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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경박필사(輕薄必死)
 
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04/2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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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개 서상욱     ©한국무예신문
삼국시대 유명한 비운의 천재 양수(楊修)는 섬서성 화음 출신으로 자가 덕조(德祖)이다. 양진(楊震)의 현손이자, 양표(楊彪)의 아들로 4대에 걸쳐 태위를 지낸 고관 집안 출신이다. 호학한 준재로 건안 연간에 효렴으로 천거됐다가 효웅 조조(曹操)의 주부가 됐다.

조조는 자기보다 재능이 뛰어나다고 칭찬하며 양수를 매우 신임했다. 그러나 건안 24년 가을에 조조는 기밀을 누설하고 제후들과 사귄다는 죄명으로 그를 죽였다. 양수는 진작 죽어야 했는데 너무 늦었다는 말을 남기고 태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소설 삼국연의에서는 양수의 죽음을 어처구니없는 상황으로 묘사했다. 조조가 한중을 평정하고 유비를 토벌하려고 했을 때였다. 나아가지도 못하고 물러나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마침 저녁식사로 닭고기를 먹었다. 닭갈비는 살이 적어서 먹을 것이 없지만 버리기에도 아깝다.
 
조조는 그날 밤 암구호를 닭갈비로 정했다. 기민한 양수는 결국 조조가 철수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양수가 미리 짐을 꾸리니 모두 철수준비로 분주했다. 소란스러운 상황을 파악한 조조는 군기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양수를 참수했다. 양수는 재주 때문에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유의경(劉義慶)에 있는 내용이다. 조조가 양수와 함께 조아(曹娥)의 비석을 지나다가 ‘황견유부(黃絹幼婦), 외손제구(外孫齏臼)’라는 8개의 글자를 보았다. 양수에게 아느냐고 물었더니 안다고 대답하고 몇 자를 적었다.
 
조조는 내가 생각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했다. 30리를 갔을 때 조조는 비로소 알았다고 말했다. 양수에게 적은 것을 말하라고 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황견은 실의 색을 가리킵니다. 절(絶)이라는 글자이지요. 유부는 소녀이니 묘(妙)라는 글자가 됩니다. 외손은 여자의 아들이니 호(好)가 되고, 구는 고생을 했다는 수신(受辛)이니 사(辤)가 됩니다. 절묘호사라는 말입니다.”

조조가 쓴 것과 같았다. 조조는 ‘나의 재주는 경보다 못하다. 30리나 가야 알게 되었다’라고 한탄했다. 양수가 조조의 주부였을 때 상국부의 대문을 지었다. 조조가 지나다가 문에 활(活)이라는 글자를 적었다. 양수가 그것을 보고 다시 지으라고 명했다. 문(門)에 활(活)이라고 적었으니 활(闊)이라는 글자로 너무 커서 싫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누군가 조조에게 유즙을 보냈다. 조조는 조금 먹어본 후 뚜껑에 합(合)이라는 글자를 적어두었다. 누구도 뜻을 몰라서 양수에게 보여주었다. 양수는 재빨리 한 입 먹고 나서 조공께서 우리에게 한 입씩 먹으라고 했는데 무얼 망설이느냐고 말했다.

양수는 25세에 조조의 주부가 되어 신임을 받았다. 태자 조비까지도 그와 사귀려고 했다. 그러나 조조는 후계자 문제에서 조식과 조비의 다툼을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두 아들의 주위에는 일군의 모사들이 있었다. 조조는 그들의 역량을 파악하고 마침내 조인의 군중에서 양수가 엉뚱한 계책을 냈다는 죄명으로 그를 참수했다.
 
삼국지에서는 양수가 재능과 책략이 있었지만 경솔하여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고, 게다가 원술의 생질이었기 때문에 피살됐다고 했다. 그러나 단순히 재능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조의 수하에는 수많은 모사와 능신이 있었다. 이들의 군사적, 정치적 능력은 양수를 훨씬 능가했다.

원술의 생질이라는 이유도 피살의 원인은 아니었다. 마초의 수하였던 방덕(龐德)은 용맹을 날렸고, 그의 친형은 유비의 수하에 있었다. 중요한 원인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달랐기 때문이다. 양수의 부친 양표는 정통 유학자였고, 조조는 작은 절의에 연연하지 않는 개혁파였다.

건안원년, 조조는 한헌제를 허창으로 옮겼다. 당시 양표는 상서령이었다. 연주자사 조조가 대전에 올라가자 양표가 불쾌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일을 저지를 것이 걱정되어 잔치를 열지 않았다. 조조는 측간을 간다는 핑계로 밖으로 나가서 병영으로 돌아갔다.
 
조조가 위왕이 되자 양표는 병을 핑계로 물러났다. 원술이 천자로 참칭하자 양표의 부인이 원술의 딸이라는 이유로 그를 연루시켜 제거하려고 했다.
 
조조와 양표는 줄곧 정치적으로 대립했다. 명사 공융(孔融)이 나서서 말리자 기반이 안정되지 못한 조조는 양표를 죽이지 못했다. 그러나 정권이 안정된 후 당대의 천재였던 공융, 예형(禰衡), 양수가 차례대로 조조에게 피살됐다. 정치에서 지나친 재능은 오히려 혼란을 초래한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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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24 [10:27]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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