무예와 세계어의 Muye 사이의 연결.
이 연결을 만들어낼 때, 한국 무예는 비로소 Wushu와 Budo 사이에서 자기 이름을 세울 수 있다.
한국무예신문 창간 15주년 기획 〈한자(漢字)가 새긴 전쟁〉은 바로 그 연결의 출발점에 서 있다.
이 기획은 과거를 회고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한국 무예의 미래를 묻기 위한 글이다.
무예라는 이름을 세계에 새길 것인가.
그 이름 안에 살아 있는 몸을 함께 새길 것인가.
국가의 언어와 민중의 몸이 서로를 지우지 않고 함께 새겨지게 할 것인가.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시작이다.
한국 무예의 언어적 영토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 영토의 주인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언어적 영토는 주장하는 자의 것이 아니다.
끝까지 기록하고, 번역하고, 수련하고, 전승하고, 질문하는 자의 것이다.
한국무예신문은 그 질문의 최전선에 서야 한다.
무예의 이름으로 다시 새긴다.
한국은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무엇을 세계에 번역할 것인가.
무엇을 콘텐츠로 만들 것인가.
무엇을 제도 안에 세울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몸을 끝까지 살아 있게 할 것인가.
갑골 위의 한 획이 수천 년을 건너왔듯, 우리가 지금 새기는 것도 다음 세대에 닿을 것이다.
그것이 곧 한국 무예의 다음 15년이다.
한국무예신문 / 발행인·편집국장 서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