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수행 자세는 가부좌다. 반드시 앉아서 하란 법은 없지만 누우면 자고 싶고 서서는 오래 버티기 힘들다. 해서 앉는 것뿐이다. 의자에 앉든 바닥에 앉든 편한 대로 하면 된다. 또 굳이 다리를 꼬아 부처님처럼 결가부좌를 할 필요도 없다. 한국인들은 다리가 짧아 반가부좌가 편하다.
차가운 맨바닥을 절대 피하고 방석을 깔고 앉아야 한다. 차가운 방바닥이나 바위에 앉아서 하다가는 자칫 냉상(冷傷)에 걸려 반병신이 될 수도 있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기 힘들면 편한 등받침을 대고 기대어도 무방하다. 미세한 공기의 흐름도 나중에는 다 감지되기 때문에 수행은 가능한 작고 조용한 골방이 좋다. 방이 너무 크면 책장이나 병풍으로 중간에 칸을 막아 줄이면 된다.
명상을 하든 공부를 하든 시작하기 전에 충분히 몸을 풀어주고, 마친 후에도 반드시 몸을 풀어줘야 한다. 굳이 하타 요가나 도인체조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혼자 할 수 있는 갖가지 체조로 굳은 몸을 풀어주기만 하면 된다. 명상 도중 엉덩이나 다리가 결리면 잠시 집중을 멈추고 앉은 자리서 가볍게 몸을 움직여 긴장을 풀어주고 다리나 어깨를 주물어 기혈 순환시킨 다음 계속하면 된다. 억지로 고통을 참을 필요 없다. 서두르고 무리하다가는 오히려 수행을 그르치고 건강까지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불교는 윤회사상 때문인지 육신을 영혼이 잠시 머물다가 버리고 가는 하찮은 것으로 여겨 함부로 다루는 경향이 있다. 어리석은 편견이다.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오는 건 단연지사. 육신을 소중히 보살피는 건 혼(魂)의 첫 번째 의무! 그 의무를 다하고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가지고 인간이 온갖 사유놀이를 하는 것뿐이다. 육신 밖에 영혼 없다! 설사 윤회를 한다 해도 육신(물질)이 하는 것이지 영혼이 하는 것 아니다. 생물이 할 수 있는 윤회란 자기 복제(자손)뿐이다. 제 아무리 교육을 통해 제 의견, 제 습관, 제 재산을 자식에게 전해준다지만 영혼이 옮겨갈 수는 없는 일. 설사 가능하다해도 그런 짓은 선한 일이 아니다.
수행하는 시간 역시 본인의 형편이나 근기에 따라 조절하면 된다. 현대 생활에선 예전 사람들이 하던 것과 똑같이 할 수는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30분이든 한 시간이든, 하루든 이틀이든, 잘되면 계속 따라가고 쉬고 싶으면 멈추면 된다. 졸음이 쏟아지면 억지로 참지 말고 자면 된다. 수행은 극기 훈련이 아니다. 그렇다고 나태해지면 안 된다. 오로칠상(五勞七傷)을 항상 조심해야 한다.
형편이 허락하여 출가해서 본격적으로 수행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라면 무가(武家)나 도가(道家)의 내공 수련(단전호흡)을 익히면 크게 도움이 된다. 내공 단련을 하게 되면 의식을 통해 사지백태‧기경팔맥으로 기혈을 순환시킬 수 있다. 따라서 장시간 몸을 풀지 않고도 집중 정진할 수 있어 크게 도움이 된다. 요가의 호흡법은 그에 훨씬 못 미친다. 움막이나 토굴에서 나오지 않고 몇 달 몇 년씩 용맹정진하게 되면 기혈 순환 장애와 근육 약화는 피할 수가 없다. 반드시 중간 중간에 운동을 해줘서 백(魄)이 약해지는 걸 막아야 한다. 해서 달마선사도 역근법으로 근육강화체조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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