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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뺏긴’ 조선 국기 십팔기 교본 《무예도보통지》
말로만 문화융성? 손에 쥔 보물도 못 챙기면서 Creative Korea? 대통령은 이 사실을 알까?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기사입력  2016/07/24 [20:13]
만약에 우리나라에 태권도나 중국 소림사와 같은, 어쩌면 그보다 더 큰 문화콘텐츠가 있다면? 설마 그런 게 있을까? 분명 존재한다. 문(文)의 콩깍지를 덮어쓴 한국(남한) 사람들 눈에는 그 보물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다시 만약에, 이순신 장군이 직접  《난중일기》를 남기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순신에 대해서, 그리고 임진왜란에 대해서 얼마나 제대로 알까?
 
자기 나라 역사에 대한 애착이 다른 어떤 민족보다 강한 한국인들이지만 조선 왕조에 국기(國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혹여 그걸 아는 사람들조차 무슨 이유인지 애써 무시하거나 부정하려 든다. 나아가 그 기예가 현재 지구상에 남아있는 유일무이한 인류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아는 문화전문가도 역사학자도 거의 없다. 왜 그럴까? 역사 교과서 어딜 뒤져봐도 그에 대한 기록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겠다.
 
조선의 역사, 아니 한반도의 역사는 모두 문사(文事)의 기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여 한국인들은 문사만이 문화인 줄 아는 편향된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다. 무사(武事)는 역사의 오점으로 인식되어 철저하게 지워졌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전해지는 한반도의 모든 역사는 오직 선비[文士]들이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여 남의 나라 무사[戰爭事]에는 경외심으로 열광하면서 정작 제나라 무사는 부끄러워 외면한다.
 
▲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기록유산에 등재된 북한의 '무예도보통지'의 인증서. 2016.7.7.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 7일 북한 중앙방송은 조선왕조의 공식 무예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가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음을 인증서와 함께 공개하였다. 기실 그 책은 서울대 규장각, 고려대, 육사박물관, 만해기념관 등에 여러 판본이 존재하지만 남한에선 그 많은 학자들과 문화재 관계자들도 무관심했다. 북한에도 한 질이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명나라 국기 척법 6기, 임진왜란 때 조선에 전해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 이여송(李如松)은 절강군(浙江軍)을 이끌고 조선전쟁에 참전하여 평양성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에 선조가 위무하는 연회에서 대승의 전략을 묻자 이여송은 척법(戚法)에 의거해 전투를 치러 이겼다고 자랑한다. 척법이란 명나라 해안지방을 노략질하는 왜구를 물리치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척계광(戚繼光) 장군이 남긴 병법서 《기효신서(紀效新書)》에 전하는 6가지 무예를 말한다. 척계광은 조선의 이순신처럼 왜적을 물리친 장수로 중국인들이 존경하고 있다. 절강군은 그가 길러놓은 병사들로 척가군(戚家軍)으로 불렸다.
 
이에 선조가 그 책을 좀 보여달라고 하자 이여송은 군사기밀이라며 거절한다. 결국 역관을 시켜 몰래 그 책을 훔쳐내어 유성룡에게 해독케 했으나 그도 못 풀어낸다. 하여 당시 조선에서 그 방면에 가장 뛰어난 한교(韓嶠)를 추천였으나 그도 마찬가지였다. 고민 하던 중 명군 참장 낙상지(駱尙志) 장군이 유성룡과 의기가 통해, 자신들이 돌아가고 난 다음 왜구가 다시 쳐들어오면 조선이 혼자 상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척법을 전해줄 테니 배워가라고 한다.
 
하여 조선군에서 날랜 병사 70명을 낙상지 부대에 들여보내 밤낮으로 척법 6기를 익힌 다음, 그들을 무예교관으로 각 부대에 파견하여 병사들을 훈련시킨다. 이후 같은 기예를 갖춘 명조연합군이 왜군을 물리쳐 왜란을 종결시켰다. 선조는 《기효신서》 중 척법 5기만을 따로 뽑아 《무예제보(武藝諸譜)》를 편찬한다. 현재 이 책은 프랑스 동양어학교 도서관에 남아 있다. 그렇게 지원군을 통해 명나라 국기인 척법이 조선에 전해졌지만 명나라가 망하면서 중국에선 그 실기가 사라지고 만다.
 
병자호란과 조선군 무예의 증보
 
임란 후유증으로 명이 흔들리자 후금(後金)의 위협이 가중된다. 이에 대비해 광해군은 다시 조선군의 무예체계를 보강한 《무예제보번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을 펴낸다. 기존의 《무예제보》에다 <권법>과 <협도곤> 등을 추가한다. 보병 위주의 왜군을 상대하던 척법만으로는 기마병을 상대하기에 적합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광해군의 폐위와 함께 이 책은 빛을 보지 못한다.
 
인조 때 병자호란을 치르고, 효종이 북벌을 하겠다고 무예에 힘을 쏟았으나 무위에 그친다. 숙종 때에는 김체건이 일본에 가서 검보를 구해와 조선군에 보급하였다. <왜검>과 <교전>이 그것이다. 영조 때 사도세자는 직접 무예를 익히며 신라의 <본국검>을 비롯한 조선 전래의 무예 9기까지 정리하여 종합적으로 체계화시켰는데 그것이 바로 십팔기였다. 그가 서무를 대리청정할 때 18가지 기예와 응용종목인 마상기예 4기를 묶어 《무예신보(武藝新譜)》를 편찬케 하였다.
 
정조는 이덕무 박제가 백동수로 하여금 부친의 업적을 기리며 그간의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부록으로 군사오락인 <마상재>와 <격구>를 더해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편찬케 한다. 2백여 년에 걸쳐 동양3국의 군사무예의 정수들을 뽑아 조선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이에 정조는 친히 쓴 서문에서 “사도세자의 뜻에 따라 십팔기의 명칭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밝혀 ‘십팔기’를 고유명사화하였다. 한민족 상무정신의 결정체라 하겠다.
 
▲ 조선 정조 때 편찬한 《무예도보통지》. 서울대 규장각, 고려대, 육사박물관, 만해기념관 등에 여러 판본이 남아있다.     © 한국무예신문

조선의 국기 ‘십팔기’ 교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이렇게 조선 중기 한반도에서 두 차례의 국제전을 치루며 피와 땀으로 만든 십팔기로 이후 조선군을 훈련시켰으며 무과의 시험과목으로 삼아 나라를 지켰다. 허나 군사무예의 숙명상 그 기예는 조선의 멸망과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에 유도 검도 등 일제식민무도가 대신하게 되고, 70년대 중국무술이 유행하면서 십팔기는 그 이름조차 중국무술로 오인 받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현재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 전하는 무술은 군사무예가 아니고 모두 민간에서 흘러온 호신술들로 ‘무술’이라 한다. 우리 역사에서 ‘십팔기’ 외의 다른 무예는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중국 역사에도 ‘십팔기’란 명칭은 없다.
 
천우신조로 조선의 멸망과 함께 사라진 줄 알았던 무예 십팔기가 오공(悟空) 윤명덕(尹明德) 선생과 그의 제자 해범(海帆) 김광석(金光錫) 선생에 의해 전승되어왔다. 85년부터 해범 선생의 제자들로 구성된 (사)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가 그 실기를 전승 보급하는데 주도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경복궁, 남한산성, 수원화성, 진주성 등에서 전통무예를 문화관광상품으로 시연하고 있는데, 그 기예가 모두 십팔기이거나 십팔기에서 유래한 것들이다.
 
국기마저 북한으로 넘어가면?
 
어찌되었던 북한에서 먼저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가치를 알아보고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기록유산에 등재를 하였다. 그러니 한국 정부는 이제라도 남한에 산재되어 있는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판본들을 전수조사하고 이 책들을 보물로 지정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남북한이 협조해서 이 책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시켰으면 한다.
 
그나마 다행히 북한에선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실기인 ‘십팔기’가 전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이미 남한에서 그 실기가 해범 선생과 보존회에 의해 책과 영상으로 모두 공개되어 남한에서도 이미 여러 십팔기 유사단체가 생겨난 마당에 북한이라고 해서 그 실기를 복원하지 못할 것도 없겠다. 그런 다음 기록유산 등재를 기반으로 십팔기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한다면 ‘아리랑’처럼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왜냐하면 기록유산과 달리 십팔기는 그 등재만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것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가 남긴 그 많은 고대병장무예 중 현재 온전하게, 그것도 완벽하게 교본과 함께 실기가 남아있는 것은 십팔기가 세계에서 유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게 되면 전세계인이 이를 배우러 올 것이기 때문에 그 부가가치는 다른 문화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 고대병장무예의 종합이자 결정판으로서 그 콘텐츠의 가치는 작금의 태권도와 중국 소림사를 합친 것보다 더 클 것이다.
 
매 정권마다 ‘문화융성’을 외치며 전통 문화를 발굴, 보존, 활용하여 국부와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천명해왔다. 보물을 깔고 앉아있으면서도 그 가치는 고사하고 그 존재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으면서 ‘문화 창조’ ‘일자리 창출’을 외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다. 대통령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제발이지 이제라도 저자거리 관광상품으로 전락한 조선의 국기 십팔기의 실태조사에 나서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 (사)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  

십팔기는 국가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과학은 가장 먼저 국방에 사용된다. 큰 전쟁을 치르면 반드시 새로운 무기와 그것을 다루는 기예, 전술체계가 개발되게 마련이다. 십팔기는 당시 최고의 과학이자 국방기예였다. 십팔기는 중국무예 6가지, 일본검법 3가지, 조선무예 9가지(응용종목인 마상기예 4가지 포함)이다. 오천년 역사에서 우리가 주도적으로 동양3국 문화를 집대성하여 체계화시킨 건 십팔기가 유일하다. 왜란과 호란을 혹독하게 치른 결과물인 것이다.
 
무엇보다 십팔기는 중국무술처럼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에서 만든 국가의 무예이다. 이게 국기가 아니면 무엇을 국기라 할 텐가? 당연히 국가의 소유여야 하고, 국가가 보호하고 전승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겠다. 지금처럼 내버려두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의 직무유기이다. 누천년 제 나라를 지켜온 국기를 일개 굿이나 잡희, 잡기만도 취급을 않는 나라가 무슨 문화융성을 운운 하는가? 대한민국이 5천년 역사의 적통이고자 한다면 당장 사관학교에서부터 십팔기 중 한 종목이라도 가르쳐야 한다.
 
제 나라 국기도 모른 채 외쳐대는 자주정신, 상무정신, 과학정신, 통일정신, 역사관, 민족혼이 왜 공허하기만 한지를 이제 알 것 같다. 그러다가 이번에 북한한테서 미사일보다 더 큰 걸로 한 방 먹었다. 사드 배치에 보여주는 국민들의 비겁한 행태도 결국 무사(武事)의 외면에서 생긴 무덕(武德)의 결여 때문이라 하겠다. 말[文]로만 외쳐온 ‘애국’의 민낯이 들통난 것이다. 이제 국기까지 북한으로 넘어가게 생겼다. 종묘사직을 맨손이나 낫으로 지켜온 것 아니다. 십팔기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민족정신이 바로 선다. 상무정신을 상실한 민족은 국가라는 공동체를 영위할 자격도 능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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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7/24 [20:13]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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