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주위에는 태권도는 물론 각종 무(武)를 수련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무예인이라 불리는 것이 맞나?”, 아니면 “무도인이라 불리는 것이 맞나?” 에 대해서 제법 논쟁이 일어나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한국 무인들의 발전을 위해서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라 생각한다.
허나,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무(武)와 관련된 사람들이 나서서 하는 논쟁의 방식이란! “목청 큰 놈이 이기는 거여” 라는 우격다짐 식의 심히 낯부끄러운 논쟁은 이제 그만 멈췄으면 어떨까 싶다. 특히나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한 험한 욕을 입으로 내뱉고 글로 써대며 상대방을 비난하는 식의 비열한 행위는 이제 더 이상 우리 무인들 사이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사실 이런 비이성적이며 광기어린 방법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은 결코 어떠한 상황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것으로 스스로의 덕(德)을 잃어 자신의 복덕(福德)을 깎아 내림은 물론 결국에는 자신의 인격과 품성을 해쳐 자신의 편안한 삶과 건강에도 해가 되는 일이다. 이러한 분들은 노자가 말한 것처럼 유연함은 곧 생명임을 깨닫고 자신의 뒤틀린 심성을 순화할 수 있도록 종교를 가지든 아니면 유학(儒學)이나 고전을 읽는 방법이든 꾸준히 자신의 굴곡진 마음을 정화 할 수 있는 심신수양에 임하길 권하고 싶다.
한 가지 논쟁의 대상을 가지고 자기의 주장을 고집하는 것은 좋으나, 상대방이 주장하는 논조 또한 긍정적인 자세로 깊이 새겨 두는 것 또한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여 진다. 물론 논쟁의 주장은 반드시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근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지극히 합리적이며 타당한 귀납과 연역의 추리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말이다.
어찌됐든, 무(武)와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서 무와 관련된 어떠한 논쟁도 결국에는 우리 무인들 모두의 발전을 위한 일이기에 대단히 좋은 일이라 말하고 싶다.
무예인이라 해야 할까? 무도인이라 해야 할까? 우리나라는 일제시대 이전에는 역사 문헌상 단 한 차례도 도(道)라고 하는 글자를 무(武)와 연결해서 사용한 적이 없었으며, “무예도보통지”에 나오는 한국 전통 무술의 명칭은 전부 무예라 칭(稱)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이유를 들어 일부에서는 전통 무술을 수련하는 우리 무인들 모두는 당연히 무예인(武藝人)이라 칭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우리는 역사적으로 단 한 차례도 무(武)자와 도(道)자를 같이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예인(武藝人)이라 불려야 하는 것일까?
예(藝)자의 기원을 살펴보면 동사와 명사로 사용되어졌음을 알 수 있다. 동사로는 곡식이나 나무 등을 “심다”라는 뜻으로 쓰였으며, 명사로는 “기능, 재능”의 뜻으로 쓰였다. 중국의 주나라 때 관원이 되고자 하는 자들은 반드시 육예(六藝)-[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 라고 하는 필수 과목을 공부 해야만 했다. 즉, 여섯 가지의 기술을 연마한 사람만이 관원이 될 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유학의 큰 스승인 공자는 이 ‘육예’를 20세에 완전히 마스터하고 직접 제자들을 가리키는 사설 선생님이 되었다.
무(武)라고 하는 글자는 창을 들고 서있는 자세를 형상화해서 만들어낸 것으로 공격과 방어의 자세가 표현된 글자라 할 수 있다. 이 무(武)자가 기능과 재능의 뜻을 가진 예(藝)자와 합쳐 무예(武藝)자가 되면 “공격과 방어의 기능과 재능”이란 뜻이 된다. 여기에 사람 인(人)자를 하나 더 덧붙이게 되면 무예인(武藝人)이 되는데 이는 “공격과 방어의 기능과 재능을 가진 자” 라는 뜻이 된다.
도(道)자의 원래 뜻은 길 만을 나타내는 단순한 뜻으로 쓰였다. 그러던 것이 중국의 은나라 때부터 사람의 선한 심성을 나타내는 덕(德)자의 뜻을 포함해 우주의 이치를 대표하는 글자로 그 뜻이 한층 심오해졌다. 이러던 것이 당나라 때는 이 도(道)자가 행정 구역을 나타내는 뜻으로 변형 되어 쓰여 졌다. 이런 영향으로 우리나라는 지금까지도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등의 행정구획 단위로 도(道)자가 쓰여 지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도(道)자는 공자와 맹자가 추종한 학문과 만나 도학(道學)이라는 명칭으로도 쓰여 졌다. 이 도학의 근본은 인간의 윤리도덕과 관련이 있는 학문으로 인간을 선하게 만들고자하는 인간학이라 할 수 있다.
이 도학은 도교나 불교가 추구하는 내세를 쫓는 종교가 아니라, 현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상생활 속에서 서로의 실질적인 삶이 보다 더 풍요롭고 편안해 질 수 있도록 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간들이 바른 품성을 지닐 수 있도록 가르치고 배양하는 학문이다.
이 도학은 유학을 말하는 것으로 조선에서 발전한 성리학은 이 유학의 한 갈래에 해당한다. 한국 도학의 계보는 고려 때의 정몽주(1337-1392)와 김숙자(1389-1456)를 거쳐 조선 때의 김종직(1431-1492), 김굉필(1454-1504) 그리고 조선 도학의 큰 스승이라 일컬어지는 조광조(1482-1519)로 이어지게 된다. 조광조의 도학 사상은 조선 유학의 양대 대들보라 할 수 있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학문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어 구한말까지 많은 유학자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도학은 한 마디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만 하는 바른 도리와 지혜를 깨우치게 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조선의 백성들은 이 도학을 통해서 심성을 다스리는 도덕교육을 받아왔음은 물론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터득했던 것이다. 이러하니 우리 민족과 이 도(道)자는 결코 떼어내려 해도 떼어 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도(道)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었음에도 왜! 단 한 차례도 무도(武道)라고 하는 “공격과 방어의 행위를 통해 인간의 도리를 깨우침”이라는 좀 더 고차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명칭이 쓰여 지지 않고 단순히 “공격과 방어의 기능과 기술”이라는 형이하적인 뜻인 무예(武藝)로 쓰여 “공격과 방어의 기능과 기술을 가진 자”라는 어찌 보면 조금은 천한 듯한 무예인으로 불리게 만들어 놓은 것일까? 무도인(武道人)이라고 하는 “공격과 방어의 기술 수련을 통해 인간 삶의 도리와 지혜를 깨우친 자”라는 귀한 뜻이 있는데도 말이다.
고려와 조선은 무인이 개국한 나라였기에 무인들은 늘 경계와 감시의 대상이었다. 더욱이 중국의 명나라를 거쳐 청조 때에는 조선에 대한 감시가 점점 심해지면서 조정에서는 대놓고 무인들을 양성할 수가 없어 한마디로 문인들이 장악한 나라였기에 무인들은 늘 문인들의 밑에서 그들의 비위나 맞추며 살아가야 하는 멸시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러하던 것이 나중에서 나라 전체가 무인들을 무식하고 무지하다 무시하는 “무인 멸시 문화”로 흘러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선에서 과연 누가 감히 나서서 무도(武道)라고 하는 “공격과 방어의 수련 행위를 통해서 인간 삶의 도리와 지혜를 깨우친다” 라고 하는 고차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명칭이 쓰여 지도록 했을까!
이와는 반대로 일본은 무인들이 정권을 장악한 나라였다. 약 700년간 무인들이 다스린 일본에서 무인들의 위상이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일본의 무인들은 무인이면서 정치가, 문학가, 경제가, 교육자가 되도록 양성되어졌다. 이렇듯 일생을 거쳐 터득하게 되는 상당히 해박한 지식의 요구는 무(武)의 수련 과정 중에 진정한 도(道)의 깨달음을 얻는데도 상당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중국 고대 주나라 때 지식인들과 관원들은 활쏘기를 통해서 도덕수양을 쌓아 서로의 인성과 품성의 깊이를 가늠했듯이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본은 무인들의 존엄과 가치를 높이는 일에는 그 어떠한 방해도 없었기에 무도인(武道人)이란 고차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귀한 단어를 사용해 왔던 것이란 추측이 간다.
중국은 무인들을 가리켜 무예인 보다는 무술인이라 불러왔던 것 같다. 허나 요즘에는 다들 무도인이라 부르는 추세며 전문 무술 서적에도 무도인이라 지칭하는 지식인들이 차츰 늘어나고 있는 추세에 놓여 있다.
폐일언하고, 우주의 모든 구체성을 띤 물체나 추상적인 정신과 사상의 개념들 그리고 학문의 이론 등등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사장(死藏)되어 지거나, 멸(滅)해 지거나, 발전되어지거나 하지 않는 것이 없듯이 우리 무인들에 대한 지칭도 그 시대가 추구하는 이상에 맞게 발맞춰 나가는 것은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