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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속의 명마(名馬) 한혈마(汗血馬)를 찾아서
 
고성규(대한청년기마대장) 기사입력  2016/05/08 [01:59]
▲ 고성규(대한청년기마대장)     ⓒ 한국무예신문
인류 역사상 가장 손꼽히는 명마(名馬)를 꼽는다면 난 주저 없이 한혈마(汗血馬, 학명 Parafilaria multipapillosa)라고 이야기 한다. 이 한혈마는 역사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지구 한나라에 실존해 있는 말이며, 한 국가의 상징이자 그 나라를 대표하는 동물이다.
 
수십 년을 말과 함께 생활하고 고구려 기마문화를 연구, 보전해오고 있는 필자로선 한혈마에 대한 궁금증과 함께 평생 한혈마를 한번이라도 만나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뿐, 내생에 과연 그 꿈이 가능할지는 미지수였다.
 
왜냐하면 한혈마의 고장 투르크메니스탄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도 않았지만, 그 나라에 대한 정보도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중앙아시아의 북한 같은 곳이라는 정도로밖에 알려져 있을 뿐이다.

하여, 개인적으로 현지를 직접 방문해서 한혈마를 기승(騎乘)해 볼 수는 있는 기회는 아예 포기해야 했다. 한국에 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이 있지만, 한 개인이 관광비자로 입국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특히 투르크메니스탄은 일반 여행자들에게는 입국을 거의 허가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군다나 외국인이 개인적으로 한혈마를 취재 하거나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쉽게 허락하는 나라가 아니다. 투르크메니스탄 바깥으로 한혈마를 유출하거나 반출시키는 것 또한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 방문에서 뼈저리게 경험하고 왔기 때문이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한혈마를 아칼테케(Akhal Teke)라고 부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혈마는 앞 어깨와 목 뒤의 작은 구멍에서 피와 같은 땀을 흘리며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고 하여 한나라 때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사실 지구상에 피땀을 흘리는 말은 존재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붉은 피땀이 흐른다는 말은 과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전설속의 명마(名馬) 한혈마(汗血馬)를 타고 있는 고성규 대한청년기마대장.     ⓒ 한국무예신문

다만 21세기 수의학 관점으로 보면 뒷목 갈기와 어깨와 가슴 사이의 피부조직에 기생충이나 여름철의 방목지에서 진드기가 옮겨져 서식하는데, 그 부위가 부어올라 달릴 때면 모세혈관이 팽창하여 땀과 피가 섞여 나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아무튼 필자의 입장에서 이 한혈마를 직접 기승(騎乘)해서 경험해 본다는 것은 절차상 너무도 어려웠고 현실적으로 장시간 거기에 매달릴 수도 없었기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몽골에서 유목트레킹 진행을 함께하는 일본인 친구에게 일본인들은 어떻게 비자 받는지와 또 어떻게 하면 현지에서 한혈마를 기승해 볼 수 있는지 조언을 구했다. 그랬더니 바로 연락이 왔다.
 
투르크메니스탄 비자초청장은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재가를 직접 받아야 한단다. 우리로선 상상 할 수 없는 일. 그리고 비자를 받기위해서는 3가지 정도의 방법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이웃나라 이란이나,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서 주변국으로 경유하는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 또한 초청장이 있어야 하고, 입국해서도 외국여행자에겐 통제가 많다고 했다.
 
외국인은 그냥 5일안에 경유 할 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아슈하바트 곳곳에 감시자들이 있어서 아무런 생각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면 어디선가 쏜살같이 달려와 제지를 시킨다는 것이다.
 
외국인은 입국하는 즉시 거주지 등록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3일 이내에 다시 거주등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연락이 안 되거나 등록지를 벗어나면 강제 추방되며 나중에 다시는 입국 할 수가 없단다. 구소련 체제 그대로 변함이 없다.
 
두 번째는 정부주도 공무수행으로 가는 일이다. 이것 역시 외국인은 똑같은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세 번째는 그쪽 정부행사나 공무로 초청 방문하는 것인데, 이것 역시 민간인은 불가능 하다.
 
그런데 간절히 소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마침 오랫동안 준비하고 있던 다큐멘터리(고구려 말 루트) 제안이 이루어져 지난겨울 몽골촬영에 이어서 투르크메니스탄 한혈마 촬영계획이 있었다.
 
▲ 전설속의 명마(名馬) 한혈마(汗血馬)를 타고 있는, TV 다큐를 촬영을 하고 있는 고성규 대한청년기마대장.     ⓒ 한국무예신문

하지만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입국해서 어떻게 취재를 하고 올지, 구체적 대안이 없는 실정이라 막막했다.
 
그런데, 때마침 투르크메니스탄 현지에서 아칼테케 축제가 열렸고, 한국정부도 관심을 같고 관련분야별로 참가신청을 받는 공문이 발송됐다. 한국정부(농림축산식품부) 주도로 처음 있는 일이다. 드디어 하늘이 준 기회가 왔구나.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우리 다큐팀도 여러 가지 절차를 걸쳐 정식 한국사절단으로 합류하게 된다. 하지만 절차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투르크메니스탄 현지정부의 일처리가 전혀 진행되지 않아 심각한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최소 외국사절을 초청하려면 미리 체류일정에 대한 스케줄과 각 국가별 방문목적과 일정을 체크하고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 국제관례이건만 전혀 그런 게 없으니 가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어 주한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을 오가며 분주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참가자들끼리 나름 정보공유가 이뤄졌지만 아무런 계획과 체류일정에 관한 정보는 알 수 없었다. 결국 다큐팀은 최종적으로 포기하는 것으로 굳히고 마지막 통보를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 투르크메니스탄 한국대사관에 물어 봤더니, 그쪽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란다. 원래 그 나라는 미리 스케줄을 내 놓지 않고 그때그때 하루 전날 나온다는 정보를 듣고 모두 황당해 했다.
 
아무런 체류일정과 정보도 없이 외국 촬영을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런 계획 없이 무작정 간다는 것은 체류비용만 낭비라고 생각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필자입장에선 개인적으로 포기할 수 없어 혼자라도 가리라는 생각에 상황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정부부처 또한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었다. 한혈마 취재 관련하여 촬영협조를 외교라인을 통해 현지정부에 최종공문을 보냈는데도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현지 한국대사관도 나름대로 그쪽 외교라인과 다각적인 노력을 펼쳤지만 모든 것은 현지 방문 후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최종답변이었다.
 
기가 막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모든 일들은 현지를 방문하여 경험하기 전엔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결국 현장에 가서야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되었다.
 
▲ 전설속의 명마(名馬) 한혈마(汗血馬)를 타고 있는,TV 다큐를 촬영을 하고 있는 고성규 대한청년기마대장.     ⓒ 한국무예신문

안타까운 것은 무엇보다 수년전 대한민국대통령께서 투르크메니스탄 방문하여 상호 말 산업과 관련하여 MOU체결에 따른 정부정책의 후속조치로 농림축산식품부, 마사회, 말산업중앙회, 다큐촬영팀이 투르크메니스탄 아칼테케(한혈마)축제 학술회의에 참가하므로 주한투르크메니스탄 대사관과 현지 한국대사관의 협조아래 추진된 사안인데도 이 정도였다는 것.
 
현지 한국대사관에서 투르크메니스탄정부와 담판하여 알려준 정보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 뿐이었다. 외국 장관이 와도 하루 전에 스케줄을 알려준다고 한다. 정말 이해하기 힘들지만 베일 속에 가려있던 전설의 명마 한혈마(아칼테케)를 직접 필자의 눈으로 확인하고 기승해보는 방법은 현지로 직접 가서 해결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여곡절 끝에 우리 다큐팀은 알 수 없는 미지의 나라 투르크메니스탄을 향하여 비행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 두바이를 경유하여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슈하바드까지는 직항이 없는 관계로 이틀이나 걸렸다.
 
도착하자마자 현지 한국대사관 직원이 알려준 정보는 아직도 자세한 일정과 스케줄이 안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우리 일행은 서로 쳐다보며 다들 웃고 말았다.
 
이젠 하는 수 없다. 이곳의 법칙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가 호텔에서 묵어도 모든 외국인은 거주지 등록을 해야 하며, 말도 안 되는 통제를 받을 것이란 내용을 미리 알려주었다.
 
그건 사실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회수해서 거주지 등록을 해야 했고, 며칠이 지나서 다시 거주지 등록을 또 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호텔은 아슈하바드 사막언덕 위에 있는 특급호텔이었다.
 
주변에는 다른 건물 없이 호텔하나만 달랑 놓여 있었다. 누가 봐도 호텔 투숙객들과 외부에서 오가는 차량의 동선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설계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야말로 원 스톱 통제 시스템이다.
 
도착일 오후에 다음날 공식 일정이 나왔지만, 다큐팀은 한혈마 관련하여 투르크메니스탄 기마문화를 촬영하는 것이 주목적이기 때문에 일행과 따로 움직여야 했다.
 
어차피 별도 촬영협조가 안 된 이상 각개전투 하기로 결정하고, 첫날 일정에서 촬영팀 3명(책임피디, 촬영감독, 필자)은 미리 임대한 SUV차량 운전기사를 설득한 끝에 숙소 부근에 있는 유적지 니사부터 촬영하고 흡족한 마음으로 호텔로 돌아왔다.
 
▲ 자료이미지. 고구려무용총수렵도     ⓒ 한국무예신문

니사는 200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곳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구려 무용총수렵도에 말을 타고 사슴을 향해 활을 뒤로 쏘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파르티안 사법이라고 하는데 일명 후사, 또는 배사라고 한다.
 
이 사법(射法)의 기원이 바로 파르티아에서 시작되었다는 학설로 인해 파르티안 사법이라고 하는데 니사(Nisa, 安息國)가 바로 파르티아 제국의 첫 번째 수도 유적지였던 것이다.
 
니사는 기원전 1세기 말에 발생한 지진으로 파괴되어 일부 흔적만 남아 있었다. 한국방송 역사상 처음 촬영을 하는 거라 다큐팀은 매우 흥분된 기분으로 촬영을 하고 돌아왔다.
 
이 정도라면 남은 일정에 굳이 한국에서 외교라인을 통해서 힘들게 촬영협조를 받을 필요가 없었고, 괜한 고생을 했다는 생각을 하며 여유롭게 호텔로 돌아왔다.
 
그런데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싸늘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들의 통제를 벗어나 무슨 일을 하고 어디를 갔다 왔는지 이미 알고 있어서 깜작 놀랐다. 기분이 언짢았다. 누군가로부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받는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었구나 했다. 기분이 묘했다.
 
문제는 다음날부터였다. 우리일행에 대한 집중적인 통제가 뒤따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린 감시원들을 잘 따돌리고 우리의 목표대로 촬영을 했다 싶었는데, 그들은 이미 설정해 놓은 정보망을 통하여 촬영팀 동선파악은 물론 다음 동선을 막기 위한 대책까지 세워놓은 것이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지금 우리가 북한에 와 있는 것 아닌가 할 정도로 기분이 찜찜했다. 이해 할 수도 없는 나라지만 그렇다고 어쩔 수도 없었다. 한국이 아니고 여긴 남의 나라가 아닌가.
 
고민했다. 이제 제한된 시간 안에 그토록 궁금했던 전설의 명마를 찾기 위해서는 마키아벨리 말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해결해야 한다.
 
어디로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막연하지만, 일단 호텔과 감시를 벗어나는 것이 1차 목표였다. 그다음은 자동차 안에서 해결한다는 원칙으로 우리의 순발력과 주변의 인맥을 배분 활용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은 운전기사를 설득해 수집한 결과 아슈하바드 외곽 멀지않은 곳에 아칼테케 농장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고 우리는 환호성을 외쳤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멀리 못가서 차단되리라는 생각지도 못했다. 50~100미터 간격으로 경찰이 나타나곤 했다. 혹시 우리 때문인가 했다. 알고 보니 평소에도 경찰이 많이 깔려있단다. 한국정부에서 외교라인을 통하여 촬영협조 공문 발송내용을 복사해 가져간 것이 효과가 있어 무난히 통과 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일단 외곽에 있는 아칼테케 말 목장에서 도착, 꿈에도 그리던 전설의 명마 한혈마(아칼테케)를 보는 순간 많은 희비가 엇갈렸다. 우선 수만 Km를 고진감래한 결과 막상 목표점에 와보니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명성대로 아라비안 말처럼 목이 길고 체구가 가늘고 날씬하여 동물 중에 가장 아름다운 몸매를 자랑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일단 마체(외모)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기도 해서인지 더 이상 한혈마에 대한 환상의 기대치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허전했다. 한국에서 유튜브(YUTUBE) 동영상으로 본 것처럼 말이 가늘고 체구가 작았다.
 
수천 년 전의 전마(戰馬)로선 가장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명마 중 명마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지구상에 200여종이 넘는 말 품종이 존재하며, 다양한 비주얼의 외모나 기능은 물론 용도별로 개량되어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혈마(아칼테케)의 환상이 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전설속의 명마(名馬) 한혈마(汗血馬)를 타고 있고 고구려 무용총수렵도를 장면을 재현하며 TV 다큐를 촬영을 하고 있는 고성규 대한청년기마대장.     ⓒ 한국무예신문

사실 한혈마(아칼테케)는 접근 할 수 없는 곳에 베일에 쌓여있어서 그런지 필자는 신비주의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막상 현장에서 보는 아칼테케는 그냥 좀 작고 예쁜 경주용마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신비로울 것도 이상할 것도 없는 늘 봐오던 몸매는 날씬하고 갈기는 깎아서 목이 가늘며 긴 경주용 말이나 제주 한라마보다 예쁘고 약간 키가 큰 말 정도로 보일뿐이었다.
 
사실 아칼테케 축제에 처음 참석한 우리일행은 적잖은 실망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 스타일의 말은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엇보다 실망인 것은 ‘아칼테케 축제’ 이벤트가 그 나라 지도자 개인 우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 더군다나 지나친 통제로 축제마저도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아, 이렇게 일정을 보내며 포기 하고 갈 수는 없는 것인가! 여기까지 오기가 얼마나 힘든 여정이었던가.
 
결국 다큐팀은 또 다른 루트를 개척해야 했고, 그것도 극비리에 실천해야 했다. 무엇보다 포기 할 수 없었기에 그렇다. 또한번의 용병술이 필요했고 외곽 촬영에 접근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마침내는 성공했다.
 
다행이 찾아간 목장은 촬영 콘셉트에 적합한 곳이었고, 오랜 전통을 유지해 내려오는 목장이였다. 반갑고 좋았다. 그렇지만 내색을 하기엔 갈 길이 멀었다.
 
이제 전설로만 듣던 한혈마를 중앙아시아 현지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타보는 것이 아닌가. 정말 가슴 뛰는 일이다. 하지만 말들을 둘러보니 아주 예민한 품종이란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수십 년 경험을 통한 필자의 직감이었다.
 
만약 잘못하면 다치거나 심각한 일이 벌어 질 수 있기 때문에 우선 탈 수 있는 말을 필자의 나름 방법으로 확인하고 기승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기사(騎射, 마상궁술)를 할 수 없다. 기사를 하려면 두 손을 놓고 타야하기 때문에 만일 문제가 발생한다면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수 년 동안 함께 훈련하여 호흡을 맞춘 말일지라도 순간 놀라거나 위협이 닥치면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처음 가져온 말은 비주얼이 맞지 않아 다른 말로 부탁했더니, 목장 총책임자가 안 된다고 하면서 “제일 착하고 좋으니 그냥 타라”고 한다.
 
그냥 타기만 할 것이 아니고 촬영을 해야 한다고 했더니, 깜작 놀라며 상부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버티었다. 난감했다. 이제껏 여러 고비를 곡예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 또 막혀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다시 책임 연출자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득 끝에 말을 두 번 더 바꾸고 나니 우리가 원했던 멋지고 활발한 말이 왔다. 말은 멋지고 근육이 살아 있었는데, 문제는 필자의 눈에는 말이 많이 까칠해 보였다.
 
목장 책임자가 “누가 탈거냐?”고 묻더니 필자가 탈거라고 책임피디가 말했더니, 나를 힐끔 쳐다보곤 저사람 실력으로 못 탈거라고 하는 거 같은 눈치다. 마술(馬術)전문가가 아니라 한국에서 촬영 온 배우인줄 알고 말 타는 모습만 찍고 끝나는 줄 알고 있다가 활까지 쏜다고 했더니 또한번 놀라는 것 같았다.
 
자기들도 실제로 말위에서 활을 쏴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린다고 한다. 그리고 필자를 한동안 훑어보더니 또 한 번 안 된다고 하는데 때마침 촬영감독이 러시아 언어로 필자의 경력과 능력을 설명하면서 열심히 설득하고 있었다.
 
▲ 정지된 말위에서 뒤를 향해 기사(騎射, 마상궁술)를 하고 있는 고성규 대한청년기마대장.     ⓒ 한국무예신문

사실 우리가 외국사절단 대열에서 빠져나와 이처럼 촬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촬영감독이 유창한 러시아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촬영감독은 러시아국립영화학교 출신이다. 그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그런데 즐거워야 하는데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말이란 동물은 평소 훈련대로 이행을 하지만, 다른 것을 무리하게 요구하거나 말이 두려워하는 도구들을 사용하면 말은 반항하거나 예민해져 어떤 돌발행위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 마음속으로 무사히 촬영을 잘 마칠 수 있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한국에서 기마무예 1세대인 필자로선 트라우마(Trauma)가 있다. 우리문헌엔 기마무예 할 수 있는 말 조련 기술과 자세한 기마무예 매뉴얼이 없다. 수많은 외침과 강점기를 통하여 유실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끊어진 맥(脈)을 다시 잇는다는 것은 참으로 많은 고통을 동반한다. 교배에서 분만한 새끼 말부터 육성하는 것은 기본이고, 성마(2~3세)가 되기까지 수많은 과정들이 필요하다. 지속적으로 사람에 대한 인지판단 능력과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이 흥분하지 않도록 꾸준히 훈련하여야 한다.
 
엘리트 승마와는 또 다른 영역인 것이다. 방송소품이 아닌 실제 병장기, 즉 ‘진검(眞劍)’을 써야하기 때문에 말 조련과정이 얼마나 예민하고 위험한지 잘 알고 있다. 여러 단계의 과정과 순간상황에 대쳐 할 수 있도록 훈련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전마(戰馬)가 될 수 있다. 그야말로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마(戰馬)조련 매뉴얼이 없는 상황에서 필자 혼자 나이어린 말들을 놓고, 여러 가지 실험 훈련하다가 4번의 골절사고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양다리 골절, 갈비뼈, 심지어 꼬리뼈까지 골절된 경험이 있다.
 
필자의 아내는 이런 고통을 함께 옆에서 지켜본 장본인이다보니 늘 걱정과 당부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무튼 그렇고, 일단 기승을 해봐야 한다.
 
외모가 특별히 멋진 말들은 성격이 좋을 확률이 비교적 낮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은 돌연변이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도 된다. 하여튼 촬영감독이 어떻게 필자를 소개하고 설득하였는지 허락이 떨어졌다.
 
일단 어떤 말(馬)인지 간을 봐야하는데, 책임 피디는 다짜고짜 바로 타고 해보잔다. 고수(高手)가 굳이 그런 절차를 왜 필요 하느냐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책임피디를 향해 정색하고 말았다.
 
“일단 점검 좀 합시다. 비주얼만 좋다고 다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평소 내가 알고 있는 말이 아니라서 위험 할 수 있어요.”
 
아마도 필자를 겁쟁이라고 순간 생각했을 수도 있고. 여기까지 와서 웬 거드름이냐 할 수도 있었겠다.
 
사실 초창기엔 나도 말을 타고 말위에서 무예(武藝)를 한다는 것은 거칠 것도 없고 겁날 것도 없었다. 요즘 시작하는 후배들이나 제자들을 볼 때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이 겁 없이 덤벼드는 것을 종종 본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위험한 고비를 몇 번 겪고 나면 침착하게 점검하는 습관이 자연적으로 생긴다. 하기야 말에 대한 전문식견이 없으신 분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하지만, 모두가 급한 마음에 서두르고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책임피디 입장에서 바로 물러서며 필자가 다치게 되면 촬영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사실 내가 더 욕심이 있었다. 필자는 단순 여행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외국인이 한혈마를 타고 기사(騎射)를 했다는 미디어상의 자료를 찾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더더욱 한국인으로서는 전설속의 한혈마 마상궁술 자료를 처음으로 남길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왔는데 그냥 갈 수 없는 일이다.
 
이제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일단 말을 타고 기(氣) 싸움부터 해보자. 책임피디가 부탁해서 가져온 말은, 색상이 승마인이 가장 선호하는 색상이 팔로미노인데 멋진 말을 배정받고 보니 순간 압도되는 느낌이다.
 
한혈마를 타게 되어 기쁨보다는 과연 이 말에서 안전하게 촬영을 마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막상 말위에 오르자마자 반응이 왔다. 아주 예민하고 늘 다루던 사람이 아니란 것을 생각보다 빨리 알아차리는 것 같아 긴장감이 등줄기를 타고 내린다.
 
▲ 전설속의 명마(名馬) 한혈마(汗血馬)를 타고 한국인 최초로 고구려벽화 무용총수렵도 재현에 성공한 고성규 대한청년기마대장.     ⓒ 한국무예신문

순간 이 말을 타고 기사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포기해야만 하는 것인가.
 
일단 가벼운 것부터 시작하며 때를 봐서 적당히 서로 ‘밀당’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말이 복종하고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를 놓치지 말고 복종이 더 편하다는 느낌을 받도록 이행을 시켜보리라는 생각으로 연결고리를 놓치지 않고 진행했다. 서서히 리딩이 먹혔다. 여기서 무리한 요구를 하면 말장 도루묵이 될 것이다.
 
서서히 강도를 반항하지 않는 선에서 높게 진행시키며 때를 기다렸다. 더 이상 ‘밀당’으로 버티기엔 어렵다고 판단된 건지 드디어 내 페이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때다 싶어 때를 놓치지 않고 스텝에게 활을 넘겨받는 순간 말은 심한 반항과 함께 땅을 박차고 튀려했다. 만약 그 순간 고삐를 놓쳤다면 상상하기 싫은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말 입장에서 볼 때 난생 처음 보는 활은 고통을 주는 이상하게 생긴 채찍으로 착각하고 두려움에 놀라 말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마구간으로 멈추지 않고 질주했을 것이다.
 
기사(騎射)는 결국 포기해야 하는가 하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다행이 긴장감을 놓치지 않은 것이 큰 화를 막은 셈이다. 무슨 정신으로 사막에서 촬영은 마쳤는지 기억이 없다.
 
다음 촬영지인 초원으로 이동하여 구보 씬(Scene)을 촬영하면서도 머리에선 기사에 대한 미련이 도저히 포기가 안 됐다. 때를 보고 다시 말과의 ‘밀당’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오히려 사막의 모래보다 초원이 더 위험 요소가 많았다.
 
일단 포기하고 다른 씬(Scene)부터 해결하고 보자는 생각으로 할 수 없이 감독과 상의한 뒤 한혈마 기사(騎射)는 결국 포기하기로 하고 기본 촬영에 충실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계속 뇌리 속에 남아 있었다.
 
이제 마지막 촬영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시도해 봐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만약 반항하면 정말 포기하자며 시도했다. 아,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서서히 조금씩 안정된 구보패턴을 허락가기 시작했다.
 
이제 말(馬)이 활만 허락하면 시도 할 수 있다. 먼저 활을 말의 입과 코로 가져가 충분한 냄새를 확인하게 했다. 다행히 거부가 없다. 그러나 거기엔 그동안의 훈련노하우를 발휘하여 잠시 하마(下馬)했을 때 아무도 몰래 말(馬) 피부에서 나온 땀을 손바닥에 묻혀서 활과 화살에 미리 발라놓은 것이 효과를 본 것이다.
 
말 후각의 발달은 육식동물의 공격을 받기 전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무기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피부에서 흘러나온 땀을 바른 활에 대한 공포를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오랜 경험으로 천금 같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이대로라면 말이 안정되게 뛰어주고 중간에 갑자기 방향을 급커브로 틀어서 마구간 쪽으로 전속질주만 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가능 할 것 같았다.
 
이제 희망을 갖고 마지막 시도를 해보자. 그 순간 온갖 회한이 머리를 스쳐갔다. 나는 왜 이리도 무모한 걸까. 만약 아내가 이런 내 행동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아마도 펄펄 뛰었을 것이다.
 
펜스도 없고 허허벌판에 고삐를 놓은 상태에서 말이 재갈 통제가 없는 느낌을 알고, 날 뛰면 대책이 없다. 하지만 운명을 믿어보자.
 
첫 번째 시도는 다행히 촬영 중 충분한 시간으로 교감이 있었는지 중간에 심한 반항은 없었다. 커브를 꺾는다는 것을 알고 꺾는 만큼 더 넓게 페이스를 잡고 진행했더니 다행히 화살을 당길 수 있는 여유가 조금 보였다. 이대로만 해준다면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기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Okay. 이제부터는 필자의 인생에 가장 역사적인 도전의 기록을 향해 나간다. 고구려의 후손으로 목숨 걸고 도전해 보리라. 어차피 한번 인생. 꿈꾸는 자 보다 꿈을 향해 도전하는 자에게 성공의 기회는 더 많이 오는 법이다.
 
마침내 가장 멋진 한혈마를 타고 또 하나의 역사적 근거를 남기게 됐다. 한민족의 후손으로서 당당하게 전설속의 명마를 타고 한국인 최초로 고구려벽화 무용총수렵도 재현에 성공한 것이다.  기마민족의 기상과 기백을 살려 고구려의 벽화 속으로부터 부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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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5/08 [01:59]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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