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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밀양에서 묵개를 만나다
 
고성학 박사 기사입력  2016/03/30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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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학 박사    © 한국무예신문
백중百中의 만어사는 컴컴한 듯 빛났다. 삼랑진역에서 급우及友와 나는 묵개默介를 만나 바로 만어사로 갔다. 보름달을 보기 위해서다. 만어사는 만마리의 물고기가 돌이 된 절이다. 초입부터 온통 돌이다. 축대도 계단도 미륵도 깃발도 다 돌이다. 여기 돌은 쇠소리를 낸다. 숙살지기다.
 
이곳 밀양은 사명四溟대사의 고장이다. 명부의 세계다. 그래서 만어사는 만혼의 해원처다.  돌 위에 앉아 세상사를 논한다. 달빛에 몸이 젖어 풍경이 된다. 묵개의 기개와 경의가 어둠을 흔든다. 급우의 잔잔한 공심功心이 달빛에 스민다.
 
세사람의 방외사方外士들이 세 시간 넘게 목을 토한다. 묵개가 밀양 땅을 흔든다. 밀양은 화랑의 고향이자 신라의 탯줄이란다. 묵개의 적선이 산천대축을 이룬다. 민중도 경찰도 감동이란다.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산자와 죽은 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자연법칙을 일깨우고 있다고 할까.
 
어느덧 밤 열한시. 셋은 돌이 되어간다.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는 '바위'가 아니라 즐겁게 소통하는 돌말이다. 만혼의 영혼과 익숙한 묵개는 내년부터 조용헌과 강신주 3인이 우주만물을 통섭하는 야단법석 콘서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방외지사 중에서 으뜸은 역시 묵개다. 동과 서 고와 금을 종횡으로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통찰과 기골 장대한 카리스마까지 문무를 겸비한 재야의 고수다.
 
심야의 방담은 달빛 걸음걸이처럼 은근했다. 이제 묵개의 처소 반야암으로 갈 차례. 산도 깊지만 불심이 더 깊다. 급우가 가지고 온 더덕주로 하루를 마감한다.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새벽 으스름에 청신한 산기운이 스멀거린다. 산야를 산책하고 급우와 만어사를 다시 찾았다. 너덜지대 물고기가 반겨서 뛰어오른다. 미륵전은 거대한 돌을 미륵으로 모신 곳이다. 돌을 통으로 감싸 안은 건물이다. 돌에 생명을 부여한다. 자연과 인간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우리의 신앙이다.
 
묵개와 더불어 표충사를 찾는다. 가면서 명물식당에 들러 아침요기를 했다. 금방 만든 두부 맛이 고소하고 향기롭다. 반찬이 살아있다. 원시의 밥상이다. 육신이 좋아서 절로 반응한다.
 
표충사는 한국적 절이다. 유교와 불교, 서원과 사원의 공생하는 기이한 사당이자 절이다. 엄중한 신앙에까지 절충점을 찾은 것은 대단히 희귀한 경우다. 묵개가 말하는 화엄이다. 의상과 원효. 두 고승은 해와 달, 거대와 디테일, 엘리트와 민중, 정치와 민생 등 지향하는 바는 달랐지만 통일신라의 대통합에는 힘을 합쳤다. 이런 대사상가가 있었기에 통일신라 오백년이 가능했을 것이다.
 
요즘 남북분단을 생각하면 통합의 큰 철학이 보이질 않는다며 안타까워했다. 표충사는 마당의 영역만을 분리한 단순한 융합이다. 백중날이라 신도들로 북적거린다. 목탁과 염불소리가 우렁차다. 내려오는 길에 봉주르 커피숍에 들렀다. 여성 주인장의 마음씀이 넉넉하다. 물심일여인지 커피 맛도 좋다.
 
▲ 밀양 부북에 있는 위량지로 봄나들이갔다. 수 백 년은 되었을 것 같은 이팝나무에 누어 세월을 가늠한다. 나무는 나이가 들어도 멋진데 사람은 어떨까? 공연히 나무와 대결하려는 멋적은 날이다.(묵개 서상욱 페이스북에서)     © 한국무예신문

이제 합천 남명조식의 생가로 간다. 남명의 생가지는 묵개의 강력한 추천에 의한 거다. 조그만 동네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마을인 것 같다. 변변한 개량주택도 보이지 않는다.
 
야트막한 구릉에 오르자 세상이 달라졌다. 묵개는 이런 구릉을 강堈이라고 했다. 키높이가 일정한 병풍산이 꽃잎처럼 360도 둘러싸고 물길이 270도 돌아나가는 안온한 땅이다. 높고 험한 산이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어찌 이런 곳이 다 있을까. 우리나라 산천 어디라도 높은 산 하나쯤은 멀리 보이게 마련인데...
 
산불고 수불심山不高水不深. 원만한 산세와 물길이 가장 좋다는 뜻이다. 조화와 중용도 이런 공간에서 나온 삶의 지혜일터. 알고 보면 자연과 사람은 둘이 아니다. 자연을 배제하는 순간 사람은 소외되고 불행의 씨앗이 된다. 이곳은 명당 터다. 남명이라는 큰 인물은 자연의 은덕과 적선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인연은 개인의 히스토리를 넘어선다. 후손은 조상과 다 연결되어 있다. 인연이 당대로 끝나는 법은 없다. 그래서 무섭고 조심스럽다. 덕을 쌓아야 한다. 묵개는 인과응보와 카르마에 대한 믿음이 단단하다. 내 눈에도 비로소 널따란 하늘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늘이 이 땅을 위해 울타리를 친 것 같다. 천하에 이곳만이 존재하는 듯 했다. 묵개의 영감에 또 한 번 놀란다.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아냈을까. 묵개가 밀양에서 기거한지 일 년 반이 지났다 한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자유로운 영혼은 가는 곳마다 정신세계를 다잡고 있다. 대단한 공력이다.
 
남명생가지에 도착하자 몇 번 트림을 하던 천둥이 굵은 빗줄기를 토하기 시작한다. 마음마저 시원하다. 묵개와 급우 그리고 나, 세 사람의 만남을 반기는 칠석우일지 모른다. 식당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가 노래처럼 들린다. 신나는 록 음악이다. 대가식당에서 고기를 구워먹었다. 밀양이 뱃속에서 소화된다. 건위천. 에너지가 넘친다. 대체 얼마나 더 기를 받으려는가.
 
주역의 정수는 길흉이 아니라 어떻게 변화의 수를 찾아 살길을 찾느냐에 있다고 한다. 묵개는 당대 최고의 주역 전문가다. 밀양은 개벽을 꿈꾸며 세간을 출하는 곳이다. 언제 벗 셋이서 세상을 제도할 수 있을까. 계층을 초월한 대승의 과업을 새겨본 시간이다.
 
작위와 무작위, 인연과 해탈의 경계를 벗어나 우리는 사부대중을 위해 할일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밀양에서의 일박이일은 느슨한 듯하면서도 치열했던 자신과의 싸움터였다. 육체와 정신이 맛갈진 하루였다. 해가 저무는 밀양은 노을도 우정처럼 아름다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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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3/30 [23:44]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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