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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폭력근성(暴力根性)
 
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5/07/12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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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개 서상욱(역사학자)     © 한국무예신문
전쟁에 대한 윤리관은 각 민족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과 연계된다. 고대사는 넉넉한 생존공간에서 안정된 삶을 영위하려는 심리와 척박하고 협소한 공간에서 외부로 확장하려는 강렬한 욕망을 표명한다. 중국 민족은 전자, 그리스 민족은 후자에 속한다. 
 
BC2200년 무렵 가장 먼저 그리스를 침입한 아케아인은 흑해 부근 초원에서 발칸반도를 거쳐 크레타문명의 청동기로 그리스 토착민들을 정복하고 미케네문명을 세웠다. 그러나 얼마 후 도리아인이 철제무기를 앞세워 미케네문명을 무너뜨렸다.
 
찬란한 고대 그리스 문화는 피와 불로 점철된 역사를 딛고 성숙되었다. 고대 그리스 문화는 기본적으로 폭력에 대한 숭배였다. 그들에게 약육강식은 자연법칙이었다. 노예냐 주인이냐는 폭력으로 결정되었다. 평등은 힘의 평형이지 천부인권이 아니었다. 인구가 증가하자 그리스인의 폭력근성은 생존 공간 확보를 위한 식민지 개척으로 극대화되어 알렉산더에 이르러 겨우 마무리되었다.
 
풀러에 따르면 전쟁은 먹고사는 문제로 발생했다. 그렇다면 그리스인은 누군가를 공격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상태였다는 의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타자에 대한 약탈을 미덕으로 공인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유를 위해 살고, 자유를 위해 죽을 정도로 자유를 숭상했다. 그러므로 자유는 고대 그리스와 유럽에서 정신적 신앙이자 역사적 실천의 내용이기도 했다. 페르시아가 침입했을 때 그리스인들은 피를 뒤집어쓰며 분투했다.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300명의 전사들은 테르모필라이 협곡의 열문(Hot Gates)에서 ‘자유가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이라는 만고에 빛나는 명언을 남기며 전멸했다. 이 사건은 자유를 추구하기 위한 최고의 경지를 대표한다. 도리아인인 스파르타의 군인들은 총인구의 1/10에 불과한 구족이었다. 이들은 극단적인 폭력으로 9/10에 속하는 아케아인들을 지배했다.
 
전쟁은 귀족계급의 특권이었다. ‘공민(公民)’ 계급이라 불렀던 이들의 신분은 정복자였다. 폭력이 자유를 박탈한다는 교훈은 정복자의 두려움 정도에 따라 피정복자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었다. 정복자는 피정복자의 두려움을 잘 알았다. 정복자인 도리아인들은 대대로 노역에 종사하는 아케아인을 통해 외부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를 빼앗기면 민족의 운명은 비참해진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것이 스파르타의 300 용사들이 페르시아와 결사전을 펼친 원인이었다.
 
강렬한 자유의식은 극단적 압박상태나 자유를 잃을 수 있는 환경에서 생겨난다. 물리학상 작용력은 반작용력의 원인이다. 이 원리는 인류사회에도 적용된다.
 
동양의 황하 문명에서는 정복자가 피정복자에게 관대해야 한다는 전통이 있었다. 은을 정복한 주무왕은 망국의 후예들이 조상의 제사를 받들 수 있을 정도의 땅을 분봉해주었다. 도리아인이 피정복자를 노예로 삼았던 것과 달랐다. 이것이 황하문명에서 노예제도와 자유의지가 발달하지 않은 중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서양의 자유는 타인에게 노역을 시킬 수 있는 특권과 자기가 노역을 하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확보하는 재산에 대한 지배권과 관련된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전쟁폭력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스파르타는 이 방면에서 전형적인 도시국가였다. 이러한 자유는 현대인이 자기가 노역을 강요받지 않고 타인에게도 노역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근현대에 이르러 자유세계로 자칭하는 국가가 다른 지역을 식민지로 삼았을 때 자유정신에 대한 실천은 고대 그리스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버드대학의 Patterson 교수는 ‘서양의 자유는 민주, 자유, 경제적 번영을 창조했지만, 확장과 침략의 근원으로 노예제도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야수를 포획하여 인류가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기술을 지녔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복속되어 하층계급으로 전락했던 민족이 복속에서 벗어나려고 했기 때문에 전쟁이 발생했다. 전쟁은 자연과 부합될뿐더러 정당하기도 하다”라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정한 전쟁은 결국 자연과 노예를 약탈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서양 문명이 오랫동안 확장성과 침략성을 지니게 된 근원이다. 그러했던 그리스가 무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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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07/12 [23:32]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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