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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건국전략(建國戰略)
 
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01/1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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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개 서상욱     © 한국무예신문
은을 멸망시킨 주는 봉건을 시행할 때 건국에 가장 공을 세운 주공단과 여상(呂尙)을 산동 지역에 봉했다. 그러나 각자 통치의 기반을 구축하는 방법은 상반적이었다.

주공은 무왕 사후에 섭정을 하느라고 봉지인 노(魯)를 아들 백금(伯禽)에게 맡겼다. 백금은 아버지 대신 산동성 곡부로 갔다가 3년 후에 낙양으로 돌아와 경과를 보고했다. 주공이 왜 늦었느냐고 물었다. 백금이 대답했다.

“현지의 풍습과 습관은 물론 예의와 제도까지 바꾸느라고 지금에야 뵙습니다.”

백금과 같은 시기에 봉지로 출발했던 태공망 여상은 산동성 치박에 제(齊)를 세운 후 불과 5개월 만에 낙양으로 돌아와 경과를 보고했다. 주공이 어떻게 이리도 빨리 왔느냐고 물었다. 태공이 대답했다.

“군신지간의 예의를 간소화하고 현지인들의 풍습과 습관을 되도록 유지시켰습니다.”

주공은 백금이 늦게 돌아온 이유를 알게 되자 이렇게 탄식했다.

“아! 후세에 노의 자손은 결국 제의 신하가 되겠구나! 정령이 간소화되지 않으면 실행이 되지 않는다. 백성들이 복잡한 정령을 어떻게 지키겠는가?”

제와 노는 태산을 중심으로 산동성을 양분했다. 이곳에는 중원에 못지않은 문화와 경제력을 갖춘 동이족이 거주했다.

주는 동이족을 굴복시키고 황하유역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여상과 주공이 직접 통치를 하기로 했다. 두 나라는 동이족에 대한 통치권을 확립해야 할 공동의 과제를 안았지만 전략은 완전히 달랐다. 그것이 이후 두 나라의 국운을 결정했다.

왕족이었던 백금은 황하의 중상류지방에서 발달했던 주(周)문화를 태산의 남쪽인 노에 억지로 옮기려고 했다. 예의와 풍속은 오랜 세월을 두고 형성되므로 안정성과 전승을 유지하려고 하는 강력한 보수성을 띠고 있다.

백금은 이러한 특성을 무시하고 ‘변(變)’과 ‘혁(革)’을 강제적으로 시도했기 때문에 원주민인 동이족과 격심한 충돌을 일으켜 사회적 안정을 크게 손상시키고 말았다.

원래 동이족이었던 여상은 탁월한 정치가이자 권모와 위궤의 비조였다. 그는 예의와 풍속은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건국의 초기에는 오히려 원주민인 동이족의 고유한 문화를 유지하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원주민과 통치집단과의 친화가 단기간에 이루어졌다.

그의 방침은 후손들에게 그대로 답습되어 제의 정치문화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춘추시대에 환공을 최초의 패주로 만든 명재상 관중(管仲)은 사람들이 지키려고 하는 풍속은 남겨두고, 지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버리게 했다.

경공을 도와 제를 강력한 군사대국으로 만들었던 또 다른 명재상 안영(晏嬰)은 자기 나라의 민속을 바탕으로 국가를 통치하여 백성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데 치중했다. 그는 공자가 노의 도덕률과 풍속을 바탕으로 체계화한 유가의 번잡한 예의와 제도가 질박한 문화적 전통을 지닌 제의 실정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반대했다.

제와 노의 이질적인 건국방침은 양국의 발전과 흥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제는 빠른 시간에 원주민들이 통치집단에 귀속하여 강대국이 됐으며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할 때에도 가장 마지막까지 버틸 수가 있었다. 그러나 노는 종실의 부패와 원주민과의 끊임없는 마찰로 춘추시대에 이미 3류 국가로 전락했다.

주공단은 제와 노의 건국전략이 지닌 강약점을 정확히 판단하고 양국의 미래를 예측했던 것이다. 하나의 낙엽을 보고 머지않아 가을이 오고, 서리를 밟으며 머지않아 혹독한 겨울이 다가 올 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이다.

주공단은 여상의 탁월한 능력을 미리 경계했기 때문에 그를 가장 멀고 강력한 이민족이 사는 산동성의 북동쪽으로 밀어냈지만 결국은 염려가 사실로 드러나는 것을 지하에서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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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1/13 [09:33]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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