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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名) 하나 얻는다는 것은?
무예 명칭에 대한 상식
 
신성대 전통무예연구가(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기사입력  2011/12/2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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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대 주필     ©한국무예신문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름(명사)이 붙는다. 당연히 아직 인간의 눈에 띄지 못한 것은 이름이 없다. 이름붙이기는 타와 구별하기 위해 인간이 정해놓은 약속이다. 유형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음악이나 철학 등 무형의 것에도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이름에는 일반적인 보통명사와 오직 하나 특정한 것에만 붙이는 고유명사가 있다.
 
일반적으로 고대에는 무예가 탄생과 동시에 고유한 이름을 얻은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한시(漢詩)처럼 후세인들이 편의상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무예 종목이나 법식도 예외는 아니었으나, 현대에 이르러 온갖 무예 혹은 무술이 시중에서 상업적으로 유통되면서부터 권법 하나에도 독창적인 이름(상품명)을 지어 붙여지기 시작하였다. 그 이전에는 대개 무기명(武器名)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십팔기(十八技)’는 글자그대로 18가지의 기예를 말한다. 정조가 십팔기교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편찬하면서 직접 지은 서문(御製武藝圖譜通志序)에서 그 연원을 밝히고 고유명사로서 독립된 이름을 정한 것이다. 이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왕명에 의해 그 이름을 얻은 유일한 무예이다. 또한 수량을 헤아리는 수사(數詞)에다 고유명사를 부여한 특이한 사례라 하겠다. 문파의 이름도 아니고 또 각 무예 종목명도 아니면서 종합적인 병장무예체계인 열여덟 가지(武藝十八般)를 두고 이렇게 고유한 명칭을 붙인 예는 세계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사건이었다.
 
어찌 보면 참 편하게 이름지었다 할 수 있겠으나, 막상 정조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결코 쉽지 않은 작명이었을 것이다. 한양을 드나드는 성문마다 따로이 이름을 있을진대, 나라에서 만든 나라의 무예, 즉 국기(國技)에 대한 이름에 어찌 몇 날을 고민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여러 명칭이 물망에 올랐을 것이나 과감하게 ‘십팔기’라 한 것은 그동안 이미 습관적으로 사용해왔었고, 또 생부인 사도세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이후 조선에선 공식적으로 ‘십팔기’란 이름만 사용하였는데, 한국 역사 전체를 훑어도 ‘십팔기’와 그 구체적인 종목명 외에는 단 하나도 기록으로 남아있질 않다. 당연히 그 어떤 무예의 법식이 남아있을 리 없다. 해서 한국무예사를 기술하려 해도 너무 자료가 빈약한 실정이다. 이후 ‘십팔기’가 우리나라에서 ‘무예’를 대신하는 일반명사로 사용되기도 했었다.
 
헌데 딱 하나,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완벽한, 역시 당시로선 유일했던 무예의 하나가 가까스로 전해져 왔는데 그것이 바로 ‘조선세법(朝鮮勢法)’이다. 도(刀)가 아닌 양날의 검(劍)을 다루는 고대 검법(劍法)으로, 중국 명대 모원의(茅元儀)가 편찬한 《무비지(武備志)》를 통해서였다. 당시 조선은 물론 중국에서도 검(劍) 대신 도(刀)를 사용했기 때문에 검(劍)에 대한 법식이 전하지 않았었다. 하여 모원의조차 조선에서 그 법(法)을 구해 실으면서 분명하게 조선에서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십팔기 중 일기인 ‘예도(銳刀)’가 바로 그것이다.
 
《무예도보통지》의 배열순에 따라 십팔기 종목을 나열하면 장창(長槍), 죽장창(竹長槍), 기창(旗槍), 당파(鎲鈀), 기창(騎槍), 낭선(狼筅), 쌍수도(雙手刀), 예도(銳刀), 왜검(倭劍), 교전(交戰), 제독검(提督劍), 본국검(本國劍), 쌍검(雙劍), 마상쌍검(馬上雙劍), 월도(月刀), 마상월도(馬上月刀), 협도(挾刀), 등패(籐牌), 권법(拳法), 곤봉(棍棒), 편곤(鞭棍), 마상편곤(馬上鞭棍)이다. 그리고 그 끝에 군사오락인 격구(擊毬), 마상재(馬上才)를 관복도설(冠服圖說)과 함께 부록으로 실었다.
 
역시나 십팔기에서도 대부분 이름이 그 무기의 명칭을 그대로 차용했었다. 기창(騎槍)은 마상장창(馬上長槍)을 말하는데 이는 예전부터 그렇게 불러오던 것이라 그대로 사용했다. 쌍수도(雙手刀)는 원래 중국의 척계광(戚繼光)이 왜구로부터 그 도(圖)를 습득하였는데 칼이 길고 무거워서 두 손으로 사용하는 바람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중 독창적으로 붙여진 이름은 제독검, 예도, 본국검이다. 제독검(提督劍)은 당시 조선군이 사용하던 검법의 하나였는데 임란 때 조선을 위해 싸워준 명(明)의 이여송(李如松) 제독의 공을 기려 붙인 이름이고, 예도(銳刀)는 ‘조선세법24세’를 가지고 당시 훈련용으로 총보(總譜)를 따로 만들면서 붙여졌다.
 
▲ 무비지의 조선세법     ©한국무예신문
가장 중요한 명칭은 역시 본국검(本國劍)이다. 그 이름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이 검법은 지난 날 조선에서 잃어버렸던 귀중한 검보(劍譜)인 ‘조선세법(朝鮮勢法)’을 모원의(茅元儀)의 《무비지(武備志)》를 통해 되찾은 것을 통탄하면서 다시는 잃어버리지 말 것을 누누이 강조하면서 부여한 이름이다. 이는 조선군의 대표적인 검법으로 그 연기(緣起)를 신라 황창랑(黃昌郞) 고사에 두고 있다. 그만큼 귀히 여겼으며 또한 당시 한창 싹텄던 자주적인 실학사상에서 나온 이름이라 하겠다.
 
사실 십팔기가 정립되기 이전에 조선에 활쏘기 외에 무예가 전혀 없었을 리 만무하다. 군사가 있고 무기가 있으니 당연히 그 무기를 다루는 기술이 없을 리가 없다. 하지만 임란 전까지만 해도 십팔기처럼 제대로 정형화되어 이름이 붙은 무예가 없이 각자가 혹은 부대 나름대로 대충 알아서 훈련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통일되게 그 기예가 전해지질 못하고 얼마 안가서 변질 혹은 멸실되는 바람에 막상 전쟁이 나도 효과적인 전투를 치룰 수 없었다는 말이다. 아무튼 그렇다 해도 역사상 그 어떤 정형화 된, 그래서 이름을 얻은 무예가 단 하나도 등장하지 못했던 것은 그만큼 무비(武備)에 소홀했으며 무예체계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미천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던 차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明)나라 군사들의 체계적인 무예를 받아들이면서 무예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시작된다. 이후 약 2백년에 걸쳐 명(明), 왜(倭), 후금(後金, 淸)의 기예를 받아들이거나 그에 대적하는 기예를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한편 전래의 기예를 다듬어 나갔던 것이다. 해서 광해군, 효종 등 여러 대를 거쳐 사도세자가 섭정할 때 드디어 18기(응용종목인 마상4기까지 도합 22기)가 완성된다. 이를 이어받은 정조는 선조에서부터 십팔기가 완성되어 온 전 과정을 소상히 밝힌 교본을 통지로 만들게 하였다. 해서 《어정무예도보통지(御定武藝圖譜通志)》인 것이다. 병법서인 《어정병학통(御定兵學通)》과 함께 쌍벽을 이뤄 출간되었다.
 
필자가 이처럼 십팔기에 천착하는 건 단순히 본인이 십팔기를 익혔기 때문만은 아니다. 필자 역시 다른 무예인들처럼 십팔기 외에도 검도, 합기도, 중국무술(대개 권법), 각종 도인법 등을 경험했었다. 그럼에도 유독 십팔기를 강조하는 뜻은 십팔기가 십팔기인들만의 특별한 기예가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어야 할 더없이 소중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열여덟 가지 기예에 이 민족의 정신이 담겨있다. 역사 이래 이 땅을 지켜온 수억만 조상들이 땀과 피로 다듬어 온 민족혼의 결정체이다. 유형이든 무형이든 이에 비할만한, 이보다 더 귀한 문화자산이 어디 또 있으랴.
 
지금이야 수입산이든 창시무예(이름만 창시이지 그 내용은 대개 짜깁기 모방품)든 온갖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나오지만, 기실 역사에서 어떤 기예가 그만의 이름을 얻는다는 건 천년에 한두 개 있을까 말까 한 드문 일이다. 그러니 이 지구상에 십팔기처럼 나라에서 만든 나라의 무예, 그리고 왕명에 의해 이름 정해진 종합병장무예는 다시없다. 이런 소중하다 못해 위대한 자신의 무예가 있는지조차 모르거나, 안다 해도 오히려 천시하고 폄훼하며, 남의 것을 선망하며 좇는 것은 아직도 이 민족이 중국 사대근성, 일제 식민지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말해준다고 하겠다.
 
게다가 이런 와중에 전통무예진흥법이라? 무엇이 전통무예인가? 아직 무예, 무술, 무도, 호신술, 체육, 놀이에 대한 구분도 없는 상태에서? 역사적 근거에 따른다면 이 나라에 십팔기 외에는 전통무예가 없다는 사실은 어떡하고? 수입산 국산 구분 없이 맨손 혹은 전통적인 무기만 다루면 다 전통무예? 고춧가루처럼 중국산을 국산이라 우기거나 섞으면? 수입이든 혼합이든 전통무예라면 무조건 국가가 장려한다? 해서 무슨 사이비신흥종교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생겨나는 창시무예까지 전통무예로 인정받으려고 안달이 날 것은 당연지사. 역사적 사실을 짜깁기하거나 왜곡하기 예사이고, 졸지에 상놈 족보 만들 듯 전승계보 만든다고 난리들이다. 어떤 창시무예는 인간이 아닌 신선들의 족보가 아닌가 싶을 만큼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다. 덕분에 이 전통적인 선비의 나라가 유사 이래 전통무예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혹세무민에 가까운 이런 일이 다른 곳도 아닌 신(信), 의(義), 엄(嚴)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무예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아무리 자유민주주의 시대고 저 잘난 맛에 산다지만 그 무지함과 간교함, 그 뻔뻔함에 대한 조롱과 질책을 어찌 감당할지 안쓰럽기 짝이 없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지는 앞으로 한국근현대무예사를 정리해 나가면서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무예인들이 때로는 부끄럽기까지 한 그런 사실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만큼 성숙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강조하는 말이지만 무예는 과학이지 종교도, 영화도, 소설도, 만화도 아니다. 지금에야 한낱 건강이나 취미생활의 하나일지라도 불과 백여 년 전만 하더라도 목숨을 담보로 한 과학이었다. 황당무계한 무협지적인 망상에 빠지면 일평생 땀 흘려봤자 얻는 건 신체적 정신적 골병뿐이다.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상식에 바탕을 둔 건강한 정신으로 무예 공부에 임해야 아까운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이름을 얻거나, 만들거나, 남기는 일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지만 함부로 해서도 안 되는 일임을, 때로는 부질없고 더없이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음을 무예인들이 알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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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2/22 [20:14]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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