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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武藝)와 무술(武術), 그리고 무학(武學)
전통무예란 무엇인가?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기사입력  2011/10/05 [11:02]
무예(武藝)와 무술(武術), 그리고 무학(武學)
 
▲ 신성대 주필     ©한국무예신문
예(藝)와 예(禮)는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인류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대표되는 글자라 할 수 있겠다. 이 둘은 무(武)와 문(文)을 대변하는 것으로 인류문명사의 두 기둥인 전쟁과 종교의 뿌리가 된다. 이 두 글자는 고대 갑골문에 등장하여 역사의 시작에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 위상을 지켜왔었다. 이에 비해 기(技)와 술(術)은 한참 후대에 생겨난 글자이다.
 
예(藝)는 본디 사람이 꿇어앉아 나무를 붙들고 있는 모양의 상형문자인데 농업의 시작을 알리는 글자이다. 지금이야 나무나 풀을 심고 가꾸는 것이 별로 대수롭거나 신비한 기술이 아니지만 고대에는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라 여겼었다. 즉 하늘이 내려준 귀한 기술인 것이다. 해서 중국 신화에서는 농사짓는 기술을 신농씨(神農氏)가 하늘에서 가져와서 인간(왕)에게 전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의 아들인 왕은 예(禮)로써 그 고마움을 하늘에 전해야 했다. 따라서 당연히 예(藝)와 예(禮)는 일반 백성의 것이 아니라 최고의 권력자, 하늘을 대신하는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무, 즉 신수(神樹)를 보호한다는 것은 신권(왕권)을 지킨다는 상징이었다. 이를 위해 무사들이 필요했고 자연스레 무(武)와 예(藝)가 나란히 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예(藝)는 오직 국가의 통치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군사들의 살상기술, 즉 무(武)에만 붙일 수 있는 글자가 되었다. 때문에 고대에는 왕권(王權)과 관련되지 않는 일에 예(藝)자가 허용된 적이 없다.
 
현대적 용어로서의 예술(藝術) 혹은 예능(藝能)

지금은 흔히 사용되지만 불과 백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예술 혹은 예능이란 용어가 없었다. 이 용어는 우리보다 먼저 일본이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아트(arts)를 예술(藝術)로 번역하면서 자연스레 한자문화권이 이를 따른 것이다. 이리하여 무용, 미술, 음악, 연극 등을 예술로 부르게 되었다.
 
만약 서양문물을 조선이 먼저 받아들였더라면 아마도 아트(arts)를 예술로 번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예(藝)란 글자를 단 한 번도 다른 기술에다 사용한 적이 없이 오직 무(武)에만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간의 기술이나 재주에 예(藝)자를 붙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우리 옛 문헌에 예(藝)란 글자가 나오면 그건 곧 무예(武藝)라고 해석해도 틀리지 않는다. 기예(技藝), 기예(騎藝) 역시 마찬가지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이나 중국에선 춤이나 갖가지 재주를 연희(演戱), 잡희(雜戱)라 하였다. 그리고 그림이나 노래, 춤 등의 재주를 가진 사람들을 재인(才人)이라 불렀다. 고려시대 과거에 제술과(製術科)가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이런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관장하는 재인청(才人廳)이 있었다. 그 외에도 잡과(雜科), 잡학(雜學)이란 용어도 사용되었다. 따라서 만약 아트를 조선에서 번역했다면 예술이 아니라 재술(才術), 잡술(雜術) 혹은 제술(製術)로 번역되었을 것이다.
 
무예(武藝)란 용어의 역사적 연원

어쨌거나 우리나라 역사상 십팔기(十八技)를 제외한 그 어떤 무예가 언급된 적이 없다. 따라서 십팔기 이외의 어떤 기예를 가지고 전통무예라 한다면 이는 백 프로 거짓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활쏘기조차 사습(射習)이니 궁시(弓矢)니 했지 공식적으로 예(藝)자를 붙인 적이 없다. 다만 구한 말 일부 개인 문집에서 활쏘기를 사예(射藝)라 한 적이 있을 뿐이다. 사(射)가 왜 무예(武藝)에 속하지 못하는지는 나중에 따로 설명하겠다.
 
그만큼 예(藝)자의 의미와 사용은 명확하고 엄격했었다. 예(藝)자를 오직 무예(武藝)에만 사용했을 뿐 아니라, 무술(武術)이나 무도(武道)란 단어는 단 한 번도 우리나라 문헌에 등장한 적이 없다. 이들 용어는 일제시대부터 사용하게 되었지만, 여타 서예(書藝), 다예(茶藝), 도예(陶藝) 등의 용어는 6,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점차로 유행하기 시작하여 지금처럼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에도(江湖)시대에 시작된 화도(花道, 꽃꽂이)가 처음 등장하여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서도(書道), 다도(茶道) 등 도(道)자 붙이기가 유행하자 1920년 무렵 각종 무술에서도 이를 가져다 붙이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일본도 유술(柔術), 검술(劍術), 격검(擊劍), 체술(體術), 공수(空手) 등등 통일된 용어가 없이 제각각이었다.
 
중국은 문헌상 초기에는 무예(武藝)와 무술(武術)을 혼용했었는데, 송대(宋代) 이후엔 무예란 용어가 차츰 사라지고 무술이란 용어를 주로 사용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밀히 따지자면 무예와 무술이란 용어는 그것이 쓰이는 주체에 따라 구분된다.
 
당대(唐代)까지 중국에서는 무예란 용어를 주로 사용해왔는데, 대부분의 고대사회가 그렇듯 이때까지만 해도 중국이 군(軍)과 민(民)의 무예 경계가 뚜렷치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고대에는 전쟁이 나면 반드시 군인들만 전투를 치르는 것이 아니었다. 전장에 나가거나 자신들의 마을을 지키기 위해 민간인들도 무기를 소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송대(宋代)에 들어서면서 중앙집권이 완성되고 군사제도와 법이 통일되는 사회가 된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과 같이 완전한 통치체제를 갖춘 것이다. 해서 무기와 무예는 오직 군대에서만 허용되었고 민간인은 무기 소지를 금하게 된다. 이에 시중에선 권술(拳術)과 봉술(棒術)과 같은 군사체육 내지는 군사오락 종목들이 호신용 기술로 유행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무술이란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민간에서 무예가 금지되자 송대 이후 중국에선 삼국지 수호지 등등 무예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명청(明淸)시대에는 무협소설이라는 한 장르로 꽃피우게 된다. 물론 무협소설에서와 같은 그런 일은 송대 이후의 민간에서 실제 일어난 적은 없었다. 무협소설은 글자그대로 소설, 즉 픽션일 뿐이다. 요즘 우리나라 사극드라마처럼 말이다.
 

▲ 무예도보통지 내용중 예도의 한 장면.     © 한국무예신문
 
무예와 무술은 그 목적에서부터 다르다.

아무튼 우리나라에선 고려 말 무신정권이 몰락하고, 원(元)에 의해 무장해제 되면서부터 민간에선 누구도 무기를 소지할 수 없어 무예(武藝)의 맥이 끊어지고 만다. 조선시대는 엄격한 통치체재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무술이란 용어가 생겨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억무숭문(抑武崇文) 정책에 따라 개인이 함부로 무기를 소지하는 것을 엄격히 금했다. 따라서 민간에서 비전되어왔다고 주장하는 전통무예가 있다면 이는 필시 꾸며낸 것이라 하겠다.
 
이로써 무예란 국가에서 허용된 집단의 살상기술, 즉 군사들이 사용하던 무기와 그 기예를 가리킨다고 정의할 수 있겠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무예만이 진정한 마샬아츠(martial arts)인 셈이다. 그리고 엄밀하게 구분하자면 무술은 호신술, 즉self-defence arts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특히나 무술 중에서도 맨손호신술일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기를 들지 않은 맨손기술로 전쟁을 치른 예는 없기 때문이다.
 
무예의 목적은 실전에서 적의 살상에 있기 때문에 그 동작이 분명하고 단순하고 강건한 대신 화려함이나 복잡함은 피한다. 반면 무술의 목적은 살상에 있지 않고, 호신과 상대의 제압, 그리고 오락성과 체육성이 강하기 때문에 동작이 화려하고 과시적이어서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경향이 있다. 또한 무예는 군사(병장)기예로서 집단적인데 비해 무술은 호신술로서 개인적이기 때문에 그 구체적 기술의 구사 방식에서도 조금씩 달리하게 된다.
 
한국적 보통명사로서 무예(武藝)

이처럼 학문적으로는 무예, 무술, 무도, 군사체육, 일반체육이 명확하게 구분되어야겠지만 현대에 이르러 이런 것들을 모두 무예의 범주에 넣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해서 이 모두를 아우르는 일반명사는 같은 한자문명권인 동양3국이 관습적으로 서로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독 한국만은 전통적으로 무(武)를 경시해온 데다가 역사적 단절로 인해 자신의 무예를 잃어버리고 남의 무예를 강압적 혹은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자연스레 두서없는 용어들을 혼용해왔었다.
 
필자 역시 무예에 입문한 지 40년을 넘어가고 있지만, 기실 확신을 가지고 무예(武藝)란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85년 원로민속학자 심우성 선생께서 필자의 스승인 김광석 선생을 만나자 십팔기의 실기를 공개하라고 하여 그 교본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실기해제》(85, 東文選)를 펴내면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중에서나 학계에서 무예란 용어를 사용한 적이 없었고 무술 혹은 무도를 사용했었다.
 
더구나 전통무예(傳統武藝)란 그전까지 누구도 꺼낸 적이 없는 생소한 용어였다. 심우성 선생이 근현대의 무술과 십팔기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때까지 일부에서 민족무술이란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었을 뿐이다. 아무튼 전통무예는 말 할 것도 없겠지만 현대창작무예나 외래무예라도 이 땅에 받아들여졌다면 이왕이면 통일되게 무예(武藝)란 한국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잘못 꿴 첫 단추, 전통무예진흥법

우리나라에서 전통무예진흥법이 제정되었다. 과연 그런 것을 굳이 별도의 법으로까지 정할 필요가 있을까 하던 차에 이미 그 이름에서부터 문제를 안고 말았다. 기실 우리나라에서 전통무예라면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십팔기(十八技) 이외에는 단 한 종목도 없기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전통무예이고 현대무예인지는 고사하고, 무예와 무술, 호신술, 체육의 구분도 안 된 상태에서 덜컥 그런 법부터 만들었으니 혼란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 법안이 거론될 때부터 참으로 난감한 일이라 생각했었는데, 예상대로 3년이 지나도 집행되지 못하고 진퇴양난이 되고 말았다. 차라리 그냥 '한국무예진흥법'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설사 이 법이 집행된다 해도 이를 기화로 전통무용진흥법, 전통체육진흥법, 전통놀이진흥법 등등 수없이 많은 요구가 뒤따를 수도 있는데 그 사태를 어찌 감당하려는지 뒷일도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어떤 학문이든 먼저 그 용어와 개념부터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는 기본조차 모른 성급한 실수가 이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어쨌거나 그동안의 무관심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우리 무예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일어났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무예에 대한 개념과 범위부터 명확히 하고,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우리의 무예사를 왜곡 없이 정리해 나가는 학문적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전통무예를 단순히 무기를 다루는 옛스런 기예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인류문화의 한 축으로서, 그리고 우리 민족정신의 뿌리를 찾고 전승하는 귀중한 도구로서 인식되었으면 한다. 이에 필자는 ‘무학(武學)’이란 새로운 용어를 내세워 무예가 체육이 아닌 독자적인 학문으로서 자리매김하길 주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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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0/05 [11:02]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수리뫼 15/10/02 [21:49]
좋은 글 많이 쓰셨더군요. 많은 배움을 얻고 갑니다. 그런데 가끔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도 눈에 띄는군요. 제가 잘 몰라서일 수도 있습니다. 이해를 바라면서 몇 자 적습니다.
1)윗 글에서 예와 도에 대한 이야기는 있는데 학, 즉 무학에 대한 설명은 전혀 되어 있지 않네요.
2)무예라는 말은 85년 이전에도 사용했었습니다. 제가 무술(예)을 좋아했기에 여러 가지 무술을 접했었는데 그때도 이미 여러 도장에서 무예라는 말을 이미 쓰고 있었구요. 83년~86년까지 무협작가 생활도 했었는데 그때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무예라는 단어를 아무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무술이라는 용어보다는 조금 고급적으로 사용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증거는 널려있습니다. 당시 출간된 무협소설을 찾아서 읽어 보시면 이미 그 용어가 자주는 아니더라도 여러 사람들이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실 수 있을겁니다. 그러므로 신성대 님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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