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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魂)과 백(魄), 그리고 ‘나’
[신성대의 혼백론 8]
 
신성대 주필(글로벌리더십아카데미 공동대표) 기사입력  2020/09/22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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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대 주필     © 한국무예신문

인간이 생각하는 동물로 진화한 이후, 다시 말해 철학하기 시작한 이래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서도 아직도 합당한 답을 찾지 못한 것이 바로 너 자신을 알라!”이다. 나는 누구인가? 현대철학에서도 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란 없는 것은 아닌지? 아무튼 든 내가 를 찾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건가? 혹여 이 대명제엔 해답이 없는 건 아닐까?

 

불교에서는 누천년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를 찾아라, 버려라 한다. 붙잡아라, 내려놓아라, “여기 있는 나가 나 아니냐?”고 반문하면 참나를 찾으란다. ‘는 뭐고 참나는 또 뭔지? 아무튼 그런 말을 하는 본인은 정작 참나를 찾았는지? 그럼 왜 친절하게 설명을 못해주는지? 기껏 성명한다는 게 거룩하신 분들의 알쏭달쏭 애매모호한 말씀들만 나열한다. ‘참나를 찾아놓고도 왜 그렇게 맨날 수도한다고 앉아있는지? 그런 게 진짜 있기나 한 건가? 혹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는 헛것인가?

 

바로 이 순간 별 헛소릴 다하고 있네!”하고 돌아서면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거고, “그게 무슨 소리야?”하고 그 앞에 주저앉으면 종교인(철학인)이 되는 것이겠다. 자기에 대한 의심을 갖는 순간 모든 존재들은 모두 가정일 수밖에 없게 되고, “그럼 그게 뭐지?”하고 한 걸음 더 다가앉게 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철학이 시작된다. 고대에는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때문에 그 무한한 상상계의 공간을 신()이 지배하게 된 것이리라.

 

아무튼 그 절대자 혹은 진리를 끊임없이 찾아나서는 일을 우리는 철학(과학)한다고 하고, ‘의심이라는 괜한 수고로움 없이 선각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선험적 주장에 무조건 인정하고 복종하는 것을 신앙이라 할 수 있겠다. 게 중에는 그게 뭘까?”하는 의심을 가지면서도 선인(先人)들의 (어쩌면 뻥이거나 착각일 수도 있는) 체험을 좇아 자신도 직접 그 경지를 실증해보이겠다고 도전하는 것을 수행이라 한다. 대부분 찾다찾다 못 찾으면 모든 걸 절대자[]에게 맡기고 의지하게 되는데 거기서부터는 종교의 영역이 되겠다.

 

과학이 발달하다 못해 이제는 아예 인공지능(AI)까지 생겨난 시대에 아직도 너 자신을 알라!” “너는 누구냐!”며 인간을 우매한 무엇으로 몰아붙이며 윽박지르고 있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하겠다. 더불어 인간을 멍청이로 만드는 온갖 철학적(현학적) 용어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는데, 정작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그 자신은 뭘 안다는 건지 설명조차 못하고 있다. 민나도로보데쓰! 무자비하게 얘기하자면 모조리 뻥장사. 사이비가 아니라 사기다.

 

난 아직 귀신을 보지 못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도 필자는 귀신을 만나지 못했다. 죽기 전에 혹시 만날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분명히 말해서 본 적이 없다. 해서 난 내가 본 것이 아니면 절대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귀신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다. 인정하는 것과 믿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진짜 귀신을 봤다는 사람의 주장을 굳이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건 그가 본 귀신이지, 내가 귀신을 본 건 아니다.

 

아무나 귀신을 보고 아무한테나 귀신이 나타나지 않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굳이 이런 궁색한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필자가 어떤 종교나 미신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지 않았음을 밝히기 위함이다. 혹여 귀신(鬼神)과 신()은 같지 않다!”고 항의하실 분은 더 이상 이 글을 읽기를 중지하시고 다른 걸 찾아 떠나시는 게 좋겠다.

 

누가 귀신을 만들고 누가 귀신을 보는가? 아무려나 신()이든 귀신(鬼神)이든 단 한번이라도 접신했다면 필자는 절대 이런 얘기 못했을 것이다. 그런 류의 책이 서점에 넘치지만 필자는 맹세코 단 한 권도 진지하게 읽은 적이 없다. 책에서도 귀신을 만나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세상에 떠도는 그 많은 귀신이야기와 영적 체험, 사후 세계, 해탈, 초능력, 정신병 등등은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 반문할 것이다. 기실 필자가 혼백론을 쓰게 된 목적도 거기에 있다.

 

나는 왜 귀신을 보지 못했을까? 왜 누구는 귀신을 보고 누구는 귀신을 못 볼까? 오랫동안 의문 끝에 필자는 , 귀신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구나!’란 걸 알게 되고, 그 귀신 만드는 이치와 요령까지 터득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능히 혼()과 백() 두 글자를 실마리로 잡아 본격적인 귀신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한다.

 

혼백(魂魄)이란 무엇인가?

 

우리말에 거시기란 용어가 있다. 이게 참 거시기한 게 때로는 갑자기 떠오르지 않는 명사나 대명사의 대타로 사용되다가 때로는 곤란한 물건을 가리키는 은어로 또 때로는 난처한 상황을 대신하는 형용어로도 쓰인다.

 

혼백(魂魄, soul)’만큼 거시기한 어휘도 다시없을 것 같다. ‘혼백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정확한 의미를 얘기하라면 대한민국에 단 한 명도 안 나온다. 고대로부터 끝없이 사용해왔으면서도 너나 할 것 없이 거시기하게 가져다 쓰는 바람에 말 그대로 거시기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국어사전에서부터 철학, 민속, 도교, 불교, 유교뒤지면 뒤질수록 점점 그 쓰임새가 늘어나 이게 개념어인지 관념어인지 추상어인지 구체어인지 구분이 안 된다. 심지어 한의학에서도 혼() 또는 백()이 허파에 붙었니 간에 붙었니 하는 바람에 점점 사람의 을 빼놓는다. 그리고 이 두 글자가 다시 다른 글자들과 합쳐져 온갖 개념어들을 만들어낸다. 그런 걸 종합해서 대충 정리하면 역시 여러분이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정신, 영혼, 영령, 혼령, , 귀신, 신념, 개념뭐 이런 정도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거시기처럼 갖다 쓰면 된다.

 

헌데 필자는 무슨 배짱으로 그토록 거시기한 단어를 붙들고 감히 론()을 펼쳐보자고 덤비는 건가?

 

대부분의 동양학 용어들이 그렇지만 그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술함 때문에 제대로 학문(과학)하는데 엄청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금은 대충 사용하는 한자만 해도 5,6만자는 되지만 고대에는 한자의 글자 수가 많지 않아 공자 시대만 해도 불과 3,4천자를 넘지 못했다. 고작 그 정도의 글자로 춘추전국시대에서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학문적 결과물을 적확하게 표현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여 이미 그 이전부터 수많은 가차(假借) 인신(引伸) 형성(形聲)의 조자법이 발달하였다.

 

문제는 이로 인해 동양학에선 한자를 다의적으로 사용하고, 다시 그걸 해석하는 데에도 다의적(자기 통빡)으로 해석하는 나쁜(비과학적, 비학문적) 습관(편견)이 들었다는 것이다. 개념이 분명치 않은데 학문이 제대로 되겠는가? 이를 명확히 하지 않고는 동양학은 미몽 속에 끝없이 윤회를 거듭할 것이기에 비록 무딘 칼이지만 혼()과 백()을 일단 한 번 갈라보자 싶어 나선 것이다.

 

온갖 책을 뒤져 겨우 건져낸 가장 쓸만한 해석이라곤 ()은 양()이고, ()은 음()이다란 구절이다. 또 음양론이냐고 하겠지만 아무래도 동양학의 속을 뒤집는 일이니 동양적인 잣대로 가르는 것이 이해도 빠르고 개념 정리도 쉬울 것이리라. 서양과학으로라면 이미 뇌와 신경계의 작용임을 다 아는 상식에 지나지 않는 용어에 불과하니 굳이 이런 작업에 나설 필요조차 없겠다. 그러니까 결론은 고대 동양학을 현대적 언어로 해석해보자는 건데, 운 좋으면 혼백(魂魄)이란 두 글자를 통해 고대 학문과 현대 학문을 관통할 수 있지 않을까?

 

()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정신 차린다’ ‘정신이 든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정신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걸까?

 

정신(精神, sprit)’이란 오감을 통해 바깥을 인지(감시)하고 그 정보를 분석, 판단, 선택, 실행, 저장이란 전 과정을 수행하는 기능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하자면 밖으로부터 제 육신을 보호하고 보전하는 데에 필요한 두뇌활동이다. 육신을 이루는 각각의 세포(기관)가 자신들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 대뇌(전두엽)에게 부여한 권능인 셈이다.

 

그럼 생각(thougt, thinking)’? 전두엽의 여가활동인 염사상의억고(念思想意憶考)’라 할 수 있겠다. 전쟁으로 치면 대치중 보초병이 애인 생각을 하거나 바둑을 두거나 만화책을 보는 격이라 하겠다. ‘생각이 있는 놈이냐 없는 놈이냐!’고 나무랄 때 그 생각은 곧 궁리를 말함이겠다. 그리고 상상이란 정신차리고 남은, 그러니까 정신의 찌꺼기 혹은 여분의 부산물이라 해도 되겠다.

 

그렇다면 정신에는 창의적인 의식 활동이 없는 셈이다. 단순히 학습으로 저장된 매뉴얼대로 감시하고 집행하면 된다. 그에 비해 생각은 궁리여서 온갖 정보끼리 뒤섞어 상상(망상)이 무궁하게 펼친다. 해서 생각을 혼()의 운용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게 바로 이 생각하는 능력이 아닌가? 이 생각을 다시 수 만개로 쪼개서 분류하는 일은 이미 수많은 철학자, 정신분석학자, 종교학자들이 쪼개고 쪼개고도 모자라 지금도 쪼개고 있으니 굳이 필자까지 끼어들 것까진 없겠다. 대신 필자는 그 복잡세계를 ()’()’, ‘정신생각’, ‘’, ‘육신()’으로 크게 대별하는 작업을 하고자 한다. 하여 정신생각()’이라 정한다.

 

()이란 무엇인가?

 

사전에서는 ()’()’과 똑같이 이라고 훈독한다. ‘사람의 몸 안에서 몸과 마음을 다스린다는 비물질적인 것이라 하여 ()’과 동일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백()은 혼()처럼 따로 쓰이는 경우는 별로 없고 대개는 혼()에 붙어 혼()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그만큼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글자라 할 수 있다. 처음 글자가 만들어졌을 적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터, 자세히 살펴보면 어딘지 구별되는 구석이 없지 않은 데도 말이다.

 

본격적으로 백()을 설명하기 위해선 먼저 가 누군지, ‘의 주인이 누군지부터 질문해야겠다. 육신만 가지고 라 하기엔 부족하고 ()’을 보태도 역시 미흡해 보인다. 다시 마음을 보태면 그럭저럭 가 완성되는 것 같은데 문제는 마음이란 게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해서 이번엔 그럼 대체 마음이란 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역시 잡힐 듯하면서도 안 잡히고 보일 듯하면서도 안 보이는 게 마음이니 참 설명하기도, 그리고 그 설명에 수긍하기도 어렵다. 해서 결국 이 마음이 어쩌면 참나가 아닐까 싶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마음찾기에 나섰던 것 같다. 더불어 누천년 동안 야바위꾼들의 마음장사가 성행하는 것이리라.

 

인간은 저 혼자 살아가는 독립적 존재라고 하지만 그건 완전 오해다. 우선 인간의 몸은 60(학자에 따라서 100) 개로 만들어져 있다. 각각의 세포의 가장 중심에 염색체(유전인자·DNA) 46개가 들어 있는 핵이 있고 그 언저리에 세포질, 제일 겉에 세포막이 둘러싸고 있다. 세포질에는 미토콘드리아·리보솜·소포체·골지체 따위의 여러 세포소기관이 있다. 그 세포들은 다시 그들보다 더 많은 박테리아, 세균, 기생충 등과 함께 말 그대로 소우주를 구성해서 사람과 똑같이 수없는 생로병사를 반복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단지 그들의 우주는 수명이 좀 짧아 부지런히 다른 우주(자손)를 만들어야 한다.

 

단세포 생물인 박테리아를 생명체로 친다면 분명 우리 몸 안의 세포 1개도 생명체다. 다만 그 박테리아 중 일부가 저 혼자 살아가다가 어떤 이유로 몇 개가 같이 모여 살아보자고 해서 다세포 생물이 생겨난 것일 게다. 그러다가 각자가 역할을 분담하다보니 훨씬 생존에 유리함을 깨달은 것이겠다. 여기서부터 진화가 시작된 것이리라. 헌데 문득 의문이 든다. 혹여 그 세포 하나하나가 자기 생각이 없을까? 생존욕구는? 종족보존(자기복제) 욕구는 없을까? 저들기리 주고받는 소통 신호는? , 물론 고등동물과 같은 그 정도로 발달된 건 아닐지라도 말이다. 어쩌면 그 신호가 너무 미약해서(인간의 수십조 분의 일에 지나지 않아서) 우리가 못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아직 과학이 그걸 측정해낼 만큼 발달하지 못해서 확인이 안 되는 건 아닌지? 일부 대뇌에서 기능하는 신경계의 정신활동을 혼()이라 한다면 그 외의 각각의 세포 간, 각 기관 간 자율신경계의 소통신호 일단 백()이라 하자!

 

의 주인은 누구인가?

 

통념적으로 알고 있는 ()’라고 하는 몸의 주인이 실제 자기 몸을 마음(의지)대로 부릴 수 있는 건 장기 바깥의 운동근육뿐이다. 그걸로 동물다운 짓을 하고 산다. ‘생각을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마저도 대뇌 중 일부분을 가지고 노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육신[]과 직접적으로 상관하지도 않는다.

 

인간이 지구 표면에 붙어살지만 저 하늘 너머 우주, 우주 너머 우주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다. 해서 매일 하늘을 보며 별을 헤아리고 우주선을 만들어 쏘아 올린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 안에 사는 세포(기관)들은 자신들의 우주() 밖을 살필 수가 없다. 자신들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서 뭔가 새로운 결성체를 만들어 권한을 위임해야할 필요가 생겼다. 해서 두뇌란 걸 만들고 그 중 일부분이 외부 감시를 위해 감각을 인지하는 기능과 생존과 생식을 위해 먹이와 짝을 찾아다니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근육을 사용하는 권한을 맡겨준 것이다.

 

나머진 모두 자기들끼리 알아서 열심히 정보를 주고받으며 세포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이다. 피와 영양소를 나르고, 각종 호르몬과 화학물질을 분비하고 자율신경계를 만들어 정보를 주고받으며 단 한 개의 세포도 빠짐없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과연 그들끼리 소통하는 정신이 없을까?

 

만약 가 그것을 인지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당장 미쳐버린다. 인간의 두뇌가 아무리 커져도 그 중 극히 일부분도 감당 못한다. 그랬다간 찰나에 뇌가 터져버릴 것이다. 가시 하나만 찔려도 혼비백산(魂飛魄散)하는 게 인간이 아닌가? 앞으로 몇 만 년 동안 인간이 만들어낼 AI(인공지능)를 다 끌어 모아도 사람 몸 하나 관장 못한다.

 

가령 어떤 부주의나 돌발적 사고로 인해 인체가 큰 상처를 입었을 때 혼(정신)은 그 통증을 감당해야 하고, 또 응급하게 조치를 해서 피가 더 못 흐르게 붕대를 감아 상처 부위를 보호하고 치료를 하는 외적인 방안을 궁리해내야 한다. 반면에 몸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에 의해 즉각적으로 비상체제가 가동되어 온몸 60조 개의 세포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피를 만드는 기관은 피를 만들고, 상처를 아물게 진액을 만드는 기관은 진액을 급하게 양산해낸다. 그리고 그런 혈액과 물질들을 혈관을 통해 상처 부위로 배달시켜 무너진 둑을 서둘러 틀어막아 피가 빠져나가는 걸 방지해야 하고, 또 그 상처를 통해 침투한 각종 세균들과 전투를 벌여 소탕해내야 한다. 그렇게 부서진 성곽을 복구하고 희생된 군사를 보충하기 위해 새로운 세포를 서둘러 만들어내어 완벽한 전투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이런 모든 과정을 자율신경을 통해 온 몸의 모든 기관과 세포들에게 전달되고 그 상황이 모조리 중앙통제소로 즉각 보고되어 다음 조치 역시 자율적으로 일사분란하게 처리된다. 이 일을 만약 정신과 생각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해낼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만약 그 중 일부의 정보라도 의식을 담당하는 전두엽에 전달된다면 너무너무 복잡해서 그 즉시 혼()이 나가버리고 말 것이다. 다행히도 정신인 는 그 통증과 약간의 피곤함, 그리고 한동안의 불편함을 감수하면 그만이다.

 

병원에서 수술을 할 때 마취제를 사용할 때와 안 할 때 상처가 아무는 속도가 차이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취를 한 상태에서 수술을 하면 혼()이 통증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덩달아 마취당한 백()이 비상가동체제를 제대로 가동시키지 못하는 바람에 자체적으로 생산해야 하는 각종 보호 물질 등을 제때에 생산 공급하지 못한 때문이다. 마취제, 진통제, 수면제 등 마약성 의약을 애용해서 중독이 되면 백()의 소통 체계 매뉴얼이 망가져 정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이런 이치겠다. 마약에 잘못된 정보에 길들여진 각 기관들이 자신이 만들어내야 할 각종 영양소, 항균물질, 신경전달물질 등을 과도하게 또는 부족하게 만들어 내거나, 심할 경우에는 아예 생산기능조차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신호체계에 무반응하거나 과잉반응을 일으켜 오작동 혹은 통제 불능에 빠트리기도 한다.

 

그런데, 혼백(魂魄)에서 혼()은 백()이 하는 일을 인식할 수가 없는 반면에 백()은 혼()이 하는 일을 모조리 파악하고 있다. ()은 오감을 통해 사태를 파악하고 궁리해서 더 이상 끔찍한 고통을 당하지 않으려고 조치를 하지만 그 일을 백()에게 직접 보고할 책임도 방법도 없다. 심지어 보고가 전달되었는지 안 되었는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백()은 혼()이 하는 일을 자동적으로 동시적으로 보고받아 자율적으로 인체의 모든 기관에다가 상황을 전달해서 각자가 스스로의 역할을 해내도록 조처한다.

 

가령 상처를 입어 혼이 고통스러워하면 그 고통을 완화시켜줄 도파민을 분비하고 슬플 때나 기쁠 때, 그리고 놀랐을 때, 배고플 때, 이성을 만났을 때 등등 그에 필요한 각종 신경전달물질을 스스로 척척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대뇌피질 안(아래)에 있는 변연계가 중간에서 그런 역할을 담당한다. ()은 그저 오감(통증)을 통해서 백()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만약 혼()이 백()의 그와 같은 일들을 모두 인식한다면 우리는 굳이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연구할 필요도 없겠다.

 

이와 같은 내적인 소통체계는 과연 인가 아닌가? ()가 없는 지렁이는 가 없어서 생존욕구(의지)도 없다든가? 우리 몸의 세포 하나하나의 본능적 의지(그러기엔 너무 미약하지만)에서부터 혼()의 역할을 하는 일부 대뇌의 작용을 제외한 다른 모든 기관들의 소통체계를 필자는 백()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혼()은 인식신경계라면 백()은 무인식신경계라 할 수 있겠다.

 

그러고 보면 기실 혼()의 기능적 역할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하겠다. ‘인간이 우주에 비하면 먼지보다 미약한 존재이듯이. 인간에게 생각하는 능력을 맡긴 건 바로 이 소우주를 건실하게 잘 챙기라는 세포들의 요구를 내적으로 관장하고 혼()의 정보와 판단을 받아 바른 선택을 하도록 하는 등 실질적인 몸의 주인은 백()이다. 정신이 제 몸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건 인간[]의 착각이다. 착각에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딴 짓을 할 때 인간은 사고를 치고 병이 나서 본연의 임무를 망치고 소우주, 대우주를 파멸로 몰아간다. 그게 인간의 오만이다. 필요 이상으로 커진 대뇌신피질(전두엽)의 장난이다. 아무튼 지나치게 발달한(권한이 강화된) 현대인의 혼()은 수시로 자신()을 속이거나 속이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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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9/22 [09:34]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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