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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원은 김운용의 유산을 '상속'할 자격이 있는가

편집부 | 기사입력 2026/02/21 [18:00]

태권도원은 김운용의 유산을 '상속'할 자격이 있는가

편집부 | 입력 : 2026/02/21 [18:00]

▲ 관련 기고 캡쳐 이미지  © 한국무예신문

 

최근 "세계태권도성지, 이제 김운용 총재를 품어야 한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이 특정 언론을 통해 발표되었다. 이 글은 고(故) 김운용 총재의 유해를 무주 태권도원으로 이장하여 세계 태권도인의 구심점을 세우자고 주장한다. 표면적으로는 고인에 대한 뒤늦은 예우를 촉구하는 듯 보이지만, 이 주장을 떠받치고 있는 수사학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심각한 인지적 도도(顚倒)와 마주하게 된다. 과연 제도가 지어 올린 '공간'이 역사를 개척한 '거인'을 품을 수 있는가?

 

첫째, '품다'라는 오만한 언어의 함정이다. 김운용 총재는 태권도를 글로벌 문화콘텐츠이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격상시킨 설계자다. 그의 외교적 돌파력이 없었다면 오늘날 전 세계 215개국이 수련하는 글로벌 스포츠라는 수식어는 존재할 수 없었다. 태권도 세계화의 역사가 곧 그의 업적이라면, 지금의 태권도원이라는 거대한 물리적 인프라 역시 그의 궤적 위에서 파생된 결과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제도가 인물을 향해 "이제 우리가 당신을 품어주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역사적 인물의 후광을 빌려 공간의 권위를 완성하려는 행정 편의적 발상이다. 공간이 거인을 품는 것이 아니라, 거인의 유산 아래 공간이 겸허히 자리해야 옳다.

 

둘째, 추모를 위장한 공간의 경제적 욕망이다.

해당 기고문은 김운용 총재의 추모 공간 조성을 주장하며, 그것이 외국인 방문객 증가, 체류형 관광 확대, 실질적인 경제적 파급효과로 이어질 것이라 명시한다. 심지어 그를 태권도원에 모셔야만 '세계태권도성지'라는 이름이 걸맞은 빛을 발할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이는 고인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겠다는 본래의 취지를 스스로 훼손하는 논리다. 인물의 안식이 지역 관광 활성화나 기관의 위상 강화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순간, 추모는 '동원'이 되고 예우는 '착취'가 된다. 우리는 죽은 자의 이름을 빌려 산 자의 경제적 지표를 채우려는 얄팍한 기획을 경계해야 한다.

 

셋째, '상속'은 장소의 이전이 아닌 책임의 계승이다.

진정한 예우는 유해를 특정 상징지구로 옮기고 디지털 추모 공간을 조성하는 물리적 사업에 머물지 않는다. 상속이란 영광스러운 이름표를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이 짊어졌던 시대적 무게를 기꺼이 이어받는 일이다. 태권도계가 진정으로 김운용을 기리고자 한다면, 단순히 그의 뼛가루를 무주로 모셔오는 것을  '시대적 과제'로 포장할 것이 아니다. 그가 보여주었던 치열한 국제 스포츠 외교력, 파벌을 넘어선 통합의 리더십을 지금의 태권도원이, 그리고 대한민국의 태권도계가 얼마나 치열하게 상속받아 실천하고 있는지 묻는 것이 먼저다.

 

화려한 기념 스퀘어나 역사관이 성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김운용 총재를 성지에 모셔서 태권도원의 명예를 바로 세울 것이 아니라, 태권도원이 먼저 그의 웅대한 비전을 담아낼 수 있는 치열한 실천의 장으로 거듭날 때 비로소 그 공간은 '성지'의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거인의 그림자를 탐하기 전에,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는 내실을 다지는 것. 그것이 종주국이 위대한 선구자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윤리적이고 정당한 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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