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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당랑지부(螳螂之斧)
 
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05/0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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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개 서상욱     ©한국무예신문
1941년 10월 18일, 수상이 된 일본군벌의 수령 동조영기(東條英機)는 육군대신과 내무대신을 겸직하여 실질적인 군정대권을 장악했다. 그가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이 ‘남벌(南伐)’이었다.

선진자본주의 진영과 후발자본주의 진영의 모순으로 격화된 제2차 세계대전이 격렬하게 전개되던 시기였다. 그는 독일, 이탈리아와 동맹을 체결하고, 미국을 공격하여 태평양 일대에 일본의 영향력을 강화하기로 결심했다.
 
첫 번째 목표는 태평양에 떠있는 미국의 거대한 군사기지 하와이였다. 하와이 진주만(珍珠灣)에는 미국의 해군기지가 있었다. 당시 미국은 유럽의 전황을 주시하느라고 태평양과 아시아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개전 초기 미국은 태평양에 관한한 일본군에 비해 피동적이었다. 그러나 진주만 습격은 위험했다.

일본군 수뇌부는 우선 당시에 미국의 전략적 방침이 독일에 집중되고 있는 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들은 미국이 유럽과 태평양에서 동시에 군사작전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갑자기 태평양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단기적으로 미국과의 화평협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일단 문제를 일으킨 후 적의 약점을 이용하여 유리한 협상조건을 제시하자고 방침을 정한 일본군의 수뇌부는 1941년 8월 7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양국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회담을 열 것을 미국에 제안했다.
 
8월 26일, 일본내각은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에게 일본은 태평양의 평화를 간절히 원한다는 전문을 보내면서, 미일 수뇌부의 회담을 통해 양국 사이의 불신과 오해를 제거하자고 제의했다.
 
11월 4일, 일본정부는 워싱턴으로 특사를 파견하여 주미대사 노무라(野村)에게 미국정부와 양국 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담판에 협조할 것을 지시했다. 심지어 12월 4일에는 노무라에게 담판을 계속할 것을 지시하는 한편, 특별히 미국과의 회담을 결렬시키지 말 것을 경고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러한 평화 무드를 조성하는 와중에서 거대한 군사작전을 위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11월 5일, 일본천황은 어전회의를 소집해 12월 8일 진주만습격을 기점으로 미국에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하기로 결정했다.
 
일본내각은 야마모토 고쥬로쿠(山本五十六)를 대장으로 임명하고 진주만습격을 위한 연합함대 지휘권을 부여했다. 11월 15일을 전후로 방대한 규모의 일본연합함대가 편성됐다. 적성호(赤誠號)를 모함으로 4척의 대형 항공모함이 각자의 기지를 출발해 서로 다른 항로로 나뉘어 단관만(單冠灣)에 집결하라는 명령을 시달했다.

진주만을 기습할 기동부대도 잇달아 단관만에 도착해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함대의 항로가 폭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 함대는 상선이 다니던 항로에서 멀리 떨어진 항로를 선택했다. 함대가 단관만에 집결하자, 서남군도 쪽으로 표적함을 파견해 잇달아 무전을 치면서 일본의 함대가 일본해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위장했다.
 
1941년 12월 8일 오후 7시 40분은 미국인들이 영원히 잊지 못할 날이었다. 일본군의 공격기 183대가 6척의 항공모함을 출발해 와호도(瓦胡島) 상공에 도착하면서 진주만 습격이 시작됐다.
171대의 수평폭격기와 급강하폭격기가 잇달아 폭격을 퍼부었다. 이날은 마침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하와이 주둔 미군은 아무런 경계태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미군은 참혹한 피해를 입었다. 4척의 주력함 가운데 1척이 거의 파손됐으며, 나머지 3척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12척의 순양함과 구축함을 비롯한 나머지 함정도 침몰되거나 파손됐다. 240대의 비행기도 대부분 파손됐으며, 4500명에 달하는 육해군이 사상됐다.
 
미국의 태평양함대는 전군에 궤멸되다시피 와해되고 말았다. 이 때 미 해군이 입은 피해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입은 피해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미군은 재빨리 전력을 회복했다. 전쟁이 총체적 국력의 대결임이 증명되자 일본의 습격은 당랑지부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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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5/08 [16:20]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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