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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의 劍과 길] 제9회 : 나한일로부터

심검도 도장이 해동검도 도장이 된 사연 — 그리고 최도원이라는 사람

편집부 | 기사입력 2026/05/29 [10:54]

[김정호의 劍과 길] 제9회 : 나한일로부터

심검도 도장이 해동검도 도장이 된 사연 — 그리고 최도원이라는 사람

편집부 | 입력 : 2026/05/29 [10:54]

▲ 김정호 총재(세계해동검도연맹)  © 한국무예신문

1983년 2월의 어느 날, 친구 나한일이 안양까지 찾아왔다.

 

해동검도 안양 도장이었다.
[편집자 주] 1982년 안양에서의 해동검도 창립에 관해서는 현재 무예 역사학계 내에서 이견이 존재한다. 나한일 한국해동검도협회 총재는 당시 활동이 심검도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 연재는 김정호 총재의 구술에 따른 기록임을 밝힌다. 본지는 향후 관련 사료 및 당사자 양측의 입장을 추가 취재해 보완할 예정이다.

나한일은 말했다.

 

"정호야, 서초동 도장 네가 가져가. 아무 조건 없이."

 

김정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안양 도장 운영도 벅찬 상황이었다. 그러나 서초동 도장에는 사연이 너무 많이 얽혀 있었다. 기천문의 꼬임, 영진영화사의 3천만 원, 그리고 치료 한 달 만에 미국으로 돌아간 김영근. 그 모든 것의 끝에 나한일이 서 있었고, 지금 그 친구가 다시 찾아와 도장을 건네고 있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어. 해동검도 도장으로 바꿔야 해."

 

나한일의 얼굴이 굳었다. 심검도 도장으로 남기길 바랐다. 그러나 김정호는 물러서지 않았다.

 

"해동검도 아니면 안 돼."

 

나한일이 수긍했다. 그렇게 서초동 제2 해동검도 도장이 탄생했다.

 

 

[배경 · 심검도에서 기천문으로, 기천문에서 심검도로]

 

서초동 도장은 짧은 시간 안에 세 번의 간판이 바뀐 곳이었다.

 

1982년 10월, 기천문 도장으로 계약됐다. 영진영화사가 투자한 3천만 원 중 2,700만 원이 전세보증금으로 들어갔다. 계약 명의는 영진영화사였다. 300만 원은 시설비와 간판 비용으로 썼다. 그러나 박대양 문주가 도장 명의를 자신의 이름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기천문 간판은 결국 걸리지 않았다.

 

1983년 1월, 나한일이 간판을 달았다. 심검도(心劍道). 종로5가 기독교방송국 옥상에서 새벽마다 심검도를 폈던 그가, 여의도 KBS 방송인으로 옮긴 뒤에도 놓지 못했던 그 이름이었다.

 

그러나 두 달을 버티지 못했다. 방송 일과 도장 운영이 동시에 불가능했다. 아침에 방송국으로 출근하고 저녁에 도장으로 돌아오는 일상이 무너졌다. 나한일은 안양행을 택했다.

 

"안양은 최 사범에게 맡기면 되지 않겠느냐."

 

그 말이 결정을 앞당겼다. 기천문 소개로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던 김정호는 한 가지 조건만 내걸었다. 해동검도.

 

 

[전세보증금 2,700만 원의 위기]

 

도장을 인수하고 보니 문제가 남아 있었다. 영진영화사 명의로 들어간 전세보증금 2,700만 원이었다.

 

해동검도 도장으로 간판을 바꾸고 수련생을 받기 시작했지만 보증금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걸려 있었다. 당장 도장을 운영할 수 있었지만, 발밑이 온전하지 않았다. 1983년 당시 2,700만 원은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 시기, 서초동 도장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60대 초반으로 보였다. 이름은 최도원(崔道源)이라고 했다. 조용하고 단정한 인상이었다. 도장에 입관해 해동검도를 수련했다. 눈에 띄는 수련생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나타나 묵묵히 도복을 입고 검을 잡았다. 사범들 사이에서도 "저 어른은 어떤 분이냐"는 말이 오갈 만큼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겼다.

 

최도원은 보증금 문제를 알게 됐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2,700만 원이었다. 최도원이 대납했다.

 

김정호 총재는 어리둥절했다.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수련 회원이 그 큰돈을 조건 없이 내놓았다. 고마웠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물어도 그는 뚜렷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저 도장이 안정되기를 바란다고만 했다.

 

▲ 검을 든 포즈를 취하고 있는 고 최태민 목사.(사진제공: 김정호)     ©한국무예신문

 

[1984년 설날 · 최도원이 말했다]

 

1984년 설날이었다.

 

명절을 맞아 서초동 도장에 가족들과 함께 인사를 온 수련생들이 있었다. 최도원도 그날 도장에 나타났다. 그리고 김정호 총재에게 단둘이 이야기할 시간을 청했다.

 

그 자리에서 최도원이 말했다.

 

"제 본명은 최태민(崔太敏)입니다. 박근혜 씨를 모시는 사람입니다."

 

김정호 총재는 순간 굳었다고 훗날 구술했다.

 

최태민. 당시 권부의 핵심과 연결된 이름이었다. 그가 왜 서초동 해동검도 도장에 나타났는지, 왜 2,700만 원을 조건 없이 대납했는지가 한순간에 다른 각도로 보였다.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그분이 도장을 이용해 감시와 도청을 피한 것이었다고요. 도장은 그분에게 은신처 같은 공간이었던 겁니다."

— 김정호 총재 구술 (2026)

 

감사함과 당혹감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그러나 도장은 도장이었다. 수련하는 사람의 신분을 묻지 않는 것이 무예의 공간이었다. 최태민이 해동검도를 수련했다는 사실은 그대로였고, 2,700만 원 덕에 도장이 살아남은 것도 그대로였다.

 

최태민은 이후에도 한동안 도장에 나타났다. 김정호 총재는 그 사실을 사범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양택조·김형진 · 도장을 빛낸 사람들]

 

서초동 해동검도 도장에는 또 다른 이름들이 채워졌다.

 

1983년, 친구 나한일의 안내로 연예인 양택조가 입관했다. 동료 성우인 유민석도 함께였다. 그리고 1936년생 성우 출신 김형진이 수련을 시작했다. 김형진은 검우회 회장을 맡았다.

 

김형진 회장은 도장에 특별한 색채를 더했다. 성우 특유의 울림 있는 목소리로 유단자 심사 평을 하면 행사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범들의 결혼식 주례를 섰는데, 100분이 넘도록 이어지는 주례사에 하객들이 탄성을 질렀다. 일선 도장 급심사 심사위원장으로 인기가 높아 토·일요일 심사 예약은 3달 전 전쟁이었다.

 

양택조는 해동검도와 인연을 이어가며 훗날 대한해동검도협회 감사로 활동했다. 80대 중반의 나이에도 해동검도 세계대회와 방송 출연을 병행하며 해동검도 홍보대사의 역할을 다했다.

 

서초동 도장은 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심검도에서 시작해 기천문의 소용돌이를 거쳐 해동검도가 된 그 공간이, 이제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마무리 · 도장은 사람으로 산다]

 

영진영화사 3천만 원, 기천문의 명의 분쟁, 나한일의 심검도, 최도원의 정체. 서초동 도장 하나에 담긴 이야기만도 긴 한 편의 드라마였다.

 

김정호 총재는 이 모든 것을 돌아보며 말했다.

 

"도장은 건물이 아닙니다. 사람이 드나드는 곳이고, 사람이 이야기를 남기는 곳입니다. 서초동 도장이 살아남은 것도 결국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나한일이 넘겨줬고, 최도원이 지켜줬고, 김형진 선생이 빛내줬습니다."

— 김정호 총재 구술 (2026)

 

 

[인물 정보]

 

최도원(崔道源, 본명 최태민) — 서초동 해동검도 도장 수련 회원. 전세보증금 2,700만 원 대납. 1984년 설날 본명 및 신분 공개. 김정호 총재의 구술에 따르면 도청·감시 회피 목적으로 도장을 활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나한일(羅漢一) — 서라벌고교 16회. 김정호의 친구. 1983년 1월 서초동 심검도 도장 개관, 2월 조건 없이 이양. 훗날 탤런트·영화배우로 활동.

 

김형진(金亨眞, 1936년생) — 경희대 출신 성우. 연예인 양택조의 친구. 1983년 서초동 도장 입관, 검우회 회장 역임. 유단자 심사·관장 결혼식 주례로 명성. 신촌세브란스병원 위암 수술 후 타계.

 

양택조(梁澤祚) — 연예인. 심검도 인연으로 서초동 도장 입관. 대한해동검도협회 감사 역임. 해동검도 홍보대사로 80대 중반까지 활동.

 

김정호(金正鎬) 총재 — 세계해동검도연맹 총재. 1983년 2월 서초동 제2 해동검도 도장 인수. 이 연재의 구술자.

 

 

다음 회 → 제10회 — 밤 10시, 해병대 출신 조난성이 "도장을 폐관시키러 왔다"고 선언했다. 민형사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대결했다. 건축 자재 아시바 나무를 팔뚝으로 두 동강낸 그 사람의 코뼈가 부러지고, 다음 날 코에 붕대를 하고 와 큰절을 했다. 그리고 훗날 이 사건이 박대양의 사주였다는 진실이 밝혀졌다. 「조난성이 쳐들어오던 밤 — 도장깨기의 시대와 각서」

 

※ 이 글은 세계해동검도연맹 총재 김정호의 구술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기록입니다. 인물의 경력과 사건 경위는 구술자의 기억과 제보에 근거하며, 각 회차는 김정호 총재의 사전 확인을 거쳐 게재합니다. 사실관계 확인이 어려운 부분은 향후 보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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