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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욱의 고전 속 정치이야기] 문인상경(文人相輕)
 
서상욱 역사칼럼니스트 기사입력  2015/12/19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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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개 서상욱(사학자)     ©한국무예신문
한서의 대부분을 지은 반고(班固)는 섬서성 함양의 동쪽인 부풍(扶風) 안릉(安陵) 출신으로 자를 맹견(孟堅)이라고 했다. 부친 반표(班彪)는 유명한 학자였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반고는 이들의 영향으로 시야가 넓어져 학업도 발전했다. 반표는 만년에 사마천의 사기를 읽었는데 부친의 영향으로 반고도 역사에 유의하기 시작했다.
 
논형(論衡)의 저자 왕충(王充)은 일찍이 반고를 보고 반드시 역사편찬의 중임을 맡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6세에 태학에 들어간 반고는 일가의 학설에 구애되지 않고 백가의 학설에 관통했다. 그는 자구해석보다는 경적의 대의를 파악하는 공부를 중시했다. 이러한 성은 훗날 일대의 역사를 완성할 수 있는 조건이 됐다.
 
반고는 최연(崔胭), 이육(李育), 부의(傅毅) 등과 함께 배우며 친구가 됐다. 반표가 죽었을 때 반고의 나이는 23세였으나 이미 상당한 문화적 수양과 저술능력을 갖추었다. 건무 30년(54), 부친의 죽음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반고는 고향 부풍으로 돌아가 부친이 남긴 ‘사기후전’을 보완하고, 집안에 소장된 풍부한 도서를 참고로 필생의 작업인 한서를 쓰기 시작했다.
 
영평 5년(62), 누군가 사사로이 국사를 편찬한다고 반고를 고발했다. 반고는 경조로 압송돼 투옥됐다. 원고도 압수됐다. 동생 반초(班超)가 상소문을 올려 형을 구했다. 명제는 반고를 난대영사(蘭臺令史)로 임명했다. 동생 반초도 나중에 난대영사가 됐다. 반고는 사서편찬의 합법성을 인정받고 전념할 수 있었다. 반고는 ‘한서’ ‘백호통의(白虎通議)’ ‘전인(典引)’ ‘응기(應譏)’와 같은 저작과 40여 편의 글을 남겨 문명을 청사에 남겼다.
 
부의와 반고는 부풍 출신으로 경력도 비슷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태학에서 시작됐다. 반고는 16세에 낙양의 태학으로 가서 공부했는데, 부의와는 동학으로 태학에서 나란히 두각을 드러냈다. 영평 5년(62), 반고가 낭(郎), 전교비서(典校秘書)로 옮겼을 때 낙양에서 다시 만났다. 명제시대에 신작(神雀)이 떼를 지어 모여들자 백관들에게 ‘신작송’을 지으라고 했다.
 
반고와 부의는 부를 지어 명제의 칭찬을 양분했다. 장안으로 천도하는 문제에 반대해 반고는 ‘양도부’를 짓고, 부의는 ‘낙도부’와 반도부(反都賦)를 지었다. 장제가 즉위한 후 부의를 난대영사로 불러 두 사람은 다시 함께 일했다. 부의가 지은 ‘현종송(顯宗頌)’ 10편이 조정에서 인정을 받자 속으로 불만을 품은 반고는 아우 반초에게 보낸 편지에서 “문장을 지을 수 있다고 난대영사로 임명된 부의가 바빠서 쉴 틈도 없다고 하니 가엾은 일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자기야말로 훌륭하다고 자부하지만 그 사람의 인격과 문장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진짜라고 할 수 없다. 부의는 글을 짓는 솜씨는 그저 그렇지만 중요한 인격은 아직 멀었으니 정말로 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다”라고 풍자했다.
 
이 일화는 양(梁)의 소명태자(昭明太子)가 편찬한 ‘문선(文選)’의 전론(典論)에 들어 있다. 조비(曺丕)는 동한의 대문장가인 부의와 반고의 문장 실력에 대해 논하면서 문인들은 자기가 최고라고 자부하며 남을 경멸하는데 이러한 풍조는 지금 시작된 것이 아니라 반고와 부의부터라고 했다. 두 사람은 실력은 백중이었지만 반고는 부의를 대단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문인상경은 여기에서 비롯된 말이다. 화제시대에 두헌(竇憲)이 거기장군으로 임명돼 부의를 기실(記室)로 삼았다. 얼마 후 두헌이 대장군으로 승진하자 부의를 사마, 반고는 중호군이 됐다. 두 사람은 다시 동료가 돼 함께 ‘북정송(北征頌)’을 지어 두헌의 북벌공적을 칭송했다. 막부에서 중용되자 반고와 부의는 하루아침에 공명을 성취한 것처럼 보였다. 얼마 후 부의는 죽고, 반고도 두헌의 모반에 연루돼 61세를 일기로 옥사했다.
 
나중에 화제는 사적인 감정으로 반고를 무고한 종긍(鍾兢)을 처형했다. 남은 한서는 누이 반소가 마무리했다. 아우 반초는 서역에서 공적을 쌓아 대성했다. 한서는 국가에서 수찬한 최초의 왕조사로 사전문학(史傳文學)의 전범이다. 그러나 동료인 부의에 대한 태도에서 본 것처럼 남의 인격에 대한 평가는 날카로웠지만, 정작 역사를 보는 안목은 사마천에 비해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므로 장보(張輔)는 사마천은 창조를 했지만, 반고는 앞사람의 저작을 되풀이했다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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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12/19 [23:24]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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