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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방향이 속도를 이긴다

환갑을 넘어 태권도 9단에 오르기까지, 세 번의 심사와 하나의 깨달음

이지성 박사(태권도 9단) | 기사입력 2026/03/21 [09:53]

[특별기고] 방향이 속도를 이긴다

환갑을 넘어 태권도 9단에 오르기까지, 세 번의 심사와 하나의 깨달음

이지성 박사(태권도 9단) | 입력 : 2026/03/21 [09:53]

▲ 이지성 박사  © 한국무예신문

인생에는 속도를 멈추고 방향을 묻게 되는 순간이 있다. 질주하던 발이 제 스스로 멈추고, 어디를 향해 달려왔는지를 온몸으로 되묻는 순간. 2026년 3월 13일, 나는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받았다. 태권도 9단 합격 통지였다.

 

그러나 그 한 장의 통지서에 이르기까지, 나는 세 번 심사장에 섰다.

 

첫 번째 심사는 내가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삶이 먼저 나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신 것이다. 발인 날짜가 하필 심사일과 겹쳤다. 도장에 전화를 걸었고,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어떤 단증도 마지막 이별보다 소중할 수 없다. 포기는 결단이 아니라 당연한 도리였다. 다만, 고요한 상복(喪服) 속에서 태권도는 내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두 번째 심사는 달랐다. 환갑을 넘긴 몸으로, 나는 지상에서 뛰어 옆차기를 거듭 연습했다. 무릎이 비명을 질렀고, 발목이 시위를 했지만, 묵묵히 감내했다. 새벽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번엔 된다.

 

판정은 냉정했다. 낙방이었다.

 

합격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신감이 허탈함으로 무너지는 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도록 지워지지 않는 한 가지 서글픈 의문이 가슴 한켠에 스며들었다.

 

'나에게 허락된 운명의 단은 8단까지인가.'

 

자책과 수치심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그것은 몸의 통증보다 천천히, 그러나 더 깊이 스며든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어느 오후, 홀로 앉아 자신과 조용히 마주하는 시간 속에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래. 아직 건강을 위해 수련을 더 하라는 의미인가 보다.'

 

▲ 고단자심사결과조회 화면과 국기원 심사장 복도에서의 이지성 박사.  © 한국무예신문

 

짧고 담담한 한 문장이었다. 그러나 그 한 문장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자책 대신 수용, 좌절 대신 방향의 전환. 그리고 훈련법도 달리했다. 관절에 무리를 주는 지상 훈련 대신, 수영장에서의 발차기 훈련으로 몸을 다시 다듬기 시작했다. 물속에서 다리를 차올릴 때마다 무릎은 비로소 숨을 쉬었다. 저항은 있되 충격이 없는 그 물의 감각 속에서, 나는 다시 태권도를 사랑하게 되었다.

 

3개월 후, 도복을 다시 여몄다.

 

2026년 3월 13일, 세 번째 심사장에 섰다. 그리고 어제, 합격 통지를 받았다.

 

합격 화면을 바라보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환호가 아니었다. 하나의 조용한 깨달음이었다.

 

'만일 남들처럼 빨리 단을 따는 것이 목표였다면, 나는 태권도 단을 따는 그 일만큼은 실패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방향을 달리 잡았다. 언제 합격하느냐가 아니라, 9단에 이를 때까지의 모든 훈련이 그 자체로 완결된 과정이라는 것. 낙방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받아들이며 다시 서는 것. 그것이 내가 배운 태권도였고, 내가 살아온 태권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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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용태 2026/03/22 [09:21] 수정 | 삭제
  • 태권도 9단 입신을 큰박수로 축하드립니다~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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