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무예진흥법과 관련해 정부는 '무예(武藝)'란 용어를 사용했지, '무술'이나 '무도'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정부정책에 협조해주십시오!"
지난 7월 17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최광식)가 주최한 전통무예진흥법과 관련한 무예인초청 간담회에서 정부정책 담당자가 한 참석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한 말이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특공무술단체장은 "단체명에 있는 '무술'이란 말을 '무예'로
바꿀 예정"이라면서 "우리 역사나 미래를 생각했을 때 늦었지만 변경하는 게 옳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그동안 한 무예단체가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수년간 개최해오던 '국제무술대회'의 명칭을 올해부터 '국제무예대회'로 대회명칭을 변경키로 최근 결정했다.
그런가하면, 국내 체육관련 명성이 높은 한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학회의 명칭을 '무예학회'로 명칭변경을 시도하려다 다른 누군가가 이미 등록을 마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말도 들린다.
'무예(武藝)'용어 영토 확장이 심상치 않다.
그동안 무예계에서 별 구분없이 사용해 오던 '무술(武術)·무도(武道)·무예(武藝)'라는 용어가 지난 2008년 3월 '전통무예진흥법'이 제정된 이후 해를 거듭할수록 그 사용에 있어 '무예'용어가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써 그동안 '무도' 태권도 본산으로 일컬어지던 국기원에서도 지난 2010년 현 집행부가 들어서면서부터 공식적으로 '무도'란 용어 대신 '무예'를 사용하고 있다. 국기원 홍페이지에는 '태권도는 무예와 스포츠를 넘어 이제 문화산업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정부 또한 국가브랜드로 지정해 경쟁력을 높이고 있습니다.'라고 적혀있다.
태권도대회에서도 '무예태권도대회' 혹은 '태권무예대회'라는 명칭으로 대회가 열리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태권도가 이 정도인데 다른 종목은 말해 뭣하리.
'무술'이나 '무도', 또는 '무예'를 영어로 직역하면 똑같이 'Martial Arts'이다. 때론 격기(格技)로서 'Combat Sports'로 번역되기도 한다.
'Martial'이나 'Combat' 공히 군대와 관련된 용어로 '전투' 또는 '싸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아울러 '무술'이나 '무도', 또는 '무예'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무(武)'는 창과 방패를 의미하고 있어 'Martial'이나 'Combat'이 의미하는 바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의미가 비슷한데 왜 굳이 우리는 그 용어의 사용에 있어 '무예(武藝)'로 천착되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국민들 의식수준이 높아졌고, 군사와 관련됐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무술(武術)·무도(武道)·무예(武藝)' 용어 사용에 있어 중국은 무술, 일본은 무도, 한국은 무예(武藝) 용어를 사용해 왔다.
한 전통무예전문가에 따르면 한일합방 이전까지 우리나라 고전문헌자료에 ‘무술(武術)’이나 ‘무도(武道)’란 용어가 등장한 사례가 없다고 한다. 우리는 오직 '무예'란 용어만 사용해 왔던 것. 그렇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검도, 유도, 가라테'가 유입되며 '무도'란 말이 무예적 영토를 잠식해 나갔고, 해방 후 특히 6~70년대 중국 무협영화가 붐을 이루면서 '무술'용어의 국내 영토 확산이 급속하게 이뤄졌다.
그렇지만 80년대 들어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에 따른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우리 '전통무예'에 대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무예' 용어가 생명의 불씨를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바로 '전통무예진흥법'이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전문 언론중 '무예'란 용어가 들어간 언론이 7개이고 이중 전통무예진흥법 제정이후 창간된 게 6개이다. 비록 활성화된 곳은 몇 안되지만, 언론이 그 분야를 대변한다고 할 때 무예전문 언론이 증가했다는 것은 그 이유가 분명 있는 것이다.
생각건대, 기자가 재직했던 '무예신문' 초창기만해도 신문을 들고 국기원이나 태권도협회 등에 취재가면 "태권도는 무예가 아닌데 뭣하러 취재 오느냐"며 면박을 주기가 일쑤였다. 시간도 제법 흘렀고, 많은 의식변화로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때를 생각해보면 새삼 감개무량해지는 면이 없지않다.
아무튼 동양 3국 한, 중, 일은 인접해 있으면서 서로 싸우고 경쟁하는 중에도 습합을 통하며 자신들의 고유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무(武, Martial)'가 군사적 의미를 내포하고 '무예·무술·무도' 각각의 용어가 동양 3국의 '무(武, Martial)'의 용어를 나름 상징한다고 봤을 때 그 용어 사용 확대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국가적 자존이 걸려있는 치열한 영토 확장 싸움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무예계 스스로 '무예'용어 사용의 확대는 대단히 옳고 고무적이며 버선발로 뛰어나가 반기고픈 반갑고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엇나간 얘긴줄 모르지만, '무술·무도'용어 사용하면서 '전통무예진흥법' 수혜자가 되려고 안간힘쓰는 이들을 보면 쓴웃음이 나온다. 무지를 떠나 무인으로서 갖춰야할 기본 덕목인 염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무예는 상무정신의 표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력이 약했던 시기에 범람한 '무술·무도'용어에 기눌려 '무예'란 용어가 숨조차 내쉬지도 못했었다. 지금은 다르다. 한류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선진국클럽이랄 수 있는 20-50클럽에 세계 7번째로 가입하며 세계를 선도하고 '대한민국'의 격을 높이고 있다.
바야흐로 '무예'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