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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도(武士道)란 무엇인가?
검도(劍道)와 일본 정신
 
신성대 논설위원(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기사입력  2012/02/13 [08:12]
일본의 무사(武士)는 나라(奈良)시대 말기, 대략 770년 전후에 나타났다고 한다. 당시 고닌(光仁) 천황이 쇠락하고, 귀족 세력인 영주(領主)들이 득세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부하와 가솔들을 무장하게 하는데, 이들을 '무사(武士)'라 칭하였다. 하지만 그 추정 시기가 분명치 않아 학자에 따라 늦게는 11세기 초로 주장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신분이 낮은 신하들과 노예들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오직 자기 주인에게만 복종하는 특수한 집단이었다. 이후 영주들의 권력 투쟁이 계속되고 격렬해지자 이들의 신분도 점차 상승하여 주요한 사회 집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192년, 관동 지방의 무사 집단이 가마쿠라(鎌倉)에서 군사 권력 기구인 바쿠후(幕府)를 설립하여 중앙정권을 통제하는 세력으로 컸다. 그리하여 1603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법령으로 무사의 신분을 고정시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우두머리로 하였다. 무사가 일본 사회의 주요한 통치 계층이 된 것이다.
 
무사도(武士道)의 탄생
 
▲ 100년전의 사무라이 모습     © 한국무예신문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 1862년생. 일본 다이쇼(大正)시대의 대표적인 사상가이자 교육자. 일본의 메이지 헌법을 만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함께 지폐에 초상화가 실렸던 인물이다. 개화기의 선각자로서 그의 경력을 살펴보면 지폐에 실릴 만큼 큰 업적을 이룬 것 같지는 않으며, 일본 국민들에게도 그다지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가 일본을 서양에 알리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일본과 서양 문화와의 교류에 힘썼는데, 그 가운데서도 1899년 서양 사람들에게 일본 문화를 알리기 위하여 영어로 쓴 《Bushido! The Spirit of Japan》을 통해 국제적으로 큰 명성을 얻었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서양인 부인과 그가 만난 여러 서양학자들로부터 일본은 왜 학교에서 종교 교육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나서부터였다고 한다. 아마 그 외에도 일본을 동양의 한 미개한 나라로 보았던 서양인들로부터 별로 이렇다 하고 내세울 것 없는 일본 문화에 대한 질문과 함께 멸시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고민 끝에 그는 종교 대신 봉건시대의 무사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일본인들의 도덕관념을 알리기로 한다. 서양 정신의 모태인 기사도(騎士道)를 빌려 무사도(武士道)를 그려낸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판 젠틀맨십을 만들어 낸 것이다.
 
서양의 상층 문화인 기사도와 같은 무사 문화가 우리 일본에도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유럽의 역사나 문학에서 예를 많이 들었다. 심지어 사무라이는 여성을 배려할 줄 안다고까지 하는 등, 다분히 서양인들을 의식하며 글을 썼다. 그리하여 그 책을 읽은 서양인들의 콧대를 일시에 꺾어 버리고, 오히려 동경하게 만들었다. 문명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신사도의 뿌리인 기사도와 같은, 오히려 훨씬 엄격하고 숭고하기까지 한 무사도라는 문화가 시퍼렇게 살아 있으니 이제 더 이상 일본 문화를 해적 문화라고 우습게보지 말라는 것이다.
 
무사도(武士道). 일본 정신의 뿌리. 그가 쓴 이 책 한 권으로 그동안 미개한 섬나라로 여겨지던 일본을 서구 열강과 동급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일본 문화의 정형을 만들어 냈다. 그는 이 책에서 일본의 무사(武士)들이 지켜온 덕목을 나열하며 극도로 미화시키고 있다. 그들의 정신이 무사도이며, 그것이 곧 '야마토 무사시(大和魂)'라는 논지를 펴고 있다.
 
무사 문화의 형성 배경
 
그러면 봉건시대의 유산인 무사 계급이 어떻게 해서 일본 근대화의 중심에 있게 된 것일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은 일본 역사 발전이 그만큼 뒤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인들은 항상 무사도를 서양 중세의 기사도와 흡사하다며 서로 비교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해서 언제나 변방이면서 야만 상태일 수밖에 없는 아시아 역사에서 벗어나 선진 유럽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유사하다는 것이 사실 역사적으로는 오히려 중국 전국시대 이전, 문무(文武)가 분리되기 이전의 사(士) 계층과 닮아 있다. 또한 한국의 고려시대 무신 정권 시기와 비슷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를 통일하기 이전까지 일본은 수십 개의 영지로 쪼개져 끊임없이 서로 다투었다. 지형적으로도 일본은 대부분 산과 골짜기로 이루어져 있어서 예로부터 백성들의 이동이 쉽지 않았다. 거기에다 각 영주들끼리 줄곧 다투다 보니 태어난 곳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가거나 도피해서 산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따라서 국가적인 개념보다는 각 영지의 소단위로 살아가게 되어 계층간의 구조도 매우 단순할 수밖에 없었다. 맨 위에는 우두머리인 영주(領主)가 있고, 그 밑에는 무사(武士),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일하는 주민(농민)이다. 국가 단위가 아니므로 무사를 군(軍)이라 부르기도 마땅찮았다. 그러니까 모두가 사병(私兵)인 셈이다.
 
이렇게 단순하다 보니 무슨 법이니 절차니 하는 것이 그다지 필요치 않았다. 천황은 있으나마나 하였기에 설령 국법이 있다 해도 지켜질 리 만무하고, 오로지 무력만이 영주 자신의 가문과 영지를 지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영지를 관리하는 문사(文士)보다는 당장 나가서 싸워 줄 무사(武士)가 더 필요했다. 주민들도 자신들의 영주를 잃으면 이웃 영지에 복속되어 핍박을 받게 되니 무사들과 함께 전쟁터에 나가 목숨 걸고 싸우는 수밖에 없다. 중국이나 조선의 과거시험 제도와 같이 중앙의 벼슬길로 나아갈 수 있는 길도 없었다. 오로지 전공을 세우는 것만이 신분을 상승시킬 수가 있었다.
 
이처럼 국가 대신 좁고 폐쇄적인, 그리고 단순한 소단위의 영지에서 살다 보니 주민들의 선택 범위가 지극히 좁다. 무사든 평민이든 규모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모두 영주의 손바닥 안에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들의 영주가 싫다고 다른 곳으로 넘어갈 수도 없다. 그러니 어떻게든 태어난 곳에서 자자손손 살다 죽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영주의 신임이 절대적이다. 무사든 평민이든 자신의 결백과 충성심을 항상 나타내야 한다. 조금이라도 밉보이거나 의심을 받는다면 그건 곧 죽은 목숨이요, 가족과 가문의 몰락을 의미한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이지메'를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이다.
 
통일 이전의 일본은 중앙집권 체제가 못되고, 소규모의 지연(地緣) 사회였다. 거기에서 생겨난 배타적인 관습법을 어겼을 경우에는 모두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게 된다. 결국 공동체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어느 누구도 그 사회에서 생명을 부지하기가 어려웠다. 무사 역시 공을 세우지 못하면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지 못해 버림을 받거나, 자기가 받들던 주군이 세력을 잃어 가난하게 되면 도처를 떠도는 유랑인 신세로 전락하곤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무사는 자신들의 주인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역사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독특한 무사 문화가 생겨난 것이다. 그것이 무사도이다. 또한 그들의 주인은 무사가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게 되면, 그의 가족들에게 무사 계급을 세습시키고 돌봐 줄 의무가 있다. 즉 명예와 생계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영주가 통치하는 폐쇄적인 집단 속의 무사들은 개인이라는 사회 단위가 아닌 가(家)에 예속된다. 주인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하며, 불만과 반항은 가장 큰 죄에 해당된다. 대신 절대 충성하면 주인은 '은혜(仁)'를 베푼다. 다시 무사는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대를 이어가며 충성을 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이다.
 
무사(武士)의 덕목 혹은 의무
 
견마지로(犬馬之勞). 자신의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 이 종복(從僕) 문화가 무사도의 본질로서 일본의 국민성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주인이 조폭 두목일 수도 있고, 기업주일 수도 있으며, 국가일 수도 있고, 천황일 수도 있다. 한번 주인은 영원한 주인이다. 니토베 이나조는 무사(武士)의 덕목으로 의(義), 용(勇), 인(仁), 예(禮), 성(誠), 충(忠), 할복(割服)을 꼽고, 이를 잔뜩 미화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배경으로 강압적인 주종 관계에서 생겨난 무사 계급의 별난 행동 양식을 다른 어떤 민족도 가지지 못한 미덕인 양 견강부회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의 기사와 일본의 무사는 모두 통치 계층에 속했지만 사회적 지위 면에서는 분명 차이가 있으며, 문화적 성질도 상당히 다르다.
 
오직 충(忠)을 위한 신(信), 충을 위한 의(義), 충을 위한 용(勇), 충을 위한 성(誠), 충을 위한 할(割),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충(忠)의 덕(德)이다. 즉 충신(忠信), 충의(忠意), 충용(忠勇), 충성(忠誠), 충절(忠節)인 것이다. 그 주인에게 자신의 충심과 결백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 손가락질 받으면 모든 것이 끝장인 사회, 그것이 곧 일본 사회이다. 주인에게 버림받는 것은 곧 죽음이다. 가신(家臣)된 자가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 할복을 해서라도 무사로서의 신분과 명예를 지키지 않고는 더 이상 그 사회에서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주인을 위한 이 '오직'이라는 변함없는 단심(丹心)이 곧 일장기(日章旗)가 상징하는 '도(道)' 아닌가? 수직적인 주종 관계의 덕목이다. 허나 충(忠)은 의무이지 덕(德)이 될 수 없다. 결코 인간관계에서 보편적으로 추구되어야 할 도덕규범은 아니다.
 
일본 민족의 이중성
 
▲ 자료사진. 도쿠카와 이에야스    © 한국무예신문
무사도, 혹은 무사 정신을 간단히 말하자면 '목숨을 거는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기지 못하면 죽는 것'이 그들의 행동 양식이다. 지극히 단순하고 원시적인 기질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때나 목숨을 바치지는 않는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주인을 위해, 주인이 보는 데서 죽어 보상을 받기를 바랐다. 무술과 용맹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장소를 중시하였다. 만약 보는 사람이 없다면 목숨을 다해 죽어도 개죽음이나 마찬가지이다. 허나 누군가가 보고 있다면 서로 앞다투어 무술과 용맹을 과시해야 했다. 그때 죽으면 자손대대로 이름을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유가 사상과 선종은 무사 정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의예성(仁義禮誠)을 신조로 삼고, 개인성은 극도로 절제시켜 거의 말살해 버린다. 선(禪)의 경지에까지 이를 정도로 자기를 버려야 했다. 그리하여 무(武)로써 도(道)의 경지에 이르겠다고 하는 것이다. 오직 이기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기어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회를 엿보며 쉬지 않고 칼을 간다. 다른 모든 것은 버려야 한다. 그렇지만 원래 무(武)의 본성은 죽지 않고 살아남기가 아닌가. 절대 본심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겉과 속이 다르다. 상대를 찌르려는 의도가 얼굴에 나타나면 안 된다. 그래야 전형적인 무사의 얼굴이다. 이 갈등 속에서 이중성이 싹튼다.
 
목숨을 지는 벚꽃에 비유하여 허무와 처절함, 그리고 장엄미로 승화시킨다. 그렇기에 루스 베니딕트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 민족성의 '이중성'에 대해 "일본인은 투쟁을 좋아하면서 또 선함을 좋아한다. 무술을 숭상하면서, 아름다움을 좋아하면서 야만적이고 난폭하지만 고상하다. 또 융통성이 없으나 임기응변에 뛰어나고, 순종하는 것 같으나 지배받기 싫어하며, 충성되어 두 임금을 섬기지 않으나 신의를 저버리고 의를 배반한다. 뿐만 아니라 용감하지만 비겁하기도 하고, 보수적이지만 새로운 사물을 잘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처럼 서로 모순된 기질들은 모두 가장 높은 정도에서 표현되어 나오게 된다."고 했다.
 
또 중국학자 진산(陳山)은 《중국무협사(中國武俠史)》에서 "일본 무사의 문화 정신은 현대 일본 민족의 영혼이다. 무사 계층이 일본 사회의 중심이 되어 현대 사회로 향하여 움직이는 과정 중에 그들의 가치 관념, 인격 정신과 행동 방식이 일본 전체 사회에 파고들게 되어 '일본 심혼(心魂)'의 민족 성격을 응집시켰다. 현대 일본인의 윤리 도덕관념 중 보다 많은 것이 상대적이며,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그들의 모험심, 탐색 정신과 진지한 태도의 결합, 전통을 존중하고 권위자에 복종하는 관념, 주동적으로 외국 문명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의식의 공존, 집단적인 특징과 융통성 있게 적응하는 태도의 융합은 모두 봉건성과 현대성, 등급 관념의 구속과 상무 정신의 원시적인 야성(野性)이 서로 혼합하는 기이한 문화 성격을 나타냈다. 이는 무사도 정신이 중심 내용인 '선비의 영혼에 상인의 재주를 가졌다(士魂商才)'는 일본 국민성의 기본 구조"라고 했다.
 
무사도와 일본 민족성의 특질
 
어떠한 덕목들도 모두 최종적으로는 충(忠)으로 귀결된다. 여기에는 선(善)이니 악(惡)이니 하는 보편적인 인간의 윤리 개념조차 끼어들 소지가 없다. 개인의 생각은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주인의 입장, 주인의 생각을 입에 담아야 한다. 그만큼 오래되어 고착되고 맹목적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극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맹신적인 문화다. 니토베의 말대로 무사도가 곧 일본의 종교, 그것도 국교인 것이다. 물론 지금의 교주는 천황이다. 현대에도 국민 모두가 집단적으로 세뇌되기를 서슴지 않는다. 지난 시대의 주인인 영주 대신에 더욱 큰 주인인 천황을 섬기는 것이다. 주종 관계가 신(神)과 신자(信者)의 관계로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그가 쓴 《무사도》는 일본교(日本敎)의 영문판 바이블인 셈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진시황의 지하군단처럼 죽어서도 천황에게 충성을 바치라는 전몰자 영혼들의 집인 것이다. 그래서 군국주의라는 표현만으로는 그들의 과거를, 그리고 지금을 설명하기엔 항상 부족한 것이다. 지난 시절에 저지른 전쟁의 만행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지도 않을 뿐더러 결코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교과서 왜곡? 당연한 일이다. 일본인에게 지난 일은 단순히 역사가 아니라 종교인 것이다. 이 종교적 행위에 이성적인(세속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그저 무례일 뿐이다. 중세 유럽에서 교회가 신의 이름으로 저지른 온갖 만행들을 떠올려 보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갈 것이다.
 
무릇 덕(德)이란 개인과 개인, 혹은 개인과 사회관계에서 생겨나는 것이어서 언제나 온기(溫氣)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문덕(文德)이든 무덕(武德)이든. 그런데 무사도(武士道)에서 이야기하는 덕(德)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냉기(冷氣)만이 느껴진다. 일본의 무사도(武士道)가 내세우는 무덕(武德)이 그 비린내를 지우고 온기를 지니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세월이 필요할 듯하다. 아니 어쩌면 불가능할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충(忠)은 원래부터 덕(德)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장기의 빛깔을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주인에게, 조직에, 국가에 충성하는 문화. 그 일심(一心) 문화가 바로 일본(日本)의 문화이다. 긴장과 절제, 극기와 자기희생, 목표와 집중, 개인적 혹은 국민적 역량을 한곳으로 집중시켜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장점이 있다. 또한 항상 긴장감 속에 있기에 기회 포착과 형세 판단에 능하여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반면에 비판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외길로 빠질 위험성이 있다. 과거의 군국주의가 그랬듯이. 포용과 여유, 원만함과 안일함이 결여되어 있다. 전통적인 일본의 정원에는 자갈 하나조차 마음대로 놓여 있을 수 없다. 반드시 주인의 손길로 정해진 자리에 있어야 한다. 단연코 잡풀 한 포기도 허락되지 않고 뽑혀 나간다. 지나가던 새 한 마리조차 아무 가지에나 앉았다가는 주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예외나 다양성, 관용이나 자연스러움이란 있을 수 없다.
 
사무라이의 몰락과 일본 근대화
 
▲ 자료사진. 쌍수도     © 한국무예신문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천하가 통일되었다지만 여전히 천황은 무력하였으며,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가 직접 천하를 지배한 것이 아니라, 단지 각 지역의 군벌인 다이묘(大名)들을 통제한 것이었다. 따라서 무사 계급은 계속하여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무사라 해도 계급이 많고 엄격했다. 상급 무사들은 넉넉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학문을 닦고 예술을 즐기며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하급 무사들은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거기에다 예전처럼 전쟁도 없어 공을 세워 신분을 상승시킬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았다. 이 시기 각 지역의 한(藩)들은 외국과의 통상을 통해 부를 늘리고, 세력을 키워 나갔다. 그리하여 자연스레 상업에 종사하는 무사들이 생겨났다.
 
서구 열강들의 끊임없는 압력과 한(藩)들의 세력 증강은 차츰 바쿠후(幕府)의 힘을 약화시키고, 상대적으로 천황에 의한 중앙집권의 필요성을 대두시킨다. 1867년, 도쿠가와 바쿠후 15대 쇼군(將軍)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는 정권을 조정에 반환하고 260년간의 통치를 마감한다. 그리하여 일본은 메이지(明治)시대를 맞아 본격적인 근대화의 길을 가게 된다. 왕정복고 후 메이지 정부는 한(藩)을 폐하고, 무사의 신분을 없애고, 징병 제도를 통해 정부군을 구성한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일부 무사 계급들이 자주 반란을 일으켰지만 시대의 조류를 막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충성을 다해 부국강병과 문명개화의 기치 아래 서구의 신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앞장섰다. 그것만이 사무라이의 살길이었다.
 
어쨌거나 일본의 야만성을 무덕(武德)으로 승화시킨 니토베 이나조 덕분에 서양인들은 맨 먼저 '무사도'를 통해 일본을 알게 되었고, 나아가 일본 문화 전체를 그러한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 또 일본인들은 그 시각에 맞춰 자신들의 민족성을 끊임없이 개조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현대적인 유럽의 기사 제도를 받아들여 귀족들에게 작위를 수여하기도 하였는데, 이제시대 한국인들 가운데 다수의 충일(忠日) 인사들도 여기에 들어 있다. 아무튼 '무사도'는 일본 최고의 상품이다. 오늘날에는 비록 스포츠화되긴 했지만 검도(劍道)가 그 정신을 이어나가고 있다.
 
검도(劍道)와 무사도(武士道)
 
전체적으로 일본 무예의 특징은, 오직 적을 죽여 이겨야 한다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다. 군사 무예의 특질이 강하게 배어 있다. 따라서 당장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 몸을 돌보지 않고, 일념으로 강하고 빠르게 죽기살기로 연습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여러 가지 기예를 익히기보다는 가능하면 단순하고 효과적인, 우선 당장 써먹기 좋은 단수(單手) 몇 가지만을 가지고 반복적으로 숙달시킨다. 훈련 방법도 거의 극기 훈련에 가깝다. 폭포수 밑에서, 얼음물에서, 주먹으로 생나무를 쳐서 등등 하나같이 신체를 혹사시켜 강하게 만들고자 한다.
 
그렇지만 이런 방법은 단기간에 어떤 성과를 얻을 수는 있으나 그 효력이 오래가지 않는다. 멀리 보고 건신(建身)과 양생(養生)을 겸하면서 수양의 수단으로 삼는 개인 무예가 아니기 때문에 무예의 학문적인 깊이는 거의 없을 정도이다. 격검(擊劍)이라 하여 그저 누구나가 쉽게 할 수 있도록 막고 치는 기본적인 동작으로 짜여져 있다. 서너 개의 자음을 반복적으로 나열해 놓은 것 같은 원리이다. 십팔기(十八技) 중 쌍수도(雙手道), 왜검(倭劍), 교전(交戰)은 원래 일본의 검법이었다. 그렇지만 일본에는 지금까지 이만한 검보(劍譜)가 남아있지 않다. 현재 한국 검도계에서 십팔기 중 본국검(本國劍)과 예도(銳刀, 朝鮮勢法)을 복원했다고 하지만, 전혀 검리(劍理)가 서로 맞지 않아 차마 보기 민망할 따름이다. 차라리 왜검, 교전, 쌍수도를 익히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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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2/13 [08:12]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경호무술 12/02/15 [12:50]
좋은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무예명칭뒤에 반드시 유도 검도 합기도 공수도 겐또 주도 아이끼도 가라데도 와 같이 명칭에 도짜를 붙이는 것은 사무라이마음이 주군 즉 천황을 향하여 또는 이르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일본의식민지 지배하에 있다보니 현대에 와서도 태권도 해동검도 한기도 용무도원하도 와 같이 무예명에 일본식 도자를 붙여 창명합니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입니다. 무예는 그 나라의 문화 정서 정신을 대표한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점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수정 삭제
무예인 12/02/16 [12:58]
오랫만에 좋은글 읽어 봅니다.

마지막 말씀에,
십팔기(十八技) 중 쌍수도(雙手道), 왜검(倭劍), 교전(交戰)은 원래 일본의 검법이었다. 그렇지만 일본에는 지금까지 이만한 검보(劍譜)가 남아있지 않다. 현재 한국 검도계에서 십팔기 중 본국검(本國劍)과 예도(銳刀, 朝鮮勢法)을 복원했다고 하지만, 전혀 검리(劍理)가 서로 맞지 않아 차마 보기 민망할 따름이다. 차라리 왜검, 교전, 쌍수도를 익히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라는 대목은 정확한 문제점을 지적한 부분이다.
일본검도를 도입한 대한검도회는 무예도보통지의 24반 중 일본검도의 검리를 보강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왜검보에 실려잇는 원광류를 연구하고, 교전보를 연구하여야 할 것인데, 유독 일본검도와 검리와 이념과 투로가 전혀 다른 방향인 본국검과 예도를
나름대로 복원하여 지도하는것은 무사도의 이념과 정신에 전혀 엇박자의 장단인데
이제 그 요상한 장단을 그만 치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이 전통무예단체들이 하는일들을 방해하는 이런 좋지못한 병폐는 하루빨리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수정 삭제
모래네 12/02/18 [13:04]
막연하게 들어서 알고 있던 무사도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 삭제
대조선 17/07/04 [14:47]
지금은세계사는 100년전에 창간,즉 발명품이다. 역사역시 대중세뇌 발명품이고.이후 라디오.티비등도 통치세력에게는 다르지않다.일본은 조선의 일부. 100년전 당시에는 일본은 현 광동성.복건성일대지배세력.조선은 현 대륙의 주인이었다! 지금의대륙지배세력은 대륙 필록~모택동탄생곳.남쪽지배세력이다.고로 일본의 무술.대륙.반도는 거의 같은 기반의 동종무술이다.100년동안 학문적으로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나라 별종인것처럼보인다.동방불패에서 일본낭인들이 왜 조직을이루고 대륙에서 활동하는가?베트남 무협지에서 옛날에는 이순신이나오고 했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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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대칼럼]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런 만신창이의 나라가 되었나?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7/07/05/
[신성대칼럼] 매너와 품격으로 자기완성적 삶을!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7/05/22/
[신성대칼럼] 대한민국 위기냐, 다시없는 기회냐?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7/04/11/
[신성대칼럼] 한국인들은 무엇으로 판단하는가?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7/04/10/
[신성대칼럼] 대통령 탄핵, ‘품격사회’로 가는 성장통인가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7/03/16/
[신성대칼럼] 중국이 자국민의 한국관광을 막는 이유?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7/03/10/
[신성대칼럼] 막무가내 콩글리시와 미쳐 돌아가는 한국사회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7/02/17/
[신성대칼럼] 무너지는 대한민국, 왜 리더가 없는가?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7/02/05/
[신성대칼럼] 우리는 왜 그런 대통령을 뽑았을까?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7/01/29/
[신성대칼럼] 대한민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7/01/01/
[신성대칼럼] 무예(武藝)냐 예술(藝術)이냐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6/12/21/
[신성대칼럼] “바보야, 이건 품격의 문제야!”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6/11/27/
[신성대칼럼] 사교(邪敎)라고? 차라리 용서받지 않겠다!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6/11/21/
[신성대칼럼] 대한민국에서 ‘정치’란 무엇인가?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6/10/30/
[신성대칼럼] 주먹질로 날 새는 이상한 나라 코리아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6/08/06/
[신성대칼럼] 북한에 ‘뺏긴’ 조선 국기 십팔기 교본 《무예도보통지》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6/07/24/
[신성대칼럼] 전쟁과 범죄의 경계가 없어졌다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6/07/18/
[신성대칼럼] 전세계에서 한국인들만 삿대질이 중범죄인지도 모른다!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6/07/09/
[신성대칼럼] 놀 줄 모르는 공부벌레, 일벌레들이 한국을 망친다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201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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