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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안내] 태도적 가치 - 태도가 높이를 결정한다
 
편집부 기사입력  2019/11/26 [19:42]

 무엇이 사람됨을 결정할까요?


당신의 자기부가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자신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누구든 노예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노예로 살았던 사람은 여차하면 다시 노예로 사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애굽에서 모세를 따라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그랬다. 주인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 주인장 의식을 가지게 하기 위해 40년 동안 광야를 떠돌았다.

 

태도적 가치란 한 개인의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와 신념, 교양, 철학, 종교관, 인생관, 윤리관, 세계관, 우주관을 통관하는 용어가 될 수 있겠다. 본서에서는 이처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여러 가치, 그 중에서도 특히 태도적 가치를 비즈니스매너의 시각에서 탐색하였다. 그리하여 당장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현대인들의 삶의 지표로 제시하고, 더불어 한국인의 도무지 열리지 않는 세계관, 왜 선진국 진입 문턱에서 이토록 허우적대는지 그 원인을 파헤치고 있다.

 

<제1부; 태도적 가치>에서는 당장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 사고 혹은 지극히 사소할 수도 있는 행위들에서 간과하고 있는 진실들을 ‘태도적 가치’라는 프리즘으로 들여다 보여준다. 성공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사실, 가치 추구를 통해 인간존엄성 확보와 자기존중, 그리고 자기완성적 삶을 사는 지혜를 일러주고 있다.

 

<제2부; 익숙함의 유혹, 익숙함의 함정>에서는 서양문명이 전해진 이래 이 땅에서 매일처럼 익숙하게 행해지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그 본질에서 벗어나 있는지를 충격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거창한 철학이나 제도는 물론 사소하기 짝이 없는 악수‧건배‧기념식수‧차마시기… 등등 하나에서 백까지 근 백년 동안 우리가 받아들여 답습해오고 있는 서양문화가 그 본래의 의미는 간데없고 턱없이 변질되거나 그 껍질만 흉내내고 있음을 가감 없이 들춰내어 독자들을 충격에 빠트린다. 그리고 철지난 ‘소중한 우리 것들’이 굴레가 되어 현재 글로벌 비즈니스 무대에서 얼마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지, 선진국 진입 문턱에서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맞닥뜨린 작금의 한국 현실을 ‘새 술을 헌 술과 함께 헌 부대에’ 담아온 때문임을 뼈아프게 지적하고 있다.

 

<제3부; 정상에서 날다>에선 성공만으로는 부족하다며 한국인들의 열리지 않는 세계관을 망치로 독을 내리치듯 잔혹하게 깨부순다. 나름 세계 정상에 올라선 한국인들이 마땅히 거머쥐어야 할 어마어마한 부가가치를 놓친데 대해 인식조차 못하고 정상에서 추락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파헤치며, 정상은 지키는 곳이 아니라 날아오르는 곳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일깨워주고 있다.

▲ 신성대 지음/변형국판/양장본/컬러판/정가18,000원/동문선 ISBN 978-89-8038-699-4 94000 

 

태도가 높이를 결정한다!


태도가 당신 삶의 부가가치를 결정한다는 말이다. 남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더 많이 일한다고 반드시 더 잘 사는 것 아니다. 부가가치를 높이면 적게 공부하고 적게 일해도 충분히 더 잘 살 수 있고 충분히 즐기고 향유하면서 살 수 있다. 책에서는 같은 삶이라도 그 부가가치를 얼마든지 높일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한국인이 과연 이 땅의 주인으로서 진정 주인장답게 살고 있는가에 대해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다. 본서는 단순히 지식을 전해주는 책이 아니다. 지식을 지혜로 바꿔주는 책이다. 아무튼 책을 읽고 난 사람은 자신의 삶을 대한 태도,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책을 읽기 전과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태도적 가치’는 단순히 처세술의 한 방편이 아니다. 그런 만큼 중도에 책을 집어던지는 이도 있을 것임을 미리 일러둔다. 감히 말하건 데 이후 인간은 두 부류로 구별될 것이다. 《태도적 가치》를 읽은 사람과 안 읽은 사람, 그러니까 태도적 가치를 지닌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태도적 가치란 곧 자기부가가치이다.


[목차]

 

제1부 태도적 가치


1.죽음 앞에 선 신사의 태도  2.침몰한 것은 ‘세월호’만이 아니었다  3.태도적 가치를 잃은 한국인들  4.상유십이(尙有十二) 순신불사(舜臣不死)!  5.이순신 장군의 진짜 차별적 경쟁력‘, 창조적 가치’  6.신사들의 약속  7.‘피데스 세르반다(fides servanda)!’  8.신사의 자격, 스위스 명품시계  9.군인본분(軍人本分)  10.신념은 ‘태도적 가치’에서 나온다  11.덕(德)이란 무엇인가?  12.충(忠)과 효(孝)는 덕(德)이 아니다  13.인(仁)은 만덕(萬德)의 으뜸이다  14.엄(嚴)과 용(勇)  15.기사도(騎士道)와 신사도(紳士道)  16.승마는 리더가 익혀야 할 필수 종목  17.왜 하필 승마였던가?  18.리더십은 자세가 만든다  19.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누이가 성(性)이 다른 이유  20.다 자란 나무와 모자란 지도자들  21.첫술에 배불러야 하는 한국인들!  22.참 싸가지 없는 대한민국?  23.비뚤어진 주인 의식과 참을 수 없는 종복 근성  24.잘못 꿴 첫 단추  25.졸부 근성과 노비 근성  26.서비스도 품격이 있어야!  27.사소하지만 고의적인 실수  28.베어링스은행 파산 사건  29.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  30.신호등은 양심의 등  31.신사는 자기부터 존중한다  32.신사가 되지 못한 조선 선비  33.사군자(四君子)는 문인 정신이 아니다!  34.왜곡된 선비의 개념과 이중인격적 민족성  35.닐 암스트롱과 한국전쟁  36.독립투사들의 후손은 왜 가난해야 하는가?  37.품격 떨어지는 지원 캠페인  38.생명에 대한 태도적 가치  39.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  40.인격 존중과 인간존엄성 확보  41.성숙한 인격체로서의 자기 완성  42.부끄러움을 정리하는 용기  43.부자가 죽은 친구를 기리는 법  44.리더가 갖춰야 할 태도적 가치

 

제2부 익숙함의 유혹, 익숙함의 함정


45.관행·관례라는 된장독 근성과 민중주의  46.신사에겐 지옥인 나라, 대한민국  47.꺼져 가는 동방의 등불!  48.악수는 우리의 전통 예절이 아니다  49.굽은 나무가 산을 지킨들!  50.정(情)의 문화, 한(恨)의 문화  51.정(情)은 덕(德)이 아니다  52.칼의 정신  53.우정(友情)이 아니라 우의(友宜)  54.백만 불씩 든 14개의 돈가방  55.대통령이 절을 해도 되는가?  56.겸손은 비천한 자의 처세술  57.국격을 팔아 자신의 겸손함을 챙기는 이상한 대통령  58.대통령에게는 사(私)가 없다!  59.대통령 굽신배의 마이너스 부가가치 견적?  60.절대적인 사진 한 장!  61.빌 게이츠 회장의 주머니 악수 소동  62.주인장 의식, 주동 의식이 없는 민족  63.매너는 자기 존중의 실천  64.피지배식민 근성과 객관식 시험  65.왜 나만 가지고 그래?  66.민(民)의 주인뽑기가 민주주의?  67.유교 국가에서 민주주의 가능할까?  68.등대와 후레쉬의 차이  69.아는 만큼 보인다! 하지만 보는 만큼 알진 못한다!  70.직각식사는 인권이 아니라 인격의 문제다  71.무너지는 대한민국, 왜 올바른 리더가 없는가?  72.기드온의 삼백 용사  73.자세가 사람을 만든다  74.매너는 경쟁력이다  75.신사와 백팩  76.벤허는 사지에서 어떻게 살아나왔나?  77.신데렐라와 유리구두  78.눈맞춤을 기피하는 하인 민족  79.한국인은 모두 자폐아?  80.귀담아듣지 말고 눈담아들어야!  81.대면(對面)이란 눈맞춤!  82.한국의 어글리 불통 광고  83.한국인은 모두 갑이자 을이다  84.모든 한국어 번역은 오역!  85.갑을적(甲乙的) 언어, 한국어  86.수평 사회의 최대 장애물, 언어 체계  87.구어체(대화체)와 서술체로!  88.인성이 아니라 인품이다  89.서구 교섭 문화의 주요 개념, 멍에 

 

제3부 정상에서 날다


90.왜 정상을 오르는가?  91.정상에는 엄폐물이 없다!  92.매너는 리더십이다  93.중국 황제까지 감동시킨 조선 선비의 글로벌 품격  94.정장은 온전한 인격체임의 표현  95.반바지는 미성숙 인격체, 즉 아동임의 표식  96.추리닝은 인격이 아니라 동물격  97.냅킨 사용법도 몰랐던 대통령  98.냅킨은 식사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도구  99.밥맛 없는 한국인들?  100.일류들의 태도적 가치  101.버닝맨과 버닝썬, 미친 사회  102.신데렐라도 왕자님 만날 내공 안 되면 부엌데기  103.세계 챔피언이 된다는 것은?  104.맹물 혹은 맥주 세리머니로 망가지는 코리언들  105.우승에 절박한 한국 골퍼들, 즐길 줄 모른다  106.세계적인 부자들은 세계 챔피언들과 논다  107.자선 혹은 봉사의 태도적 가치  108.한국 부자들의 낭만?  109.후진적인 한국적 도네이션의 전형, 연탄 배달  110.봉황은 오동나무에만 깃든다  111.부자에게도 분수가 있고, 봉사도 격이 있어  112.날지 못하는 새, <대장금>!  113.비즈니스를 모르면 놀 줄도 몰라!  114.그대 눈동자에 건배를!  115.건배도 할 줄 모르는 코리언들  116.건배는 눈으로 ‘챙!’  117.와인 마실 때 저지르기 쉬운 실수  118.오두방정 유치 개그 건배사는 금물  119.칸! 베를린! 베니스!  120.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칸의 실수?  121.레드 카펫의 품격  122.베를린 영화제 모독?  123.정상에서 날지 못하면 죽음!  124.레드 카펫의 경제학  125.한류(韓流)는 왜 아랫동네로만 흐르는가?  126.차 한 잔의 의미  127.받침접시는 인격 존중  128.커피, 맛이 아니라 멋이다  129.한국인들의 글로벌 비즈니스 역량이 현저히 떨어지는 원인  130.섹스에 대한 예의 혹은 태도  131.신사는 여성을 오른편에!  132.유학(儒學)엔 여성이 없다!  133.거세된 남성성의 표현, 앞머리로 이마덮기  134.한국 삐딱이들의 앞머리  135.암울한 세기말적 현상  136.양심에 새긴 낙인  137.댓글에 목숨 거는 건 바보짓  138.한국의 부자들은 왜 부자로 사는 법을 모를까?  139.어떻게 놀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140.각종 잡기는 사교의 기본기  141.부부가 댄스는 기본!  142.놀 줄 알아야 큰물에서 논다  143.세습 부자와 신흥 부자의 태도적 가치  144.공덕(空德)과 염치(廉恥)  145.장학금은 백 배로 갚아야 할 빚이다!  146.설계에 뛰어난 민족이 되려면!  147.한국인의 역사관은 족보관  148.‘위대한 세대’를 위한 준비  149.진정 이 땅의 주인으로 살려면  [후기] 매너로 창조적 가치를!

 


[책 속으로]

 

제2부  익숙함의 유혹, 익숙함의 함정

 

한국의 신의 직장에 속한 어느 기관의 중견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해외 미니 MBA과정 연수에서 있었던 얘기다. 원래는 선진국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초보적인 학습법이다.

 

강사가 수강생들에게 문제를 낸다. 생수, 손거울, 양산, 비상식량! 사막에서 조난을 당하였을 때 생존에 가장 중요한 물건 어느것인지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수강생들은 각자가 하나씩 택일한다. 그런 다음 강사는 다시 똑같은 문제를 낸다. 대신 이번에는 옆의 동료들과 함께 충분히 상의해서 택일하라고 주문한다. 연수생들이 저들끼리 몇 마디 얘기를 나누다가 각자가 그 중 하나를 고른다. 마지막으로 강사가 역시나 같은 문제를 놓고 이번에는 시간을 아주 충분히 주고 외부의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상의해 본 다음 그 반응들을 심사숙고해 택일하라고 한다. (학교에서는 집에 돌아가서 가족들과 상의한 다음 택일해 오라고 숙제로 내준다.)

 

짐작했겠지만 정답을 묻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풀이 과정에서 남의 의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생각을 수정할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다. 개중에는 세 번 모두 한 가지만 고수한 사람도 있을 테고, 또 동료나 연수장 밖 주변인들의 의견에 따라 바꾼 사람도 있을 것이다. 2,3차 때 자신의 처음 생각을 꺾었다면 그 사람은 문제의 의도에 부합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세 번 다 같은 물건을 고집하는 사람이 문제다. 병아리며 오리 등속의 짐승들은 세상에 나와 처음 마주친 상대가 곧 자기 어미인 줄 안다. 남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고집과 편협성이 의심되는 사람이겠다.

 

유럽 초등학교 교육 방식의 한 예에 불과하지만 한국인은 이런 기초적인 훈련을 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매난국죽(梅蘭菊竹)이 어쩌고 하면서 지조·정절·기개가 마치 고상한 선비 정신인 양 가르치는 바람에 똥고집만 길러 왔다. 정몽주의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를 먼저 외우고 나면 앞서와 같은 교육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한국인이 열린 사고, 나아가 합리적인 사고를 지니기 힘든 이유다. 현실은 왜 교과서와 다른지, 그리고 삶에 정답이 없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여 평생 우물 안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걸 속된 말로 ‘꼴통’이라 한다.

 

한국인들은 그런 고집을 가진 지도자를 카리스마 있고, 소신 있는 훌륭한 지도자로 여긴다. 그렇지만 원칙이나 소신은 자칫 고집으로 굳기 쉽고, 신뢰 또한 인정(人情)이나 연정(緣情)으로 변질되기 쉽다. 비단 대통령뿐 아니라 한국인들 대부분이 정(情)적인 신뢰를 신용인 줄로 착각하고 산다. 매사를 정(감정)으로 판단하는 습관 때문일 테다. 글로벌 비즈니스 세계에서 신뢰란 곧 신용이다. 인간적인 신뢰가 아닌 상업적으로 철저히 검증된 신뢰를 말한다. 그리고 그게 매너로 표현되어야 소통이 가능해지고, 상대방도 즉각 수용이 가능한 솔루션 창출이 실현되는 것이다.

 

공적(公的)이란, 자기 생각을 버리거나 견해를 바꿀 줄 아는 것을 말한다. 끝까지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는 것은 공(公)이 아니다. 전체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견해를 수용할 줄 아는 것을 공(公)이라 한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공적(公的)인 것과 사적(私的)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공(公)이란 자기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이상, 국민의 이상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40 인격 존중과 인간존엄성 확보

 

2007년,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한인 학생 조승희의 총기 난사로 32명이 숨지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한데 사건 후 교정 한 켠에 희생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꽃을 놓는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조금 떨어진 곁에 가해자인 조승희 씨의 자리도 함께 만들어져 꽃이 놓여 있었다. 한국인들에겐 너무도 생소한 광경이었지만, 같은 학교 학생으로서 그 역시 희생자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에게 조금만 관심을 보였더라면 그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터라는 거다. 해서 그의 영혼도 함께 위로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도리란다. 그걸 미국인들의 용서나 관용으로만 볼 것인가? 그와 같은 죽음에 대한, 사자에 대한 생자의 편견 없는 매너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 인간존엄에 대한 태도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결코 선진시민 대열에 합류할 수 없을 것이다.

▲ 2007년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당사자인 조승희 학생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교정에 만들어 놓은 꽃무덤. (인터넷 캡처) 

 

124. 레드 카펫의 경제학

 

2019년도 칸 영화제 레드 카펫 행사에 중국의 무명 배우들이 대거 올라와 뭇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렸다. 주최측에 수천만 원을 내면 레드 카펫을 밟게 해준다고 한다. 문제는 그렇게 올라온 중국 배우들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본전 뽑겠다고 레드 카펫에서 뭉그적거리며 저 혼자 갖은 폼을 잡는 바람에 진행에 차질을 빚었다고 한다.

▲ 2012년 아카데미 최연소 여우주연상을 받은 제니퍼 로렌스. 45억 원짜리 크리스찬 디올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섰다. 이후 크리스찬 디올과 세 배가 더 오른 170억 원에 홍보 모델 재계약을 따냈다. (인터넷 캡처)    



사실 칸 영화제는 수상보다 레드 카펫에서 진짜 비즈니스가 이뤄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명 배우가 그곳에 선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경제적인 행위가 된다. 그런 사실을 한국인들만 모른다. 중국인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말이다. 수천만 원씩 내고 핀잔을 들으며 레드 카펫을 밟은 중국의 무명 배우들도 그 본전의 수십 배를 뽑아낸다. 그에 비해 한국 배우들은 수상을 못하면 비행기삯도 못 건지고 돌아오면서 그래도 레드 카펫 한 번 밟은 것에 의기양양해한다.

 

가령 저 유명한 중국 여배우 판빙빙을 보자. 그의 수상 경력이라고 해봤자 고작 도쿄 영화제에서의 여우주연상이 최고 성적이다. 그런데도 (탈세 사건이 나기 전까지는) 그는 매년 칸 영화제에 참가해서 레드 카펫을 밟았다. 작품 초청을 받은 것도 아니고, 심사위원으로 추대받은 것도 아니다. 그럼 다른 중국 무명 배우들처럼 수천만 원을 내고? 천만의 말씀! 오히려 수백억 원을 챙긴다.

세계적인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지켜보는 한 무리가 있다. 바로 세계적인 명품 회사 홍보담당자들이다. 하여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면 벌떼같이 몰려든다. 스폰서 계약을 위해! 그런 다음 그 수상 영화제는 물론 다른 영화제에도 그 배우를 해마다 참가시킨다. 오직 레드 카펫에 세우기 위해! 제 돈 내고 레드 카펫 밟는 배우는 삼류다.

▲ 거의 매년 칸 영화제의 레드 카펫을 밟았던 중국의 판빙빙. 세계적인 명품 회사들과 스폰 서십을 맺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제가 열리기 직전 보석이며 시계·가방·패션·화장품·구두 등 세계적인 명품 회사 홍보팀들이 호텔 한 층을 통째로 빌려 레드 카펫에 내보낼 배우를 혼신을 다해 최고급으로 우아하게 꾸미고 또 꾸며 훈련시킨다. 그렇게 해서 레드 카펫에 올리면 전 세계 유수 잡지사·언론사 사진기자들이 모여들어 최고의 사진을 찍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홍보는 그렇게 하는 거다. 그렇게 명품을 걸치고 명배우의 반열에 오르는 거다. 놀면서 돈 버는 진짜 프로가 되는 거다. 웬만한 영화 한 편 찍는 것보다 몇 배 더 많이 번다. 그리고 전 세계에 제 아름다운 사진이 퍼져 나간다. 남의 덕에 멋내고 돈도 벌면서 몸값을 점점 올려 나간다.

 

그만큼 무서운 곳이 레드 카펫이다. 영화 장면이야 마음에 들 때까지 수없이 재촬영하면 되지만, 레드 카펫이나 수상 무대는 재촬영이 없다. 단판 승부! 말 그대로 진검 승부하는 곳이다. 그곳은 현실이다. 평생 닦아 온 연기력을 오로지 자신을 위해 펼치는 곳이다. 레드 카펫 위에서의 한 걸음에 수십억 혹은 수백억 원이 걸려 있다. 해서 진짜 프로들은 레드 카펫에 목숨을 건다.

 

한데 한국 배우들은 이런 사실도 모르고, 설사 안다고 한들 여우주연상을 받아도 그 많은 명품 회사 어느 한 곳에서도 스폰서 제의가 안 들어온다. 매너가 안 되기 때문이다. 자세가 안 되고, 미소가 안 된다. 해서 수상 무대에 올라가는 걸음 동작 하나만 보고도 한숨을 푹 쉬는 것이다. 미모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천만에! 천하의 추녀도 세계적인 명품 회사들이 붙으면 곧바로 양귀비로 만들어낸다. 판빙빙에게 기자들이 왜 부자와 결혼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이미 부잔데, 왜 부자와 결혼해야 하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한다. 소문에 그의 재산은 1조를 훌쩍 넘는단다.

 

중국이야 시장이 그만큼 커서 그랬다 하더라도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라면 한국인이라 해도, 미인이 못된다 해도 적어도 재산이 천억을 쉬이 넘어야 상식일 것이다. 그래야 한국, 한국인, 메이드인코리아의 부가가치가 높아져 시민들 모두에게도 보이지 않는 혜택이 돌아갈 것이 아닌가? 그래야 존경받을 것 아닌가? 3대 영화제 주연상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들 저 잘난 것이야 부러울 뿐이지 국민들과 무슨 상관? 제발이지 글로벌 매너가 안 되면서 세계 무대의 정상에 서는 것은 본인이나 국격·국익을 위해서 도움이 되기는커녕 자칫 재 뿌리는 재앙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았으면 싶다. 한국 스타들은 모조리 날지 못하는 촌닭들이다.


149. 진정 이 땅의 주인으로 살려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여호수아>, 제5장 6절)

 

모세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데리고 나와 곧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40년을 거친 광야로 떠돈 것은 민족 개조 작업 때문이었다. 그 단련 과정은 처절해서 거칠게 표현하면 학대라 해야 할 정도였다. 여호와께서는 어리석은 자들의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기적을 행해 마음을 돌렸지만 자신의 명령을 어겼을 적에는 가차 없이 버렸다. 하여 40년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갈 즈음엔 처음 애굽에서 따라 나온 자들은 모두 다 죽고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그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심지어 모세조차도 제 민족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만 보고 죽어야 했다.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내어 그들에게 종된 것을 면하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내가 너희의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하지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내 법도를 싫어하여 내 모든 계명을 준행하지 아니하며 내 언약을 배반할진대. (<레위기>, 제26장 13〜15절)

 

노예가 그 멍에를 벗었다고 해서 바로 자기 자신의 온전한 주인이 되는 건 아니다. 애굽에서 430년 동안 박해받았으면 그 민족은 뼛속까지 천민 노예 근성이 배었다고 하겠다. 아니나 다를까 여호와께서 수없이 기적을 보여주며 달래고 겁을 줘도 여차 하면 도로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둥 여호와를 분노케 만들었다. 석판에다 계명을 새겨 보여주고 모세를 통해 미주알고주알 온갖 규례와 법도를 정해 실천시켜 애굽에서의 습성을 뜯어고치려 하지만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해서 40년간 광야를 떠돌게 하여 혹독하게 단련을 시켜야 했다. 그러면서 애굽에서 종으로 살았던 자들이 다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들의 2,3세들이 온전히 여호와께서 제시한 비전과 믿음에 대한 신실함을 지니게 되었을 때, 그리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주인장으로서의 담대하고 당당한 태도적 가치를 지녔을 때에야 비로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했다. 매너로 사람을 만든 것이다.

 

만약 그러지 않고 구습과 비천한 노예 근성이 몸에 밴 채로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냈더라면 어찌되었겠는가? 설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누가 비워 두었겠는가? 그곳에는 이미 다른 여러 민족이 살고 있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그 땅을 빼앗아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준 것이 아니다. 동물원에서 태어난 맹수는 우리를 벗어나선 살 수가 없다. 한번 노예는 영원한 노예! 싸워서 그들을 몰아내기는커녕 분명코 애굽에서와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에서도 역시 다른 민족을 섬기며 자자손손 비루하게 노예로 살았을 것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버릴 것을 버리지 못하는 민족은 절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누백년의 사대 근성과 노비 근성, 그리고 피지배식민 근성으로 찌든 등 굽은 한민족! 스스로 독립도 못하고, 스스로 해방도 못하고, 스스로 나라를 지키지도 못하고, 스스로 통일도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러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허구한 날 서로 네 탓 남 탓하며 편 갈라 떼 지어 싸운다. 이대로는 죽어서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우리는 아직 버려야 할 것이 많다. 새것을 받아들이는 만큼이나 버리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버림의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역사는 더없이 거칠고, 참으로 무정하다. 진정 역사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면 칼같이 단호하고 얼음같이 냉정해져야 한다.

 

바른 자세에서 올바른 태도적 가치가 나온다. 혁신이나 혁명이 모두 거창한 것만도 아니다. 진정한 혁명이란 민족의 사유와 습관을 바꾸는 것이다. 누천년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려면 환골탈태로 구시대의 봉건적 유습을 버리거나 개선해야 한다. 굽은 등을 바로 세워야 한다! 바로 서야 하고, 바로 걸어야 한다! 자기로부터의 혁명! 우리 세대가 해내어야 한다!


[지은이의 말]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걸까요?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까요? 왜 선진국 사람들은 우리보다 일을 적게 하는 데도 우리보다 더 잘 살까요?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요? 행복하기만 하면 잘 사는 걸까요? 우리사회에서 전염병처럼 유행하던 ‘행복’이란 말이 차츰 식상해지고, 요즘은  ‘가치’란 말이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만 과연 그 가치에 대해 제대로 한 번 깊이 생각이라도 해봤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끌려가 모진 고초 속에 살아남은 유대인 의사 빅토르 에밀 프랑클은 인간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value)’를 ‘창조적 가치(creative value)’, ‘경험적 가치(experiential value)’, ‘태도적 가치(attitudinal value)’로 분류했습니다. 인류는 역사를 통해 경험적 가치를 축적해왔으며, 철학으로 태도적 가치를 확립코자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과학이나 예술을 통해 창조적 가치를 추구해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경험적 가치는 또 다른 말로 하면 계산적 가치, 즉 유불리(有不利)에 따른 ‘제 수준 통빡에 맞춘’ 가치가 되겠습니다. 대개 합리주의자 혹은 기회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되겠습니다. 그에 비해 태도적 가치는 인간 존엄성에 기반한 가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없이 감정에 충실한 많은 한국인들은 이 경험적 가치와 태도적 가치를 잘 구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호불호(好不好)나 유불리(有不利)에 따른 처신을 자신의 태도적 가치인양 오해하는가하면 옹고집을 지조 혹은 절개인 줄 착각하기도 하지요. 이념 또한 유행이자 수단일 뿐, 불변의 가치가 될 순 없습니다. 따라서 이념추구란 곧 이념에 종속당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그런 걸 가치라고 우기며 지성인 혹은 지사인 양 합니다. 그처럼 가치에 대한 개념이 모호하다보니 분수도 모르는 무조건적 맹종을 마치 훌륭한 태도인 양 착각하는 것이지요. 하여 영웅적 투사가 되고자 하다가 결국 양의 탈을 쓴 등신 늑대가 되고 마는 것도 그 때문일 터입니다.

이 경험적 가치와 태도적 가치를 혼동하는, 아니 인식조차 못하는 대표적인 부류가 이 나라에선 정치인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운계약서, 위장전입, 논문 표절에도 사퇴하지 않고 뻔뻔하게 고개를 세우는 것은 버티면 살더라는 경험적 가치에 매달리는 것이겠고, 막무가내 반외세 반정부 운동이 정의구현인 줄 착각하고 막말도 서슴지 않는 극단의 시민들은 가치 아닌 가치, 헛것을 따르는 것이겠습니다. 침몰하는 배에 수백 명의 어린 학생들을 버리고 저 먼저 살자고 도망쳐 나온 <세월호> 선장은 그들을 살리려다간 자칫 제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경험적 가치를 따른 것이겠지요. 명색이 교육자인 대학교수가 제 자식을 좋은 대학 보내기 위해서 무단으로 제 대학의 표창장을 위조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태도적 가치나 자기완성적 삶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다면 차마 그럴 수는 없었겠지요.

 

사실 우리는 ‘가치’란 용어를 철학적으로 사고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잘 살펴보면 그에 버금하는 용어는 물론 그것을 추구해온 사례가 없지는 않습니다. 가령 평소 한국인들이 그토록 입에 달고 다니는 ‘도(道)’가 태도적 가치에 다름 아니지 않을까요? ‘도를 닦는다’는 것은 어떤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도덕(道德)이란 곧 덕(virtue)의 추구인 셈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일상에서 ‘〜답다’란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 옛날 공자도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부모가 부모답고, 자식이 자식다워야”한다고 했습니다. 그게 무너진 세상을 우리는 난세라 부르지요. 대통령이 대통령답고, 장관이 장관답고, 의원이 의원답고, 학자가 학자답고, 군인이 군인답고, 언론인이 언론인답고…. 아무려나 선장이 선장다웠으면 <세월호>와 같은 끔찍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듯합니다.

 

한국병이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반세기 동안의 압축 성장의 후유증으로 고산병·잠수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대로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려다가는 엎어지거나, 미끄러지거나, 점점 더 타락할 뿐입니다. 하여 끊임없이 실망하고 원망하고 분노하고 좌절할 것입니다. 매너가 없는 사회는 썩은 사회이자 죽은 사회입니다. 또다시 역사의 비정함에 피눈물을 쏟지 않으려면 피를 갈고 뼈를 깎는 체질 개선 작업으로 된장독 근성을 내다버려야 합니다. 예서 잠시 멈추더라도 우리가 어떤 태도적 가치를 지니고 미래를 맞아야 할지 고민해야겠습니다.

 

알에서 깨어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민족 정신의 개조는 엄청난 고통을 수반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부르짖는 정치나 경제 혹은 법률 제도의 개혁보다 더 힘든 작업입니다. 왜냐하면 수백년 혹은 수천년 동안 습관화된 사유 및 생활 방식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진흙으로 만든 개는 밤을 지킬 수 없고, 기와로 만든 닭은 새벽을 담당할 수 없다 했습니다. 화석화된 옛것으로는 미래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근현대사의 혹독했던 낡은 길을 다시 걷지 않으려면 뼈를 갈고 피를 바꾸어서라도 민족성을 개조해야 합니다. 다혈질적이면서 조급하고, 단순하면서 물불 안 가리고, 전투적이면서 울컥 화도 잘 내고, 화끈하고 신바람내기 좋아하는 야성적인 기질! 왜곡된 선비정신에 억눌려 비정상적으로 표출되는 이 힘을 항구적인 덕(德)으로 다듬어 진취적인 민족성으로 승화시켜 나간다면 분명 오래지 않아 우리도 ‘위대한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소개]

 

신성대(辛成大)

 

▲ 저자 신성대     © 한국무예신문

1954년 경남 영산(靈山) 출생. 16세에 해범 김광석 선생에게서 조선의 국기인 무예 십팔기(十八技)를 익혔다. 이후 50년 동안 십팔기의 전승과 보급에 힘써 2019년에 서울시무형문화제 제51호 전통군영무예로 종목 지정받았다. 현재 (사)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 및 (사)전통군영무예보존회 회장으로 무예십팔기 및 도인양생공을 지도하고 있다.

 

1977년 한국해양대학 부설 전문대학 졸업. 해외송출선원으로 7년간 외항선을 타고 수차례 세계를 일주하며 견문과 호기심을 넓혔다.

 

1985년 도서출판 동문선(東文選)을 설립해 지금까지 약 8백 종의 인문학 분야의 전문서적을 펴냈다. 한중수교 전인 1990년 서울 인사동에 우리나라 최초의 중국원서수입서점을 열어 한중 간 학술 교류의 물꼬를 텄으며, 2000년엔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쌍소의 에세이《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출판하여 한국에 ‘느림의 미학’ 붐을 일으킨 바 있다.

 

2012년 글로벌리더십아카데미 공동대표. 품격경영아카데미컨설팅 공동대표. 사)십팔기보존회장 겸 사)전통군영무예 공동대표. 2014년 11월 24일 조선일보 ‘최보식이 만난 사람들’ 인터뷰, 2015년 월간조선 ‘글로벌매너’ 1년간 연재하는 등 데일리안‧경기데일리‧파이낸셜신문‧한국무예신문에 문화비평을 발표, 2018 국감 외교통일위원회’ 참고인 출석하여 외교관들의 국격 디스카운트 지적하는 등 국격을 높이기 위한 품격사회운동을 이끌며 글로벌매너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무덕(武德)-武의 문화, 武의 정신》, 《품격경영-상위 1%를 위한 글로벌 교섭문화 백서》(상/하), 《자기가치를 높이는 럭셔리매너》, 《나는 대한민국이 아프다》, 《산책의 힘》, 《혼백과 귀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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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26 [19:42]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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