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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智), 덕(德),체(體)
 
신성대 논설위원(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기사입력  2011/12/2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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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대 주필     ©한국무예신문
1894년 갑오 농민 전쟁 후, 조선 정부는 교육을 근대화하려는 목적에서 그해 7월 예부(禮部)를 폐지하고 근대적인 교육 행정 기관인 학무아문(學務衙門)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다음해인 1895(고종 32)년 2월 2일, 고종은 〈교육조서(敎育詔書)〉를 발표하였다. 이 조서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전통적인 도덕 교육에 지식 교육과 체육 교육을 새로이 첨가하여 교육의 근대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주요 내용으로는 첫째, 세계의 형세를 보건대 부강한 나라는 모두 백성의 지식수준이 발달하였으니, 지식을 깨우치는 것은 교육의 선미(善美)이고, 교육은 실로 국가를 보존하는 근본이다. 둘째, 교육은 그 길이 있는 것이니 허명(虛名)과 실용을 분별해서 실용에 힘쓰고, 독서나 습자로 옛사람의 찌꺼기나 줍고 시세에 어두워서는 안 된다. 셋째, 오륜의 행실을 닦는 덕양(德養), 체력을 기르는 체양(體養),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지양(智養)을 교육의 3대 강령으로 삼는다. 넷째, 널리 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기르겠다는 등이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스펜서가 주창한 지(智), 덕(德), 체(體)의 삼육(三育) 이론은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교육조서〉는 그 내용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전통적인 가치관을 개혁하는 것은 아니며, 앞서 일본의 메이지 천황이 발표한 〈교육에 관한 칙어〉의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여 봉건적인 주장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국운이 이미 기울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선포하는 것으로 그치고 식민시대를 맞게 된다.
 
식민교육 식민무예
 
이보다 앞서 1890년 10월 30일, 일본 메이지 천황은 〈교육에 관한 칙어〉라는 일종의 교육헌장을 발표하였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1868) 이후 근대화에 전력을 기울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천황제 중심의 군국주의 정치를 지향하였다. 이 칙어는 교육 부문에서의 이러한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일본의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의 교육 방향까지 결정하였다. 내용은 지육(智育), 덕육(德育), 체육(體育)을 통해 봉건적인 권위 체제를 옹호하고 천황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을 강요한 것으로, 천황 중심의 교육을 통해 천황에 충성하고 군국주의에 동조하는 '충량한' 신민을 기르는 데 목적이 있었다. 당연히 그 체육을 위해서 유도와 검도가 강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방 이후 1948년 교육법이 제정되고서야 실제로 이 칙어가 폐지되었다.
 
한 나라의 교육은 그 역사와 문화와 민족 이상에 뿌리를 두고 운영되고 개혁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근현대사의 굴곡 때문에 우리의 교육은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개되어 왔다. 해방을 맞은 지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일제 식민 교육 정신, 미국식 교육 제도, 민족 문제, 이념 논쟁, 봉건적이고 관료적인 권위주의 등등 많은 문제점들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고작 입시 제도에 발목이 걸려 오도가도 못 하고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21세기, 세계화의 기치 아래 세계는 자본이라는 신제국주의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휘몰아쳐 들어가고, 과거 어느 시대보다도 냉혹하고 살벌한 양육강식의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
 
예로부터 교육은 백년대계라 하였지만 지금은 결코 아니다. 개인과 개인, 나라와 나라, 문명과 문명, 사건과 사건, 자본과 자본이 시차도 없이 급속도로 거리를 좁혀 들어오고 있다. 더 이상 전통적인 가치관이나 수단은 백년은 고사하고 당장 내일을 기약해 주지도 못한다. 1백 년을 내다보고 느긋하게 고민하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다. 10년을 내다보고 하루하루를 고민하지 않으면, 미래는 우리를 매몰차게 거대한 해일 속에 내동댕이칠 것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는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는 모른 체하고서(어쩌면 실제로 모르는지도 모른다) 입시제도 문제에 부딪혀 부모(유권자)들의 눈치나 보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명품 대학교 입학이 어느새 모든 교육의 목표가 되어 버렸다(졸업은 자동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육, 덕육, 체육은 식민시대 교육 활동의 3대 목표로서 해방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모든 학교의 낡은 본관 지붕 끝을 지켜왔었다.
 
요즈음은 다양화 시대에 맞춰 색다른 구호를 내세운 학교도 많이 생겨났지만, 표현만 약간 달리했을 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굳이 벗어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교육의 목표를 이처럼 잘 요약한 구호를 찾기도 힘들 테니까.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이 이 지, 덕, 체를 기르는 데 과연 충실했던가?
 
상무숭덕(尙武崇德)은 군사용어가 아니다!
 
▲ EBS 영상무예도보통지 자료화면     © 한국무예신문
서양의 학교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교육이란 곧 지식(신학문)습득이라는 등식을 갖게 되었다. 오직 서양의 신학문만이 험난한 시대를 살아나갈 수 있는 가장 유효한 무기로 여겨졌다. 불과 1세기 동안 숱한 체제 전복, 그리고 그에 따른 가치관의 혼돈 속에 낡은 덕(德)을 기르는(보살피는) 일은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리고, 오직 신지식만이 난세에 배부름을 보장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체육은 일제 군국주의와 해방 후 좌우 이념 대립, 독재 정권에 대한 충성의 수단으로 인식되었고, 개인의 건강한 신체 발육이나 인격 도야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였다.
 
덕(德)은 행(行)의 철학이다. 안다고(知) 해서 덕(德)을 지녔다고 하지 않는다. 마음먹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반드시 실천해서 드러나야 한다. 따라서 글이나 말만으로는 가르치고 길러 줄 수가 없다. 반드시 땀으로 익혀야 길러진다. 시험지로도 덕(德)은 측정되지 않는다. 행실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방금까지 학교에서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는 교사의 가르침에 모두들 "예!"라고 대답하였을 아이들이, 교문 앞 가게에서 과자 하나 사들고 나오다 포장지를 골목에 툭 내던져 버리는 광경을 어렵잖게 볼 수가 있다.
 
지금의 입시 위주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교사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조기 유학이나 자녀 교육을 이유로 이민 가는 가정이 줄을 잇는데도 이 나라는 겨우 대입 선발 방식에 매여 끝없이 소모적인 논쟁만 벌이고 있다. 도낏자루 썩어나간 지는 오래되었고, 도끼날조차도 어디로 달아나 버렸는지 모르는 판에 나무하러 누굴 보내야 할지 몰라 입씨름만 하고 있는 꼴이다.
 
왜 이 시대에 전통무예인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것은 '신(信)'이 부족해서이고, 바른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용(勇)'이 부족해서이다. 잘못된 길임을 알면서도 중단하지 못하는 것은 '엄(嚴)'이 모자라서이고, 잘되고 잘못됨을 생각조차 못하는 것은 '지(智)'가 부족해서이다. 아무려면 어떠냐 하는 사람은 아예 '근본'조차 없는 자이다. 모두 행동(실천)철학이 부족해서이다. 다른 어떤 이유를 대든 그것은 비겁함에 지나지 않는다. 이순신 장군은 남은 12척의 배만으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게 무인(武人)의 본색이다.
 
어디 인성(人性) 교육만 그러한가? 과학 교육도 그러해서 실험을 더 중요시하지 않은가? 실천하지도 못하는 잡다한 헛지식들만 머릿속에 집어넣어 사회에 내보내고 있으니, 불량품 취급받는 것 아닌가? 그럴 바에야 책 몇 권 쥐어 주어서 내보내고 말 일이다. 덕(德)은 몸으로 길러야 한다. 다시 말해 땀을 흘려 몸에 배게 해야 한다. 당장은 안 되더라도 항상 염두(화두)에 두고 조금씩 닦아나가야 한다. 그것을 두고 수양(修養)이라 한다. 무(武)를 통해서건, 아니면 체육을 통해서건 기예를 익히고 신체를 단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학교체육은 있으나마나, 체벌금지! 그것도 부족해서 학생인권조례! 나약한 청춘들 위로 한답시고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청춘콘서트! 이게 이 시대에 전통무예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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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2/29 [13:01]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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