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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융회관통(融會貫通)
 
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6/11/2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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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개 서상욱     ©한국무예신문
근대 중국의 금석서화가 가운데 일본에까지 명성이 높은 두 사람이 있다. 서령인사(西泠印社)의 사장 오창석(吳昌碩)과 조지겸(趙之謙, 1829~1884)이다.

오창석의 작품은 간혹 우리나라에서도 구여할 수 있지만 조지겸은 생소하다. 자를 익보(益甫) 또는 휘숙(撝叔), 호를 철삼(鐵三), 냉군(冷君), 감료(憨寮)라고 했다. 34세에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슬픔을 담아 비암(悲庵) 또는 비옹(悲翁)이라고 호를 고쳤다.

어려서부터 서(書), 화(畵), 인(印) 등 3가지 부문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나 성품이 괴팍하고 오만하여 일생 동안 여러 가지 우환을 겪어야 했다. 광서(光緖) 초기에 관리가 됐지만 부임지인 강서(江西)의 관직사회는 어둡고 문란했다. 마침 프랑스인들이 도발해오자 적극적으로 격퇴하다가 격무에 지쳐 56세에 남성(南城)의 관사에서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아내 범경옥(范敬玉)은 과거보다는 새로운 예술을 개척하라고 권유했다. 예술가로서 성취를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 조지겸은 그렇게 했다. 30세가 되기 전에 군서박람과 전통예술수련이라는 고통의 과정을 겪었다. 34세가 되자 남들의 비방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40세가 지나자 그는 서예, 전각, 회화에서 전대의 규범을 넘어섰다.
 
사서체를 융회관통한 서예는 압권이다. 근엄하고 소박한 북비(北碑)의 서체를 유창하게 재창조한 그의 글씨는 눈웃음을 치는 것 같다가도 고아한 힘이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 글씨를 보고 지적했다.
 
“큰 글씨를 쓰기에 힘이 부족하지 않은데 자신의 글씨를 쓰지 못하는군요.”

그의 말을 인정한 조지겸은 소흥(紹興)으로 돌아가 몇 년 동안 두문불출한 끝에 마침내 자기만의 독특한 품격을 지닌 서체를 완성했다. 청대 중기 포세신(包世臣)이 북비를 추존한 이래, 오랫동안 진정으로 북비의 서체를 되살린 사람은 조지겸이었다. 

전각에서도 대단한 성취를 이룩했다. 그의 전각작품은 절파(浙派)와 환파(皖派)의 기법이 융합돼 있다. 한대(漢代)의 인장을 바탕으로 삼고, 진한과 육조시대의 금석문자, 경명(鏡銘), 서화에 찍힌 낙관들을 익혀서 유려하고 다채로운 기법을 창조했다. 오창석은 기이하고도 거리낌 없이 자유분방하여 절파를 일변시켰다고 평가했다.
 
회화에서도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석도(石濤), 서위(徐渭) 등 ‘양주팔괴(揚州八愧)’라는 창조성이 풍부한 화가들이 등장했었지만, 화단의 총체적 경향은 고풍을 벗어나지 못했다. 조지겸이 이러한 위축된 상황을 타파했다. 절강, 복건, 강서 등지의 명산대천이 그의 작품에서 되살아났다.

꽃그림은 새싹을 소재로 한 것이 많았다. 붓의 강유를 이용하여 새싹이 움트는 모습을 그린 것이 특징이다. 아름답고 신선한 자연이 그의 화폭 속에서 농염한 색과 다채로운 빛을 띠며 생기로 변한다. 소밀(疏密)을 대비하여 다양한 가운데에서도 통일된 구도가 돋보이는 그림은 치밀하면서도 깔끔하다. 화제와 낙관은 전체적인 구도를 감안하여 적절한 곳에 배치됐다.

조지겸은 위대한 예술가로서 서예, 전각, 회화 등에서 창조적인 성취를 이룩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근대예술 발전에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해 현대예술로 이어지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생전에 서호의 산수를 사랑했던 그는 강서에서 죽은 후에 친구들에 의해 항주의 정가산으로 옮겨졌다.

조지겸의 금석서화는 외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일본의 서화가들은 그를 아주 높이 평가했다. 1930년대에 항주를 찾았던 어떤 일본의 서화가는 그가 묻힌 산소를 찾아가 정중히 예를 표했다. 그는 조지겸의 산소 곁에 있던 ‘유월설(六月雪)’이라는 나무 몇 그루를 일본으로 가져가 자신의 정원에 심고 중국의 위대한 예술가를 기렸다고 한다.

정치적 추문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권력과 돈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 사회가 가야 할 종말이다. 권력과 돈은 짧고 예술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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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1/24 [10:08]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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