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계독립세로 치고나가고 있다. [원보] © 한국무예신문 | | 본국검(本國劍)! 십팔기 중 가장 대표되는 기예이다. 오천년 역사 중 이 민족이 스스로를 ‘본국(本國)’이라 칭한 예가 어디 또 있던가? 《무예보도통지(武藝圖譜通志)》를 편찬한 당대의 학자들이 본국검의 연기를 멀리 삼국시대 신라 화랑 황창랑(黃倡郞)에 둔다 하였으니 이 검법에 부여한 역사성의 무게 또한 만만치 않다. 본국검을 속칭 ‘신검(新劍)’으로 불렀다 하는데, 이는 아마도 그간에 이름 없이 전해져 오던 전래의 검법을 모원의(茅元儀)의 《무비지(武備志)》를 통해 되찾은 「조선세법24세」에 근거해 새로이 체계화시켰던 것으로 짐작된다. 게다가 왕을 호위하는 무예별감들이 「본국검」과 「월도」를 장기로 익혔다고 하는 기록이 남은 것으로 보아 당시에도 「본국검」은 상당한 수준에 이른 무사들이 익히던 고난도의 검법임을 알 수 있겠다. 아무튼 「본국검」에는 다른 검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세(勢)와 그것을 운용하는 총도가 꽤나 복잡해서 초보 병사들이 익히기엔 결코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마도 일반병사들은 대부분 비교적 단순한 「왜검」 「교전」 「쌍수도」 「제독검」을 주로 익혔을 것이다. 한데 이 「본국검」 중 재미난 세(勢)가 하나 있는데 바로 ‘금계독립세(金鷄獨立勢)’이다. 십팔기는 물론하고 중국의 여타 기예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독립세가 무려 세 번이나 나온다. 기실 독립세란 그 자체로는 온전한 하나의 세(勢)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독립세 자체로는 공격이나 방어의 실세(實勢)가 아니란 뜻이다. 아마도 단체 훈련에서 위세를 보이고, 중간에 대열을 정렬할 필요가 있어 넣은 듯하다. 왜냐하면 「본국검」은 총도가 다른 검법에 비해 매우 복잡한 데다 방향전환이 많기 때문에 대열이 금방 흐트러지기 때문이겠다. 금계독립세는 병장무예의 특징 자, 이왕지사 독립세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사실 ‘독립(獨立)’은 비단 「본국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기예의 세(勢)에 다 들어있다. 해서 굳이 ‘독립세’라 하여 별도로 정해 넣지 않았을 뿐이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지구상의 두 발 달린 짐승은 독립(獨立)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가 없다. 즉 걸어가든 뛰어가든 한 발을 땅에서 떼지 않으면 이동할 수 없다는 말이다. 한 발을 드는 바로 그 순간이 곧 독립세가 된다는 뜻이다. 캥거루처럼 두 발로 동시에 뛰어다닐 수만도 없고, 또 허수아비가 아닌 다음에야 두 발을 땅에 딛고 공격이나 방어를 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한데 왜 굳이 「본국검」에선 독립세, 그것도 금계독립세를 세 번씩이나 하게 한 것일까? 독립세의 본래 목적은 신속한 방향전환에 있다. 예측불허하게 움직이는 적을 순발력 있게 좇기 위해서이다. 하여 총도 진행 중 방향전환 하는 자리에 독립세를 넣은 것이다. 그렇다면 왜 금계독립세인가? 닭이 다른 상대를 공격할 때 한 쪽 다리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물론 두 발을 땅에 딛고서라도 그 중 한 발에 무게 중심을 두고 다른 발을 허(虛)하게 하면 그도 또한 독립이다. 그리고 한 발(다리)을 들어 올릴 때 발이 몸의 무게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방향전환에 힘이 더 들고 느려질 수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 전체의 균형이 흔들릴 염려가 커진다. 해서 이왕 들어 올린 발을 몸의 중심에 가깝게, 그러니까 독립하고 있는 다리의 무릎에 붙이는 훈련을 해둬야 방향전환이 민첩해진다. 즉 한 발을 들어 올림으로써 상대방의 움직임에 따라 좇아가며 공격하겠다는 것이 금계독립세의 본디 뜻이다. 몰론 이는 검법의 연습 중에 하는 세이다. 실전에서라면 굳이 독립세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 모든 움직임이 곧 독립이니 말이다.
▲ 왼쪽 사진_우독립세(右獨立勢). 두발을 디뎠어도 한 쪽에 무게 중심을 온전히 옮기면 독립세라 할 수 있다. 오른쪽 사진_좌독립세(左獨立勢) © 한국무예신문 | |
▲ 든 발이 지나치게 멀리 나가면 위험할 뿐더러 상대방의 이동에 따른 방향전환이 더뎌진다.(왼쪽 사진) 걸음을 옮기려면 당연히 독립세가 되게 마련이다.(오른쪽 사진) © 한국무예신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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