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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인고(忍苦)의 세월 거쳐야 금선탈각(錦蟬脫殼)으로 날아오를 수 있어
 
신성대 주필(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기사입력  2017/01/01 [19:28]
▲ 신성대 주필     © 한국무예신문
자연현상에서부터 종교, 신화, 정치, 풍속, 인물, 건축, 예술작품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의 고유한 특성이나 미적 감각을 평할 때 사용된 용어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가령 격(格)이란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본 뜬 글자로 사물의 외형을 표현하는 글자로 여기서부터 골격(骨格), 격식(格式), 풍격(風格) 등의 용어가 만들어졌다. 그에 비해 품(品)은 상하 등급을 매기는 글자가 되겠다. 또 세(勢)란 원래 중국 고대에 전쟁에 관해 논할 때 사용했던 개념이다.
 
이처럼 자연물이나 자연현상, 인물이나 집단의 모양새나 행동거지 등의 정서나 기운, 특성을 형용할 때 쓰는 용어들로 때로는 서로 상통하거나 상관하기도 하고 중층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미학(美學)의 수많은 용어들 중 인간의 행(行)을 골(骨)․기(氣)․풍(風) 세 글자로 대별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를 수신(修身), 수행(修行), 공부(工夫, 쿵푸)의 자(尺)로 삼아도 되리라.
 
무엇을 하든 먼저 골기(骨氣)부터 다져야!
 
남송 소흥(紹興)20년(1150년)에 나이 10세인 신기질(辛棄疾)은 시상이 하늘의 별처럼 번뜩여 곳곳마다 빛을 발하는 청년시인이었다. 어느 추운 겨울철 아침, 신기질은 시집을 들고 막 읽으려고 할 때, 멀지 않은 매화나무 아래에서 학 같은 머리에 아이 같은 얼굴을 한 노인이 무술을 단련하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움직일 때는 바람 같고, 서 있을 때는 못 같은데, 솔개처럼 날고 새처럼 내려앉았다. 신기질이 보면 볼수록 빠져들다가 노인 앞에 무릎을 꿇고 무예를 배워 나라를 보호하기를 원했다.
 
노인은 신기질의 얼굴에 정성이 가득한 것을 보고서 웃으며 말했다. “너를 보니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니 틀림없이 수많은 좋은 구절을 읽었을 것이다!” 이윽고 눈과 서리 같은 겨울철 매화를 가리키며 그에게 시 한 수를 외우게 하였다. 신기질이 눈을 들어 잠시 생각하고서 북송의 시인 왕기(王淇)의 칠언절구 <매화(梅)>를 읊었다.
 
  “티끌의 침범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이지 않고, 대나무 울타리 띠집에서 스스로 달갑게 여기네. 다만 잘못 임포를 알게 되어, 시인을 끌어들여 지금까지 읊게 하네. 不受塵埃半點侵, 竹籬茅舍自甘心. 只因誤識林和靖, 惹得詩人說到今.”
 
그러자 노인이 연신 좋다고 칭찬하고 무예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신기질은 이 말을 듣고 뛸듯이 기뻐서 무엇을 배워야하는지 황급히 물었다. 늙은 스승은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고 “내가 왕기(王淇)의 시에 화답하면 네가 듣고서 알 것이다.” 말을 마치고 시를 읊었다.
 
  “연지와 분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고, 베옷을 입고 돌을 삼키면서도 스스로 달가워하고, 잘못하여 소림사로 들어갔네, 권법을 얻어 오늘까지 연마하는구나! 不受脂粉半點侵, 穿麻呑石自甘心. 只因誤入少林寺, 惹得拳頭打到今!”
 
총명한 신기질은 이 시를 듣고 연신 좋다고 말했다. 이로부터 스스로 힘들게 몸을 단련시켜서 마침내 문무를 겸비한 훌륭한 장수가 되어 금(金)나라에 저항하였다. 과연 스승이 신기질에게 먼저 무엇을 단련시켰는가? 모래주머니(沙袋)이다. 먼저 팔과 다리 힘을 기르기 위한 것으로 신기질은 “베옷을 입고 돌을 삼키면서도 스스로 달가워하고”에서 답을 찾은 것이다.
 
‘재주가 승하면 혼이 없다!’
 
필자가 출판 일을 하다보니 간혹 시(詩)를 접할 기회가 있는데, 한국인들만큼 유달리 시(詩)를 좋아하고, 시인(詩人)을 경외하는 민족도 드물 것 같다. 고대로부터 한국문학의 대부분을 차지해왔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시인이 곧 애국지사인양 이미지가 굳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국만큼 시인도 많고 수필가가 많은 나라도 드물겠다. 그런데 간혹 누군가가 보내오는 시집이나 산문집을 펼쳐보다가 골기풍의 잣대를 들이대면 그 공력의 깊고 얕음이 거의 투명할 정도로 드러나 보여 쓴웃음이 나올 때가 많다.
 
또 주변에 일찍이 직장을 그만두고 경제적 여유가 있어 서예나 그림을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 중에는 취미생활을 넘어 아예 전문가로 나선 이들이 있어 전시회도 열기도 한다. 기실 대개가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던 전직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한 도전, 그러니까 그저 그랬던 지난 삶을 예술가로 세탁하려는 심리가 저변에 깔려있지 않나 하는 짐작이다. 헌데 이들의 작품을 보면 공통적으로 골기(骨氣)가 부족한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가령 서예를 익힌다면 일찍부터 붓을 잡고 한 일(一)자를 만 번은 그어본 사람과 뒤늦게 이삼백 번 쯤 그어보고 글씨를 쓰는 사람과의 차이는 속일 수가 없다. 서양화라면 수많은 시간을 데생과 해부도를 그려본 사람과 그런 과정을 대충 건너 뛴 아마추어의 차이라 하겠다. 호랑이를 그렸는데 왠지 고양이 같은 느낌이 나거나 유명작가의 진품을 그대로 보고 베낀 그림이 어딘지 모르게 조잡해 보이는 것도 바로 이 골기(骨氣)와 기기(氣氣)의 부족이라 하겠다. 선 하나를 그어도 힘과 기세가 다르다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무예 수련도 마찬가지다. 요즘 검무(劍舞)를 추는 춤꾼들이 많이 늘었다. 그들 중에는 처음 무예를 익히다가 검무를 추는 이가 있는가하면 고전무용을 추다가 검무를 추는 사람이 있는데, 일반인들은 춤만 보고 그것을 구별을 못하지만 필자와 같은 전문가들은 그냥 한 두 동작에 바로 알아챈다. 골(骨)-격(格), 즉 자세만 봐도 그런 게 다 들여다보인다. 
 
모두 자기만족이고 취미생활이려니 하지만, 문제는 골(骨), 즉 기초를 제대로 다지지 못한 상태에서는 제 아무리 열심을 부려도 기세(氣勢)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보다 풍(風), 즉 멋을 부리는데 열중하게 마련인데 아무리 기교를 부려봤자 신의(神意)가 살아나지 않을뿐더러 그럴수록 오히려 조잡해진다. 법(法)과 식(式)도 모르고 제 멋에 겨워 망나니 칼춤 추듯 앞뒤 좌우 상하로 칼을 휘두르다보니 몸 따로, 칼 따로, 눈 따로 돌아간다. 심지어 어떤 이는 무당을 흉내내며 칼날을 잡고 흔들고 몸을 감기도 한다.
 
하여 검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보면 민망해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다. 그래놓고는 거기에다 천지인 조화, 오행, 우주와 합일 등등 황당한 자기도취성 논리를 가져다 붙인다. 그런 걸 흔한 말로 ‘아마추어의 한계’라고도 한다. 이처럼 기초가 부족한 것이 한국무용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다. 학문을 하더라도 그 기초를 중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림에서는 그 기초수련을 중시하여 골기(骨氣)를 훌륭하게 다지는 체계를 갖춘 곳을 명가(名家)라 한다.
 
정(精), 기(氣), 신(神)!
 
아무렴 다골(多骨), 강근(强筋), 풍육(豊肉)한 성취가 그리 쉽겠는가? 인간은 누구나 그 자체로 예술가다. 제 몸, 제 삶이 곧 작품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다. 수신제가(修身齊家)? 어느 분야에서건 리더에게 요구하는 기본이란 게 있다. 매너와 교양이 바로 그것이다. 매너가 곧 인격이고 교양이 인품이다. 지식인과 지성인의 구별은 품격의 차이다. 그게 교육의 골기(骨氣)다. 대한민국 교육이 황폐화한 것은 그 골기가 부족해서다.
 
나아가 작금의 한국사회가 방향을 잃고 추락하는 것도,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올바로 자리잡지 못하고 부패하는 것도 실은 고도성장, 압축성장 하는 바람에 그 골기(骨氣)를 제대로 닦지 못한 때문이리라! 그 후유증으로 지금 고산병, 잠수병을 앓고 있는 것이리라! 아픈 만큼 성숙할지 아니면 예서 이대로 주저앉을지?
 
청(淸)말 유희재(劉熙載)는 “문(文)은 마음(心)의 학문이다.”라고 하였는데, 이에 덧붙여 필자는 “무(武)는 성(性)의 학문이다.”라고 하고 싶다. 심(心)이든 성(性)이든 모두 태어날 때 부여받은 인간의 본질이지만 습(習)을 통해 후천적으로 다듬어질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을 우리는 기질(氣質) 혹은 인품(人品)이라 한다. 우리가 수행(修行), 즉  공부(工夫, 쿵푸)를 통해 몸을 닦고 지식을 축적해서 바른 지혜를 가지는 것, 그것을 두고 공(功)을 이룬다고 하는 것이다.
 
골(骨)은 격(格)을 중시하고, 기(氣)는 세(勢)를 타야하고, 풍(風)은 미(味)를 표출해내야 한다. 철골추조(鐵骨抽條)! 매화는 검은 철괴(鐵塊)에서 골수를 뽑아 가지를 내어 꽃을 피우고, 장부는 검(劍)으로 겨울바람을 가르며 ‘엄(嚴)’으로 자신을 단련한다. 강철은 두드릴수록 강해진다. 모름지기 뜻을 품은 자는 이 혹독한 겨울에 골기(骨氣)를 단련할 일이다. ‘처음처럼’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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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1/01 [19:28]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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