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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도강언고(都江堰考)
 
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06/0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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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개 서상욱     ©한국무예신문
오랜 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중국을 통일한 진은 타국 출신의 인재들을 중용하여 절대강자로 부상했다. 진이 인재를 필요로 했던 것은 변방인 서북쪽에 치우쳐있었기 때문에 학문적 발전이 더뎠던 탓도 있지만, 사실은 도강언이라는 대규모의 수리사업으로 활용이 가능한 광활한 영토가 갑자기 생성됐기 때문이다.

땅은 넓고 경작을 할 인구는 적었으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이주해도 굳이 토착민들과 충돌할 염려가 적었다. 중국은 예로부터 농업 국가이었으므로 수리시설을 중시했다. 전국시대 후기 진은 수리시설 전문가 이빙(李氷)을 촉군태수로 임명해 성도평야에 중국 최초의 대규모 수리시설인 도강언을 건설했다. 도강언은 관개면적이 어마어마하게 넓어서 막대한 농업이득을 올릴 수가 있었다.

진은 광대한 농업생산력을 바탕으로 경제적 부국이 됐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각국의 유능한 인재들을 대거 영입해 정치적 개혁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이 시설은 세계적으로도 수리공정사에 남을 만한 업적이다. 그 명성이 전 세계에 알려져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도강언이 건설되자 촉은 기름진 땅이 천리에 이르게 되어 육지속의 바다로 불렸다. 가뭄에는 물을 농지로 끌어왔고, 장마가 지면 수문을 막아 홍수를 방지했으므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기근을 면했다. 또 끊임없는 증축 및 보수공사로 관개면적이 확대돼 촉은 식량부국으로 성장했다.
 
초주(譙周)가 파촉을 ‘천부의 땅’이라 한 것은 도강언으로 인해 각종 풍부한 농산물이 생산됐기 때문이다. 진뿐만 아니라 항우에게도 쫓겨서 이 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긴 유방도 오랜 통일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전력을 확충할 수가 있었다. 제갈량이 형주를 차지한 이후에 이 지역을 근거지로 삼으려고 했던 이유도 이러한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다.
 
1938년 사천성 수리국에서 간행한 ‘도강언수리술요’의 통계에 따르면, 관개면적이 14개현 520만ha에 달했으며, 1949년의 보수공사로 800만ha까지 확대됐다.

고대에는 철근이나 시멘트와 같은 건설자재가 없었으므로, 도강언의 수리공정은 지금과 달랐다. 이빙은 대나무로 통발을 엮어서 그 안에 자갈을 채우고 그것을 쌓아 거대한 둑을 만들었다. 그러나 공정과정에서 장마를 만나 물살이 거세지면 이 통발로 만든 돌무더기도 물길에 휩쓸려버렸다. 따라서 항상 경계를 하며 부실한 곳은 사전에 보수공사를 해야 했다.

제갈량은 1200명을 동원해 주야로 도강언을 감시하며 보수했다. 그는 도강언 외에도 성도의 서쪽에 구리제(九里堤)를 쌓아 홍수로 인해 농지와 가옥이 침수되지 않도록 했다. 이러한 소규모의 수리시설은 그 외에도 꾸준히 확보됐다. 좌사는 촉도부에서 제갈량의 수리사업을 찬양했다.

제갈량이 수리사업을 전개한 이후 평야지대와 하천 주변이 모두 옥토로 변하여 한눈으로 모두 볼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한 농지가 펼쳐졌다. 잠수(潛水), 말수(沫水), 면수(綿水), 낙수(雒水) 등의 하천에서 물을 끌어와 마치 혈관처럼 곳곳에 농수로가 이어졌고, 바둑판처럼 잘 정비된 농토에는 조, 수수, 쌀 등의 농작물이 꽃무늬처럼 자라고 있었다.
 
이빙이 도강언을 쌓은 이래 가뭄과 장마에도 걱정이 없었던 촉의 백성들은 제갈량이 농토 곳곳으로 농수로를 만들면서 더욱 윤택한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촉도부에 묘사된 촉의 농촌 모습은 풍요 그 자체였다.
 
좌사는 친히 파촉의 산과 물을 보고 촉도부를 썼으므로 다소의 과장을 감안하더라도 당시의 정경을 잘 알 수 있는 귀중한 사료가 된다. 제갈량 역시 도강언을 비롯한 크고 작은 수리시설의 확충을 통해 농지를 확대해 인구의 증가에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실제로 그는 남중에서 많은 사람들을 촉으로 이주시켜 농업생산력을 높였다. 강병은 부국이 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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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02 [09:40]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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