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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호대전투(鄗代戰鬪)
 
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6/08/0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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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개 서상욱     ©한국무예신문
BC 250년, 장평(長平)에서 진에게 패한 조는 45만의 군대를 잃었다. 대대로 조와 우방이던 연은 지원하지 않았다.
 
연왕은 율복(栗腹)을 조로 파견해 황금 500금을 바치며 조왕의 무병장수를 빌었다. 조의 내실을 탐지하려는 속셈이었다. 귀국한 율복은 조의 장정 대부분이 장평에서 죽었으므로 아이들이 자라기 전에 공격하면 쉽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의 보고가 연왕의 야심을 자극했다. 악의(樂毅)의 아들 악간(樂間)은 반대했다.
 
“조는 적국으로 둘러싸여 수많은 전쟁을 겪었습니다. 전쟁이라면 이골이 난 나라입니다.”
 
연왕은 악간의 말을 무시하고 50만의 군대를 셋으로 나누었다. 연왕도 친히 출전했다. 대부 장거(將渠)가 연왕의 말고삐를 만류했다. 연왕은 화가 나서 장거를 하옥하고 승리한 후에 참수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협력하여 진에 대항해야 할 두 나라가 전쟁을 펼쳤다.
 
조의 장군 염파와 이목은 적의 정황을 냉정히 분석했다. 연군은 대규모 전쟁의 경험이 없고 지휘관 율복이나 경진은 무능하다고 판단했다. 장평에서 대부분의 주력을 잃었지만 연군을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조는 15세 이상의 장정을 소집해 신군을 편성하고 염파와 이목이 지휘했다. 율복이 지휘하는 연의 제1군이 조의 북쪽 요충지 호성을 포위했다. 염파는 일부 병력을 호성으로 파견하고, 호성에서 한단으로 통하는 대로 양쪽에 복병을 숨겼다.
 
조의 원군이 호성에 출현하자 율복은 호성을 악승에게 맡기고 친히 주력부대를 이끌고 조의 원군을 공격했다. 연군은 조의 선봉부대를 가볍게 격파했다. 율복은 초전의 승리로 흥분하여 주력부대로 조군을 추격하다가 복병을 만났다. 간신히 도망친 율복은 악승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도주했다. 퇴로가 차단된 악승의 부대도 북쪽으로 도주했다.
 
염파는 악승을 조로 귀순시켰다. 율복과 경진이 이끄는 연군 40만 명이 전멸했다. 연왕은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해 철수했다. 승세를 탄 조군은 연의 수도 계성(薊城)까지 포위했다.
 
호대전투는 전국시대 전쟁 가운데 비교적 큰 규모였지만 결과는 싱겁게 조의 승리로 끝났다. 연은 조가 장평에서 참패한 틈을 노려 일거에 조를 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수도가 포위되는 곤경에 처했다.
 
일반적으로 병력이 우세하면 이기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반드시 상식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 전쟁의 묘미이다. 연왕은 욕망에 비해 지략과 판단능력이 부족했다. 이익이 우선인 시대였지만, 최소한의 도리마저 어기고 제 무덤을 판 꼴이 되었다.
 
연의 병력은 조군의 5배였지만 셋으로 분할한 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세 부대는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못했다. 염파는 병력을 집중하여 각개 격파했다. 아무리 강자라도 주장의 지휘능력이 없다면 무모하게 승부를 서둘 가능성이 높다. 조는 장평에서 45만의 병력을 잃고 수도까지 포위됐으며 백성들도 패전의 후유증에 시달렸다.
 
이러한 시기에 우방인 연이 갑자기 침공하자 조의 군주에서 백성들에게 이르기까지 분노심이 극에 달했다. 염파는 이러한 백성들의 심리를 이해했다. 동원령이 떨어지자 수많은 젊은이들이 군문으로 모였다.
 
염파와 이목은 조가 자랑하던 당대 최고의 명장이었다. 두 장군은 분노를 이용하여 순식간에 강군을 만들었다. 그에 비해 연군은 우방 조를 공격하는 것이 군주와 일부 측근의 야욕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양군의 심리 차이가 전력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염파는 연이 강화를 요청하자 재빨리 계성의 포위를 풀고 물러났다. 전쟁의 승리보다 더 중요한 전략적 결단이었다. 그는 동방의 제와 서방의 진이 주적이라고 판단했다. 연을 완전히 멸망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그는 재빨리 주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강화조건으로 조에 우호적인 장거를 재상으로 임명하는 조건으로 전쟁을 종결했다. 염파의 유능함과 식견이 두드러진 것은 바로 이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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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8/07 [10:46]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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