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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서 41년 동안 한국무예 보급 앞장
미국 휴스톤 태권도 사범 김수, 제자 7만명 배출 유단자만 천명
 
서민성 기자 기사입력  2011/04/23 [07:16]
▲ 김수 사범     © 한국무예신문
625동란 이후, 미국에 혈혈단신 건너 지난 40여 년 동안 태권도, 합기도, 택견 등을 지도하며 제자 7만여 명(유단자 천여 명 포함)을 배출하는 등 한국무예 해외보급에 앞장서 온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있다. 그의 이름은 김수(70, 본명 김병수). 성실하고 도덕적인 무인(武人)으로 미국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며 성공적인 삶을 펼치고 있는 그를 만나보았다.
 
1. 무예입문 계기와 스승은 누구였는지요.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저는 초등학교 5년이었습니다. 피난(避難) 중 온가족이 동서남북으로 헤어져 고생스런 피난살이와 더불어 경남 마산의 무학초등학교에 다니며 난생처음 신문팔이를 하게 됐습니다. 신문을 받아 북마산(北馬山)에서 신마산(新馬山)까지 철길로 뛰어 달리며 팔았습니다. 어느 날인가 신문을 한 장도 팔지 못하고 다시 철길로 되돌아오던 중 어떤 아저씨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웃통을 벗은 채 연봉대를 주먹으로 치며 정권단련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됐는데 그분이 제게 기마자세 찌르기를 처음으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분의 성(姓)이 원 씨였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1952년 서울 올라온 즉시 중앙청 앞에 있던 체신부청사의 창무관(彰武館) 본관에서 이남석 관장님, 홍정표 사범, 박철희 사범님 등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하교 후 매일 1시간 30분가량 수련을 했습니다. 그 당시는 스포츠란 개념이 없었고 오로지 무술 그 자체였습니다.
제게 있어 대스승님(1세대)은 윤병인 선생님(중국 장춘서 태어나 중국권법 수련했고, 일본에  유학하여 도야마 강겐 대사범님과 교류 및 수도관 가라테를 수업)이시며, 이남석 박철희 홍정표 스승님으로부터 공수도를, 한진희(한진영) 대사범님으로부터 유도를, 성무관의 지한재 관장님으로부터 합기도를 배웠습니다. 아울러 1960년대에 미국의 블랙벨트지에 택견을 소개하기 위해 송덕기 선생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검도 검성이신 호익룡 선생의 저서를 탐독하며 그분과의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2. 그 당시 수련은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요.
당시는 전쟁 중이었습니다. 도복은 사제(私製)로 만들어 입던지, 아니면 오래된 유도복을 입었고 마크 등의 표식은 따로 없었습니다. 당시 아무런 유흥이나 소일거리가 없던 때라 주로 도장에 다녔습니다. 초급(初級)과 중급(中級)이 함께 수련을 했으며, 같은 반에 7~80명이 동시에 수련을 했습니다. 늦은 시간과 아침반에는 주로 성인들이 많았습니다. 하루에 100여명이 거의 매일 입관을 했고, 또 거의 매일 7~80명이 그만두는 형국이었습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가르치는 교사, 사범들의 지도 방법이 제멋대로였던 거 같았습니다. 초단(初段), 이단(二段) 사범들이 무얼 알았겠습니까?  당시에 최고 단은 3단이었습니다.
해방 후 귀국한, 주로 일본에서 최고 4단 (윤병인과 윤희병(윤쾌병) 등) 내지 3단을 보유한 대학출신 인텔리들이 제1세대 사범들이었습니다. 2세대는 1945년 이후부터 1950년 전쟁 발발까지 3~4년 하신 분들이 2세대로 봅니다. 저는 3세대정도로 여깁니다.
 
▲ 김수 사범 제자들이 야외에서 태권도 수련을 하고 있다     © 한국무예신문

3. 미국에 어떻게 가게 되었는지요.
무술이 나의 생애에 획기적인 역할을 했기에 중학시절부터 저 같은 불우한 아이들을 돕고자 사범이 되려고 결심했습니다. 서울 중앙중ㆍ고에서 클럽, 외국어 대학에서 권법클럽, 육군8사단에서의 지도 등 졸업 후에, 기성 도장 외에 최초로 1964년에 서울 효자동 중앙청 옆에 한국태권아카데미를 개관한 것을 비롯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둔 세계최초의 무술 종합지에 한국 통신기자로 임명돼, 한국무술을 최초로 해외에 소개한 바 있습니다. 소개된 내용 중에는 경찰무도대회, 전국체전, 한국씨름, 대한유도회, 대명유도학교, 검도, 태권도 역사와 대회, 한국군 월남 태권도 활약상, 합기도, 택견 등 한국 무예의 다양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1964년도에 미국 롱비치에서 개최된 국제가라테대회에 시범을 초청받았는데 마지막 순간에 비자발급이 안 돼 시범을 못한 기억이 납니다. 그 대회에서 브루스 리(이소룡)도 시범을 했습니다. 저는 못 갔으나 그날 프로그램책자에 저의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인 1968년도에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텍사스 행(行)을 택했습니다.
 
4. 미국 정착 과정은 어땠는지요.
일부러 아무도 없는, 아니 모든 사람들이 피하는 곳을 택했습니다. 한국을 떠날 때 간신히 방문 비자를 황송하게 받고 단돈 100달러를 조흥은행에서 환불을 받았습니다. 정부에서 허락한 금액은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영주권 없이, 더구나 연로(年老)하신 어머님, 처와 2살 아들을 한국에 놓고 아무런 기약 없이 텍사스로 행했습니다. 단지 무술에서 얻은 신념을 전(全) 재산으로 하고 왔으니 고생과 할 말은 너무 많으나, 이루 표현하기가 힘듭니다.
 
5. 미국에서 도장으로 성공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재까지 휴스턴에 온지 41년간에 약 70,000여명을 가르쳤고 1,000여명의 유단자를 배출했습니다. 그중 35~41년간 함께 수련한 사범만도30여명이 됩니다.  그저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당당하게 살고 있습니다. 제게는 화려한 집과 고급 승용차도 없습니다. 편히 잠 잘 자고, 일주일에 골프 2번 칠 수 있는 만족이 있습니다.
 
6. 특별한 도장 운영방식이 있었는지요.
특별한 경영방식은 없습니다. 그저 열심히 그리고 수련생들의 꿈을 실현도록 많은 연설과 과학적 지도방법, 수천 가지의 기술을 배제하고 원리강좌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저의 경우, 많은 돈을 벌려고 애쓰질 않았으니 편했습니다. 많은 한국 사범들이 도장운영을 너무 기업화해 돈을 많이 버는 사람도 있으나 그 부작용 또한 큽니다. 그런 분들을 일컬어 어글리(ugly) 한국무술 장사꾼이라고 비난을 하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다.
 
7. 한국 무예에 대한 미국인들의 시각은 어떤지요.
한국 무예에 대해 좋은 시각도 많으나,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評)이 무술 전문가들에 입에 오르내립니다. 이유가 뭔가 하면 거짓말을 일삼는가하면, 정체불명의 사이비무술보급, 그리고 무술을 돈벌이도구와 출세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등입니다. 특히 몇몇의 종교인들에 의해 무술을 특정 종교의 확산 수단으로 삼는 데서 많은 미국인들이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 김수 사범과 그의 제자들     © 한국무예신문

8. 현재 대학에서 강의를 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휴스턴 주립대학교 본교와 롸이스 사립대학교에서 체육 필수과목으로 일주일에 2회 출강하고 있습니다.
 
9. 한국에 들어올 계획은 없는지요.
금년 7월경에 잠시 약 2주간 여행할 예정이다. 현재 Semi Retired(준 은퇴)한 상태이기 때문에 한국이나 러시아 영주하며 59년간 수련한 정수 지도 방법, 자연류(自然流) 지도법을 전수하고 싶습니다.
 
10. 무예인들의 미국진출에 대한 조언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자기 확신 등의 신념을 가지고 미국으로 진출하셔야 합니다. 그렇다고 미국진출이 모두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에 진출하셔서 주의해야 할 것이 여럿 있지만 대체적으로 사업적으로 무술을 이용하려는 태도는 버려야 할 것입니다. 또한 자기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를 가질 것과 자신이 한국인이니까 한국무예에 관해 무조건 자신이 우월하다는 태도는 반드시 버려야 할 것입니다. 의외로 3~40년 이상 수련한 미국인 고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한 한국 것이 최고라며 일본이나 중국 무술을 비하하는 경솔한 행동을 삼가야 합니다. 자신의 것이 중요하다면 상대방 것도 중요한 법이니까요. 아울러 상대방을 존경하는 데 있어 진지함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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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4/23 [07:16]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김병수총재님에게 경의를 표하며.. 최익진 11/07/16 [07:37]
孑孑 單身으로,일쯕이 언어와 문화에 장벽을 허물며, 모든 악 조건에서도, 자연류계의 풍부한 철학 그리고 무도의 숭고한 정신과 함께,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향하여 뿌리를 내려 가고있는 김병수 총재의 千辛萬苦의 헌신이야 말로 오늘날의 한류문화 전달에 본보기이며, 아울러 시대에 앞장섰던 분이라고 믿어 의심치않는다. 자연류의 무도는, 무도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꿈이기도 할것이다. 이분들과 함께 김총재의 가르침은 무도를 배우는 사람들에게 좋은 유산이 됄수있다고 본며, 그 의 지난세월의 경험 그리고 오늘과 내일의 도약은 모든사람들의 희망이며 꿈일것이다.따라서 이분을 존경하고 자랑하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찬사를 함께 보내고싶다. 수정 삭제
미국서 41년..... 정삼현 11/09/30 [18:25]
세계자연류호신술 총재님의 그동안의 노고와 열정 그리고 큰성과에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총재님이 이룩하신 업적은 세계최강의 러시아,중국,일본과 국경을 같이한 한반도에 위치한 한국인의 입장에서 호신술은 호국술이며 화평술이기도합니다.총재님의 호신술은 무형문화재로서 모든한국인이 수정 삭제
석기영 12/09/24 [23:09]
성공한 사람은 반드시 다른점이 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사범들은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 모든것과 싸워 이긴 승리자들이다. 여기서 승리란 숫자적 개념의 경제적 차원의 성공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가르쳤는가를 말함이다. 저와 특별한 인연이 있던, 지금은 고인이 된 이기정 사범님, 지금도 태권도를 통한 세계속의 인물 이준구 사범님, 그외도 많은 훌륭한 애국 무예인들이 많다. 따라서 우리 젊은 무예사범들이 세계속으로 도전하길 바라고 있다. 이에 김수 사범님 역시 진정한 애국자이며 훌륭한 지도자로 평가하며,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분이다. 수정 삭제
Kim Soo 12/11/03 [17:38]
석기영 님 감사합니다. 저의 email은 gm@gmkimsoo.com 이며 전화는 010-8961-4060입니다. 연락주시면 감사 하겟읍니다. 수정 삭제
Kim Soo 14/02/19 [03:03]
상기 내용에 정정이 필요 해서 몇자 올립니다. "해방후 일본에서 (중국) 귀국한 4단" 이대목에서 본인이 확인하고 알고 잇는분은 윤병인 과 윤희병(윤쾌병) 2분입니다.이두분의 명함은 도야마 강겐의 "공수도 대보감" 1940대 후반에출판된 초판에 수록되잇음니다. 다른분들의 단은 본인이 언급하지 않앗음을 명확히 하고져 합니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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