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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의 벽을 허무는 첫 단추, '도복 통합'이 합기도의 아이덴티티다

박세림 이학박사 | 기사입력 2026/06/04 [09:51]

계파의 벽을 허무는 첫 단추, '도복 통합'이 합기도의 아이덴티티다

박세림 이학박사 | 입력 : 2026/06/04 [09:51]

▲ 박세림 이학박사  © 한국무예신문

한때 한 대학교수가 '합기도'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일본과의 국가적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무리한 주장에 대해 명확한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슬그머니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고, 이후에는 마치 새로운 무술 체계를 발견한 듯 과장된 명칭들을 여기저기 만들어내며 혼란만 가중시켰다.

 

그런데 다른 예로 ‘유술(柔術)’이라는 명칭에 대해 살펴보자. 정식 일본어 명칭은 ‘쥬주츠(柔術, Jujutsu)’이다. 일본에는 다양한 쥬주츠 유파가 존재하며, 각 유파는 자신들만의 체계를 정립해 보존하고 있다.

 

또한 이 쥬주츠는 강도관 유도 유단자인 마에다 미츠오가 1917년 브라질에서 카를로스 그레이시를 지도하면서, 훗날 그레이시 주짓수의 태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 외에 독일에서는 유도와 가라데 등이 혼합된 형태의 무술이 성행하였고, 1977년 독일·이탈리아·스웨덴 등을 중심으로 유럽 주짓수 연맹(EJJF)이 결성되었다. 이후 이 단체는 현재의 국제 주짓수 연맹(JJIF)으로 발전하였다.

 

그런데 이들 단체에 대해 일본 측은 어떠한 소유권이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 또한 브라질과 유럽 측에서도 자신들의 무술에 국가명을 붙이지 않은 채 단순히 ‘주짓수’라는 명칭으로 수련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합기도(合​気道)’ 또한 일본에서 먼저 사용된 명칭이라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국은 후발 주자에 해당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합기도라는 명칭을 외부의 영향을 받아 의도적으로 가져왔다는 정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역시 한국 무술계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정립된 용어로 볼 수 있다.

 

일본 측의 무반응 속에 각자의 영역에서 성장해 가는 흐름과 달리, 유독 국내 일부 아이키도(Aikido) 단체에서 '자신들만이 진정한 합기도'라는 식의 마케팅을 펼치는 모습은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본래 한국의 합기도 또한 역사적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명칭이 정립되었으며, 기술 체계 역시 전통적인 유술기(柔術技)에 타격술이 가미된 독자적인 형태로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 합기도 명칭의 개칭(改稱) 순서  © 한국무예신문


무술의 명칭이 과거 'ㅇㅇ술(術)'이나 'ㅇㅇ권법(拳法)'의 형태에서 'ㅇㅇ도(道)'라는 현대적 개념으로 전환된 최초의 사례는 유도(柔道)다. 이러한 변화는 이후 가라테도(空手道), 아이키도(合気道), 검도(剣道),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등에 이르기까지 현대 무도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결국 무도의 명칭과 형식은 시대의 요구와 문화적 전이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의 산물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합기도'라는 무도 명칭은 역설적이게도 단체의 분열 과정에서부터 보통명사화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분열이라는 뼈아픈 과정을 거쳤으나, 그 흐름 속에서 오늘날과 같은 다양한 유파와 독자적인 기술 체계가 확립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지나온 분열의 시간을 뒤로하고, 대승적 차원에서 '합치(合致)'를 논해야 할 시기를 맞이했다.

필자는 그 변화의 첫 단추로 한국의 '합기도' 라는 무예가 전세계 인이 각인 하도록 도복 통합을 제안하고자 한다. 단체나 도장의 고유한 정체성은 그들이 보유한 독창적인 기술 체계와 상징적인 마크나 패치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될 수 있다. 외형적인 도복의 통일은 흩어진 합기도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상징적 토대가 될 것이며, 이는 곧 무도의 본질적인 가치를 회복하는 소중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이제는 다시 힘을 모아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합기도가 되어야 한다. 합기도 단제장 간의 대승적 합의가 이제는 있어야 한다.

 

** 외부 칼럼(기고)은 본 신문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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