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성전도>에 보이는 비파정, 하도감, 훈련원 |
|
장충단은 명성황후가 일본의 낭인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 당시 끝까지 저지하다 목숨을 잃은 훈련대장 홍계훈, 궁내부대신 이경직 등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고종은 장충단을 어영청 군사들이 무예훈련을 하던 남소영(南小營)에 세우고 봄, 가을로 장중한 군제(軍際)를 지낼 것을 지시했다. 당시 장충단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들을 기리고, 일제의 침략에 분연히 저항하는 조선의 무혼(武魂)을 상징하는 성지(聖地)였다. 오늘날로 말하면 국립현충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원래 동대문 근처에서부터 남산 북록 일대는 모두 조선 시대 군영터였었다. 장충단의 부지는 현재 장충단공원의 면적보다 훨씬 넓었으며, 현재 동국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는 장충단 서쪽의 높고 평평한 부지에는 조선시대 훈련도감의 군사들이 무예 십팔기(十八技)와 활쏘기를 연마하던 비파정(琵琶亭)이 있었다. 임금을 호위하는 무예청(武藝廳)의 무예별감(武藝別監)들도 바로 이곳에서 봄 여름 가을을, 겨울에는 지금의 동대문운동장 근처의 하도감에서 훈련을 했었다. 장충단은 이렇게 조선 무인들이 무예와 정신을 단련하던 곳에 세워졌던 것이다.
장충단과 함께 사라진 조선의 무혼(武魂) 그러나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선총독부는 장충단을 폐사시키고 공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곳에 안중근 의사에 의해 죽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기리는 박문사(博文寺)를 세우고, 일제의 전쟁영웅인 육탄삼용사의 동상을 세우는 등, 장충단을 한국의 ´야스쿠니´로 만들어버렸다. 그것도 공원화시킨, 일본 본토의 신사보다 격이 떨어지는 신사였다. 그 후 매년 봄 장충단공원에는 이때 심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났었다.
해방 이후 박문사를 없애고 육탄삼용사의 동상도 헐어버렸지만 장충단의 복원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장충단의 사당은 6․25때 불탔고, 일제가 뽑아 버렸던 장충단비는 장충단사당 터에 지어진 영빈관에 잠시 돌아왔다가 신라호텔이 세워지자 ´장충단공원´의 입구로 옮겨져 홀로 쓸쓸히 세워져 있다.
십팔기옛터(十八技舊地)였던 비파정 일대도 일찌감치 동국대학교가 들어서면서 과거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고사하고 서울시민조차도 장충단의 유래와 이 일대가 훈련도감, 어영청 군사들의 무예수련터였음을 아는 사람은 극히 적다.
예장동(藝場洞)과 남산한옥마을 일제시대를 거치며 조선의 무혼(武魂)이 ´거세된´ 곳은 이 장충단만이 아니다. 현재 남산골 한옥마을이 자리한 예장동(藝場洞)은 무예연습장이라 하여 당시에는 ‘예장터’라 불리었고, 조선후기에는 금위영(禁衛營) 군사들이 이 일대에서 무예를 연마했었다.
임진왜란 당시에 이곳에 왜군이 주둔했던 연유로 일찍부터 이곳을 ´마음의 고향´으로 삼았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한일합방 후 여기에 공원을 조성하고 기녀들을 불러 풍악을 울렸으며, 그들의 수호신을 모시는 대신궁(大神宮)이라는 신사를 지었다. 현재의 남산공원은 바로 이때 조성된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매년 10월 8일이면 장충단공원에서는 장충단제가 열린다. 서울시 중구청에서 주관하는 행사인데 서울시민들에게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종묘와 사직단에서는 치러지는 성대한 대제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어찌 종묘사직만이 그토록 중요하단 말인가? 그걸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충신열사들의 넋을 기리는 일,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차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적인 군제를 지내던 장충단은 아직도 ´안개 낀 장충단공원´일 뿐이고, 조선시대 무인들이 활을 쏘고 창과 검을 휘둘렀던 예장동에는 곱게 차려입은 무희들의 춤과 음악만이 넘쳐흐르고 있다. 일제에 의해 조성된 그대로이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언제까지 장충단과 남산에 서린 조상들의 무혼을 방치할 것인가.
어디에도 반만년의 역사와 5백년의 왕조를 지켜온 한국 무인의 자취는 찾아볼 길이 없다. 그나마 일부 남아있는 장충단 공원을 그저 체육공원이 아닌, 본디의 목적에 맞게 호국충신들의 넋을 기리는 숭엄한 곳으로 되살려야 할 것이다. 더불어 조선의 국기였던 십팔기가 ´십팔기옛터´에서 다시 피어나게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호국 무혼이 살아 숨쉬는 장충단 장충단을 최대한 본디 의미에 맞게 복원해야 한다. 덩그러니 비석만 남아있는 장충단에 사당을 짓고, 최소한 조선말기 일제에 항거하다 사라져간 충신들과 조국의 광복을 위해 피를 흘린 독립군, 광복군의 위패를 모셔야한다. 그리고 매년 6월의 현충원 참배와 맞먹는 국가적인 제례를 지내야 한다. 광복절 일본 총리나 의원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할 때 우리 대통령은 장충단을 참배하는 것으로 적절한 외교적 대응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복원된 장충단 사당 앞에는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에서 익히던 전통무예인 십팔기와 활쏘기, 마상무예 등의 전문적인 상설시범을 펼치고, 이를 누구나 쉽게 체험하고 익힐 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 후손들의 활달한 기상과 강한 몸짓을 조상과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는 또한 서울의 역사와 지역적 특성에 딱 들어맞는 최고의 관광자원이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의 앞으로의 천년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강한 무예와 아름다운 예악의 조화를 통해 유구한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단단한 문화적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 장충단과 십팔기옛터의 복원은 그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