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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이름표, 일제 잔재인가? 근대문화유산인가?
 
이송학 박사 기사입력  2019/02/2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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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권도에 입문하여 오랜 시간 수련 후 승단심사에 합격을 하면 꿈에 그리던 검은띠를 맨다. 검은띠를 맨다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수련을 통해 승화시켰음을 인정받는 것이다.

 

검은띠는 마치 군대의 계급장 같은 것이다. 그래서 띠에 노란색 글씨로 선명하게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자랑스럽게 새겨 권위를 인정받으려 한다. 도복위에 맨 검은띠는 유단자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너무 짧거나 길면 안 되고 너무 얇거나 두꺼워도 검은띠의 권위에 손상을 준다. 하단전 앞에서 매듭을 지은 후 두 자락의 띠가 양쪽으로 같은 길이로 위엄 있게 내려와 소속과 이름을 환하게 빛내주어야 한다.

 

태권도 종주국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2018330일 대한민국 국기로 법제화된 이후 태권도의 모든 분야에 걸쳐 종주국의 책임과 의무는 더 커졌으며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띠에 새기는 이름 위치에 대해 정체성을 재조명 해보고자 한다.

 

 

▲ 사진자료. 류관순 열사     © 한국무예신문

1. 일제강점기 일본의 이름표 부착 위치


위 사진은
191931일 독립만세운동의 주동자로 일제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중인 류관순 열사의 사진이다. (이름표가 왼쪽 가슴에 달려 있음이 확연히 보인다.)

 

2. 일제강점기 광복군 군복의 이름표

 

1940년에 창설하여 독립운동을 한 광복군의 군복에 이름표는 보이지 않는다.

 

 3. 6·25 한국전쟁 기간에 미군 해병대 군복 및 한국군복

해방이후 1948815일까지 3년 동안 한국은 미군이 통치를 하는 미군정의 시기였으며 “19469월부터 미 군복 보급이 시작되었고 19537월까지 일본군 군복을 계속 지급받아 원형 그대로 착용하여 6·25전쟁 때까지 혼용했으며 1954년부터 국군도 미군 전투복과 유사한 형태를 취했다.”(백기인, 네이버 블로그 2016)

6.25참전 학도병 사진의 이름표가 우측 가슴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이름표의 부착 위치가 일제의 영향인 왼쪽가슴에서 미군의 영향인 오른쪽 가슴으로 이동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1954년부터 해병대는 우측에 이름표를 달았다. 6·25전쟁 당시 미 해병대와 연합작전을 수행하면서 영향을 받았으리라 본다.”(네이버 지식백과, 2016)는 기록으로 보아도 그러하다.

 

4. 과거와 현재 학생의 교복에 다는 이름표위치

 

1958113일 학생의 날 기념행사

(왼쪽가슴에 이름표 부착함)

태인고 제26회졸업(1979)

(오른쪽가슴에 이름표 부착함)

현재의 교복

(왼쪽가슴에 이름표 부착함)

대한민국 정부수립이후 언제부터 교복에 이름표를 달았는지 교육청의 자료는 확인할 수 없으나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1958년 사진에서 이름표가 처음 보이며 국가가 제복으로 지정하지 않은 이유로 학교마다 자체적인 교칙에 따라 오른쪽이나 왼쪽가슴의 주머니 위에 달았으며, 통상 좌측 가슴위에 이름표를 다는 것은 일제의 영향이라 사료된다.

 

5. 사진으로 보는 교복의 이력서 (서울교육박물관, 2016)

 

대한제국

60 ~ 70년대

현 재

“1894년 갑오개혁이후 각종학교들이 많이 세워졌으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교육제도와 학교생활이 그대로 들어와 조선의 근대교육은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김한종, 2016) 왼쪽 가슴에 명찰을 다는 것은 일제의 영향이라 할 수 있고 현재까지도 비판적 수용 없이 이어져 오고 있으며 국가기관이 교복을 제복으로 지정하지 않아 명찰에 대한 규정은 학교마다 다르며, 오른손잡이가 대부분인 학생들이 왼쪽가슴에 달고 떼기가 편하므로 자연스럽게 정착된 듯하다.

 

6.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오른쪽 가슴에 부착한 이름표(서울교육박물관, 2016)

 

1963서울사범대학 부설 교육행정연수원수료 기념

1975새마을 연수기념

1970년대의 교련복

 

자신의 오른쪽 가슴에 이름표를 다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미국의 영향으로 도입되었다고 사료되며 군복이나 경찰복처럼 제복으로 지정되지 않은 복장의 명찰은 오른쪽이나 왼쪽에 혼용하여 달고 있다.

 

7. 현재 군인의 소속과 명찰 위치

 

1) 대한민국 군인 복제령, 네이버 위키문헌 2016

 

부대마크 - 기본적으로 왼팔에 부착한다.

명찰 - 상의 우측(상대방이 보기에 좌측)주머니 위에 부착한다. 상의 좌측가슴주머니 위에는 소속군 휘장, 태권도 유단자 휘장, 예비군 휘장을 부착한다.

 

8. 현재 경찰의 이름표 다는 위치

 

2)경찰 복제규칙, 경찰청 2016

 

이름표는 우측 윗주머니 중앙 위에 붙여 단다.

 

9. 태권도 띠에 소속과 이름을 새긴 시기

안타깝게도 문서와 사진 등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

 

10. 태권도 관련 현판 사진의 소속 위치

태권도현판(단체명)

문 밖에서 볼 때 동쪽인 오른쪽에 달았다

 

11. 국기원 발행자료

유단()자가 되었을 때야(비로소) 띠의 왼쪽에는 소속, 오른쪽에는 본인의

이름을 새길 수 있다.”(국기원 지도자연수원, 2014)

 

조선시대 16세 이상의 성인남자는 반드시 호패를 가지고 다녀야 했으며 집집마다 따로 문패를 달도록 법으로 정한 것은 광무연간(1897-1906)으로 1897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완전한 자주적 독립권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행한 여러 내정개혁 중 하나이다.’ ‘19488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는 일제의 영향으로 왼쪽 가슴에 명찰을 달았고, 일제의 영향을 벗어난 이후에는 미국의 영향으로 오른쪽 가슴에 이름표를 달기 시작하였으며정통성 있는 이름표 부착 위치는 국가가 제복으로 지정한 군복이나 경찰복으로 볼 때 자신의 오른쪽이다. 국기태권도의 정통성 확보와 태권도 종주국의 정체성 확립차원에서 태권도 띠에 이름을 새기는 위치를 정하고 강조하여 통일 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할 것이다

 

참고문헌 및 자료

경찰청(2016). 경찰 복제 규칙

국기원지도자연수원(2014). 3급 태권도 지도자 연수 교재. 49

국회도서관(2016). 한말근대법령자료집

김정자(1997). 한국군복의 변천사 연구. 서울: 민속원

김재찬(2016). 문패 간판의 위치, 횡서 종서가 달라. daum 블로그

김한종(2016). 학교는 언제 처음 생겼나요? 서울: 책과 함께

백기인(2016). 복제의 변천. 네이버 블로그

서울교육박물관(2016). 박물관 내 전시품

역사문제연구소(2001).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의 역사 3. 서울: 웅진닷컴

이서규(2009). 사진으로 본 일제시대의 잔영. 서울: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이승원(2007). 학교의 탄생. 청아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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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2/26 [18:19]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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