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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띠에 새겨진 이름, 어느 쪽이 옳을까?
“태권도 띠는 세로로 글씨를 양쪽에 쓸 때는 중요한 소속을 자신의 왼쪽에 먼저 쓰고 자신의 오른쪽에는 이름을 쓴다.”
 
이송학 박사 기사입력  2016/07/25 [20:24]
▲ 이송학 박사     ⓒ 한국무예신문
태권도에 입문하게 되면 제일먼저 도복을 입고 허리에 띠를 둘러맨다. 가장먼저 매는 띠가 하얀띠이며 일정기간동안 수련 후 더 높은 띠로 올려 바꿔 맨다. 몇 번의 띠바꿈을 하면 숙련성을 인정받아 빨간띠를 매고 검은띠를 딸 수 있는 승단심사에 도전을 하며 승단심사에 합격을 하면 드디어 꿈에 그리던 검은띠를 맨다.
 
검은띠를 맨다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수많은 인고의 시간을 수련을 통해 승화시켰음을 인정받는 것이다. 검은띠는 그 자체가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며 후배를 지도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 검은띠로 인해 태권도장의 질서가 잡히고 수련체계가 굳건히 성립된다.

검은띠는 마치 군대의 계급장 같은 것이다. 그래서 띠에 노란색 글씨로 선명하게 자신의 소속과 이름을 자랑스럽게 새긴다. 검은띠에 소속과 이름을 새기는 순간 소속된 단체의 명예를 지켜야 하고 검은띠에 걸 맞는 실력을 유지하도록  수련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이 뒤 따르며 그리하도록 요구한다.

도복위에 맨 검은띠는 유단자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너무 짧거나 길면 안 되고 너무 얇거나 두꺼워도 검은띠의 권위에 손상을 준다. 하단전 앞에서 매듭을 지은 후 두 자락의 띠가 양쪽으로 같은 길이로 위엄 있게 내려와 소속과 이름을 환하게 빛내주어야 한다.

태권도 종주국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왜 우리나라 유단자들은 띠에 새긴 이름의 위치가 왼쪽, 오른쪽 통일됨이 없이 제각각 띠를 맬까? 태권도에 관한한 모든 분야에 걸쳐 종주국의 책임과 의무는 무한하다는 생각으로 이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1. 국민들의 주소와 문패(명찰)에 관련된 최초의 규정

표1) 구한말(조선말기) 제정한 문패(명찰)에 관한 법령집(1894년)
 위 의안은 고종황제가 제정한 ‘명찰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법령’ 이며 법령집의 중요 관심부분은 「揭之門首(게지문수)」부분으로 관직이 가장 높은 총리부터 벼슬이 없는 평민에 이르기까지 ‘주소와 이름을 문 위에 높이 달라’고 되어있다는 점이다.

2.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명찰부착 위치

“1905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해간 을사조약과 1907년 군대해산을 계기로 일본에 저항하는 의병활동이 다양한 형태로 전국에서 일어났으며 일본군의 대토벌작전으로 24,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역사문제연구소, 2001)
 위 사진은 1909년 ‘남한대토벌’이란 이름으로 호남의병에 대해 대대적인 진압작전으로 체포된 호남의병장들이다. 일본군은 그들을 포로로 삼아 왼쪽가슴에 명찰(포로번호)를 달았다. 1938년 일제의 ‘국가총동원령’ 시기에 한국학생에게 국방색 교복을 입혔으며 자신의 왼쪽 가슴에 단 이름표가 보인다.

3. 일제강점기 광복군 군복의 명찰
 1940년에 창설하여 독립운동을 한 광복군의 군복에 명찰은 보이지 않는다.
 
4. 6·25 한국전쟁 기간에 미군 해병대 군복 및 한국군복

해방이후 1948년 8월15일까지 3년 동안 한국은 미군이 통치를 하는 미군정의 시기였으며 “1946년 9월부터 미 군복 보급이 시작되었고 1953년7월까지 일본군 군복을 계속 지급받아 원형 그대로 착용하여 6·25전쟁 때까지 혼용했으며 1954년부터 국군도 미군 전투복과 유사한 형태를 취했다.”(백기인, 네이버 블로그 2016)

위 6.25참전 학도병 사진의 명찰이 우측 가슴에 있는 것으로 보아 명찰의 부착 위치가 일본군의영향인 왼쪽가슴에서 미군의 영향인 오른쪽 가슴으로 이동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1954년부터 해병대는 우측에 명찰을 달았다. 6·25전쟁 당시 미 해병대와 연합작전을 수행하면서 영향을 받았으리라 본다.”(네이버 지식백과, 2016)는 기록으로 보아도 그러하다.

5.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초등학교

‘교동초등학교’로 서울 북촌에 위치하며 1894년 9월18일 고종이 「관립 교동왕실학교」
란 이름으로 세웠다. (조선닷컴, 2015.9.17)
 학교현판이 교문 밖에서 볼 때 출입문 오른쪽에 달려 있다.
 
6.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중등교육기관
‘배재학당’으로 미국인 선교사「아펜젤러」목사에 의해 1885년 세워졌으며 현재의 ‘배재중·고등학교’ 이다. (조선닷컴, 2015.9.17)
 고등학교현판이 교문 밖에서 볼 때 출입문 오른쪽에 달려 있고 왼쪽에 중학교 현판이 달려있다.
 
7. 우리나라 최초의 교복
 
“교복은 단체생활을 원활히 하고 학생에게 면학의식을 갖게 하기위해서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다. 따라서 교복은 신분과 소속감, 유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이 되며 학생의 공식적인 의복, 즉 정장의 역할을 한다.”(네이버 지식백과, 2016)
1886년 이화학당 최초의 학생들
 우리나라 최초의 교복은 1886년 5월31일 설립된 이화학당의 무명저고리였으나 이름표는 없으며 그 이후의 교복에도 보이지 않는다.
1924년 이화학당졸업식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0년대에 한국학생들에게도 전투태세를 갖춘 제복을 통일하여 착용하도록 하여 여학생들은 ‘몸뻬’라는 작업복바지에 블라우스를, 남학생은 국방색 교복을 입었다.”(네이버 지식백과(교복), 두산백과,2016) 

8. 과거와 현재 학생의 교복에 다는 명찰위치
 
1958년 11월 3일 학생의 날 기념행사
(왼쪽가슴에 명찰 부착함)
태인고 제26회졸업(1979년)
(오른쪽가슴에 명찰 부착함)
 현재의 교복
(왼쪽가슴에 명찰 부착함)

 9. 사진으로 보는 교복의 이력서 (서울교육박물관, 2016)
 대한제국 60 ~ 70년대 현재

 “1894년 갑오개혁이후 각종학교들이 많이 세워졌으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교육제도와 학교생활이 그대로 들어와 조선의 근대교육은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김한종, 2016)
 
왼쪽 가슴에 명찰을 다는 것은 일제의 영향이라 할 수 있고 현재까지도 비판적 수용 없이 이어져 오고 있으며 국가기관이 교복을 제복으로 지정하지 않아 명찰에 대한 규정은 학교마다 다르며, 오른손잡이가 대부분인 학생들이 왼쪽가슴에 달고 떼기가 편하므로 자연스럽게 정착된 듯하다.

10.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오른쪽 가슴에 부착한 명찰 (서울교육박물관, 2016)
1963년 ‘서울사범대학 부설 교육행정연수원’ 수료 기념 1975년 ‘새마을 연수’ 기념 1970년대의 교련복
 
자신의 오른쪽 가슴에 명찰을 다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미국의 영향으로 도입되었다고 사료되며 군복이나 경찰복처럼 제복으로 지정되지 않은 복장의 명찰은 오른쪽이나 왼쪽에 혼용하여 달고 있다.
 
11. 전통사상에 의한 명찰표기

“예절의 방위는 집이 어느 방향으로 향했든 남향한 것으로 간주하는 거니까 문밖에서 보아 좌측은 서쪽이고 우측은 동쪽이 된다. 문패나 간판의 위치는 세로로 내려썼을 때는 동쪽에 붙여야 하고 가로로 썼을 때는 서쪽에 붙여야 한다.
 1924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인 ‘경성제국대학’의 현판은 문 밖에서 볼 때 우측에 달았으며 1926년 추가로 개설된 법문학부 현판은 왼쪽방향으로 이어 달았다.

12. 현재 군인의 소속과 명찰 위치
표2) 대한민국 군인 복제령, 네이버 위키문헌 2016
 부대마크 - 기본적으로 왼팔에 부착한다.
 명찰 - 상의 우측(상대방이 보기에 좌측)주머니 위에 부착한다. 상의 좌측가슴 주머니 위에는 소속군 휘장, 태권도 유단자 휘장, 예비군 휘장을 부착한다.

13. 현재 경찰의 이름표 다는 위치
표3)경찰 복제규칙, 경찰청 2016
 이름표는 우측 윗주머니 중앙 위에 붙여 단다.
 
14. 태권도 관련 현판 사진의 소속 위치
태권도현판(단체명)은 문 밖에서 볼 때 동쪽인 오른쪽에 달았다.
 
15. 태권도 띠에 소속과 이름을 새긴 시기
안타깝게도 문서와 사진 등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

16. 국기원 발행자료
 “유단(품)자가 되었을 때야(비로소) 띠의 왼쪽에는 소속, 오른쪽에는 본인의
 이름을 새길 수 있다.”(국기원 지도자연수원, 2014)
 
조선시대 16세 이상의 성인남자는 반드시 호패를 가지고 다녀야 했으며 집집마다 따로 문패를 달도록 법으로 정한 것은 광무연간(1897-1906)으로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완전한 자주적 독립권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행한 여러 내정개혁 중 하나이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에는 일제의 영향으로 왼쪽 가슴에 명찰을 달았고, 일제의 영향을 벗어난 이후에는 미국의 영향으로 오른쪽 가슴에 명찰을 달기 시작하였으며’ 정통성 있는 명찰 부착 위치는 국가가 제복으로 지정한 군복이나 경찰복으로 볼 때 자신의 오른쪽이다.

국기태권도의 정통성 확보와 태권도 종주국의 정체성 확립차원에서 태권도띠에 이름을 새기는 위치를 정하고 강조하여 통일 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글쓰기 방식은 가로쓰기 글을 쓸 때는 서양의 영향으로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쓰며, 세로쓰기 글을 쓸 때는 한문의 영향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한다. 지금까지 제시한 조사 자료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결과를 추론할 수 있다.

1. 세로로 쓴 글씨 하나만 달 때는 출입문 동쪽에 단다. (밖에서 볼 때는 오른쪽)
두 번째로 달 때는 왼쪽방향으로 이어서 다는데 학교와 태권도 세로 현판에 해당하며 명찰 없이 학교마크만 달 때는 자신의 왼쪽에 단다.

2. 가로 명찰은 가급적 높은 곳에 다는데 왼쪽부터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간다. 경찰과 군인은 자신의 오른쪽 가슴에 이름을 새기고 왼쪽 팔에 소속을 새긴다.

3. 태권도 띠는 세로로 글씨를 양쪽에 쓸 때는 중요한 소속을 자신의 왼쪽에 먼저 쓰고 자신의 오른쪽에는 이름을 쓴다.

참고문헌 및 자료
경찰청(2016). 경찰 복제 규칙
국기원지도자연수원(2014). 3급 태권도 지도자 연수 교재. 49쪽
국회도서관(2016). 한말근대법령자료집
김정자(1997). 한국군복의 변천사 연구. 서울: 민속원
김재찬(2016). 문패 간판의 위치, 횡서 종서가 달라外. daum 블로그
김한종(2016). 학교는 언제 처음 생겼나요? 서울: 책과 함께
백기인(2016). 복제의 변천. 네이버 블로그
서울교육박물관(2016). 박물관 내 전시품
역사문제연구소(2001).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의 역사 3. 서울: 웅진닷컴
이서규(2009). 사진으로 본 일제시대의 잔영. 서울: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이승원(2007). 학교의 탄생. 청아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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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7/25 [20:24]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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