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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질로 날 새는 이상한 나라 코리아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주먹질 민족은 문화창조 할 수 없어! 주먹질의 뿌리는 노예근성!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기사입력  2016/08/06 [22:50]
요즘 결혼식 풍경을 보면 참 가관(?)일 때가 많다. 엄숙함은 간 데 없고 온통 아마추어들의 삼류 오락 쇼 흉내내기를 방불케 할 때도 있다. 며칠 전 어느 결혼식에서 식이 끝나고 기념사진 촬영 때의 일이다. 신랑 신부 친구들끼리의 촬영에서 사진사가 주먹을 쥐라고 하자 일제히 주먹을 내지르며 깔깔대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 고개를 돌려 나왔다.
 
얼마 전 필자의 글을 본 어느 독일 거주 여성재외동포의 이야기다. 그동안 자주 한국을 오가며 동포모임을 이끌면서 온갖 행사를 가졌는데, 그때마다 일제히 주먹질 기념 촬영을 해왔었다고 한다. 필자의 지적을 받고서야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 독일인 남편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 남편 왈, 자기는 필자의 주장이 옳다고 여긴다고 했다. 그런데 당신도 나와 같이 행사에 참가하고 그때마다 사진을 찍지 않았느냐고 하자, 남편은 그렇지만 자기는 한 번도 주먹을 쥐지 않았단다.
 
왜 그런 자리에서 주먹을 쥐어야 하는지 본인은 그 이유를 찾지 못했기에 그냥 바로 서있었을 뿐이란다. 결혼한 지 30년이 지나는 동안 왜 그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당신네 나라의 관습인줄 알았다. 한국의 관습을 존중은 하지만 동조는 할 수 없었다.”고 해서 그 부인이 엄청 충격을 받았었다고 했다.
 
4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선수촌 한국선수단 숙소를 찾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주먹질이 빠질소냐! 신문에는 ‘모두 파이팅!’이란 제목을 붙였다. 헌데 ‘모두’가 아니다. 함께 선 두 명의 서양 신사는 주먹을 쥐지 않았다. 분명 그 독일인 남편과 같은 생각을 가졌으리라. 그리고 속으론 ‘주먹질하며 기념 촬영을 하다니, 별꼴이네!’라며 어이없어 했을 것이다.
 
▲ 모두 파이팅!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이 4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선수촌 내 한국 선수단의 숙소를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6.8.5.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이 4일(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선수촌을 방문, 난민 올림픽팀 선수 등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2016.8.5.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개념이 없으면 주먹질도 한류(韓流)!
 
이 나라에서 매일같이 온갖 행사가 벌어지고 그때마다 기념사진을 찍는데 모조리 주먹질이다. 이젠 도무지 그냥 못 찍는다. 바로 선 자세로 찍으면 마치 양념 빠진 요리 먹는 것 같은 기분인가 보다. 여성연예인은 물론 여성대통령조차 가는 곳마다 ‘김치-!’에 주먹질 기념사진이다. 아무리 풍습(風習)이란 게 부지불식간에 형성된다지만 이 주먹질을 한민족 시속(時俗)으로 받아들이기엔 영 거북살스럽다.
 
언제부터 이 땅에 주먹질이 유통되기 시작했을까? 먼저 주먹질 하는 나라부터 살펴보자! 일본, 북한, 그리고 한국이다. 일본의 정계와 노동계에서 ‘투쟁’을 외칠 때 주먹질을 한다. 군국주의의 유습일 것이다. “천황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치자!”면서 주먹을 뻗었을 거다. 다만 한국과는 달리 주먹을 쥐고 팔을 앞으로 쭉 뻗는 모양새다. 그렇지만 일본에선 명확하게 ‘투쟁’의 용도로만 사용하지 우리처럼 아무 때나 기념으로 주먹질 하지는 않는다.
 
그 다음, 북한이다. 사실 남한의 주먹질은 북한에서 내려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미제국주의 타도, 적화통일의 전의를 불태울 때 주먹을 세워 구호를 외쳤다. 남한은 민주화투쟁과 노동투쟁 때 이걸 배워왔다. 냉전시대에는 주먹이 곧 공산당 노동당의 상징과 같은 이미지였기 때문에 감히 흉내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전두환 정권 때부터 데모 현장에 등장하여 ‘님을 향한 행진곡’ 등 투쟁 가요 박자에 맞추다보니 지금과 같은 주먹질로 정형화되었다.
 
이 “쳐부수자!” “싸우자!” “때려부수자!” “쟁취하자!” “물러나라!”가 어느덧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 “이기자!” “파이팅!” “할 수 있다!” “잘해보자!”로 순화되면서 투쟁과는 아무 상관없는 행사의 기념사진에까지 진출했다. 그러니까 모이기만 하면 ‘단합’을 강조한다면서 주먹질을 해대는 것이다. 당연히 그 앞에는 ‘도망가지 말고 다 같이’가 생략되어 있다. 자고로 혼자서 싸우는 하인(노예)은 없기 때문이다.
 
‘주먹질’은 ‘파이팅’의 콩글리시
 
사실 ‘투쟁’과 ‘파이팅’은 그 의미가 똑같다 할 수가 없다. ‘파이팅’은 그저 ‘힘내자’ 정도의 의미뿐이다. 그마저도 손바닥을 겹쳐 모우거나 손바닥을 서로 맞부딪히는 걸로 대신한다. 분명한 것은 전 세계 어느 민족도 우리처럼 주먹질로 ‘파이팅!’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반정부 투쟁, 노동쟁의 등 어떤 시위에서도 주먹질을 하진 않는다. 왜? 주먹질은 욕질이기 때문이다. “엿 먹어!” “감자먹어!”로 가운데 손가락 세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는 자기 존엄을 포기했을 때나 하는 짓이다.
 
예전에 정부는 ‘다이내믹 코리아’를 내세웠었는데 그 또한 실은 난센스였다. 사전적으로야 ‘역동적인’ 이 되겠지만 정서적으로 서구인들은 ‘다이내믹’하면 ‘갱스터’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니까 ‘다이내믹’이나 ‘주먹질 파이팅’이나 다 영어로 치면 콩글리시인 셈이다. 이 주먹질이 다이내믹한 한국인의 정서와 궁합이 맞아떨어진 것이겠다. 마치 ‘치맥’처럼!
 
아무렴 이같이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행위에 대한 민족마다의 인식코드가 다르거나 심지어 반대적일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것도 아닌 천박한 주먹질을 아무 생각 없이 배워 따라한다는 건 가뜩이나 주체성 부족한 한민족 근성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결론적으로 주먹질은 제 얼굴에 침뱉기다! 우리끼리 아무리 ‘파이팅!’이라 우겨도 세계인들은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누구도 주먹질을 귀엽게 봐주지 않는다. ‘남다름’을 한국인들만의 '루틴(Routine)'인 양 마냥 자랑스러워할 순 없다는 말이다.
 

‘Why?’가 없는 민족은 노예민족
 
민중(民衆)이란 말은 피지배계급으로서의 일반 대중을 일컫는다. 동물의 세계에서 힘이 약한 종일수록 무리를 크게 이룬다. 떼짓기, 부화뇌동으로는 지배계급이 되지 못하는 평민, 하인, 노예의 근성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에서부터 파생되는 게 냄비근성, 선동, 표리부동 등이겠다. 그리고 그것이 썩으면 모방, 표절, 무책임, 무사안일, 현실안주, 님비근성, 연고주의, 이기주의가 곰팡이처럼 꽃을 피우는 것이다. 방부제 없는 사회란 곧 ‘Why?’가 없는 사회를 말한다.
 
하인(노예)에겐 ‘Why?’가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 책임도 없고, 감히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다. ‘Why?’는 주인만의 권한이자 책임이기 때문이다. 해서 ‘철학이 없다’는 건 바로 ‘노예’와 동의어라 할 수 있다. 그들에겐 복종의 의무 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창조’ ‘창의’ ‘모험’ ‘선도’는 주인의 몫이자 능력이다. 그러니 주인장 의식을 못 가진 민족은 모방과 표절에 열심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는 먹고 사는 것 이상의 것을 꿈꾸지도 못한다. 동물농장 북한이 이 시대에 존속할 수 있는 이유, 한국이 선도적인 국가로 발돋움 못하는 이유도 분명 이 때문일 것이다.
 
주인은 무리 짓지 않는다. 하인들과 같이 섞여서 주먹질 못한다. 사진사가 시킨다고 주먹을 쥐면 주인이 아니다. 선동질에 넘어가는 걸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스스로에게 ‘Why?’하고 물어서 논리가 성립되면 혼자서라도 나선다. 왜? 주인이기 때문에! 리더이기 때문에! 주체성이 강한 민족, 철학이 있는 민족은 사소한 것을 받아들일지라도 습관적으로 먼저 ‘Why?’ ‘내가 왜 이걸 해야지?’ 하고 자문한다. 그게 안 되면 제 아무리 지식인입네, 투사입네 해도 모두 하인(노예)일 뿐이다.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을 두고 근사한 말로 ‘문화사대’라고 한다.
 
말로는 ‘세계화’ ‘글로벌’을 외치며 남들 즐기는 건 다 따라하면서 유독 ‘글로벌 매너’를 얘기하면 “우리가 왜 서양 것을 따라해야 해?” “서구사대주의!”라며 매도하려드는데, 기실 그 근저에는 ‘귀찮니즘’이라는 하인(노예)근성이 도사리고 있다 하겠다. 게다가 남들까지 따라하지 못하게 훼방까지 놓으려는 저급한 근성까지! 왜냐하면 떼를 짓는 짐승은 언제나 큰 무리 쪽으로 붙으려는 타성이 있어 자신이 속한 무리가 적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오후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하나투어 스마트워크센터를 방문, 직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2016.8.5. [청와대]    

주먹질 하나만 고쳐도 주인의식 가진 선진시민!
 
주인의식 부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병폐임을 부정할 사람 없을 것이다. 뻑하면 감방을 들락거려 회사 이미지에 똥칠하는 오너들. 그러고서 직원들더러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한다. 주인도 모르는 주인의식을 어떻게? 그러니까 주인을 잘 모시는 게 주인의식인 줄 착각하고 하는 소리인가?
 
공무원? 일 더한다고 돈 더 주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창조? 혁신? 그걸 왜 우리가 해야 해? 그런 건 주인인 사장이나 대통령이 해야지? 그게 민중의식이다. 하인 방식의 ‘Why?’다. 그들에게 ‘Why?’는 ‘No!’다. 보상이 없는 일엔 절대 안 나선다. 그러다가 분에 넘치는 걸 가지게 되면 그때부터 갑질이다. 하인의 세계관에선 갑질이 곧 주인행세인 줄 아니까. 그 갑질은 을질로 살아온 삶에 대한 한풀이다. 그러니 작금의 한국사회가 타락하는 것은 필연이라 하겠다.
 
그 예전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었다. 조선 선비의 세계관이 중국을 넘어가지 못했었다. 하여 중국의 예법을 배워 중국인들에게서 동방예의지국이란 소리를 듣는 게 곧 글로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이 시대에 맞게 글로벌(서구가 아니라) 소통매너를 익혀 주류사회의 선도적 일원이 되자는데, 그걸 굳이 서구문화 사대주의라며 거부한다면 한국은 영원히 아시아의 변방국으로 머물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일이다.
 
글로벌 매너란 인격에 대한 인식, 자기 존중, 상대방에 대한 배려, 인간존엄성 확보에 기반한 적극적인 교섭매너다. 과거에 조선 선비들이 공자의 가르침을 익혀 중국 중심의 글로벌 무대에서 문명인으로 존중 받았듯이 지금은 글로벌 매너를 익혀 세계의 선진문명국의 일원으로 존중받자는 게 왜 그리도 싫고, 귀찮고, 두렵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던가?
 
중국이 무서운가? 사드가 싫은가?
 
떼거리 주먹질로 정부를 협박해 내 고장을 지키겠다? 사드란 첨단무기 대신 ‘평화’란 입발림으로 북한 핵을 막아내고 중국을 설득해내겠다? 상소문 들고 천안문 광장에 엎드려 감히 대국에 역린(逆鱗)한 죄를 고하고 용서라도 빌 텐가? 왜 북한이나 중국에 대고 주먹질하면 안 되는가? 신의를 중시하는 동방예의지국이어서인가, 아니면 용기가 없어서인가? 전쟁나면 하필 왜 내 땅에서 싸우느냐고 주먹질 삿대질이나 해댈 텐가?
 
허구한 날 주먹질! 하인(노예)국의 숙명인가? 스스로 해방되지도 못했고, 스스로 나라를 지키지도 못했던 민족의 수치심에 대한 반발인가? 세계인들에게 우린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하고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가? 아무렴 그도 이제 그만큼 했으면 됐다. 그런다고 세계가 대한민국을 영세중립국으로 보호해줄까? 제발이지 신념이니 평화니 하는 역겨운 포장 벗어던지고 솔직하게 님비근성이라고 하자. 그래야 타협도 쉽다! 협상은 주먹질이 아니라 말로 하는 것이다. 복잡하게 주변을 끌어들이지 말고 당사자끼리 그곳에서 매듭지어라! 그런 게 차라리 주인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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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8/06 [22:50]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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