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거 쑥스럽구먼.” 상(賞) 받는 선수들은 질서 있게 서 있는데 시상한 사람들의 행동은 제각각이다. 서로에 대한 격(格)이 부족한 탓이겠다. © 한국무예신문 | | 마무리를 잘 하자는 의미로 ‘유종(有終)의 미(美)’란 관용구를 우린 자주 사용한다. 더러는 과정이 다소 미약하더라도 끝이 좋으면 괜찮다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이와는 반대로 과정은 좋았는데 마무리가 그렇지 못했을 경우는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거나 ‘다 된 밥에 재 뿌렸다’는 등의 표현을 쓰기도 한다. 지난 2일 특정 지역에서 개최된 한 태권도행사가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한다. 이날 대회도 다른 여느 대회와 마찬가지로 경기를 마치고 시상식이 이뤄졌다. 각 부문 순위별 시상이 이뤄졌는데 힘든 경기에 지친 선수들을 배려해서인지, 아니면 시상시간을 절약하려고 그래서인지 남녀 각 부문 1위 모두, 2위 모두, 3위 모두 하는 식으로 ‘대충 무더기’ 시상이 이뤄졌다. 설명하자면, 남자 체급별(11체급) 1위를 한꺼번에 불러내 대표 한명만 시상자가 상징적으로 시상을 하고 그 외 10명은 여러 시상자가 우르르 몰려 나와 각각 시상을 한 것. 여러 명에 대한 시상을 여러 명이 동시에 하다 보니 누가 누군지 몰라 어수선해졌다. 즉 시상할 사람이 상 받을 사람을 몰라 이리저리 찾아다니는 경우가 발생해 상을 주고받으면서도 서로가 민망해하거나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그것을 지켜본 학부모들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시상이야 어떻게 이뤄졌던 상(賞)만 주고받았으면 됐지’하면 할 말 없겠다. 허나 상(賞)에는 영예로움이라는 ‘가치(價値)’가 존재하고 있다. 하여 시상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은 시상이 이뤄지는 동안 서로가 격(格)을 갖춰야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서로가 상(賞)에 대한 가치성을 느끼지 못하고 주고받는 상이라면 거기에 무슨 영예로움이 존재하겠는가. 그냥 ‘종이 쪼가리’에 불과할 뿐이지.
▲ 선수가족들이 시상이 이뤄지는 장면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모두 꺼내들고 있다. 이들은 아직 ‘종이 쪼가리’를 ‘상(賞)’으로 여기고 있다.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태권도경기문화가 발전한다. © 한국무예신문 | | 너무나 흔한 게 상(賞)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그것은 피땀 흘린 선수들의 노력에 대한 상징적 보상이다. 대충 ‘종이 쪼가리’ 주듯 하는 시상이 이뤄질 바에야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의미를 잃은 ‘종이 쪼가리’ 시상은 승리한 선수와 거기에 부합한 신성한 상에 대한 모독이다. 대체적으로 대회 마지막 절차가 시상식이다. 경기결과에 집착한 나머지 시상식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오랜 타성 탓인지 형식에 불과한 절차로 전락한 시상식의 의미를 되찾으려는 시도나 노력을 보이는 사람도 없다. 비록 이완된 긴장감일지라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행사관계자들은 마지막 시상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행사성공'이라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시상이 이뤄지는 모습을 귀히 여겨 카메라를 들고 있는 수십여 명의 학부모들의 심정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올 것 같다. 아직까지는 ‘종이 쪼가리’가 아닌 가치가 있는 상(賞)으로 여기고 있는 그들이다. 희망이 있다는 의미다. 더 늦기 전에 태권도경기문화 향상을 위한 관계자들의 타성을 깨는 분발을 촉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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