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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혼(武魂)이 있는 자 분노하라!
 
신성대 논설위원(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기사입력  2011/12/1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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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대 주필     ©한국무예신문
흔히 무예(무술, 무도, 체육)인들은 입만 열면 국민의 건강한 신체, 건강한 정신을 지닌 인재 양성을 들먹인다. 게다가 그 단체들의 정관을 보면 예외 없이 상무정신, 호국정신이 어쩌고 하며 호기로운 어구들로 기술되어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 땅의 무예인들이 그 구호만큼 국가와 민족을 위해 언제든 희생할 수 있는 정의롭고 용감한 사람들일까?
 
전통무예든 현대무예든, 심지어 체육이든 그 정신은 호국상무(護國尙武)로 요약할 수 있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공동체의 안위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면 무예란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존재해서도 아니 된다. 왜냐하면 호국정신이 없는 무예인이라면 역도나 도적의 무리일 것이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주먹을 휘두른다면 그는 필시 시중 불량배일 것이니 하는 말이다. 일신의 건강만을 위해 무예를 익힌다면 굳이 무예가 아닌 다른 재미난 체육이나 스포츠를 찾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한국의 무예가 어느덧 불교적 혹은 도가적 초연함을 멋으로 여겨 세속적인 관심을 멀리하고 방관자적 삶을 지향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예 본연의 자세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정치적 혹은 이념적 편가르기로 어느 한쪽에 서는 것 또한 바람직스런 일이 아니라지만 적어도 국가나 민족의 안위, 민족의 자존과 긍지가 침해당하는 일이라면 결코 좌시하지 못하는 것이 무예인이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대의명분이 확실한 공공의 위기 앞에선 일말의 의협심 같은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무예인들이 굳이 세상의 시비에 관여하는 것은 수양적 견지에서 보자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더구나 이미 그 본연의 용도와 효용성이 폐기된 전통무예를 오늘에 되살려 어디 전장에라도 나갈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이 시대에 옛것을 땀 흘려 익히는 것은 그 정신과 그 덕성, 즉 무혼(武魂)과 무덕(武德)을 길러 이 시대를 떠받치는 정신적 기둥 하나가 되고자함이 아니던가. 확고한 국가관, 정의감, 용감함이 다른 일반인들보다 더하지 않다면 어찌 스스로 무예인이라 자랑하겠는가.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못하면 무인(武人)이 아니다.
 
사람들은 배부르면 옛날 일을 쉬이 잊는다. 흔히들 6,70년대 파독 광부와 간호원들에 의한 송금이 당시 한국의 유일한 외화벌이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사실 일반인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실 하나가 더 있다. 뭐니 뭐니 해도 당시 달러를 벌어오는 데는 수출선원(타국의 선박회사에 취업한 선원을 일컫는다)들의 공이 제일 컸다. 맨주먹 하나로 무작정 외국으로 나가 도장을 개설했던 초기 태권도인들 역시 그랬다. 비록 먹고 살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누구나 가슴엔 애국심이라는 불덩어리 하나씩 간직하고 있었다. 그게 그 험한 난관을 이기게 해주는 힘이자 위안이었다.
 
당시 국내에는 수출할 물건도 없었지만 배다운 배도 없었다. 해서 해마다 수천 명의 선원들이 가족을 떠나 인생을 다 바쳐 오대양을 누볐다. 험한 파도와 싸워가며 외국배를 몰아주고 송금해준 품삯(달러)이 경제발전의 종자돈이 되었던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해양 및 조선 산업의 발전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수출품이라고 해 봐야 가발이나 조악한 의류, 수산물 정도에 불과했다. 게다가 모두 밑지는 장사였기 때문에 정부에서 수출장려금으로 보상을 해주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달러를 모아야했다. 달러모우기가 정부의 지상과제였던 시절이었다. 어느 누구든 달러를 벌려고 나가는 것은 허락되었지만 달러 쓰러 나가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했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달러란 국가의 돈이어서 일반인들은 감히 구경조차 어려운 것이었다. 지금의 북한처럼 말이다.
 
아무튼 그 시기에 선원들이 보내오는 알토란같은 달러는 지난 IMF시절 모은 금보다도 몇 만 배나 귀하디귀한 그야말로 산업의 혈액과 같은 것이었다. 그 돈으로 외국에서 기계 사들여 공장 짓고 수출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것이다. 그렇게 모은 달러로 이자라도 감당할 만큼 되었기에 차관 얻어와 조선소, 제철소 지어 중공업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한국이 세계10위에 근접하는 무역대국이고 배들도 예전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많아졌고, 달러도 넘치지만 그때 그 선원들은 아직도 오대양을 누비고 있다. 한국 배만 타는 것이 아니라 한국선원들의 질이 세계 최고수준이기 때문에 지금도 외국 배의 상당수 고급선원들은 한국인들이다. 예전에는 외항선 타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이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힘든 일 안하려 한다. 해서 하급선원들은 거의 모두 동남아 선원들이다. 그러니 10년 안 가서 우리 수출입상품 운반도 모두 외국선원들이 맡게 될 것이다.
 
예전에는 수출선원으로 나가게 되면 1년 씩 계약을 한다. 그리고선 한두 달 휴가차 집에 간다. 요즘은 대개 6개월 단위로 계약을 한다. 그만큼 힘들고 고독한 직업이다. 새로운 배에 승선할 때면 마치 외딴 섬 감옥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그리고선 파도와 싸우면서 일 년을 보내야 했다. 그동안 봉급은 모두 달러로 본국으로 송금된다. 필자도 24살(77년)부터 7년간 외항선 수출선원으로 나가 일본, 영국, 파나마, 리비아 등 여러 나라 국적의 배에서 일했었다. 그때 번 돈으로 동생들 공부시키고 남은 걸로 지금의 출판사를 차렸다.
 
소말리아에 납치된 한국선원들을 언제까지?
 
싱가포르 국적의 선박이 소말리아에 납치되어 협상 끝에 풀려났지만, 그 배를 몰던 선원들 중 한국인 고급선원들만 풀려나지 못하고 인질로 끌려갔다. 헌데도 정부에선 나몰라 하고 손조차 안 쓰고 있다. 이젠 더 이상 그 싱가포르 해운사에 미뤄둘 일이 아니다. 아무리 작금의 정계가 혼란스럽다고는 하나, 해당 기관은 어떻게 해서든 그 선원들을 구출할 궁리를 해내야 한다.
 
그들은 지금 한국에 잡혀와 있는 해적들과 교환하자고 한다고 했다. 이미 처음 그 배를 납치했을 적부터 나온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남의 나라 배에서 일하다 잡혀갔으니 그 회사 책임이라며 들은 척도 안했다. 국민들도 역시 그랬다. 해적들에 총 맞은 석해균 선장 살리기 위해 정부와 전 국민이 나섰지만, 달러 벌려 나간 선원들 납치에는 강 건너 불구경만큼의 관심도 없다. 그런가 하면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하고, 또 그 나라에서도 오지 말라고 하는 나라에 굳이 선교하러 갔다가 인질이 된 사람들은 정부가 나서서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데려오기도 했다. 한국인의 이중적 감성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스스로 비굴해서 만만한 나라
 
중국어선들의 불법어로를 단속하는 한국해경대원들의 희생이 잇따르고 있고, 이젠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언론이나 애국 네테즌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한들 그 분기탱천이 얼마나 오래 갈지, 또 뭐가 얼마나 달라질지 모르겠으나, 암튼 이번만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모양새다. 그렇지만 언제나처럼 한쪽에선 금시초문이란 듯 팔짱끼고 입 꾹 다물고 속으론 정부가 난감해 하는 꼴을 즐기는 패들도 있다. 벼슬 못한 조선 선비의 삐딱 근성이 바로 한국의 짝퉁 진보좌파 이중성의 뿌리인 게다.
 
게다가 중국대사가 사과는커녕 적반하장, 자국선원들부터 챙기는 바람에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었다. 조선 선비들이 오매불망 숭상해마지 않는 공자의 나라, 중국의 진면목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중국 당국의 처사에 열불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왠지 자신이 없어 보인다. 자국민이 해적들에게 인질로 납치되어 있어도 나몰라 하는 나라가 뭐 그만 일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폭격 맞고도 찍소리는 고사하고 저들끼리 멱살잡이 하는 웃기는 나라가 설마 뭘 어쩌겠다는 건지? 정신대할머니들의 수요집회가 1000회가 되도록 입도 벙긋 못하는 한국 정부, 그 분들이 진정 섭섭해 하는 것은 한국정부일까, 일본정부일까?
 
중국의 비상식을 배우고 싶다!
 
▲ 소말리아 해역에서 '아덴만의 여명'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대한민국 해군 '최영함'.(사진출처:Daum)  
스스로 당당하지 못하면 남에게 자신 있게 행동하지 못할뿐더러 남도 우리를 만만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 중국 대사의 적반하장에 어이없어 하지만, 기실 이는 대한민국 정부나 국민이 본받아야 할 일이 아닌가? 어떤 경우에도 국가는 자국민 보호가 우선이어야 하지 않은가? 그게 외교의 상식이고 기본 아닌가? 그동안 한국 정부나 해외공관들의 자국민에 대한 무시 혹은 무관심 때문에 국민들의 분노를 산 일이 어디 하나 둘인가? 그에 비례해서 다른 나라들도 한국을 우습게 여기는 것 아닌가? 해서 중국정부에 대한 원망이 한국정부로 향하는 것 아닌가?
 
대국이든 소국이든 굽혀야 될 일이 있으면 굽히고, 따질 일 있으면 그때그때 당당하게 따져야 하는 것이다. 지레 겁먹고 나중 일 어찌 될까 염려하여 할 말도 못하고 어물쩍거리는 것을 두고 굴욕이라 하는 게다. 엊그제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에 격추된 자국 첩보기를 돌려달라고 했다. 그걸 두고 한국 언론들이 미국의 굴욕이라며 떠들고, 반미진보좌파들이 고소해 하며 박수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참으로 불쌍한 동포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국민 단 한 명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그보다 더한 ‘굴욕’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 바로 미국의 대통령이다.
 
굴욕을 감내하는 건 비겁이 아니라 진정한 용기임을 모르는가? 역사상 수많은 영웅들 중 실패한 자와 성공한 자를 비교해보면 잘 알 것이다. 실패를 모르고 자만과 독선으로 결국은 나라를 망친 지도자가 있는가 하면, 굽힐 때 굽혀서 굴욕을 감수하고 성공으로 이끈 위대한 지도자들이 있다. 제발이지 조루증적인 발작을 멈추고 자중하며 지혜롭게 대처하는 습성을 기르자. 자신감은 그렇게 키워나가는 것이다.
 
무엇이 굴욕이고, 무엇이 당당함인가?
 
납치된 선원들이야말로 진정 한국 경제입국에 이바지한 애국자들이다. 필자의 동기들 중 아직도 배타는 친구들이 많다. 꽃다운 젊은 나이에서부터 지금까지 거의 30년 이상을 바다에 나가 달러를 벌어온 산업의 역군들이다. 이번에 납치된 기관장은 필자와 한반 동기이다. 그런가 하면 그 배고픈 시절 파독 간호원으로 나갔다가 지금은 북한수용소에 갇힌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도 있다. 이들을 우리가 모른 척하는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분명한 배신이다.
 
정부는 지금 당장 소말리아에 납치되어 있는 한국인 선원들부터 구출하라! 그들이 원하는 인질교환을 망설이지 말고 곧바로 실행하라! 지구 끝까지라도 따라가서 그들을 구해오란 말이다. 잡혀온 해적들 사면해서 풀어주고 한국선원들과 교환하라. 까짓 해적들 굳이 재판해서 국립호텔에서 잘 먹고 잘 살게 해줄 필요 없다. 그들 백 명 천 명보다 우리 동포 한 명 목숨이 더 귀하다. 얼마 전 이스라엘은 자국 군인 한 명 구하기 위해 2천 명에 가까운 팔레스타인 수감자들과 교환하지 않았던가? 왜 우리는 못한단 말인가? 해적들이 요구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요구했어야 했다.
 
사석(捨石)을 버리는 용인술을...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이 다음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사실상 정계를 은퇴한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여러 나라를 뛰어다니며 자원외교를 펼쳤으며, 특히 리비아 공관원 문제가 터졌을 적엔 리비아로 직접 찾아가 카타피 국가원수를 설득하여 그들을 구출하고 외교적 갈등을 잘 해결한 적이 있다. 해서 이왕이면 이번에도 특사로 나서서 소말리아 납치 선원들과 납북된 신숙자 모녀 구출에 남은 임기를 걸었으면 한다.
 
당장 이런 일에 그보다 더 적격인 인물도 없지 않은가? 버릴 사람조차 마지막까지 이용하는 용인술. 그게 정치다. 바둑도 그렇게 두지 않던가? 무엇보다 용감한 석해균 선장은 이들 납치된 선원들에 대해 왜 아직까지 한 마디도 없는가? 누구보다 그가 먼저 이들의 구출운동에 나서야 하지 않은가? 혼자 영웅이 되어 즐기는 것? 그게 뱃놈들의 의리일 순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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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2/17 [18:02]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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