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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文武)는 부드러워야 한다
충신(忠臣), 명신(名臣)의 차이
 
신성대 논설위원(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기사입력  2011/11/17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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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대 주필     ©한국무예신문
한국 정치인들만큼 멋대가리 없고 막무가내 뻔뻔이들이 또 있으랴. 어디 정치인들뿐이겠는가. 관료나 재벌은 물론 조그만 권력이나 외제차라도 몰 형편이 되면 예외 없이 싸가지가 없어진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물고 눈을 째려보고 있어 도무지 말 붙일 엄두가 나지 않는단다.
 
언제나 경계심 가득한 성난 얼굴이라 너무 살벌해서 무섭다고들 하는데, 기실 한국인들 속으로는 그만큼 불안하고 자신없어함을 모르고서 하는 말일 것이다. 현실에 대한 답답함, 증오심, 적개심, 자격지심, 피해의식, 열등감 등등으로 찌들어 흡사 늙은 암소 갈빗살 뜯는 듯한 인상이니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세계 어디서도 이런 얼굴들을 한 나라는 없다.
 
만고에 변치 않는 밑천 안 드는 기술 중 최고가 아부다. 사람들은 이 아부를 간신배나 소인배들이나 하는 천박한 짓으로 폄하하지만, 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인간이 맨몸으로 할 수 있는 기술 중 최고의 고난도이자 가장 미학적인 것이다. 그러니 아부는 멍청해선 못한다. 어쭙잖은 아부로는 오히려 망신당한다. 한국 국회의원들이 그 단골이다.
 
이 아부가 없으면 인간사회가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아부 없는 관계가 제대로 유지되겠는가. 우리는 우선 가족들끼리 매일매일 아부하고 산다. 사랑한다, 예쁘다, 멋있다, 착하다, 잘했다 등등 온갖 아부를 입에 달고 산다. 회사는 물론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인사는 아부의 첫걸음이다. 당연히 아부할 줄 모르는 인간을 두고 우리는 가족성, 사회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칭찬이니 격려니 하는 것도 실은 아부에 다름 아니다.
 
아부(阿附)도 덕(德)이다

일반적으로 윗사람에게 하면 아첨(阿諂)이고 아랫사람에게 하면 칭찬이라고 하지만 방향만 다를 뿐 둘 다 아부다. 위로만 아부하는 신하를 간신(奸臣)이라 한다. 그러나 진짜 현명한 자는 위아래 구분 없이 아부를 잘 한다. 예전에는 이런 인물이 정치를 하면 명신(名臣, 良臣)이라 불리었다. 헌데 충신은 아부할 줄 모른다. 명신과 충신의 차이는 바로 이 아부하는 능력의 유무에 달려 있다. 자고로 충신은 많아도 명신이 적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조선왕조가 그랬다.
 
명군(名君)은 명신이 만든다. 충신이 아무리 많아도 명군이 될 수가 없다. 오히려 충신이 많이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왕이 형편없었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이순신, 유승룡 등 많은 충신들을 배출한 선조가 명군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황희 없는 세종, 김종필 없는 박정희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아무리 지고지순한 충절을 지녔다 해도 백성의 소리에 귀를 열어주는 않는 충신을 명신이라 불러주지는 않는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아부, 특히 아첨을 잘 못하지만, 기실 아첨은 멍청한 사람은 잘 못한다. 흔히 우리가 간신이라 해서 손가락질 하지만, 이들은 모두 머리가 비상한 사람들이다. 순발력과 재치, 눈치, 임기응변이 보통 사람들은 흉내조차 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나다. 당연히 지식도 많아야 한다. 간신 역시 목숨을 내걸고 아첨하는 꾼이다. 시기하는 수많은 적들을 경계해야 하고 아차 잘못 혓바닥 놀렸다간 황천길로 직행하기 때문이다. 흡사 시퍼런 작두날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충신은 고집만 있으면 할 수 있다. 굳이 머리 굴릴 필요가 없고 아래 위 눈치 볼 것도 없다. 목이 달아난다 해도 고집을 꺾지 않고 버티기만 하면 된다. 나라가 망하거나 말거나 충신은 충신이다. 해서 충신 중에 나라 말아먹은 자가 하나 둘이 아니다. 간신만 나라를 망치는 것이 아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일병합이 간신들 때문에 일어났던가? 그처럼 많은 충신들이 나왔음에도 어째서 나라를 망쳤는가?
 
결국 미련한 충신은 있어도 미련한 간신은 없다. 미련한 충신들이 득실대면 반드시 영리한 간신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간신은 명신이 될 수 있지만 충신은 절대 명신이 되지 못한다. 아부의 기술이 있고 없음에 달려있다. 미련한 아부로는 떡고물 정도는 챙길 수 있지만 뛰어난 아부는 권력을 쥔다. 간신의 아부는 자신만을 위하지만 명신의 고품격 아부는 군왕과 백성을 동시에 감동시킨다. 해서 역사상 많은 명작 아부들은 길이 전해져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원조 좌파 훈수꾼 공자(孔子)

공자(孔子)의 가장 큰 결점은 아부할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는 아부가 곧 인(仁)임을 깨닫지 못했다. 인을 군자만의 덕으로 잘못 이해했고, 능력 대신 예(禮)로만 사람의 귀천(貴賤)을 구분했다. 한 뼘 막대자로 사람을 차별하고 계급화한 것은 공자의 가장 큰 죄악이라 하겠다. 그는 아부를 간신들의 전유물인양, 소인배들이나 할 천박한 짓으로 규정했다. 정작 스스로는 위대한 뜻을 펼쳐보고자 일평생 천하를 주유하며 벼슬을 구걸하였지만 어느 군주도 그를 반기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인은 물과 같이 부드러워야 하는데도 자신은 마른 대꼬챙이같이 고지식했으니 과연 그가 인을 제대로 이해하기나 했을지 의심스럽다.
 
중국 역사상 3대 명신으로 동시대를 살았던 제나라 재상 안자(晏子)가 공자를 문전박대했던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현실성이 없는 이상세계를 꿈꾸는 극단주의자로 보았던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공자는 세계 최초의 사회학자이자 좌파지식인이었던 셈이다. 그것도 지독한 삐딱이 진보좌파주의자였다. 성격적으로 문제가 많은 또라이 몽상가였다. 그러니 어느 군주가 그를 가까이 두려 했겠는가?
 
만나는 왕마다 면전에 대고 ‘불인지옥(不仁地獄)’‘불신지옥(不信地獄)’이라며 핀잔부터 해댔으니 아무리 옳은 소리라 한들 반감부터 먼저 생기는 걸 어쩌겠는가? 《논어》는 후세에 제자들이 그들의 스승인 공자 중심으로 기술해 놓은 책이다. 당연히 제 스승이 실수해서 망신당한 얘기야 기록했을 리 만무할 터, 기실 당시 공자에게 핀잔 당한 제왕들 얼굴 붉으락푸르락 했을 것이고, 그가 간신히 목숨 붙여 도망쳐 나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당사자들 모두 죽은 후에 기록한 것이니 그 실제 내막을 누가 알겠는가?
 
먹느냐 먹히느냐, 혼돈의 시대에 인자무적(仁者無敵) 어쩌고 평화가 어쩌고 꼴통 막힌 소리를 해댔으니, 흡사 천안함 격침, 연평도 포격 당하고도 햇볕정책 고수하라고 주장하는 요즘 대한민국의 친북좌파들이 바로 저 공자의 신자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忍)으로 인(仁)을 지키고 신(信)으로 의(義)를 받들면 필시 사해의 오랑캐들이 감복하여 머리를 조아릴 것이라는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 못 차리는 것을 보면 확실히 유학이 왜 종교인지 알 것 같다.
 
그럼에도 어찌해서 공자는 그 살벌한 전국 시대에 가는 곳마다 왕들의 화를 돋우고도 죽임을 면한 수 있었을까? 그건 그가 군사적인 무력을 혐오했기 때문에 아무 나라에도 위협이 되지 못한다고 본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인간 죽여서 속좁은 군왕이란 소리 듣기 싫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로인해 능히 한 나라를 망칠 수 있는 위험한 인물임은 알아챈 것이다.
 
그렇지만 죽이지 않고 내치면 이웃의 다른 나라로 가서 혹여 그 나라를 망쳐줄 테니 그 아니 고마운 일인가. 해서 폭탄돌리기를 한 것이리라. 하지만 동양 역사상 전국시대가 어떤 시기이던가? 인간이 짜낼 수 있는 갖은 지혜와 술수가 이때 다 쏟아지던 시기가 아니던가. 호락호락할 리가 없다. 이미 이웃나라에서도 눈치 채고 곧바로 다른 나라로 돌려버리기를 한 것이다. 해서 일평생 돌림방을 당한 것이다.
 
만약 그때 어느 어리석은 왕이 있어 그를 중용했더라면 그 나라 망치는데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은 불문가지. 그랬더라면 지금 아무도 공자를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진실로 공자가 위대한(실은 위대해진) 이유는 그가 천만다행으로 실제 나라를 단 한 번도 경영해보지 못한 때문이다. 그렇지만 훗날 공자의 이상세계가 구현된 나라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조선이 아닌가? 해서 조선이 위대해졌던가?
 
지금 대한민국의 말만 번지르르한 교수들이 저만 옳고 잘난 줄 알고 현실정치에 참여했다가 죽 쑤고 사발 깨고 쫓겨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닌가. 위로 고정된 눈치만으로 아무 생각이 필요 없는 종복 가신(家臣)과 가신지망생인 식객들이 사랑채에 그득하다. 가신이 곧 충신인줄만 아는 미련한 지도자가 간신을 만든다. 대문밖에는 너무 똑똑한 삐딱이 훈수꾼들이 부자상갓집에 거지 몰리듯 넘친다.
 
실제 나라 경영을 해보지 못한 순결한(?) 인물들이 다음 지도자감으로 부상되고 있다. 정치란 진흙을 묻히는 것이라 했다. 정치판에 있으면서, 혹은 그 주변을 빙빙 돌면서 자기만이 깨끗하고 순결한 척 하며 주가를 올리는 얌체들이 바로 그들이다. 진흙을 만지지 않았으니 당연히 깨끗할 밖에. 여기에 기성 정치인들에 염증을 느낀 백성들은 혹시나 하고 또 속아 넘어가주는 것이다. 모두 공자학원 동창생들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아부의 기술에 달려 있다

요즘 우리나라 텔레비전 오락프로의 대부분은 유재석과 탈세문제로 잠시 휴업 중인 강호동이 다 차지하고 있다. 전자는 미소로 상대의 아양을 받아주면서 자신의 잘나지 않은 외모로 상대를 돋보이게 하는 재주가 남다르고, 후자 역시 괴상한 외모와 오버하는 몸짓으로 별것 아닌 얘기에 과도하게 박장대소하며 자지러져 상대를 추겨주는 미덕을 지녔다. 둘 다 추임새, 즉 아부의 달인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겸손을 미덕으로 선양해왔다. 허나 이는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사람 사이에 쓸데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유리막 같은 경계를 만들어 인간관계를 피곤하게 만든다. 나아가 본심을 숨기게 하고 결국은 이중적인 인격형성을 유도한다. 이는 결코 남에 대한 배려도 아니다. 오히려 자기 방어적인 수단이라 할 수 있다. 해서 겸손과 아부는 비슷한 것 같지만 질적으로 다르다. 아부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배려라 할 수 있다. 사람 사이를 좁혀준다.
 
아부의 기술은 보다 어렸을 적부터 자연스레 습득되어져야 한다. 나중에 철들고 나선 여간해서 배워지지 않는다. 그러니 학교에선 제발이지 훈수꾼만 양성하는 똥고집 선비정신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아부의 기술부터 가르쳐야 한다. 따로 교육비가 더 드는 것도 아니다. 그게 서비스정신이고 소통과 리더십, 그리고 소프트웨어의 밑거름이다. 아부할 줄 모르는 인간은 배려할 줄 모르고 화합할 줄 모른다. 당연히 여유도 없고 융통성도 없다. 그러고서 공부만 잘해서 저 잘살기를 바라는가?
 
스티브 잡스는 논문 하나 발표한 적도 없고 직접 무슨 기술 하나 개발한 적 없다. 남의 기술을 융합시킨 것뿐이다. 물 같은 부드러움으로 반죽을 해낸 것이다. 한국이 글로벌 시대에 도태되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근엄한 샌님 공자 자왈교(子曰敎), 학벌교(學閥敎), 입시교(入試敎)부터 버려야 한다. 우리나라 무인(武人)들 역시 너무 근엄하고 뻣뻣하다. 당당함은 좋지만 지나치게 경직되고 억지로 권위적이게 보이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특히 극존칭의 수식어가 붙은 창시자나 대표자들이 마치 교주같이 행세하며 떠받들리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연극을 하자는 건지 가장행렬을 보는 건지, 이 시대 무예의 존재의미에 대해 회의가 들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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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1/17 [23:36]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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