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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4.04.2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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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괘 사상’과 ‘태극7장’의 뜻을 재해석해보며…
ㅎㅎ 2015/08/07 [00:08] 수정 삭제
  한국의 경우 역사적 전통성을 확보한 가장 오래된 맨손 무술은 수박에서 권법으로, 다시 택견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이은 태권도이다. ㅋㅋㅋ 태권도는 택견의 계보를 이은 적이 없습니다. 초창기 태권도는 가라데 기술체계를 그대로 답보하였다면서 뭔 택견의 계보 ㅋㅋㅋ 역사왜곡하지 맙시다.
최진우 2015/08/07 [07:08] 수정 삭제
  정말 궁금해서..그럼 8괘 품새는 가라데 논란에서 자유로울수 있나요? 글 쓰신분께 묻고싶네요..^^ 어떤 분 들은 8괘도 가라데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는데..스텝이란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한자로 '공,자의스텝이라 가라데라 하는데...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필자 2015/08/07 [12:08] 수정 삭제
  팔괘품새도 가라데 형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고 봅니다.
그대로 답습하지 않은점이 가치가 있으며 우리화 할려고 하는 점에서 전통성은 시작됩니다.
필자 2015/08/07 [12:08] 수정 삭제
  역사적인 문제는 바로보는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해석또한 달라집니다. 제가 피력한것은 태권도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라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김성진 2015/08/10 [15:08] 수정 삭제
  태권도. 우슈(장권.남권.태극권),공수도 지도자겸 수련자로 내가 느낀것 -태권도 품새는 공수도의 품새와 100% 일치 함 - 우슈의 남권이 일본 자생무술 오키나와 데 와 결함 좀더 체계화 됨 동작의 공통점 우슈. 공수도. 태권도 동작의 태권 보주먹 .우슈의 포권 공수도에도 나 옴 - 태권도 기본서기 동작보다 공수도는 더 많음 거의 비슷하지만 좀더 세련되고 다양함 - 태권도 기본막기 , 치기.찌르기 .지르기.기본차기 공수도와 비슷함 단지 시작점, 끝점 이 약간 다름. - 태권도 품새 공수도 카타의 연무선 거의 비슷 오십보 백보 결론 태권도와 공수도는 시작은 같으나 엄연히 다른 무술이다 왜 공수도를 들어와서 현지에 맞게 한국이 기술적 체계를 완성하여 보급하고있으며 또한 기술적 보완을 통해 성장하고 있음 공수도또한 중국의 무술이 일본의 자생적 무술과 결합하여 기술적 체계를 완성 통합하여 성장하고 있다 이것을 두고 공수도가 우슈라고 하지는 않는다 택견과 태권도는 다릅니다 왜 기술적 체계가 완전 틀림 지인중 택견 명인이 있었는데 몇번 같이 해봤지만 완전 틀림 궁금하면 연락 주세요 010-9179-3773
필자 2015/08/10 [16:08] 수정 삭제
  일정부분 공감하는 좋은 내용이 있네요
독자 2015/08/12 [23:08] 수정 삭제
  유구왕국이 생기는데 삼별초가 크게 기여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삼별초는 무인들 이었고 오키나와데의 기원을 삼별초로 봅니다


삼별초: 고려 정예 부대, 1273년 몽고(원나라)에 의해 역사에서 사라짐
오키나와 초기 왕조(유구왕국) 유물에서 발견된 기와에, '계유년 고려와장조' 문장 발견
- '계유년': 1273년, 여몽연합군에 의해 삼별초가 전멸한 해
- '고려와장' -> 고려의 장인이 만들었다 (Made in Korea)
오키나와 출토 '수막새기와' -> 고려 진도 용장산성(삼별초의 근거지) '수막새 기와'가 같은 모양
1273년 경 설립된 오키나와 초기왕조의 성 터에서, 고려 기와 발견
유구왕국의 최초 욍묘인 에이소왕 묘의 지붕에 얹은 기와(수막새 기와)가 고려 기와와 유사
삼별초가 일본이 아닌 오키나와로 간 까닭은?
11번째 몽고 침입에 대해, 39년간 고려 저항. 1270년 고려 항복
삼별초, 진도에 용장산성일 쌓고 새로운 왕(왕온)을 세워 1년 동안 저항
1977년, '고려첩장불심조조' 삼별초가 일본 정부에 전한 외교문서. 이전 고려 정부가 보낸 외교문서에는 원나라 연호(천력, 연우) 사용, 해당 문서에는 원나라 연호 사용 안함
'고려첩장불심조조'와 '길속기'를 통해, 삼별초가 일본에 병력과 식량 요청하며 연합하여 원에 대항 제의하였으나, 일본은 국제정세를 몰라 아무 대응 안함
1271년 5월 15일, 여몽연합군의 총 공세에 삼별초에 의해 새로 추대된 왕(왕온)마저 죽음
제주도에 새로운 근거지로, 환해장성, 항파두리성을 쌓고 2년동안 저항
1273년 봄, 삼별초 전멸, 역사속에서 사라짐
오키나와 열도에 속한 일본 본토 가고시마현 도쿠노시마에서, 1983년 가쿠이야키 가마 유적 발견(오키나와 열도에서 가장 오래된 가마터)
해당 터에서도, 고려 도자기 기와 발견
12세기 초까지 오키나와는 수렵과 채집생활을 함, 해당 시기에 일본에서는 가마를 이용해 흙으로 도자기를 만드는 방법을 몰랐음
13세기 후반 오키나와, 각지에 성을 축조하고 류쿠왕국으로 묶이는 움직임 발생
삼별초가 이주한 것으로 보이는 13세기 이후, 갑자기 백여개가 넘는 성이 생김
삼별초의 이주로 인해, 오키나와는 수렵채집 생활하던 시대에서 농경시대로 접어들고, 차후 고려처럼 해상무역을 통해 성장함
※ 삼별초(三別抄)
- 1219년 최충헌의 정권을 계승한 최우가 치안유지를 위해 설치한 야별초(夜別抄)에서 비롯
- 별초(別抄): 용사들로 조직된 선발군의 의미
- 좌별초, 우별초, 몽골과 싸우다 포로가 되었다 탈출한 신의군(神義軍)으로 구성

필자 2015/08/18 [16:08] 수정 삭제
  좋은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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