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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일하게 남아 있는 종합병장무예, 조선국기 십팔기
예(藝)와 도(道), 무예와 체육의 차이와 경계. 한국무예 주체성 세우기 위한 제언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기사입력  2013/06/23 [00:15]
▲ 신성대 주필     ©한국무예신문
흔히들 하는 얘기 중에 칼은 일본이, 창은 중국이, 활은 조선이 최고라고들 한다. 또 한국 검술과 일본 검술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태권도와 가라테가 싸우면? 등등. 이렇게 서로 비교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비교하기가 쉽지도 않을뿐더러, 실은 무의미한 상상에 지나지 않는 질문이다. 이는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하는 질문과 다름없다.
 
호랑이든 사자든 서로 살아가는 환경이 다르고, 그에 따라 장단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같은 기예라 하더라도 그 숙련도에 따라 천차만별로 나타나는 무예에서의 단순비교란 애초부터 가당찮은 일이다. 무예를 익히는 사람들조차 간혹 그 같은 질문에 말려드는데, 이들은 대개 한 가지 기예밖에 모르는 사람들이거나 무예를 개인 간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호신술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세상에 상대적인 우수성은 있어도 절대적인 우수성은 없다. 해서 코끼리든, 사자든, 쥐든, 개미든 각자가 유리하면서도 불리한 환경에서 지혜롭게 살아남아 종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미 《무예도보통지》의 <기예질의> 편에서도 각종 무기의 상대적인 우수성과 약점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와 있다. 해서 한두 가지 병장기가 아닌 온갖 병장기예를 체계화시킨 것이다.
 
경기체육은 무예가 될 수 없어
 
일반적으로 우리는 스포츠적인 사고에 젖어 이런 단순 비교에 익숙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내가 칼을 들고 나가면 상대도 칼을 들고 나온다고 여긴다. 무예에서 떨어져 나온 스포츠 세계에선 당연한 얘기이다. 펜싱,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등등 똑같은 도구로 똑같은 조건에서 겨루는 것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종목에 따라 체급까지 분리해 동등한 조건을 맞추기도 한다. 바로 이 점이 무예와 스포츠의 다른 점이다.
 
그렇지만 생사를 두고 다투는 무예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적이 칼을 들고 나온다고 나도 칼을 들어야 한다는 법도 없을 뿐 아니라, 그런 바보도 없다. 그렇다고 적이 창을 들고 나오는데 나는 칼밖에 없으니 싸우지 않겠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할 수만 있다면 상대보다 유리한 병장기를 들고 나가는 것이 이길 확률이 높다 할 것이다. 물론 그 무기에 숙달되었음을 전제하고서 말이다.
 
그 옛날 병장기의 종류가 많지 않았던 영웅의 시대에는 장수들끼리 서로 똑같은 무기로써 겨루는 것을 무사의 자존심으로 여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대규모 전투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보다 우수한 무기로 무장한 쪽이 유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기든 기예든 절대적으로 우월한 건 없다
 
그래서 ‘십팔기(十八技)’인 것이다. 십팔기란 온갖 병장기를 다루는 18가지의 기예를 말한다. 또 이를 기병들이 말 위에서도 구사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실전을 통해 한중일 무예를 체계화한 종합병장무예이기 때문이다.
 
무예만 정리한 것이 아니다. 이처럼 다양한 기예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원앙진, 삼재진, 양의진 등 각종 진법을 구사하게 되어 있다. 낭선, 등패, 장창을 주무기로 10여 명의 병졸들이 최소의 진을 이루어 다가오는 적의 병장기에 따라 보다 유리하게 앞뒤 병장기의 순서를 바꾸거나 서로 보완하며 갖가지 진법을 구사하였던 것이다.
 
물론 일반 병졸의 경우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기예를 두루 익히게 할 순 없는 노릇이다. 해서 대개는 각자의 재주와 신체적인 조건에 맞춰서 사수(射手), 포수(砲手), 살수(殺手, 십팔기군)로 나누고, 같은 살수라도 낭선, 등패, 장창, 월도 등 각자의 특기종목을 하나씩 익히게 하였다. 졸병이 아닌 장교로 올라갈수록 보다 다양한 기예를 능숙하게 익히게 된다.
 
오늘날로 치면 직업 군인에 속하는 이들은 십팔기 중 여러 가지 기예에 능했어야 했는데, 특히 훈련도감의 별기군들은 십팔기 전 종목에 능해서 무예교관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그리고 별기군 중에서 특히 뛰어난 무사들은 임금을 직접 호위하는 무예청에 뽑혀 가기도 했는데, 이들을 ‘무예별감(武藝別監)’ 혹은 ‘무감’이라 불렀다. 그러니까 이들이 조선시대 최고의 십팔기 고수였던 셈이다.
 
어쨌든 실제 전투에서는 비록 칼 한 자루를 들었다 해도 경우에 따라 칼이 아닌 다른 병장기를 든 적을 상대하는 일이 비일비재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숙달되어 계급이 올라갈수록 다른 병기는 물론 검법 하나만 해도 온갖 다양한 법식을 익히게 되는 것이다.
 
무예의 체육화와 도(道)
 
따라서 십팔기를 제외한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각종 검법을 ‘무예’로 분류하기 힘든 것이다. 이미 호신술 내지는 체육화되었다. 대표적으로 지금의 검도(劍道)가 그렇다. 이전에는 검술(劍術), 격겸(擊劍)으로 불리던 것을 1920년경에 완전 체육화되면서 유도(柔道)와 함께 명칭도 검도(劍道)로 바뀌어 일본은 물론 조선에서도 총독부에 의해 군(軍), 관(官), 학교에 무도과목으로 보급되었다. 그러자 이를 따라 공수도(空手道), 합기도(合氣道) 등 너도 나도 도(道)자를 붙이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무도(武道)의 ‘도(道)’는 곧 ‘체육’이란 뜻으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쿵푸[功夫]의 일본식 표현이다. 이에 유독 한국인들이 필요 이상의 철학적인 의미로 견강부회하는 건 지나친 식민사대적 미화라 하겠다. 일제식민문화를 익히고 있다는 자격지심, 막말로 쪽팔림에 대한 변명으로 이 도(道)자의 의미를 현학적으로, 고차원적으로 부풀려온 것이다. 덕분에 나라를 빼앗긴 십팔기는 말살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 십팔기 중 <본국검> [이미지제공: 신성대]   

스포츠, 호신술, 무예의 차이
 
검도는 검(劍) 대 검(劍), 즉 죽도 대 죽도의 경기체육이다. 누가 먼저 상대의 특정 부위를 맞혀(때려) 점수를 얻느냐에 따라 승부를 가리는 게임이다. 당연히 본디의 무예 내지는 호신술로서의 법식은 거의 사라지고 오직 때리는 타법(打法)만 남아 있다. 그러고도 검도가 최고라 한다. 아무렴 어느 기예인들 그런 자부심이 없으면 배울 기분이 안 날 것이다.
 
가장 효과적으로 가장 빠르게 상대를 친다! 당연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검도가 가장 이상적인 검법이라거나 십팔기나 다른 중국의 여러 검법들이 쓸데없이 화려한 동작으로 짜여 있어 비효율적이라고 하는 주장은 일견 옳기도 하지만 충분한 논리는 못 된다. 게다가 일상에서 한번도 써먹지 못할 미적분(微積分)을 왜 배우느냐고 하는 것과 같이 자칫 모순에 빠질 수도 있다.
 
옳다는 건 아무리 화려한 기예도 실전에선 모두 다 필요치는 않다는 거다. 결국 간단한 몇 동작밖에 쓰이지 않는다. 이는 검법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모든 병장 기예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현란한 창법도 결국은 먼저 찌르는 것이 장땡이다. 현대의 무기도 먼저 보고 쏘는 쪽이 유리하다. 헌데 마치 검도만 그런 것처럼 주장하는 건 체육화하는 과정에서 내다 버린 법식에 대한 변명 내지는 자기 합리화를 위한 수사적 표현이거나 실전 무예와 과시용 호신술을 구분하지 못한 데서 나온 생각일 수도 있다.
 
대개는 내가 칼을 들었으니 적도 똑같이 칼을 들고 나와야 한다는 스포츠적 발상 때문이다. 허나 무예 세계, 즉 전투에서는 그런 일 거의 없다. 실제 전투에서 적이 체육관에서의 스포츠경기처럼 일 대 일의 똑같은 조건과 똑같은 무기로 정해진 규칙대로만 덤빌 리가 만무하다. 그때그때 피아의 상황에 따라, 적의 무기에 대항해 상대적으로 우월한 무기를 지닌 군사를 얼마나 신속하게 빨리 앞세우는가에 따라 유불리가 달라진다.
 
예(藝), 술(術), 도(道)
 
해서 군사들 각자가 맡은 기예의 숙련도도 중요하지만, 병장기들을 어떻게 조합해서 진을 짜고, 적진의 상황에 맞춰 재빨리 진을 변환해내는 능력을 더 중시하는 게다. 임진왜란 때도 결국 낭선, 등패, 장창으로 구성된 척법(戚法)으로 장도(長刀)를 장기로 한 왜군을 물리쳤다. 아무렴 <권법>이 실전에는 소용되지 않지만 사지를 활달하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하듯, 다양하고 복잡한 기예를 익히는 것을 무익한 일이라 할 수 없다. ‘예(藝)’란 그런 것이다.
 
불과 백여 년 전만 해도 예(藝)란 곧 기예(技藝), 즉 무예(武藝)를 뜻했다. 당시로서는 최고의 국방과학이었다. 해서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예(藝)’자는 민간에서 쓸 수 있는 글자가 아니었다. 대신 ‘술(術)’자를 썼다. 중국에선 한(漢) 이전까지는 ‘무예’란 용어를 사용했지만, 한나라가 천하를 평정한 이후 중앙집권체제가 완성되자 민간인들을 모두 무장해제 시켰다. 그 이전까지는 백성들이 각자 무기를 소지했었다.
 
다시는 난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여 무기가 아닌 봉술과 권법이 민간호신술로 발달하게 된다. 이후 중국에선 ‘무예’대신 ‘무술’이란 용어가 일반화 되어 오늘에까지 이른 것이다. 임진왜란 후 일본이 통일되고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서자 무사(武士)들을 무장해제시킨다. 갑옷과 창, 활 등 무기를 지닐 수 없게 된 무사들에게 신분의 징표로서 칼만 소지하도록 허용한 것과 같은 일이겠다.
 
그렇지만 고래로부터 조선말까지 누천년 동안 이 땅에선 단 한번도 ‘무술(武術)’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무(武)’를 ‘술(術)’이라 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오직 ‘무예’라고만 했다. 《무술도보통지》가 아니라 《무예도보통지》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금은 ‘예술(藝術)’이라 하여 ‘아트(arts)’의 번역 용어로 쓰이지만, 원래 ‘예(藝)’와 ‘술(術)’은 전혀 다른 뜻으로서 붙여 쓸 수 있는 글자가 아니었다. ‘제술(製術)’ ‘잡술(雜術)’ ‘잡기(雜技)’ ‘잡희(雜戱)’ ‘백희(百戱)’ 등이 아트[術]에 해당하겠다. 세상이 변하다 보니 정작 ‘예(藝)’의 주체인 무예십팔기는 예술에서조차 밀려나 저잣거리 체육관 주변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무(武)’자는 무예뿐 아니라 병법, 진법 등 군사 전반을 관장하는 용어로 쓰였다.
 
백번 양보해서, 검도인들의 주장에 수긍한다면 기실 검도인들이 자신의 체육무도 외에 조선 검법을 굳이 연구해서 익힐 필요가 없다는 논리적 모순에 직면하게 되겠다. 왜냐하면 결국은 일도격살(一刀擊殺)! 일본검도가 최고일 것이니 말이다. 일편단심 그 한 가지만 이골이 나도록 연습해서 그야말로 도(道)를 통하면 될 일이다. 달인(達人)이 되는 거다. 그게 고대올림픽이나 지금의 스포츠 정신에도 딱 맞는다.
 
지금이야 흔히들 예도(藝道)란 말을 붙여서 분별없이 사용하지만, 기실 예(藝)와 도(道)는 엄연히 다른 성질이다. 도(道)는 일(一)이다. 오직 한 가지에만 매달려 그 이치를 터득하는 행위, 그게 바로 도(道)다. 밟은 곳을 계속 밟고 지나다니면 길이 난다. 해서 길 도(道), 닦을 도(道)인 게다. 하여 ‘도(道)닦는다’는 말은 ‘역전앞’과 같이 같은 뜻의 용어가 중복된 것이다. 똑같은 일을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의미다.
 
도(道)자 자체가 이미 ‘닦는다’는 동사다. 이를 목적어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뭔가 우리 인간들이 모르는 신비한 고차원적인 이상세계나 진리가 존재하는 줄 착각하고 가부좌 틀고 매달리는 게다. 아무튼 그렇게 뭔가를 붙들고 늘어져 도통(道通)했다고 해서 그 하나로 세상 만물의 이치를 다 깨쳤다고 할 수는 없는 일. 그건 자만과 착각, 그리고 강박증이 만든 자기 망상일 뿐이다. 많은 수도인(修道人) 내지는 수양인(修養人)들이 이런 함정에 빠져 인생을 다 바치는 헛짓을 하는 게다.
 
경기체육 검도로는 십팔기 검법 해석 불가
 
십팔기 중 <본국검>이나 <예도> <조선세법>을 연구한다는 검도인들이 이처럼 ‘무예’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이 없다 보니 평생을 바쳐 《무예도보통지》를 들여다보고 세(勢)를 풀어 보려 해도 못 푸는 것이다. 경기체육의 최소화된 검도 법식으론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누가 가르쳐 준다 해도 습득하기 힘들다.
 
평생 타법밖에 익히지 못했으니 치고, 찌르고, 막고, 베는 격자격세(擊刺格洗)의 수만 가지 변화를 이해할 턱이 없다. 전승자에게 물어 동작을 알고 나면 별것도 아닌 세명(勢名)의 한자 뜻풀이에 매달려 평생을 낭비하고 헛힘만 쏟게 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를 ‘相’ ‘對’ ‘性’이란 글자풀이로 증명하겠다는 거나 다름없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이라 하겠다.
 
게다가 상대의 무기가 언제나 칼이 아니다. 창, 봉, 편곤, 월도, 등패, 낭선 등 다양한 병장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본국검> <예도> <조선세법>에는 어림잡아 70여 가지의 세법들이 나오는데. 그 중에는 ‘조천세(朝天勢)’처럼 창법에서도 공통으로 사용되는 세명도 있고, ‘발초심사세(撥艸尋蛇勢)’ ‘어거세(御車勢)’ ‘간수세(看守勢)’ ‘발사세(拔巳勢)’ 등 칼보다는 창을 더 염두에 둔 것도 있다. 즉 칼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병장기를 대적해야 하고, 그에 대비한 다양한 세법들로 구성되었다는 말이다.
 
기실 근접전에서 주병장기는 창(槍)이었고, 검(劍)이나 도(刀)는 보조병장기였다. 세상에 칼 한 자루만 들고 전투에 나가는 군대는 없다. 신분상 칼만 소지했던 일본 사무라이만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당연히 칼을 쥐고도 칼보다는 창을 상대할 기회가 더 많았다. 그러니 최소한 창을 다뤄 보지도 않은 사람이 <본국검>이나 <예도>의 여러 가지 복잡해 보이는 세법들을 이해할 턱이 없다. 더 문제는 전승이 아닌 자신의 상상력으로 해석한 세법을 후학들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무책임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십팔기에는 그런 복잡한 검법만 있는 건 아니다. 초보 병졸들이 익히던 <왜검> <쌍수도> <교전> <제독검>도 있다. 이들의 세는 대체로 격검(擊劍) 위주로 짜여 있어 검도인들이 배우기가 비교적 용이하다. 그러니 검도인들이 먼저 이들 검법부터 배우는 게 순서일 것이다. 이 중 두어 개만 해도 ‘한국검도’로의 탈바꿈은 충분하겠다.
 
그런 다음 보법(步法)과 신법(身法)을 익혀야 비로소 <본국검> <예도> <조선세법>에 들어갈 수 있는데, 기실 여기서부터는 ‘검도’의 길을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체육무도가 아니라 무예십팔기가 되어 버린다. 정체성이 바뀐다는 말이다. ‘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제껏 검도의 틀은 그대로 두고 칼만 어찌해 보려니까 부자연스런 동작으로 뒤뚱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검도식 <본국검>이 정통 <본국검>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이유겠다. 자세가 굳으면 생각도 굳는다. 검도(체육)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초보적으로 배우지 않으면 습득이 불가능하다.
 
이미 해범 선생께서 《본국검-조선검법교정》이란 책을 펴내어 현대적 그림에 화살표까지 그려가며 자세하게 공개해 놓은 동작을 보고도 따라 배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자신의 틀 안에서 움직이려니까 안 되는 것이다. 유럽에 가서 우측 운전을 고집하는 꼴이다. 오히려 초학자들이 쉽게 따라 하는 것은 그런 고정된 자기 틀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 전수받으며 동작과 함께 왜 그래야 하는지 설명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 이치까지 모두 깨치는 것은 불가한 일이겠다.
 
▲ 십팔기 중 <월도>와 <창>의 교전      © 한국무예신문
 
검경(劍經) <조선세법24세>
 
<조선세법>의 24세는 동양 최고(最古)의 고대검법으로 특이하게도 한 세(勢)가 한 초식(招式)으로 구성되어 있다. 1초식은 1합을 겨룰 만큼의 2-3개의 세로 짜는데, 이를 단수, 단퇴, 단권, 단투로라 부르며 실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다. 글로 치면 한 개의 단어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24세’가 아니라 ‘24초식’이다. 실제로는 50여 개의 세가 나온다.
 
여기에서는 동일한 세도 각 초식에서 달리 변화 운용되기 때문에 각각의 세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24세 중 단 한 세(초식)도 풀어낼 수 없다. 그리고 이 24세를 총보(總譜, 套路)로 연결시켜 놓지 않았다. 그 중 일부만으로 총보로 만든 것이 바로  <예도(銳刀)>다. <본국검(本國劍)> 역시 예로부터 내려오던 법을 <조선세법>의 세로써 새로이 체계화한 것이라 하여 ‘신검(新劍)’이라는 별칭이 붙었었다.
 
역으로 <조선세법> 24세를 제대로 익히게 되면 각 세의 정(正)과 변(變), 즉 기본과 변화는 물론 세와 세를 연결하는 이치까지 깨치게 된다. 스스로 새로운 검법(총보)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문(文)에 비유하자면 완전한 문장을 구사할 능력이 생겨 스스로 시(詩)를 지을 수 있게 되고, 서(書)에 비유하자면 초서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하여 천하의 검법을 한눈에 꿰뚫어보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필자가 <조선세법>을 검경(劍經)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아무튼 <조선세법>을 푸는 일은 무예 전반에 관한 최고 수준의 무학(武學)과 검리(劍理)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겠다. 하지만 경험에 의해 실증할 수밖에 없는 것이 무예다 보니 현실적으로 그런 무인이 생겨날 수가 없다. 설사 어떤 천재가 나타나 전승과 다를 바 없는 동작을 구현해냈다고 해도 그 이치까지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과학이 그렇듯 한 개인이 한평생을 바쳐야 한 가지 이치를 터득할까말까 하는 것이 무예다. 왜냐하면 그 이치는 몸이 깨쳐야만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결국 누천년 축적된 경험과 이론의 전승이 아니고선 완전한 재현이 불가능한 일이라 하겠다. 필자의 경험으로도 그랬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터득한 서푼어치를 더 보태어 아는 척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헌데 체육검도의 신법은 모음이 하나밖에 없는 언어와 같다. 그것으로 <조선세법>을 해석한다는 것은 100미터 달리기 선수가 갑자기 체조 경기에 나가는 것과 같고, ‘아’ 모음 하나로 애국가 부르는 꼴이다. 무엇보다도 이미 전승자에 의해 널리 보급된 것을 무시하고 굳이 제 식대로 해석해 재현해 보겠다며 용을 쓰는 것도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조선검법을 굳이 일본 검도식으로 바꾸겠다는 식민사대적 발상이라 하겠다. 당랑거철(螳螂拒轍). 용기는 가상하다만 벽돌은 아무리 갈아도 거울이 되지 않는다.
 
체육적 사고, 무예적 사고
 
무예가 체육이 되기는 쉽지만 체육을 무예로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할뿐더러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무예가 무술화, 체육화되었을 적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이제 와서 굳이 되돌려 보겠다는 건 그야말로 호사가나 할 짓이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지 않는 한 그럴 일 없다.
 
이 같은 사정 때문에 필자는 검도인을 만나 검법을 이야기하고, 태권도인을 만나 권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꺼린다. 체육적 사고, 고정관념,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해 제대로 가르쳐 줘도 못 받아들이고 엉뚱하게 해석하거나 괜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 때문이다.
 
같은 공놀이임에도 축구, 배구, 야구, 농구, 럭비, 골프가 전혀 공통점이 없는 것은 그것들이 체육이기 때문이다. 같은 점은 서로 피해야 하는 것이 체육이다. 이는 무예와 반대되는 성질이다. 타 무예인(실은 체육인)들끼리 만나면 서로 대화가 안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허나 진짜 무인을 만나면 백년지기보다 더 반갑다. 생각 이전에 몸이 먼저 알아차린다. 하여 절로 배우고 싶고 가르쳐 주고 싶어진다.
 
세계 유일하게 남아 있는 국가가 만든 종합병장무예
 
어쨌든 십팔기는 나라의 무예, 조선의 국기였다. 대한민국 국가의 자산이다. 어느 개인이나 단체의 전유물이 아니고, 또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비록 해범 선생에 의해 전승 재현되어 현재 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가 보급하고 있지만, 십팔기인들만 익히라는 법은 없다. 그럴 생각이었으면 애당초 책도 펴내지 않았다.
 
한국인은 물론 심지어 세계인들까지 함께 익히고 보전해야 할 의무와 가치가 있는 실전무예다. 왜냐하면 십팔기는 동양 삼국 고대병장무예의 정화이자 세계 유일하게 남아 있는 국가가 만든 종합병장무예이기 때문이다. 중국무술처럼 민간에서 흘러온 호신술이 아니다.
 
필자가 ‘전통무예’란 용어를 퍼뜨린 지 25년이 지났다. 현재 십팔기 외의 거의 모든 무예(호신술이든 체육이든)는 기실 그 연원이 불명확하거나, 일본 식민무도 내지는 중국 호신무술이다. 족보(연원)를 자꾸 캐들어 가면 끝없이 허황된 이야기를 꾸며대거나 숨겨야 한다. 피곤하게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해서 차라리 십팔기 중 자신의 기예와 비슷하거나 소화해낼 수 있는 기예를 익혀 지금이라도 떳떳하게 그 연원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태권도가 <권법>을, 검도가 십팔기 중 몇 개의 검법을, 합기도가 <권법>과 <곤봉>을, 기타 기예들도 각 무술계, 무도계, 체육계가 소화해 낼 수 있는 만큼은 가져가서 익혔으면 한다. 이미 일부 해동검도계에서는 십팔기의 여러 검법을 익히고 있다. 또 십팔기를 책과 영상을 통해 통째로 배워 유사단체를 만든 검도인들도 있다. 부끄러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오히려 장한 일이다.
 
십팔기는 동양무예의 공통분모
 
미국의 어느 태권도 관장은 수년째 직접 한국에서 십팔기를 배워가 보급하고 있는데, 영업에 상당히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한국의 전통무예를 가르친다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어 보람차다고 한다. 체육무도, 호신무술로 만족한다면 굳이 그럴 필요 없겠으나, 명색이 ‘무예인’으로 살아가겠다면 진짜 무예 한두 가지는 익혀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면 체육무도나 호신무술과는 다른 ‘무예(武藝)’의 참맛을 알게 될 것이다.
 
현대전도 소총으로만 싸우는 것이 아니다. 대포, 미사일 등등 끊임없이 무기와 전술이 개발되고 있고, 비록 적의 것이라 해도 우수한 것, 내게는 없는 것을 받아들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게 무예정신이고 과학 하는 정신이다. 그런 자세를 가져야 진정한 무예인이라 하겠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 실전에서 나온 무예이니 십팔기 속에는 헛된 기예 하나도 없다. 당연히 헛소리할 필요도 없다.
 
십팔기는 조선의 국기였으니 그걸 익힌다고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다. 오히려 이 땅의 무도인, 무술인, 무예인이, 심지어 체육인이라 해도 십팔반기예 중 어느 한 가지도 할 줄 모른다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 하겠다. 자신의 문화도 모르면서 남의 것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과 제 것을 알고 남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과는 엄청 다른 문제다.
 
이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가지느냐 못 가지느냐의 문제다. 조선국기 십팔기는 내것 네것이 아닌 ‘우리것’이자 ‘대한민국것’이다. 조상들이 피땀으로 물려준 것을 애써 모른 척할 이유 없겠다. 그리하면 한국무예계가 ‘무예’란 용어를 떳떳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갖게 된다. 무예십팔기는 바로 그 공통분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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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6/23 [00:15]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어이없네 13/06/28 [02:05]
아실만한 분이 이런 글을 쓰는게 부끄럽지 않나요? 한국 무술단체들이 유독 자기 정체성을 속이고 전통이라고 참칭하는게 심한데 십팔기도 마찬가지군요 수정 삭제
대구 13/08/27 [15:28]
한국무예신문을 보면 신성대씨와 관련된 십팔기가 자주나온다. 신성대씨는 십팔기 협회 회장님이 혹시 아니신지요. 무덕이라는 책자도 신성대씨가 편찬한 책인데 공지창에 올렸다는 것은 한국무예신문과 십팔기가 어떤관계가 있는지 의문점이 대두되네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성대씨, 주필을 하실려면 무예에 대해서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필에 대해서 올바르게 개념 정리가 되었으면합니다. 당신은 십팔기 소속이 아닌가요. 그리고 무덕에 대해서 책을 읽어 보았는데 무술은 조금만 했던 사람이라면 그 내용들은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책을 읽으면서 시간과 돈이 다소 아까웠습니다. 한국무예신문에서는 무예에 관련된 서적을 편찬하면 공지창에 띄어 주는지요. 그리고 대구에 충의무예원에서도 십팔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단체가 올바르게 복원을 했나요. 충의무예원에서 정말로 복원을 잘했던데... 수정 삭제
무인 13/12/26 [04:26]
제가 알기로는 충의무예원 관장이 십팔기 도장에서 배웠는데, 후에 따로 협회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충의무예원은 십팔기 협회 뿐만 아닐라 해동검도 협회도 하는걸 보면 그 사람은 돈이 되면 무엇이던지 하는 사람 같습니다.아무래도 십팔기를 가르친 스승과 사이가(?) 좋치 않았나 보네요 ㅎㅎ 충의문 관장 좋지 않은 소문이 많은 사람이죠 ㅎㅎ 수정 삭제
쥬스 13/12/28 [16:27]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십팔기만이 진정한 무술이고 전통무예라는 거군요. 제가 알기론 십팔기보존회의 무술은 김광석 선생님에서부터 비롯되었고, 김광석 선생님은 대한쿵후협회 황주환 회장의 제자, 최상철 사범에게 배운 걸로 알고 있는데 말이죠. 언제부터 십팔기보존회의 무술이 전통무술로 둔갑했는지 모를 일이군요. 수정 삭제
혹세무민 십팔기 14/04/08 [09:47]
중국무술하던 사람이 책보고 복원하면 그것이 한국무예인가요, 중국무예인가요. 김광석선생이 서대문에서 쿵후도장하던 사람아닌가요? 한국무예로 나아간다면 당당히 복원무예임을 ?히고 연구하는 것은 어떨까요? 쿵후복입고 무예도보통지복원했다고 시범하던분들이시지요. 허허 하다못해 80년대 사진한장없군요.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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