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기지명(十八技之名)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서문의 문장에서 《무예도보통지》전서(全書)의 내용과 편서(編書)의 구성을 무시하고 여기 한 문장에서 24기로 표현한 것이 있다고 하여 십팔기(十八技) 무예를 모방하여 비전문인들을 속여서 24기 단체를 설립하고 지방문화재로 지정하려는 짓은 실로 가당치도 않는 일이다,
1. 무예의 본질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한 경과보고서에 해당하는 <병기총서:안설>은 임금에게 진상하는 글이라고 하여 흔히 진설(進說)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에는 무예 십팔기를 보전하고 계승하는 그 근본적인 정신과 무예의 본질적인 속성을 서술하고 있다.
조정(朝廷)에서 실용(實用)의 정책을 강론하고......(중략)......실용(實用)의 기물(器物)을 만들면 위국(衛國)에 무슨 염려가 있으며, 보민(保民)에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朝廷講實用之政......(중략)......作實用之器則何慮乎衛國何患乎保民也哉. 무예의 본질은 국가를 보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국가유지의 초석이 되는 것으로 칼끝만큼이나 날카롭고, 붓끝만큼이나 정교한 것이다. 대충 어느 하나의 단어가 있다고 하여 아전인수(我田引水)의 격으로 자의로 전단하여 해석할 문제가 아니며, 더구나 민족의 혼(魂)이 담겨서 겨레의 장래가 좌지우지될 수 있는 국가의 무예와 무예서적을 한 개인이나 한 단체의 호구책(糊口策)으로 삼아 어설픈 지식의 잣대로 농락하는 것이 바로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조종의 맥락을 배역하는 역적(逆賊)의 행위라는 것이다.
2. ‘기예(騎藝) 등(等) 육기(六技) 이미 앞서의 문장에서 ‘십팔기지명(十八技之名)’이라고 하여 십팔기(十八技)가 조선 무예의 명칭임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다음에 나오는 문장은 정조 임금이 무예를 한 권의 책으로 통편(通編)하여 정리하는 작업을 열거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짐은 무의식(武儀式)과 전형(典刑)을 이어가도록 힘쓰고 또 기예(騎藝) 등(等)의 육기(六技)를 다시 더하여 이십사기(二十四技)로 하였으며, 이미 명을 받고 고거(考据)하여 효습(曉習)한 사람이 이삼인(二三人)이다. 원속(原續)의 도보를 모아 합하여 의(義), 예(例), 전(箋)을 바로 잡아서 묶고, 그 원류를 해석하고 제도를 평가하여서 정하고, 명물로 하여금 예술의 묘용으로서 한 권의 책을 펴내서 그 책의 이름을 관령(管領)으로서 《무예도보통지》라고 하였다. 肆予繩武儀式典刑又以騎藝等六技復增爲二十四技已而命曉習考据者二三人裒合原續圖譜檃括義例箋釋其源流評騭於制度使名物藝術之妙用一展卷管領名其書曰武藝圖譜通志.
무의식(武儀式)은 무관들의 의식 절차와 규칙이며, 전형(典刑)은 규범이 되는 법전인데 여기에서는 조선의 무예 법전인 《무예제보》와 《무예신보》이다. 조선은 왕토(王土) 국가로서 임금의 어명으로 편찬한 ‘어제서(御製書)’는 그 자체가 법전이며 명(命)이 바로 교령(敎令)이 되어 법제화가 되었던 나라였다.《무예제보》와 《무예신보》에서 규정된 십팔기(十八技)를 무관들이 익혀야 하는 군사의식으로 이어가도록 정치를 하였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 다음에 ‘기예(騎藝) 등(等) 육기(六技)’라는 글이 나오는데 기예(騎藝)는 말을 타고 마상(馬上)에서 운용하는 기예(技藝)를 말한다. 그런데 그냥 기예육기(騎藝六技)라고 하지 않고, 등(等)의 글자를 넣어서 표현한 것은 기예(騎藝)는 기창(騎槍), 마상월도(馬上月刀), 마상쌍검(馬上雙劍), 마상편곤(馬上鞭棍)의 사기(四技)이며, 격구(擊毬)와 마상재(馬上才)는 무예가 아니고 군사오락이나 군사유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예도보통지》의 무예는 본래 22가지이며, 이 스물 두 가지는 《무예신보》에서 정리된 것이다. 《무예신보》에서도 22가지를 싣고서 그 무예의 명칭은 ‘십팔기(十八技)’라 하였으니 말을 타고 마상에서 운용하는 기예(騎藝)는 근본적인 무예, 십팔기(十八技)를 말위에서 응용하는 기예에 불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기예(騎藝) 등(等) 육기(六技)’라는 표현에서 격구(擊毬)나 마상재(馬上才)는 무예는 아니지만 하나의 군사들의 오락 기술(技術)로 치부하여 ‘육기(六技)’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뒤에 나오는 24기로 표현한 것 역시 무예의 명칭이 아니라 단순한 기술의 가짓수인 수사(數詞)에 불과한 것이다.
《무예도보통지》전서에서 명칭을 의미하는 명(名)의 글자를 넣어서 표현한 것은 서문의 ‘십팔기지명(十八技之名)’과 <병기총서> 영조 35년 조에 ‘본조무예십팔반지명(本朝武藝十八般之名)’으로 확고하게 기재되어 있지만 24기의 표현은 서문 외에도 범례에 한 번 더 나오지만 명(名)의 글자는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십팔기(十八技)’라는 한 명칭은 우리나라 역사상에서 최초로 국가에서 이름 지어진 무예의 정식 명칭이자 공식 명칭인 반면에 24기는 서적의 문서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나온 일반적으로 가짓수를 나타낸 것에 불과한 단어인 것이다.
3. 이십사목(二十四目) 24기가 단순한 수사(數詞)요, 항목을 나타낸다는 더 확실한 증거는 <병기총서:안설>에서도 나오고 있다.
지금의 무사(無事)한 날에 이르러 유용(有用)한 서적을 편성하는 것은 적(敵)에 대한 의분한 마음으로 모멸(侮蔑)을 막는데 가히 실제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에 무예신구보(武藝新舊譜) 24항목 모두를 경들에게 사여하여 경들이 자세히 살펴서 닦아 엮은 것에 《무예도보통지》라는 이름을 내리노라. 及今無事之日編成有用之書則敵愾禦侮可期實效玆以武藝新舊譜二十四目盡畀爾等看詳編摩賜名武藝圖譜通志.
▲ 《어제무예도보통지》병기총서:안설 © 한국무예신문 | |
말을 타고 병기를 운용하는 기예는 오랜 옛날부터 있어왔다. 우리 겨레를 흔히 기마민족(騎馬民族)이라 할 때의 의미는 말을 단순히 교통의 수단으로만 사용하여 온 것이 아니라 전쟁의 도구로 이용하여 중원의 벌판을 내달리며 이민족(異民族)의 침략을 극복하여 왔다는 의미이다.
《무예제보》가 있기 전에도 기마전술은 있었고, 《무예신보》의 편찬을 명하기 전에도 기병(騎兵)은 있었지만 정조 임금의 생부인 소조(小朝)가 기창(騎槍), 마상월도(馬上月刀), 마상쌍검(馬上雙劍), 마상편곤(馬上鞭棍)의 네 가지로 정리하여 창류(槍類), 대도류(大刀類), 단병류(短兵類), 기병류(奇兵類)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24기라는 단체에서 주장하는 《무예신보》에서 십팔기가 형성되고 《무예도보통지》에서 마상의 기예가 첨가 발전되었다는 것은 무예에 대하여 전혀 문외한과 다름이 없는 무지하기 짝이 없는 말인 것이다. 위의 문장에서도 나타낸 바와 같이 ‘이십사목(二十四目)’이라 밝히고 있듯이 24기는 무예의 명칭이 아니라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무예 및 기타 종목의 가짓수, 즉 항목수를 나타내는 것이다.
무예 십팔기는 예(禮)와 덕(德)을 밝혀서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하는 무덕(武德)의 함양으로부터 교육이 시작된다. 엄격한 스승의 슬하에서 우리 무예의 교육을 체계대로 배우지 못하였고, 글도 읽을 줄 모르는 무식한 자들이 전통무예인이라고 국가의 공무원을 속여서 선현들의 무예도(武藝道)를 어지럽혔으니 그 죄가 크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이 어리석은 인간도 사랑함에 다만 깊은 반성과 참회, 그리고 무예계의 선배 스승들께 스스로 용서를 구하는 길은 열려 있을 것이다.
《무예신보》에서 ‘십팔기(十八技)’가 완성되어 무예 십팔기와 십팔기를 응용하는 기예(騎藝) 네 가지를 함께 실어 22가지를 하였다는 것은 《무예도보통지》의 편서(編書)한 구성의 기호를 살펴보면 자세히 알 수 있는데 뒤에서 논한다.
그러면 어찌하여 무예가 아닌 군사오락인 격구와 마상재가 《무예도보통지》에 실렸는가 하면 이 둘은 군사들의 체력을 강화하는 군사체육의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말 타기에 능할 수 있어 군사훈련과 유사한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정조 임금은 만사에 주도면밀하신 분으로 생부인 소조(小朝)가 이룩해 놓은 십팔기(十八技)의 유업을 더욱더 계승하여 완벽성을 기하려고 《무예도보통지》가 편찬되었다고 앞서 지적하였다. 격구와 마상재의 증설(增說)과 안설(案說)에서도 이 둘은 오락, 유희임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이 두 가지 군사오락만이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할 때 더 첨가된 것이다.
4. 다시 서문으로 상기한 서문에서 ‘원속(原續)의 도보(圖譜)’란 원(原)은 《무예제보》이며, 속(續)은 《무예신보》를 가리킨다. 이 둘의 무예 법전을 모아서 무예서를 편찬하는 의의(義意)와 법식(法式), 그리고 문서의 해설을 정갈하게 바루며 하나하나의 무예에 대하여 그 원천적인 유래를 살펴보고 그 실기와 병기를 지금의 제도에 맞추며 조종으로부터 내려오는 두 서적의 명작들을 예술적인 이용으로 살려서 책을 만들어 국가 기관의 이름으로 《무예도보통지》라고 책이름을 부여하였다는 말이다.
이러한 내용은 정조 임금이 규장각과 장용영의 신하들에게 명하여 ‘십팔기(十八技)’의 역사적인 유래와 그 병장무기에 대하여 더 충실하게 정리한 《무예도보통지》의 편서작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문화의 세기를 맞이하여 자국의 축척된 문화로서 전쟁을 벌이는 무한경쟁의 시대로 돌입하였다. 수천 년 겨레 역사의 변천과정 속에서 우리 무예의 정신과 그 실기가 ‘십팔기(十八技)’로 응축되었고, 선현들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전통의 무예 문화인 십팔기는 우리나라의 다양한 문화 중에서 핵(核)에 해당하는 정신문화의 보고이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경건한 마음으로 시대에 맞게 다시 갈고 닦아서 문화 전쟁의 예리한 병기로 사용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순한 무리들이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삼아 선명해야할 무예의 정신과 실기를 기만하여 우리의 병기를 좀먹고 있는 현실은 반드시 국가적인 차원에서 바로 잡혀야 할 것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