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태권도계에서 “위기”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출산율이 떨어져 아이들이 줄어든 탓이라고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이 있다. 태권도 스스로가 자신의 가치를 지키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예전에는 단증 하나를 따기 위해 땀을 쏟았다. 도장에서의 시간, 반복되는 기본기, 맞고 넘어지며 버텨낸 겨루기까지, 그 과정이 쌓여야 비로소 단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래서 단증에는 무게가 있었고, 그 무게는 곧 자부심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단증이 더 이상 실력을 증명하는 상징이 아니라, 일정 기간을 채우고 비용을 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물처럼 여겨지고 있다.
현장의 승품·단 심사를 보면 그 이유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제한된 시간 안에 많은 인원을 소화해야 하다 보니, 한 사람을 제대로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기본동작 몇 가지, 품새 몇 개, 짧은 겨루기 한 번으로 심사가 끝난다. 응심자 입장에서는 긴장감도, 절실함도 느끼기 어렵다. 심사를 통과했다는 성취감보다 “끝났다”는 안도감만 남는다. 이런 경험 속에서 태권도의 엄중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 구조가 도장의 수련 방식까지 바꿔버렸다는 데 있다. 심사를 통과시키기 위한 ‘맞춤형 수련’이 일상이 되면서, 장기적인 성장보다 단기적인 합격이 목표가 되고 있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동작을 심사 직전에 집중적으로 반복하고, 일정 수준만 넘기면 대부분 합격하는 흐름이 이어진다. 불합격이 거의 없는 심사를 두고 “잘 지도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현실은,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수련 환경도 고민이 필요하다. 흥미를 유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도장의 중심이 태권도가 아니라 놀이가 되어버린 곳도 적지 않다. 공놀이와 게임이 수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정작 기본기와 품새, 겨루기는 부수적인 요소로 밀려난다. 그 결과, 1품을 취득한 뒤 도복을 벗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태권도를 더 배우고 싶어하지 않고, 이로써 다 끝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다른 무도 종목을 보면 대비가 더 분명해진다. 주짓수의 블루벨트는 쉽게 얻을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일정 기간 이상의 수련은 물론, 실제 기술 이해와 응용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띠 하나에도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한다. 어렵게 얻었기 때문에 인정받고, 인정받기 때문에 가치가 유지된다.
태권도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기준을 우리가 스스로 낮춰온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해법이 복잡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방향은 단순하다. 심사를 다시 ‘심사답게’ 만드는 것이다. 시간을 늘리고 형식을 바꾸는 문제를 떠나, 최소한 한 사람의 수련 과정을 제대로 들여다보겠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동작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기본기가 살아 있는지, 기술은 부족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있는지, 그 사람이 얼마나 성실하게 수련해왔는지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심사가 바로 서면 도장의 수련도 달라진다. 보여주기식 훈련이 아니라, 평소의 과정이 중요해진다. 사범 역시 단순히 합격을 목표로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수련생의 성장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결국 단증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증명이 되고, 그 과정이 쌓일수록 태권도의 신뢰도 함께 회복될 것이다.
국기원의 역할은 여기서 더욱 중요해진다. 단증의 기준을 어디까지 지킬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기준까지 가벼워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지금 같은 환경일수록 기준은 더 분명해야 한다. 그래야 현장도 흔들리지 않는다.
태권도는 단순한 체육 활동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함께 단련하는 무도스포츠다. 그 출발점이자 상징이 바로 단증이다. 그 상징이 가벼워지면, 태권도 전체의 무게도 함께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구호나 거창한 변화가 아니다. 단증이 다시 무거워지는 것, 그 한 가지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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