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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락으로 사유한다?
[신성대의 혼백론 13]
 
신성대 주필(글로벌리더십아카데미 공동대표) 기사입력  2020/12/0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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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대 주필   ©한국무예신문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생의 대부분을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떠돌았다는 점이다. 석가는 일생동안 끊임없이 만행을 하였고, 공자는 천하를 주유했다. 모세도 광야를 떠돌았고 예수 역시 짧은 생애였지만 한 곳에 머물지 않았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라면 굳이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오는데 뭣 하러 고생스럽게 옮겨 다니겠는가?

 

철학은 한 곳에 머물면서 할 수도 있지만 수행은 한 곳에 머물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머물면 곧 집착이 생기기 때문이다. 가령 어디가 기후도 좋고 인심도 좋아 머물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하면 그 곳에 대한 집착이 곧바로 생긴다. 어디가 좋고 어디가 나쁘고등등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벌써 집착이자 편견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여기에 어떻게 하면 머물 수 있을까? 더 좋은 데가 있을까? 등등 온갖 생각이 생겨난다. 그러다 보면 떠나지 못하고, 떠나지 못함은 곧 버리지 못함이니 영혼이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무소유(無所有)든 비소유(非所有)든 불가능해진다.

 

성인들이 제자들에게 교회나 절을 짓지 말고 우상의 신물을 만들지 말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내것 네것이 있으면 내 생각 네 생각이 있게 마련, 의견이 갈라지고 방법이 갈라지고 이해가 엇갈리게 되면 마지막엔 내편 네편이 생기고, 그 틈새에 편견과 선입견이 끼어들게 마련이다. 이래서는 진리를 찾기가 영영 불가능해진다. 그런 상태에서 찾았다고 주장하는 진리나 깨달음이 과연 진리이고 깨달음이겠는가? 미망과 미련을 붙들고 어찌 해탈을 꿈꾼단 말인가? ‘버려라는 건 체념하라는 것이 아니다.

 

걷는 것이 최고의 수행법

 

해서 성인은 깨달음을 득하기 위해 집중하거나 명상(기도, 참선)을 통해 정진할 때를 제외하곤 결코 한 곳에 머물지 않았던 것이다. 이를 몸소 실천하고 끝까지 따라 다닌 제자들 역시 같은 방법으로 깨달음을 얻은 것이리라. 수행은 사유(思惟)와 실천이지 사유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인과 철학자(지성인)의 차이는 바로 이 점에 있다. 머무는 자는 소유론적 삶을 사는 것이고 떠나는 자는 존재론적 삶을 사는 것이겠다. 머무는 자의 사유로는 절대 존재론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 한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인들이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허구한 날 방랑객처럼 떠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머물되 앉지 않는다! 일찍이 수많은 지성들이 산책을 즐겼는데 그 대표적인 철학자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당연히 그 이전의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도 산책을 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도들과 함께 산책(페리파테인)을 하면서 강의와 토론을 했다고 한다. 아리스토학파를 일명 소요학파(페라파토스 학파)라고 불렀던 것도 그 산책길(페라파토스)에서 유래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칼키스로 떠난 다음 2대 학두였던 테오프라스토스에 이르러 팔레론의 데메트리오스의 도움으로 비로소 부지와 시설, 성전을 갖춘 학원이 되었다. 길에서 교실로, 산책 대신 앉아서, 성찰보다 연구를, 지혜보다는 지식을 중시하는 풍토로 학풍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강단학파의 시작이라 하겠다.

 

그렇지만 지식만으로는 절대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다. 지식이 사유의 꽃이라지만 실은 대부분 망상의 흔적들이다. 정기신(精氣神)이 함께 단련되지 않으면 진정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일찍이 몇몇 성인들과 철학자들이 그걸 깨닫고 실천했던 것이다. 산책이야말로 혼백의 균형을 맞추는 데에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왜 산보를 즐기는가?

 

칸트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빠짐없이 산책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동네사람들은 그가 산책 나오는 것을 보고 시각을 짐작했다고 했겠는가. 특히 음악가들은 산책을 통해 사색과 휴식 그리고 예술적 영감을 얻었는데, 대표적으로 베토벤의 산책이 유명하다. 1808년 그가 요양을 위해 빈의 외곽도시인 아일리겐슈타트 시골에 머물렀는데 시냇물이 흐르는 작은 숲길을 산책을 통해 교향곡 6전원의 악상을 떠올려 완성했다고 한다. 드보르자크 역시 산책을 통해 자연의 영감을 받아 작품을 완성시키곤 했다. 차이콥스키도 산책을 즐겼는데 그는 우연히 하루 2시간 산책이 건강에 좋다는 글을 읽고 미신처럼 철떡 같이 믿고 하루 2시간응 꼬박꼬박 산책한 걸로 유명하다. 브람스 또한 철학자 칸트 못지않게 산책에 철저했는데 그는 매일 새벽 5시에 한 시간 쯤 걸었다고 한다.

 

사실 교향곡 작곡자들은 천재수학자라 해도 될 만큼 수학적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라고 한다. 수많은 악기들에 각각의 음계를 부여하고 그것들이 조화를 이뤄내게 하려면 보통의 두뇌 수준으론 어림없는 복잡한 작업이다. 만약 그들이 산책을 안 하고 오직 작곡하는 일에만 매달렸다면 아마 머리가 터져 미쳐버렸을 것이다. 그 외에도 괴테, 니체 등 유럽의 위대한 철학자, 문학가 치고 여행과 산책을 좋아하지 않은 이가 별로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산책을 좋아했을까? 당연히 운동과 사색이겠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이들이 사색이라면 조용한 곳에 앉아서 해야 하지 않느냐고 단박에 반문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사색을 위한 걷기와 건강을 위한 걷기는 그 질이 다르다. 건강을 위한 걷기(산책)라면 굳이 이런 책을 묶을 이유가 없겠다. 그런 얘기는 이미 서점에 넘쳐나고 있으니 말이다.

 

다행한 건지 불행한 건지 모르겠으나 현대의 인간은 동물처럼 신체적 건강만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 살아가는데 수많은 지혜가 필요하며 그 지혜는 고민(사색)하지 않으면 나오지 않는다. 인간이 체험적으로 학습한 각각의 지식을 정보라고 하면 지혜는 그것을 다시 현실에 적용하는 응용프로그램인 것이다. 지식이 많다는 건 정보를 많이 축적했다는 뜻이고 지혜가 많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응용프로그램을 가졌다는 뜻이겠다. 당연히 남이 가지지 못한 새로운 프로그램이 보다 경쟁력을 높여줄 것이다. 창의(창조)력이란 그런 것이겠다. 그렇다면 어떤 지식이나 지혜가 인간을 보다 창의적으로 만들어줄까? 뛰어난 두뇌만이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는 것인가? 공부(정보의 축적)만이 최선일까? 아니면 다른 방법은 없을까? 바로 그걸 찾아 수많은 인간들이 수행의 길로 가지 않았던가?

 

 

사유냐? 고민이냐?

 

사전에서 사유(思惟)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 ‘개념,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행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단순히 우리가 생각이라고 하는 행위에는 기실 다양하기 짝이 없는 의미들을 함유하고 있다. ‘생각자체만으로도 복잡하기 짝이 없다. 가령 생각과 관련된 한자어만 몇 개 찾아보자. (), (), (), (), (), (), (), ()등등. 같은 생각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각각은 성질도 다르고 층차도 복잡하기 짝이 없다.

 

다시 이 한자어들이 자기들끼리 또는 다른 글자와 합쳐져 무궁무진한 개념어들을 만들어낸다. 철학은 어쩌면 이런 용어 만들기 경쟁이자 이들과의 싸움이라 할 수 있을 지경이다. 영어에서도 think, reason, idea, soul, spirit, mind, conscious, sence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순우리말엔 이런 개념어가 별로 많지 없다. 그만큼 철학적인 민족이 못 된다는 말도 된다.

 

생각과 관련된 조각품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과 로댕의 생각하는 남자을 꼽을 수 있겠다. 헌데 같은 생각이지만 그 자세만큼이나 생각의 질이 다른 느낌을 준다. 대개의 수행하는 불상은 관조(觀照)하는 자세인 반면 반가사유상은 이름대로 지혜롭게 사유하는 느낌을 준다. 로댕의 생각하는 남자는 심각하게 고민하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고통스럽게 고민 중인 남자란 말이다. 인간은 눈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시선의 방향에 따라 그렇게 차이가 난다.

 

생각(사유, 궁리, 고민)하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원동사가 될 수 없다. 형용사적인 동사다. 인간은 습관적으로(어쩌면 전두엽의 구조상) 상상을 할 때는 고개를 위로 쳐들어 천정(무한한 하늘)을 바라본다. 반면에 행동을 고민할 적엔 아래(유한한 땅)을 바라본다. 상상은 생각을 따라 날아가고 싶어 하지만 고민은 다 귀찮다며 구석으로 파고들고 싶은 거다. 상상은 비현실 혹은 미래의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지만 고민은 당장의 풀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문제이기 때문이다.

 

상상은 망상에 가깝지만 고민은 집중해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잡생각이 일어나거나 끼어드는 걸 싫어한다. 글을 쓸 적에 동사를 궁리할 때에는 아래를 보고, 형용사를 고민할 때에는 위를 보는 습관을 들이면 잘 떠오른다. 과학적(합리적, 객관적) 사유를 할 때에는 정면을 바라보고 궁리하면 된다.

 

꿈을 꾸는 것도 잠자는 자세에 따라 그 성질이 조금씩 다르다. 바로 누운 자세에서 꾸는 꿈은 대개 망상적인 개꿈이 많은 반면 웅크리거나 엎어져 꾸는 꿈은 먹는 일, 섹스, 도망, 다툼 등등 본인의 생존과 본능적 욕구와 관련된 꿈이 많다. 쉽게 말해서 동물적인 꿈이란 말이다. 뇌의 구조상 몸의 자세가 그 활성화되는 부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겠다.

 

만약에 위 주장이 수긍이 간다면 자연히 다음 의문이 일어날 것이다. 자세와 운동에 따라 생각의 질이 달라진다는 말인가? 아무렴 그 위대한 철학자나 예술가들이 조깅을 했을까? 당연히 산책이었을 것이다. 철학산책이라 하든 명상걷기라 하든 걷기와 생각 사이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상관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면서 그걸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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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12/06 [18:04]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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