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야 과학이 발달해서 하늘에서 내리치는 번개와 천둥에 두려움을 갖는 인간은 별로 없지만, 고대에는 짐승이나 인간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지금도 짐승들은 천둥 벼락이 치면 무서워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움쩍도 않고 웅크리고 있다.
인간이 상상하기에 하늘의 구름 위에는 하늘나라가 있는데 그곳에서 신들이 있어 때로는 화가 나서 서로 싸우며 부수기도 하는데 그 불똥이 인간의 땅으로 튀어 내리는가 하면 때로는 눈과 비바람을 내린다고 여겼다. 해서 구름 속에 잠기는 높은 산봉우리는 신들이 노니는 신성한 곳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하여 중국의 도교에서는 그런 높은 산꼭대기에 집을 지어 두고 신들과 소통하는 신선인 양 하며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냈었다.
▲ 중국 스촨성 어메이산(蛾眉山) 정상 © 한국무예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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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언젠가 인간은 벼락 치는 곳에 가면 불을 얻을 수 있다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 맹수나 잡귀들이 불을 단순히 뜨거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큰 귀신이 내린 것이어서 더욱 무서워한다고 여겼으리라. 하여 그 불을 지니고 있으면 그것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신(神)이란 글자는 갑골문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주(周)나라 때에 제사를 지내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번개신을 의미한다. 제단(示)과 번개(申)를 조합해 만들었다. 시(示)는 단 위에 제물을 올려놓고 하늘의 신에게 보이고 구원을 비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문명(인지)의 발달로 만들어진 의례(가식)적인 글자인 셈이다.
▲ 번개의 모양을 그린 신(申)자의 갑골문(甲骨文)과 금문(金文) © 한국무예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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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 불을 관리하는 것은 무리의 우두머리나 제사장의 책임이자 권력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왕 하늘로부터 직접 불을 내려 받아 천부(天符)의 권능을 부여받았음을 증명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여 처음엔 높은 곳에 단을 만들어 번갯불을 구하다가 불을 내려준 하늘에 감사하는 의식으로 발전된 것이리라. 더불어 벼락을 받으려면 구름과 비를 불러야 했으니 자연스레 기우제가 생겨난 것이겠다. 축제나 제사 때 불을 피우고 향을 태워 연기를 올리는 건 그 옛날 벼락불 받기의 유습으로 하늘에다 행사를 알리는 신호라 하겠다.
고대인들은 강, 산, 호수, 바위, 맹수 등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여겼다. 소위 토템이다. 특히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나무를 신과 소통하는 매개체로 여겨 경외하였다. 하여 죽은 사람의 시신을 나무 밑에 묻거나 가지에 걸쳐두면 그 영혼이 나무에 깃들어 있다가 언젠가는 비나 번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고 여겼으리라. 그리고는 그 나무 아래에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내고, 또 자손이 죽으면 그 시신을 올려두어 영혼을 하늘로 올려 보냈을 것이다. 그 흔적으로 남은 게 고인돌이리라.
우리나라 민속학의 선구지인 이능화 선생은 《조선민속지》에서 한자가 들어오기 전 고대 우리말로는 신(神)을 ‘감’ ‘검(儉)’ ‘곰(熊)’이라 했다고 한다. 해서 귀신(탈)을 보고는 “깜짝이야!”하고 놀라고, “감쪽같다!” “깜박하다!” “까무러치다!”며 사람과 귀신을 속이고 겁주었다.
고대에는 벼락 맞은 나무를 신수(神樹, 神木)라 하여 신성시하였다. 하여 그 아래에 단(壇, 고인돌, 제단)을 쌓아 신성하게 모시니 바로 신단수(神壇樹, 神檀樹)겠다. 사람이 신수를 받들어 지키고, 구름 낀 날 꿇어앉아 신수 묘목을 심는 의식에서 예(藝)자가 생겨났으리라. 그리고 그 신수를 피뢰침으로 삼아 번갯불을 받았을 것이다. 또 벼락이 자주 때리는 곳, 신수를 심어놓은 곳을 소도(蘇塗)라 하여 신성하게 여겼을 것이다. 구름과 맞닿는 높은 산이나 우뚝 솟아오른 큰 바위 역시 신이 머무는 신성한 곳으로 여겼으리라. 중국의 황제가 태산 꼭대기에서 단을 쌓아 천제를 지냈던 것도 하늘과 가까워 소통이 가장 잘 되는 곳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중태산등정(雨中泰山登頂)! 즉 비와 번개를 하늘이 감응한 신호로 여겼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역시 파라오의 영혼이 번개를 통해 하늘을 오고갈 수 있도록 뾰쪽하게 쌓아올린 것이리라. 지금이야 올림픽 성화를 아테네 신전에서 반사거울로 받고 있지만 거울도 없던 그 옛날에는 아마도 제사장이 번개로부터 직접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신전이나 사당, 교회를 벼락 맞기 좋은 언덕 위에 세웠던 것이리라.
번갯불을 받는 것이 위험하지 않냐고? 당연히 무섭고 위험하며 때로는 목숨까지 바쳐야했지만 그렇게 하늘과의 소통을 해내지 못하면 무리의 지도자가 될 수 없었다. 벼락을 맞아 죽든, 희생으로 죽든 신의 간택을 받아 육신을 바치고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걸 더없는 영광으로 여겼었다. 그렇게 고대인들은 하늘신을 믿음에 의심이 없었다.
돌을 깨트리고 나무를 갈다가 스스로 불을 만들게 되자 그때부터 인간은 조금씩 신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다. 차츰 인지가 발달하면서 자신의 가장 귀한 것(아이) 대신 포로나 노예를 바쳐 신을 시험한다. 그게 먹혀들어가자 그마저도 다시 토용(土俑)이나 짐승으로 대신하게 된다. 드디어 신이 눈먼 당달봉사임을 확인한 인간들은 술과 고기 몇 점으로 신을 속이고, 그마저도 저들끼리 먹고 마시는 잔치로 변질시켰다. ‘기만’을 터득한 것이다. 이후 인간은 본격적으로 신을 도구(상품)화하기 시작하였다. 소위 말하는 종교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