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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공사구분(公私區分)
 
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6/11/3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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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개 서상욱     ©한국무예신문
한궐(韓厥)은 춘추시대 강대국 진(晋)을 조(趙), 위(魏)와 삼분해 전국시대로 넘어가게 만든 한(韓)의 실질적 창업주였다.

한씨는 진무공, 헌공, 혜공 등 3조를 섬기면서 득세했지만 문공이 즉위하여 공족을 제거하면서 몰락했다. 부친이 일찍 사망하자 당대의 권신 조최(趙衰)가 한궐을 거두어 길렀다.

조최의 아들 조순(趙盾)은 한궐을 중시했다. 조순은 부친에 못지않은 안목을 지녔다. BC 615년, 진강공(秦康公)이 침공하자 조순은 한궐을 삼군사마로 삼아 군법을 관장하게 했다. 육경 다음의 지위였지만 나이는 고작 20세 남짓이었다.

총사령관 조순의 전차를 모는 무사가 진중을 함부로 치달으며 부대의 질서를 어지럽혔다. 한궐이 도부수를 시켜 군법에 따라 그를 참수했다. 사람들은 한궐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비웃었다. 그러나 조순은 한궐을 꾸짖기는커녕 오히려 칭찬했다.

“내가 일부러 군대의 질서를 어지럽혀 너의 반응을 보려고 했다. 이제 나는 마음을 놓을 수 있다. 네가 아니면 누가 나 이후에 집정이 되겠느냐?”

한궐은 공정하고 청렴했으며 법을 집행할 때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조순은 한궐을 혈육보다 더 아꼈다. 한궐은 엄격하게 법을 집행하는 사마이자, 유능한 무장이자, 공정하고 충직한 대신으로 이후에 대공을 세웠다.

필(邲)에서 진군이 초장왕에게 패하자 패업이 흔들렸다. 젊은 제경공(齊頃公)이 환공시대의 패업을 재현하려는 야망을 품었다.

BC 589년, 제경공이 위(衛)와 노(魯)를 침공했다. 새로운 집정 극극(郤克)이 전차 800승을 이끌고 구원했다. 대군이 황하를 건너 주둔지를 마련했을 때 극극의 심복부하 한 사람이 군법을 어겼다.

한궐은 의연히 법을 집행하여 그를 참수하라고 명했다. 놀란 극극이 곧바로 구하려고 달려왔지만 이미 형이 집행된 후였다. 노련한 정치가였던 극극은 심복의 수급을 공개하여 한궐의 체면을 세워주었다.

이후에 누구도 한궐의 군법을 어기지 못했다. 제경공이 패하여 도망치자 한궐이 부상을 입은 극극을 대신하여 추격했다. 제경공의 호위무사가 한궐을 향해 활을 겨누었다. 경공은 훌륭한 인물을 쏘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말렸다.

경공의 마차가 나무에 걸려 움직이지 못했다. 봉추보(逢醜父)가 재빨리 경공과 자리를 바꾸었다. 추격한 한궐이 봉추보를 경공으로 오인하여 그를 사로잡았다. 무사히 도망친 경공은 봉추보를 찾기 위해 3번이나 적진으로 들어갔다가 돌아와 통곡했다. 죽음을 앞둔 봉추보가 말했다.

“앞으로 군주를 대신하여 환란을 맡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극극이 죽음을 각오하고 자기의 군주를 살린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풀어주었다.

BC 585년, 초가 정을 공격했다. 집정 난서가 진군을 이끌고 정을 구원했다. 초군은 곧바로 철수했다. 진군의 내부에 논쟁이 발생했다. 주전파인 조동(趙同)과 조괄(趙括)은 싸우자고 주장했고, 순수(荀首), 범섭(范燮), 한궐은 반대했다. 철수령을 내리자 누군가 항의했다.

“성인은 많은 사람들과 뜻에 따라 일을 성취한다고 합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결전을 요구하는데 사령관으로서 왜 따르지 않습니까? 민심을 간파해야 합니다. 대원수의 보좌관은 11명이고, 그 가운데 3명만 결전을 반대합니다. 결전하자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상서에서도 세 사람이 점을 쳐서 두 사람의 의견에 따른다고 했습니다.”

“옳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반대하는 세 사람은 우리가 따라야 할 훌륭한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보다 훌륭한 사람들을 따르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일이다.”

국가의 지도자는 공사를 분명히 가려야 한다. 엄격히 법을 집행한 한궐의 공정함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인정한 조순과 극극의 정치적 감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탄핵의 위기에 처한 대통령은 그것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국기를 흔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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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1/30 [10:25]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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