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전 역무원 몰래 550원짜리 기차표를 훔친 한 여성이 1천 배로 갚은 사실이 알려져 화제다. 지난 15일 구미역에 “오랫동안 양심에서 지워지지 않았는데 갚게 되어 다행”이라는 편지와 현금 55만원이 든 봉투가 배달되었다. 편지에는 ‘44년 전 여고생 시절 (경북 김천) 대신역에서 김천역까지 통학하던 중, 역무원 몰래 550원짜리 정기권 1장을 더 가져갔다’는 사연이 담겼다.] 굳이 미담이라고까지 할 건 아니지만 종종 있는 일이다. 해외에서도 학창시절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았던 도서관 책을 수십 년이 지나 되돌려주거나 변상하는가 하면 심지어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빌려와 남긴 책을 반납하는 일도 있었다. 어린 시절이나 어려운 환경에서 저질렀던 사소하거나 고의적인 실수, 상대방 마음을 아프게 한 철없는 행동, 장학금 받아 공부했거나 어려울 때 누군가의 신세를 지고도 보답하지 못한 일, 자신이나 주변에서 행해졌던 불합리나 모순에 대해 모른 척 외면했던 일, 마땅히 도와주었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해 못내 미안했던 기억 등등 평생토록 마음에 걸리는 일 몇 개쯤 가지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2013년 4월 21일, 한국을 방문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회장의 서울대학교 강연이 있었다. 이때 한 박사과정 대학원생이 “회사를 세우려면 자퇴해야 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빌 게이츠는 머뭇거리며 그 자리에서 명확한 답변을 못했다. 대학원생 질문치고는 한심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학교 안에서 그것도 공개적인 강연에서 전후 사정도 모르고 학생들더러 창업하고 싶으면 자퇴하라고 대놓고 말하기가 난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음날 빌 게이츠 회장은 서울대학교에 전화를 걸어 어제 질문한 그 학생의 연락처를 물었다. 헌데 이를 두고 한국의 매스컴들은 무슨 대단한 일인 양 떠들어대는 바람에 국회에서까지 나서 창업을 위해 중퇴해도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보겠다고 법석을 피웠었다. 완전히 초점을 잘못 읽은 난센스였다. 기실 빌 게이츠 회장이 그 학생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한 건 불충분했던 자신의 답변에 대해 피드백 하기 위한 거였다. 스스로 성숙한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답변의 완성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다. 그걸 두고 한국 언론들은 빌 게이츠 회장이 그 학생과 한국대학의 불합리한 교육제도에 대해 지대한 관심이라도 가진 줄 알고 지레 법석을 떤 것이다. 그건 선진 문명사회의 성숙한 인격체들의 당연한 매너일 뿐인데도 말이다.
그런가 하면 2013년 6월 7일, 미국의 유명 음식 칼럼니스트 필리스 리치먼(74세) 여사는 1961년 자신이 하버드 디자인대학원 도시계획학과에 입학 거부당한 것에 대한 답변을 워싱턴포스트지에 칼럼을 통해 발표했다. 당시 입학심사를 맡았던 윌리엄 도벨레 교수는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똑똑한 학생조차 결혼하면 학과 공부를 지속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공부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낭비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어떻게 공부와 남편, 그리고 가정에 대한 책임을 양립시킬 수 있을지 구체적인 계획을 제출하시오”라고 했다. 이에 그녀는 입학을 포기했었다. 그동안 아이 셋을 낳고 글 쓰는 일에 성공한 그녀는 칼럼을 통해 “당시 너무 겁을 먹어 교수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결혼이 하버드 입학이나 경력에 방해가 될 줄 몰랐기 때문에 굉장히 낙담했었다.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많은 여성들은 여러 장벽에 맞서야 했다. 그럼에도 가정과 학업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수 있을지 결정하는 것은 나의 몫이어야 했다. 이제는 당신도 열린 마음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당신이 아닌 시대의 편협했던 틀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렇게 해서 52년 전의 미흡했던 인생의 한 부분을 메꾼 것이다. 선진문명권의 성숙한 사람들은 이처럼 자기완성을 위한 내면적 잠재적 욕구를 가지고 있어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하고 노력한다. 빌 게이츠 회장 또한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안락한 노후가 자기완성 아니다. 미국 시민들 중 평소 재소자나 사회적 소외자의 인간존엄성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음에 대해 반성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리하여 자신의 공동체 의식 부족에 대해 참회하고 자원봉사나 도네이션에 적극 동참한다. 한국전쟁 때 수많은 서민들이 갹출해서 지원하고, 전쟁고아들을 돌보며, 청년들에게는 스칼라십으로 유학시켜 주는 것에 적극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게 자기완성을 향해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퇴직 후 안락한 연금생활 대신 동남아나 아프리카에 가서 자신의 재주로 봉사 하는가 하면, 지난날 전쟁 중에 어쩔 수 없이 고통을 준 베트남을 찾아가 봉사의 노년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단순히 교회나 사찰을 찾아 헌금 바치고 참회하는 것만으로는 자기완성적 삶을 가꾼다고 할 수는 없다.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 삶은 자기가 완성하는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미납 때문에 국회에선 억지법을 만들어 그 가족과 친인척의 재산 추적에 까지 나섰다. 결국 갖은 방법으로 은닉재산을 찾아내어 또 다시 가문의 망신을 시켰었다. 비록 강도짓으로 된 대통령이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인데 추징금을 두고 벌이는 짓이 비천하기 짝이 없다. 퇴임 후 그 긴 세월 동안 영욕의 부침을 겪으면서도 도무지 인간존엄, 자기존엄, 자기완성에 대한 성찰은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가련하기만 하다. 게다가 감옥에 줄지어 들락거리는 재벌그룹 오너들도 역시 딱하기는 마찬가지겠다. 도네이션 않는 부자를 존경하거나 동정해주는 세상은 없다. 경멸을 숨긴 부러움과 아부만이 있을 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문고리와 주변머리들도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법대로 살았다고, 참회해서 용서받는다고, 죄값을 치렀다고 삶이 깨끗해지는 것 아니다. 회고록 펴내는 걸로 삶이 완성되지 않는다. 힘든 시간이지만 세상과 자신을 달리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어떤 처지든 삶은 고귀한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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