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총포의 발달로 인해서 전쟁에서의 비중이 떨어지면서 무예는 거친 기술수련보다는 종교적인 색채를 지니며 학문화 되면서 조직적이고 의식적인 동질감을 주입하려는 경향을 띠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귀족 계급이었던 사무라이들에 의해서 주도된 반면 한국에서는 조선 후기에 무인이 아닌 문인이 유학자들에 의해서 이러한 무예의 귀족화가 이루어졌다. 동양 무예의 귀족화는 동양각국의 역사와 전통의 특성들에 따라 성장 발달했다. 통치자와 지배계급들이 무예에 불교, 도교, 유교의 종교적 의식 등을 주입하여 정신 수양적인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무예의 귀족화는 총과 화약의 발명으로 인해 전쟁무예의 필요성이 사라지면서 19세기말부터는 오히려 스포츠, 교육, 건강 등과 같은 비격투적인 목적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무예의 고급화’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군사무기의 발달로 인하여 군사교육과 살상을 위한 전쟁수단의 역할의 상실로 인해 무예는 실전성을 급격하게 잃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예의 실전성의 개념은 ‘호신’이라는 유한한 성격으로 축소되면서 무예수련의 교육적인 담당은 직업적인 호신 무예가들에게 전이되었다. 이들에 의해서 조작된 유파의 발생과 유행, 도장의 발생과 도장을 중심으로 한 기술을 위한 기술, 기술 그 자체의 발전을 위한 연구, 경기, 기술의 양식화(Stylization) 등으로 형성되어진 것이 근대 무예들이다. 실전적 효용성에 대한 요구나 필요성이 약화되면서 정신 수련, 또는 교육적 가치로서의 무예 수련의 개념으로 진화되어 왔다. 동양무예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한자권문화인 동북아시아지역의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의 무술(武術), 무도(‘武道), 그리고 무예(武藝)의 정의를 내릴 때는 ‘무(武)’라는 어원이 창을 들고 나아간다는 뜻을 지니고 있기에 무기술이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신성대는 주장하고 있다. 어떤 도구를 사용할 때는 기(技), 병장기를 다룰 때에야 비로소 ‘武藝’라고 했다. 중국의 각저, 수박, 고구려의 각저희, 수박희, 고려의 수박, 상박, 백타, 권박, 권술, 탁견희 등과 같은 권법들은 구체적인 동작의 기록이나 어떤 정형화된 법식이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권법은 건신과 호신의 목적뿐만 아니라 병장기를 다루기 위한 기초적인 신체 단련이 주목적이기에 무예의 정의에 대해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되지 못함을 그는 역설하고 있다. 특히 고대 중국의 국가들과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또는 고려시대에는 맨손무예는 무예문화 전체에서 매우 빈약한, 제한적인, 주변적인 형태로써 존재했음에도 맨몸 무예 위주로 무예의 개념을 해석하려는 오류를 범한 잘못된 인식이 일반 무예계에 팽배해 있다. 따라서 전쟁기술로서의 무기술 위주였던 무예의 역사에 의거한 신성대의 무예의 정의(定意)에 대한 실증적 주장에 무예 연구가로서의 필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근대무예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가라데, 태권도, 유도, 아이기도, 합기도 등과 같은 맨몸무예이다. 무기술은 더 간편해지거나 배제되고 맨손 위주의 무예들이 급속하게 발전되면서 오히려 무기술들은 맨몸 무예의 보조적이거나 부가적인 도움만 줌으로써 무예의 비중에 주변적 위치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현상을 양진방은 근대무기의 출현으로 무예의 실전적인 측면의 상실을 가져 온 반면 맨손무술로서 새로운 변혁이 이루어진 ‘동양 무도의 근대성’이라고 표현하였다. 무기술에서 맨손무술로의 무예의 중심 이동은 단지 무예의 형태만 바뀐 것이 아니다. 즉 살상 위주의 실전적 무기술의 투박하고 단순한 기술체계에 비해서 맨손무예 기술 체계의 발전은 더 복잡한 신체적 기능뿐만 아니라 인지적이고 문화적인 다양성이 요구되고 체계화 되는 무예의 변형을 가져왔다. 무예는 인류사에 있어서 삶의 일부분이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무예 전문가나 지도자가 존재하였다는 사실은 현대적 시각에서 볼 때 결국 무예란 특정 집단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일부분으로서 인간사에 끊임없이 존재해 왔다는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더욱이 근대 무예가 가지는 다양한 사회문화적이고 교육적인 역할들을 생각할 때 무예는 단순히 격투성을 지닌 신체문화의 일부라는 편협된 시각에서 벗어나려는 적극적인 노력과 전향적 시각이 필요하다. 이러한 일환으로서 관련 국가 또는 지역성의 환경이나 사회문화에 따른 특성을 지니면서 세계의 무예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형되면서 발전해 왔는가에 대한 실증적인 변증법적인 연구는 무예 연구가들에게는 현대 시대의 사명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이러한 취지하에서 세계의 무예들을 연구하고 분석하려는 대장정을 하기로 필자는 결심하면서 무예의 개념을 무기술로만 제한하는 전통적 의미로는 연구의 어려움과 한계성을 절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적 개념에 맞는 무예의 정의(正意)에 대한 전환적 인식과 태도의 필요성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어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무예의 현대적 개념은 세 가지 타입으로 범주화 될 수 있다. 전통무예(Traditional MA), 스포츠무예(Sport-based MA), 그리고 무기 무예(Weapon-based MA)이다. (1) 전통무예(Traditional Martial Arts): 전통무예는 전쟁의 상황에서 사용되어지는 무예들은 적군을 살해하 거나 무능하게 만들기 위한 (제압하기 위한) 기술들이나 기법들로부터 비롯되고 발달되었다. 가령 일본의 사무라이에 의해 사용된 주짓수 또는 이탈리아 검술인 La Scuola Spada Italiana 등의 전통무예는 전장 훈련 교수과목(요목)으로부터 진화되어 온 것이다. (2) 스포츠무예(Sport-based MArtial Arts): 오로지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보다는 경기(시합)를 위한 무예를 준비시키는 훈련체제를 포함하고 결합시킨 것이다. 무에타이, 서양복싱, 유도, MMA 등이 주요 사례들이다. (3) 무기 무예(Weapon-based Martial arts): 무기의 사용에 집중한다. 습득된 무기술들은 전통무예나 스포츠 무예 종목에 적용되어 질 수 있다. 검도, 에스크리마 그리고 bataireacht등이 예들이다. 무예의 스타일, 유파, 지도자에 따라서 이 세 종류의 무예의 비중과 강조 또는 수련의 스타일 등이 융합되고 조화되어 진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무예 수련의 가치의 가장 큰 주목할 만한 변화는 심화된 무예의 스포츠화이다. 사실 근대화 과정을 통하여 스포츠화 되지 않은 무예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일본의 고류 검술들은 스포츠화된 검도, 고대 유술들은 스포츠화된 유도, 중국의 우슈를 경기 스포츠화시킨 산타 등이 있다. 한국은 태권도의 국제화된 경기화, 전통무예로 지정받은 택견의 시합화속에서 전통적인 무예성을 고집하는 합기도 또한 경기화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인지 오래이다. 이러한 무예의 스포츠화는 무예의 기본적 정체성의 목적이었던 군사적 유용성이 떨어지면서 대중화를 위한 국민체육 보급에 사용할 만한 무예로의 전환의 과정에서의 당연한 과정이었다. 가령 유도와 태권도 등의 올림픽 무예종목으로서의 괄목할 만한 발전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다른 무예스포츠들 또한 이를테면 가라데, 우슈 등이 스포츠화를 통해 올림픽과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에 포섭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현상은 무예스포츠는 또 하나의 국가간의 갈등적인 요소를 유발하였는데 이는 고대의 뛰어난 무예기술로 무장된 군사력 우위로서의 국가간의 경쟁과는 다른 것이다. 근대화 초기의 무예가 스포츠가 되어 세계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은 국적보다는 창시자와 계보를 따지는 근대화 초기의 무예와는 달리 근대의 무예스포츠는 관련 국가의 스포츠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가적인 기획과 후원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상을 초래했다. 그 결과로 승패를 중히 여기는 무예스포츠의 등장은 특히 동북아시아의 한중일간의 국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특성을 지닌 무예 경쟁이 심화되었다. 아이러닉한 것은 무예의 기술을 강조하고 문화적 정신적 측면을 무시하는 풍조를 지닌 현대의 무예문화는 경기지상주의의 스포츠화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도 전통적인 무예의 역사적 가치성을 회복시키면서 정신수련적인 측면에 가치를 더 부여하고 유지하려고 하는 현상을 보여준다. 따라서 무예의 스포츠화로 증폭된 국가들간의 국수주의적인 무예의 정체성에 대한 갈등의 주요 내용을 근대 이후 점차 퇴색되거나 사라지고 있는 무예의 역사적 가치에 두고 있다. 즉 전통적으로 내려온 기술과 교수 방법 등을 계승, 유지하는 전통무예식 가치를 어느 국가가 가지고 있느냐를 두고 한 무예의 국가적 정체성에 대해 논란을 일삼고 있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무예의 국가적 정체성의 강조는 전통무예들의 복원에 대한 관심과 열기를 더해 갔다. 그러한 영향으로 택견은 한국전통무예로서의 입지화를 굳혔다. 또한 태권도는 가라데와의 이론적으로나 실기적으로부터의 차별성과 독자성 확립에 대한 발전적인 노력 등의 긍정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반면 중국이 태권도를 중국의 전통무술에 기원을 두는 국수주의적 망발을 일삼기도 했다. 합기도는 동일한 한자어 무명과 대동류합기유술과의 연관성으로 인해 일본의 아이기도의 아류인 것으로 오도하는 등 역사 왜곡적인 제점들을 양산하는 부작용도 초래했다. 무예의 국가적 정체성의 갈등의 해결방안으로 세계화시대를 맞이하여 일본의 무도, 중국의 무술, 한국의 무예 등과 같은 협애한 국가별 해석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일각에서는 주장한다. 즉 한국적이란 특수성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동양적이란 보편성에 주목하여 통합성을 지닌 동양무예의 가치를 창출하자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몇몇 무예연구가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는 국가적으로 개별성의 색채가 강한 무예의 본질을 망각한 너무 이상적인 의견임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무예의 국가간의 전통성 역사적 논쟁은 현 시대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요즘 세간의 핫이슈가 알파고의 최첨단의 인공지능 로봇의 등장과 같이 갈수록 첨단화되는 과학기술과 정보화 기술로 인간의 인지영역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 사회에서 오늘날의 신체적 영역인 무예의 모습은 어떠한가? 여전히 전통성을 고집하면서 고대무예와는 크게 다르지 않는 원시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과 훈련도구를 사용하고 있을 뿐이라고 무예학자 존 도나휴(John Donahue)의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복잡성과 기술, 그리고 효율성에 맞춰진 무예체계의 모습을 볼 수 없고 여전히 장시간의 숙달의 기간을 요하는 비효율적이고 전근대적인 무예의 현대의 자화상은 무예인들로 하여금 심각하게 성찰하고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합기도를 평생 수련하고 연구하면서 스포츠 교육학을 전공하고 지도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무예의 발전지향적인 연구의 노력의 일환으로 스포츠교육학적인 연구방향을 가진 책의 집필의 기획을 추진중이다. 스포츠교육학은 기존의 신체활동 위주의 체육의 영역을 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교육학 등의 연구분야를 접목하고 응용함으로써 단순히 스포츠 활동을 넘어서 스포츠에 관한 기능, 지식, 정서, 문화를 통합하여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학문으로 발전해 오고 있다. 무예연구의 범위를 이러한 스포츠교육학의 발달적인 측면을 응용하여 신체적인 기술적인 면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특정한 무예가 형성되고 발전되어 오는데 영향을 끼친 해당 국가의 물리적 환경과 사회문화적인 특성들을 고찰하려고 한다. 이러한 특성들이 합기도와의 연관성들을 비교 분석하여 하기의 도표의 목차에 의해서 책을 집필하려는 대작업에 필자는 도전하려고 한다. 물론 올바른 연구를 위해서는 각 무예의 관련된 실증적 자료들을 분석하고 과장된 주장들을 추려내고 진실된 뒷받침하는 내용들을 연구하여 그 진위를 평가하는 경험주의적 관점의 접근이 필수적으로 시행되어질 것이다. 따라서 각 국가의 무예에 관련된 물리적이고 사회문화적으로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을 읽고 분석하고 무예 전문가나 학자들의 검토와 의견을 거치는 장기간의 과정이 요구되어진다. 나아가서 이러한 연구 분석한 자료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여, 재구성하는 최대한 객관성을 지닌 필자의 직관과 추리력이 수반되어져야 할 것이다.
본 칼럼에서는 합기도 연구에 관한 지속적인 내용들과 더불어 가끔씩 이러한 대장정의 연구 결과물들이 나오는 대로 부분적으로 정리해서 연재 형식으로 실으려고 한다. 이 연구가 전반적인 무예분야의 진보적인 발전에 미미한 이바지를 함으로써 무예가 주변적이고 사소한 분야에서 벗어나 현대 사회의 주류 문화로 거듭나는데 일조하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한국무예로서의 합기도가 정체성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되기를 필자는 소망해 본다. <저작권자 ⓒ 한국무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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