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史學) 연구는 흔히 과거에만 머물러 있어 미래지향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곤 한다. 그러나 어제도 과거가 되고, 조금 전의 나 또한 과거가 되듯, 과거의 사건이나 인물의 업적을 연구하여 도출한 결론은 현대 사회에 중요한 제언(提言)을 던지는 가치 있는 사료(史料)가 된다. 역사는 결코 과거에만 머무는 학문이 아니다.
체육사를 전공한 필자는 영화를 볼 때도 자연스럽게 역사적 관점에서 판단하곤 한다. 일례로 영화 「친구」의 체벌 장면에서 교사는 학생에게 “아버지 뭐 하시노?”라고 묻는다. 이는 단순히 직업을 묻는 질문이 아니라, 학생의 집안 환경과 사회적 배경을 가늠해 자신의 행동 수위를 조절하려는 고도(高度)의 임기응변이라 할 수 있다. 만약 학생의 아버지가 시의원쯤 되는 인물이었다면, 과연 그 시절에 그러한 체벌이 가능했을까. 이처럼 역사는 개별 현상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통찰을 제공한다.
그러나 최근 한국 영화계는 특정 시대에만 국한된 빌런(villain)을 설정하고, 유사한 시나리오를 반복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관객에게 피로감을 안겨 준다. 이제는 역사적 소재와 시대적 배경에 있어서도 보다 다양한 시도와 객관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다양성과 객관성의 부재는 무예계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현재 무예 역사는 일부 종목을 제외하면 체계적인 연구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애석하게도 많은 무예 종목이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나 설(說), 과장된 전설을 사실처럼 굳혀 사용하고 있다. 만약 무예에 역사적 근거가 없고, 실용성이나 양생(養生)의 기능조차 결여되어 있다면, 그 존재 이유는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각 무예 종목은 관원 교육 과정에서 자신이 수련하는 무예의 역사를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역사를 바르게 이해할 때 비로소 수련생은 자신이 익히는 무예에 대해 깊은 애정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서 전통 무예라 할 수 있는 종목은 사실상 씨름과 국궁, 이 두 종목을 제외하면 『무예도보통지』를 바탕으로 재현된 무예 뿐이다. 그 외 현대에 들어 발전한 무예들은 일본 무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가장 융성한 종목들 역시 일본 무도의 영향을 받은 두 종목이다.
한때 합기도를 일본 무예라 음해하던 세력이 있었다. 이것은 자신의 영업에 합기도라는 종목이 걸림돌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주변인들과 자신의 제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입시키는 비열한 행위를 한 것이다. 현재는 무예를 접하는 대중들의 인식도 성숙하여, 어설픈 친일 프레임 덧씌우기와 같은 술책에 흔들리지 않고 무예의 실용성과 실전성을 먼저 보는 시각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또, 과거에는 고구려나 조선을 팔아 무예의 역사를 날조하려 했던 사례들도 존재했다. 이는 무지(無知)에 따른 잘못된 학습의 결과이거나, 의도된 허위·과장 광고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인구 감소와 학령인구 축소라는 현실 속에서 한국 무예는 지금 분명한 위기에 놓여 있다. 세상은 변한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이 시점에서 생존을 위한 대책으로는, 비대해진 몸집을 줄이는 ‘다이어트’를 감행하는 결단력 또한 필요하며, 동시에 수련층 확대를 위한 현실적인 전략도 모색해야 한다. 결국 현시대의 무예들은 지금 이 순간부터 만들어 나가는 것이며, 그 과정 자체가 곧 새로운 역사가 된다. <저작권자 ⓒ 한국무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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