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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양명평란(陽明平亂)
 
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7/12/14 [23:57]
▲ 묵개 서상욱     ©한국무예신문
왕수인(王守仁, 1472~1528)을 중국철학사에서 중요한 양명학의 창시자로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가 뛰어난 군사전략가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절강성 여요(餘姚) 출신으로 자를 백안(伯安), 호를 양명(陽明)이라 했던 그는 주희(朱熹) 이후에 최대의 학파를 창시했다. 서당에서 공부할 때 왕수인은 선생에게 무엇을 최고로 여기느냐고 물었다. 선생이 과거에 합격해 입신양명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자, 왕수인은 성현이 되는 것이 최고라고 말했다. 그만큼 왕수인은 비범했다.
 
21세에 상경해 주희의 격물치지(格物致知)를 공부했다. 그가 머물던 집에는 대나무가 많았다. 왕수인은 아무리 대나무를 들여다보아도 이치를 통달하지 못했다. 대나무를 관찰하는 것은 ‘격물’에 해당한다. 실망한 그는 문장을 공부했지만 역시 허망했다.
 
다시 주희의 학문을 공부했지만 여전히 의문투성이였다. 좌절한 그는 입산을 결심하기도 했다. 그럭저럭 진사가 됐으나 구도에 대한 염원은 사라지지 않았다. 때로는 신선술에 심취하고 때로는 출세간을 생각하다가 조부와 부친의 뜻을 저버리지 못해 다시 병부주사가 됐다.
 
당시 집권자인 환관 유근(劉瑾)이 언관들을 탄압하자 그들을 구하기 위해 상소문을 올렸다가 귀주(貴州) 용장역(龍場驛)으로 유배됐다.
 
유근은 자객을 시켜 그를 암살하려고 했다. 왕수인은 물에 빠진 척해 간신히 유배지에 도착했다. 귀양지인 용장은 지독한 오지였다. 곳곳에 맹수와 독사가 우글거려 도저히 살 곳이 아니었지만 왕수인은 혹독한 고통을 겪으며 홀연히 성인의 도가 이미 사람의 성(性)에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격물치지가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었다. 도는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있었다. 주희의 객관적 진리와 왕수인의 주관적 진리가 양립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6세였다.
 
1519년 6월, 종실인 영왕(寧王) 주환호(朱寰濠)가 반란을 일으켰다. 7월에 주환호가 파양호에서 동진해 안경을 위협했다. 당시 왕수인은 강서 일대를 관장하며 8만 대군을 이끌고 풍성(豊城)에 주둔했다. 부하들이 안경을 구하자고 건의했지만 왕수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안경을 구하려면 반군의 본거지인 남창을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창으로 진격할 때 반군이 남창에 미리 복병을 숨겨 두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왕수인은 5천의 기병을 파견해 대기하고 있다가 반군의 복병이 나타나면 기습하라고 지시했다.
 
왕수인이 남창을 공격하자 고립된 반군의 저항이 점차 약해졌다. 그 때 남창성의 남쪽에서 반군의 복병이 나타났다. 그러나 왕수인이 미리 파견한 5천의 기병대가 그들을 가로막았다. 며칠 후에 왕수인은 남창을 점령했다. 당시 영왕은 안경에서 주야로 독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안경의 수비군은 완강하게 버텼다.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남창이 위험하다는 연락이 왔다. 크게 놀란 영왕이 급히 남창으로 철군하려 하자 반군의 모사가 남창을 구하기는 늦었으니 차라리 남경으로 가자고 건의했다.
 
영왕은 본거지를 잃을 수 없다고 판단해 급히 남창으로 돌아갔다. 미리 매복해 두었던 왕수인은 반군의 선봉이 포위망으로 들어오자 기습해 대승을 거두었다. 영왕이 병력을 증파했지만 다시 패하고 말았다. 다급해진 영왕은 전선을 모아 방진을 구축하고 결사적으로 버텼다. 그것을 본 왕수인은 화공을 퍼부었다.
 
결국 영왕의 전선은 모두 불에 타버리고 말았다. 그것으로 반란은 깨끗이 진압됐다. 바둑에서 손을 따라 두면 진다는 말이 있다. 왕수인은 영왕이 두는 수를 무시했지만, 영왕은 왕수인을 따라 두다가 망했다. 그것이 승패를 갈랐다.
 
나중에 남경 병부상서를 역임했으며 사후에는 신건후(新建侯)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성(文成)이며 만력 12년에 공묘(孔廟)에 종사돼 유학자 최고의 영예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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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2/14 [23:57]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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