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數)란 양의 크기를 나타내는 값. 숫자는 수효를 나타내는 글자이다.
최초에 있음(有)은 없음(無)에서 나왔다고 하는 것이 동양적 사유(思惟)이다.
하나(一)에서 시작되고 아홉(九)에서 끝난다. 그 이상 정체된 수의 진화는 영(0)의 발견에서 바뀐다.
5세기경 인도에서 아라비아 수 0이 발견된다.
이 위대한 없음을 뜻하는 0수의 발견은 ‘없음이 곧 있음’이요 ‘있음이 곧 없음’이라는 철학을 낳는다. 이렇게 해서 0으로 시작하여 9수가 무한성을 내재하고 있다. 영(0)은 無이고 有이다. 1~9수에서 다음에 영이 오면 열배~구십 배의 수로 탈바꿈한다. 곧 1+0=10 이 그것이다.
동양적 사유는 무가 곧 유를 자체 내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무를 달리 도(道)라 한다.
동양의 현자 노자는 말한다. 도가 ‘하나’를 낳고(도덕경 42장)는 도가적 코스콜로지(cosmology)이다.
도가 ‘하나’를 낳고/‘하나’가 ‘둘’을 낳고/‘둘’이 ‘셋’을 낳고/‘셋’이 만물을 낳습니다.
만물은 ‘음’을 등에 업고/‘양’을 가슴에 안았습니다/‘기’가 서로 합하여 조화를 이룹니다.
사람들은 ‘고아 같은 사람’/‘짝 잃은 사람’/‘보잘것없는 사람’ 되기를 싫어하지만/이것은 임금이나 공작이 자기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그러므로 잃음으로 얻기도 하고/얻음으로 잃는 일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 나도 가르칩니다/강포한 자 제명에 죽지 못한다고 합니다/나도 이것을 나의 가르침의 으뜸으로 삼으려 합니다. (오강남 풀이)
수와 태권도는 무관(無關)하지 않다.
수련 시 “구령”에서부터 수를 만나고 그 수에 따라 움직인다. 경기에서 수는 득점으로 표시되고 그 득점의 과다에 의해 선수의 희비가 엇갈리는 것도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에서 제일 위협적인 경우는 다운됐을 시 주심이 일초 간격으로 카운트하는 것이다.
경기 시간 3분 3회전과 그 중간에 숨 돌릴 시간으로 1분(=60초라는 수)간의 휴식에서도 수가 적용된다. 품새도 마찬가지다. 태극 1~8장, 유단자용 ‘태극인’ 품새는 9개이다. 그 8과 9의 합, 즉 17개 품새의 수련 연수에 의해 위계(位階)라는 숫자로 수련자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도 수와 태권도는 밀접히 유관(有關)하기 때문이다.
품새 수련 시 어느 위치의 동작에서 기합을 넣는다. 기합의 수는 태극 품새는 8장을 제외하고는 한번(1)이다. 8장은 땅의 수이므로 두 번(2)이다. 유단자 ‘태극인’품새는 땅에서 이뤄지는 십진과 천권 품새를 제외하고는 각기 두 번의 기합이다. 십진은 열 십(十)이기에 둘 보다 많게 세 번(3)을 넣게 되고 천권(天拳 )은 天 즉 하늘의 수이기에 한번이다. 노자의 도덕경 42장의 이치와 부합된다.
▲ 사람은 수를 안고 살아간다. 수를 세며 나이를 먹는다. 태권도도 예외가 아니다.(본문중에서) © 한국무예신문 | |
태권도는 숫자적 유희이고 철학이다. 그것은 태극 품새 1~8장에 이르는 심오한 철학적 사상, 정신, 가치, 의미가 그것이다. 1장으로부터 8장에 이르는 과정의 숫자의 상징성은 하늘에서부터 땅에 이르는 자연의 현상을 낳는다. 달리 건태이진손감간곤(하늘못불우레바람물산땅)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탄생한다.
품새에서 첫 만남의 수가 태극 1장의 1수이고 그 마지막 단계는 일여(一如)의 1수로 마감된다. 1에서 시작하여 1수로 되고자 하는 과정은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운명적 과정은 수를 만나고 나이로서 드러난다.
사람은 수를 안고 살아간다. 수를 세며 나이를 먹는다. 태권도도 예외가 아니다. 태권도의 위계, 즉 급과 (품의 과정) 및 단은 무급이라는 무에서 9를 얻어 1급에 이르고 다시 1에서 9단이라는 과정의 순환이 그것이다. 0-9~1, 1~9~0의 숫자적 유희다.
태권도에서 수, 숫자의 가치는 태권도인의 닦음이요 닦음의 햇수요, 마침내는 태권도인의 인격이다. 7~9단의 보유자를 ‘달인’ ‘입신의 경지’라는 호칭은 수의 많고 적음에 의해 인격(人格)과 유관한 것이다.
경기에서 다운돼 카운트에 의해 8수에 이르면 게임이 끝난다. 태권도 수련에서 얻는 그 결과는 9단이라는 최고의 자격이 주어진다. 9단 다음에는 다시 0으로 돌아가는 이 세상 너머 영(靈)의 세계다. 그리하여 추서단이라는 영의 세계의 최고 영예다. 그것도 그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10단으로 1과 0의 만남이다. 모두 인간이 하는 일이다.
10단 추서단의 의미는 있음 1이 없음 0으로 치환되는 것인데 그것은 결코 없음이 아니라 ‘도’의 세계로 귀환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태권도에서 ‘도’를 만나고 품새 ‘태극’을 만나 닦음의 정진에서 일여에서 다시 ‘1’수를 만나는 것은 ‘수철학’을 하는 원리이다.
일여의 글자적 의미는 ‘하나됨’이다. 심신 일여, 자타 간의 하나됨, 인간이 천지와 하나됨, 생사일여 등 하나됨은 곧 ‘한’에의 지향이다. 우리말 ‘한’은 하나, 여럿, 가운데 등 의미다. 하나는 시초로서 하늘이고 여럿은 만물의 생명체를 안고있는 땅이고 가운데는 하늘땅 사이의 인간이다. 천지인‘한’이 그것이다.
태권도적 삶이다. 수와 태권도는 천생연분이다.
태권도인은 태권도 수련자로서 수와 친구가 되어 같이 수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며 ‘수철학’을 터득하고자 하는 닦음(=철학함)이다. 태권도와의 운명적 만남은 그래서 위대한 철학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