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대   이경명   김정록   김혁출   고성규   김용철   이호철   이지성   이송학   이창후   고영정   기고   역사산책   무협소설   무예이야기   축사
편집 2024.05.20 [13:21]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섹션이미지
신성대
이경명
김정록
김혁출
고성규
김용철
이호철
이지성
이송학
이창후
고영정
기고
역사산책
무협소설
무예이야기
축사
공지사항
회사소개
광고/제휴 안내
개인보호정책
청소년보호정책
기사제보
HOME > 칼럼 > 이경명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네이버
태권도 수련은 인간됨의 길이다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기사입력  2011/05/14 [21:53]
광고
 
▲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태권도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닦고 강건하게 하는 무도이고 오늘날에는 올림픽 경기종목으로서 인류 평화에 기여하는 국제스포츠이다.

‘태권도’ 글자는 셋으로 밟을 ‘태’의 발, 주먹 ‘권’의 손, 길 ‘도’의 길 등 합쳐 만들어진 명칭이다. 따라서 태권도는‘ 태권의 길’을 뜻하고 태권은 인간을 표상하는 것으로 바로 ‘인간의 길’을 나타낸다.
 
태권의 길이라고 할 때는 기술적 측면을 말하고 인간의 길이라고 할 때는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태권도는 기술적 측면에서는 막기와 때리기가 본질적 요소이다. 그것의 특징은 대자적 행위와 대타적 행위로 구분된다. 대자적 행위란 내면세계의 도덕적 닦음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대타적 행위는 호신․겨루기적 측면을 강조한다.
태권도의 기술단위는 ‘동작’이다. 그 동작의 행위, 구분, 체계의 특화는 기본동작, 품새, 겨루기, 격파, 호신술 등으로 나뉜다. 여기서 기본동작, 품새는 대자적 행위에 속하고 겨루기, 격파, 호신술 등은 대타적 행위에 속한다. 그 가운데 수련자의 내면세계의 닦음인 대자적 행위란 ‘마음을 수양하는 방법’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몸이 온갖 일에 수작을 다하지만 그 몸의 주인은 마음이며, 따라서 몸을 수양하는 방법은 결국 마음을 수양하는 것이 근본이 된다. 마음을 수양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태권도 수련에서는 대자적 행위인 ‘품새’를 으뜸으로 여기는 것이다.
 
국제스포츠로서 태권도는 겨루기와 품새 부문이 경기종목으로 발전돼 있고 그 가운데 겨루기는 올림픽종목으로 승화했다. 겨루기와 품새 부문은 국제기구인 세계태권도연맹에서 ‘태권도’와 ‘태권도품새’라는 이름으로 세계대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다. 그리고 품새를 비롯하여 격파, 호신술 등 부문은 국기원에서 실시하는 있는 ‘태권도한마당‘ 경연 종목으로써 태권도인들 간의 기술교류 및 화합을 통한 친목을 도모하고 있다.
 
태권도(겨루기 부문)는 2000 시드니올림픽대회부터 정식종목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유스올림픽 종목에도 포함돼 있다.

특히 청소년들의 태권도문화엑스포는 태권도진흥재단에 의해 몇 년 전부터 연례행사로 한국에서 열리고 있는데, 그 목적은 태권도를 통한 기술교류, 친목 및 기량을 가늠해 보는 문화의 장이다. 그 가운데 격파 행사는 자신의 나쁜 버릇을 송판에 적어 그것을 깨트려봄으로써 날려버리고 긍정적인 삶의 자신감을 배양하는 교육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격파 하는 행위란 놀랄만한 자신의 위력을 발휘해 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신의 나쁜 습관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교육적 방편이며, 한 차원 나아가 격파를 통해 내면세계의 도덕적 품성 승화라는 인간됨의 깨달음을 발견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격파 시 얏! 소리의 힘찬 기합을 넣는다는 것은 불교적 의미로 ‘경이적 위력과 더불어 잠재적 자신을 한 순간에 깨우치는 효과’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철학적 물음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를 거쳐 결국 ‘인간, 즉 나는 누구인가?’라는 성찰적 의미로 “깨어있는 사람은 누구나 동일한 하나의 세계를 가질 뿐이지만, 잠들어 있을 때는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세계를 가진다” 는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태권도는 참 인간됨의 길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네이버
기사입력: 2011/05/14 [21:53]  최종편집: ⓒ 한국무예신문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이경명칼럼] 글쓴이에게 던지는 화두: 문화에는 종주국(宗主國)이란 없다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2/01/17/
[이경명칼럼] 문화재 택견 vs 스포츠 택견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2/01/16/
[이경명칼럼] 논문집:「국기원 태권도연구」 vs 「무예연구」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2/01/12/
[이경명칼럼] 해동검도 창시자: 김정호 vs 나한일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2/01/10/
[이경명칼럼] 특공무술 vs 경호무술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2/01/03/
[이경명칼럼] 한국 무예 중흥의 해 2012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30/
[이경명칼럼] 수(數) vs 태권도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27/
[이경명칼럼] 색채 vs 태권도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22/
[이경명칼럼] 한글 vs 태권도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20/
[이경명칼럼] 태극기 vs 태권도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19/
[이경명칼럼] 태권도 기술용어 '겨루기준비와 겨룸새'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15/
[이경명칼럼] 태권도, 한류 그리고 문화산업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14/
[이경명칼럼] 태권도기술용어, 딛기 vs 짓기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13/
[이경명칼럼] 합기도 vs Aikido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11/
[이경명칼럼]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거다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10/
[이경명칼럼] 태권도와 이대순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07/
[이경명칼럼] 태권도한마당 & 강원식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07/
[이경명칼럼] 본국검 vs 검도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06/
[이경명칼럼] 태권도 & 리더십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05/
[이경명칼럼] 국기원 vs 태권도진흥재단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장 2011/12/02/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최근 인기기사
광고
광고
광고
  회사소개광고/제휴 안내개인보호정책청소년보호정책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