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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윤회를 믿고 싶은가?
[신성대의 혼백론 20] 윤회(輪廻) 혹은 환생(還生, 幻生)
 
신성대 주필(글로벌리더십아카데미 공동대표) 기사입력  2021/02/01 [03:51]
▲ 신성대 주필.     ©한국무예신문

환생이란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윤회(輪廻)에서 파생된 개념으로 라마교 신자들은 달라이 라마가 죽으면 환생해서 돌아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특히 13대 달라이 라마는 임종 직전에 자신의 환생을 예고하였는데, 그의 유언에 따라 제자들이 앞에 호수가 있는 하얀색의 집을 찾아 나섰다. 1935년에 암도 지방에서 그 집을 발견하였는데, 그 곳에 14대 라마가 될 라모 돈드럽이 있었다. 그 아이는 라마들의 이름을 알아맞추었다고 한다. 그리고 돈두럽을 라싸로 데려와서 큰 북과 작은 북을 각각 보여주었는데 놀랍게도 아이는 작은 북을 집었다. 그 북은 13대 달라이 라마가 자신의 시종을 부를 때 사용하던 것으로 이렇게 해서 달라이 라마의 환생은 증명되었다고 주장한다. 아무려나 전생이 없고서야 어린 아이가 어떻게 그런 걸 알 수 있을까?

 

또 이슬람교 중 하나인 유일신인 하나님(알라)을 섬기는 이슬람교의 한 종파인 알라위파가 있는데, 그들은 죽기 전 동안 지상에서의 행위가 어땠느냐에 따라 다음 생에서 지상에서의 환생 결과가 정해진다고 믿는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나 인도의 신화에서 신들 역시 여러 모습으로 환생을 거듭하고 있다.

 

아무려나 현재까지 윤회나 환생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적은 없다. 당연히 그걸 증명하려는 한심한 과학자도 없겠지만, 만약 그것이 증명된다면 환생의 종교적 유용성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 증명은 곧 부정일 테니까. 그러니 안심하고 믿어주는 척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나라 민간 사랑방에서는 이 환생(전생)에 관한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고 이바구 소재로 등장하는가? 이는 대부분 도교(道敎)의 영향을 받은 민간설화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종교 중에서 가장 판타스틱한 것이 도교이다. 도교에서는 환생이 언제든 가능하고 지금도 천 년 전에 죽은 진인(眞人)들이 환생을 거듭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런 환생이니 전생이니 하는 공담(空談)을 필자가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굳이 언급하는 이유는 사실(과학, fact)과 판타지의 경계를 구분하고자 함이다.

 

필자가 정좌수행(참선, 명상)을 통해 삼매에 들면 소위 말하는 유체(의식)이탈이 언제든 가능하다고 했다. (물론 그런 초자연적인 체험을 하거나 특이공능을 익히는 것이 수행의 목적은 아니지만) 만약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주장이 논리적으로 가능해진다. (여기서부터는 판타지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죽기 직전 혼()이 육신()을 떠나(해탈) 다른 사람(대부분 방금 태어나는 아이, 아직 이성이 발달하지 않은 어린아이, 지진아, 혼이 빠져나가 가사상태에 빠진 사람, 마땅한 사람을 못 만난 경우에는 가축)의 몸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지 않겠느냐 하는 가설이다. 그래야 달라이 라마의 환생 주장이 성립된다. 누군가가 죽어 저승사자를 따라 염라대왕 앞에 갔더니 실수로 엉뚱한 사람 대신 불려 왔단다. 해서 되돌아 왔더니 그새 시신을 묻어버린 바람에 영혼이 갈 데가 없어 마침 죽은 다른 사람의 육신에 들어가 환생해서 겪는 온갖 우스개 이야기가 야담의 단골 소재다.

 

어쨌든 그렇게 환생한 아이는 전생(?)의 기억과 습관을 지니고 있을진대, 몇 가지 테스트를 통해 확인한 다음 환생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과학적인 사고에서 보자면 허무맹랑한 판타지에 불과할 뿐이지만 신앙인에겐 충분히 수긍이 되는 논리(?)가 된다. 석가님도 끊임없이 윤회를 해서 다시 태어났었고, 예수님도 부활했었고 언젠가는 다시 재림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나라 어느 종교도 죽은 교주가 반드시 재림해서 천지공사를 해준다고도 했으니 환생쯤이야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으리라.

 

더하여 환생을 믿는 사람들은 그 믿음의 증거로 만약 달라이 라마의 환생이 아니라면 처음 보는 아이가 제자들의 이름을 어찌 알아맞히고, 또 달라이 라마가 애용하던 물건을 어찌 알아서 거머쥐겠는가?”하고 재차 항변할 것이다. 아무려나 그 말도 필자가 그 자리에 없었으니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믿을 건 못되지만 유추는 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잠시 현실로 돌아와서 필자가 이 책을 쓰는 중에 겪었던 일이다. 마침 사무실에 후배와 둘 밖에 없었다. 칸막이 두 개나 건너 각자 책상에서 자기 일에 몰두하다가 잠시 기지개도 켤 겸해서 돌아보며 말을 건네는데, 어라? 난데없이 그 후배가 누구네 아이가 자폐에 걸려 병원에 치료받으러 다닌다는 얘기를 한다. 그 순간 필자가 살짝 놀랐었다. 왜냐하면 필자가 방금 자폐증에 관한 글을 막 쓰고 난 다음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쓰는 동안 필자는 그 후배의 존재를 의식한 적도 없고 또 먼저 자폐란 단어를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 원고를 쓰는 한 시간 가량 필자가 속으로 자폐란 단어를 수백 번도 더 되뇌었을 텐데 어느 순간에 그 단어가 그 친구에게로 전이되었나?

 

그 후로도 두어 차례 더 비슷한 일이 있었다. 심지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는데도 상대방이 뜬금없이 방금 전 필자가 골몰해 쓰고 있던 주제나 단어를 언급하는 일도 있었다. 또 점심시간에 산책을 돌면서 언뜻 스쳐가는 생각 한 줄을 붙잡아 입력시켜놓고 난 날 퇴근 시간, 머리를 식힐 겸 오락영화 한 편을 다운 받아 보고 있는데 그 끝에 나오는 내레이션이 아까 적어놓은 그것과 너무 똑같아 섬뜩했던 적도 있다.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작업 중일 때에는 그런 게 마치 뭐에 홀려서 일어난 현상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바람을 피우는 한 선배는 어느 날 새벽 아침 운동을 핑계로 츄리닝 바람으로 나가 집에서 한참 떨어진 여관에서 애인과 새벽걸이를 하고 돌아오자 마침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던 부인이 난데없이 어딜 다녀오느냐고 묻더란다. 새벽꿈에 당신이 어디 골목 어느 여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깼는데, 너무 생생해서 물어보는 거라고 하는 바람에 기겁을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이와 유사한 경험담은 남자들끼리 얘기할 때 종종 듣는다. 어쩌면 지혜로운 부인이 지레짐작으로 경고했을 수도 있겠지만 전혀 우연의 일치인 경우도 많은 것 같다.

 

 

전이감응(轉移感應)!

 

어떤 순간 우연히도 둘이 똑같은 단어나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려 서로 깜짝 놀라는 현상으로 독자분들 중에도 살다가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부모 자식 간, 형제간, 부부간 가족 간에 잘 일어나며 아주 친한 친구 사이에 우연히 둘만이 무심코 일에 몰두하다가 겪게 된다. 심령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이런 걸 텔레파시라고 하지만 필자는 조금 다른 성질의 현상으로 본다.

 

흔히 신앙적으로 상당히 몰입한 사람이 방언(方言)을 내뱉거나 주술적인 언행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어린 아이들 중에도 간혹 그런 영특한 능력을 지닌 경우가 있다. 하여 그런 아이를 어떤 신의 환생으로 받드는가 하면, 데려다가 점을 치는데 이용하는 무당도 있었다.

 

왜 어린아이인가? 이런 아이들은 대개 골똘하고 당돌한 성격인데 그만큼 단순하고 집중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하여 전이감응이 잘된다. 최면술이 잘 걸리는 사람처럼 무당이나 찾아온 고객과 전이감응해서 어린이답지 않게 상대방이 알고 있는(알고자하는) 어떤 얘기를 방언처럼 내뱉어 주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두뇌에 정보가 많지 않아(그만큼 순수한 백지상태, 편견 및 선입견이 없는 순수이성) 뇌파 사이클이 그만큼 단순해서 상대방과 동시감응이 잘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신통한 능력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 멀지 않아 온갖 정보와 선입견 편견이 학습되어 두뇌에 기억 저장되고 나면 머릿속(뇌파)이 복잡해진다. 덩달아 감정도 복잡해지고 눈치를 보게 되면서 집중이 잘 되지 않아 남들과 전이감응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대개 7,8세 넘어가면 그런 신통력이 차츰 사라진다.

 

다시 달라이 라마의 환생으로 말을 돌리면, 그 제자들이 아이를 데려다 테스트하는 과정에서 그들 사이에서 전이감응으로 제자들의 이름을 알아맞히고 또 죽은 달라이 라마의 유품들을 골라잡았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겠다. 실제로 웬만큼 정신수양한 사람이라면 이런 정도로 아이를 유도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물론 본인은 이 이치를 모르고 있어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어서 필자의 이런 설명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이 또한 역으로 반증할 필요가 있는데, 그때 만약 죽은 달라이 라마의 제자가 아닌, 그 기물들이 누가 사용하던 것인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아이를 테스트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제자들의 의식(정보)이 아이에게 감응 되지 않았다면 아이가 그런 선택을 하지 못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그도저도 아닌 우연일 수도 있다. 그 우연이 예언과 부합되는 아이를 찾고 찾은 것이다.

 

다시 환생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 달라이 라마가 죽기 직전 유체이탈해서 마침 태어나는 아이의 육신에 깃들었기 때문에 아이의 기억세포에 그 정보가 저장되었다가 제자들에게 내보인 것이라고! 물론 아직 뇌세포가 많이 늘어나지 않아 전생의 일부 기억만 저장할 수 있었다거나, 나머지는 잠재의식 깊은 곳에 저장되어 있는데 이는 나중에 서서히 발현될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헌데 이에는 다시 반론이 제기된다. 그게 가능하다면 왜 굳이 그 아이 한 명에게만인가? 평소에 유체이탈해서 여기저기 태어나는 아이들과 접신해서 손오공처럼 수없이 많은 환생을 만들어놓을 수 있지 않은가? 마음에 드는 아이가 아니면 안 된다? 임종(해탈) 때에만 가능하다? 내 몸에서 유체이탈해서 실버코드(그런 게 있기나 한지?)를 끊고 남의 육신에 혼()이 들어가긴 하지만, 일단 한번 들어가면 그 육신이 죽기 전에는 못 나온다? 등등 이야기는 끝이 없다. 어디까지 가능한지는 우리 모두가 수행(사망)해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니 공리공담(空理空談)일 수밖에! 판타지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나 유용할지 모르겠다.

 

 

윤회(輪廻), 정말 가능할까?

 

고대는 물론 현재에도 인간은 세상사에 대해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고 또 그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묻는다. 소위 지식인이나 학자는 그에 대해 설명해야 할 의무를 진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그것이 호구지책이기 때문이다. 고대에는 그 일을 대개 주술사들이 담당했었다.

 

그들은 하늘과 땅에서 일어나는 일, 인간사 온갖 갈등들, 삶과 죽음, 질병과 불행 등등, 중생에게 그 이치를 설명하고 계도해야 할 책무를 지녔다. 기실 지금도 모든 종교인들이 중생들의 고민과 의문에 대해 설법 설교하거나 굿과 같은 퍼포먼스를 통해 병을 고치거나 고민을 해결해주고 있다. 그걸 안하면 누가 쌀과 돈을 갖다 바치겠는가? 필자 역시 지금 당장 책 한권을 팔기 위해서는 불특정 누군가의 의문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하거나 변명에 불과할지라도 그럴 듯한 스토리텔링을 늘어놓아야 한다.

 

윤회란 산스끄리트로 삼사라라고 하는데 전생(轉生), 재생(再生), 유전(流轉)의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B.C. 600년경 우파니샤드에서 비롯된 이 윤회사상은 현재의 힌두교에까지 전해져 보편적인 사상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특히 불교사상의 중추적인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고대 인도인들은 인간(동물)이 죽으면 육신은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돌아가고 정신적 요소인 영혼(受想行識)이라는 분별심(의식)은 흩어지되 각각이 그 업()과 연()에 따라 윤회를 거듭한다는 생각했다. 인간이 죽으면 썩은 물이 나오고 땅에 묻으면 삭아서 흙이 된다. 그 흙에서 식물이 자라고 동물들이 그것을 먹고 자란다. 또 화장을 하면 불로 타고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었다가 비로 내린다. 타고 남은 재는 먼지가 되어 바람과 함께 날아간다. 이런 자연 현상을 보고 윤회를 생각해낸 것이겠다. 비과학 시대의 추리지만 꽤 설득력 있는 가설로 현대 종교에서도 중생의 계도 수단으로써 효력을 유지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 우주에서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윤회 아닌 것이 있던가? 그렇다면 “All is nothing!”이 아닌가? 이 윤회사상에서 전생이 나오고 환생이 나와 또 다시 여러 종교종파로 분화되어 나갔다. 설마 비현실적인 이야기임을 옛사람들인들 몰랐을까마는 굳이 부정한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질 것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그런 믿음이 현실 삶에 지친 이들에겐 위안이 되겠기에 그냥 두고 본 것이리라.

  

조금 냉정하게 달라이 라마의 환생을 불교적으로 해석하자면, 그는 수행이 모자라 윤회의 고리를 끊고 해탈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되겠다. 설마 중생들에게 윤회의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 환생했을까? 아니면 환생을 해서라도 그 자리를 지키겠다는 것일까? 그러니까 자식 대신 본인이 세습? 귀신[]이 되어 남의 육신[]을 빌어 생을 이어가겠다는 것이 아닌가? 고작 평생을 수행해서 익힌 것이 그딴 술법이란 말인가? 인간은 생물이다. 생명[魂魄]보전, 다시 말해 종족보전이야말로 진정한 윤회이자 환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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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2/01 [03:51]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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