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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태산관법(泰山觀法)
 
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6/10/1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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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개 서상욱     ©한국무예신문
중국의 태산은 우리에게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라는 시조로 친숙하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가보는 것이 낫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대륙을 차지한 후부터 개방하기까지는 그저 상상의 산이었다.

내가 본 태산은 높다고 하기보다는 우리나라의 지리산과 어딘가 닮은 느낌이었다. 이 시조는 경제개발시대에 노력하면 된다는 정부의 구호를 뒷받침하며 침체된 국민의지를 자극하기도 했다.

중국공산당의 핵심이자, 중공군의 최고사령관이었던 주덕(朱德)도 태산을 날아서 넘는다(飛過泰山)는 제목의 시를 지었다. 태산이 아무리 높아도 자기보다는 낮을 것이라는 호기를 담았다. 우리 시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제남 출신으로 풍옥상(馮玉祥)의 참모장과 중일전쟁 때는 국민당군사위원회 중장을 역임한 구산령(邱山寧)은 단정하면서도 힘이 넘치는 예서체의 달인이었다. 1931년 장개석이 풍옥상의 항일전쟁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자 갑자기 질병을 핑계로 태산에 은거했다.
 
이 무렵에 지은 그의 시는 민가에 가까울 정도로 소박하지만 태산에 대한 중국인의 생각이 가장 잘 들어있다. 태산의 혁명열사기념관에 새겨놓은 이 시에서는 태산의 포용력을 노래했다. 국민역량을 결집하여 항일전쟁에 매진하자는 풍옥상의 제안을 장개석이 뿌리친 것을 풍자했을 것이다.
 
나는 오르기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보다 더 두근거렸던 사람도 있었다. 명의 동기창(董其昌)은 글씨는 물론 산수화의 대가였다. 지금의 상해 출신으로 만력 연간에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서길사(庶吉士)로 선발됐다.
 
서길사는 2갑과 3갑 시험에 합격한 진사 가운데 성적이 우수한 사람을 선발하여 한림원에서 실습을 하는 관직이다. 상당한 학문적 실력을 갖추었다는 증거이다. 한림원의 편수를 거쳐 황장자의 강관이 되었지만, 권력자들과 마찰을 일으켜 호광부사로 쫓겨났다.
 
그가 언제 태산에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제호 하나 정도라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서운했다. 언젠가 인사동에서 본 그의 필적이 그리웠다. 그러나 깔끔한 그의 오언율시와 글씨는 서운함을 달래준다.

백리간산안(百里看山眼), 초요대색분(迢遙岱色分).
응위천하우(應爲天下雨), 부단봉중운(不斷封中雲).
멀리서 눈에 들어오는 산, 아무리 멀어도 분명히 태산이구나.
천하에 고루 비라도 내린다면, 구름 속 봉선제도 끊이지 않으련만

.
명의 황제는 초기 몇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 정신이 무너진 상태였다. 그런 나라가 어떻게 오랫동안 버텼을까? 유학으로 무장한 강직한 신하들이 많았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었다.
 
양계성(楊繼盛)은 유명한 간관이었다. 1551년, 대장군 구란(仇鸞)을 탄핵했다가 좌천됐으며, 복직 후에도 유명한 간상 엄숭을 탄핵했다가 심한 고문으로 사망했다. 대정에 올라온 그는 다음과 같이 간단하지만 의미가 심상한 오언절구를 지었다.
 
남들은 모두 태산의 장엄함을 칭송했지만, 그는 태산에 올라보니 태산도 오히려 낮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공자도 태산에 올라 비로소 천하가 작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공자는 아래를 보았지만, 양계성은 하늘에 떠다니는 흰 구름을 보았다. 태산이 제일 높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욕소천하(志欲小天下), 특래등태산(特來登泰山).
앙관절정상(仰觀絶頂上), 유유백운환(猶有白雲還).
천하가 과연 작은가 보고 싶어, 특별히 태산에 올라갔다네.
가장 높은 곳에서 하늘을 보니, 오히려 흰 구름이 거기에 있더군.


태산에 왜 오르는가? 사람마다 다르지만 깊은 깨달음을 얻어야 제격이다. 우리나라 정치가들은 야심을 품고 정기를 받기 위해 올랐던 것 같다. 그나마 느낌을 남기지 않아 더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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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0/14 [10:28]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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